학술논문
고려의 崔致遠 만들기
이용수 79
- 영문명
- 발행기관
- 개인저작물
- 저자명
- 김복순(金福順)
- 간행물 정보
- 『개인저작물 - 인문』제32집, 69~89쪽, 전체 21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개인저작물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0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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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최치원은 875년 당에서 귀국하였다. 신라왕의 명으로 4새의 비문인 四山碑銘을 찬술하였다. 그러나 이 비들은 신라 말 고려 초 혼란의 와중에서 제대로 건립되지 못하였다. 특히 「지증대사비」는 진성여왕 7년(893) 경에 찬술된 이후 30년이 지난 신라 경명왕 8년, 고려 태조 7년인 924년의 시점에서 친고려적 성향의 호족들이 간여하여 건립되었다. 이에 비문의 내용과 음기는 최치원의 찬술이 맞지만, 직함이 나오는 제액에 의도적인 가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치원이 찬술한 「지증대사비」에는 분명 入朝賀正兼 迎奉皇花等使 朝請大夫 前守兵部侍郞 充瑞書阮學士 賜紫金魚袋 臣 崔致遠이라고 그의 직함이 쓰여져 있다. 그런데 많은 논문에서 최치원의 직함이 다른 3비와는 달리 이 비에서 변화한 것에만 주목하였을 뿐,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고, 이 직함을 이용하여 논지를 전개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비의 건립에는 아자개, 희필과 같은 고려계 인사들이 단월로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였고, 고려의 寺主 능선의 주도 아래 건립된 사실을 증시하여, 제액에 쓰여진 그의 직함이 변개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그 배경으로는 첫째로, 924년 6월에 「지증대사비」의 건립을 주도한 이들이 다음 달인 7월에 귀국하는 봉암사 도헌의 법손 긍양을 봉암사에 초치하려는 의도에서 간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둘째로 이 비에서 최치원의 직함이 변한 것은 중국 유학승 최치원도 고려에 밀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즉 고려로서의 人心 歸服을 위해 당시인들의 연민을 받고 있던 최치원을 친고려적 성향의 인물로 만들고자 한 의도로서 「지증대사비」를 건립하면서 그의 직함을 조정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인물은 「지증대사비」가 소재한 봉암사의 원주와 「징효대사비」가 있던 흥녕사의 寺主로 있었던 능선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보았다.
영문 초록
Choi Chiwon was returned to Silla from Dang in 875. After being returned, he wrote four kinds of monumental inscriptions according to the order by the king of Silla. But the inscriptions could not be established as tombstones in the transformation period from Silla to Koryo. Among the four monumental inscriptions, the `Jijeungdaesabi` was established as a tombstone in 924(the 8th year of Kyungmyung, king of Silla, and the 7th year of the first king of Koryo) after 30 years from the time when the inscription was written in 893(the 7th year of Queen of Jinsung in Silla). It is true that the inscription of the Jijeungdaesabi was written by Choi Chiwon. However, the official title of Choi Chiwon in the first part of the tombstone was changed.
The title of Choi Chiwon was written as 入朝賀正兼 迎奉皇花等使 朝請大夫 前守兵部侍郞 充瑞書阮學士 賜紫金魚袋 臣 崔致遠 in the Jijeungdaesabi. Regarding the title, most existing studies simply indicate that this title is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tombstones, without explaining the reason why the tile is different.
I found the fact that this tombstone was established by the direction of Neungsun, a representative of Buddhists in Koryo, with financial support from Ajagae and Hipil. And I supposed that the title was intentionally changed by the establishers of the tombstone.
I explained that the Jijeungdaesabi was established in June 924 in order to invite Geungayang(Buddhist priest) returning from Dang in July 924. And the tile of Choi Chiwon was changed because the establishers of the tombstone wanted to inform that he, who studied in China, secretly helped the establishment of Kingdom of Koryo. In other words, the establishers of the Jijeungdaesabi changed the title of Choi Chiwon for the people`s loyalty toward Koryo, by making Choi Chiwon, who was respected by the people at that time, as a person supporting Koryo. Thus, I concluded that the person who led to change the tile of Choi Chiwon, was Neungsun, who was the representative of the two Buddhist temples, Bongamsa where the Jinghyodaesabe was located and Heungnyungsa.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의 최치원 만들기
Ⅲ. 최치원과 「지증대사비」
Ⅳ. 맺음말
국문초록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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