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수 · 당의 교체 정국과 신라 불교계의 추이
이용수 61
- 영문명
- A Trend of Shilla Buddhism in the Era of Transformation from sui to Tang Dynasty
- 발행기관
- 개인저작물
- 저자명
- 김복순(Kim, Bok-soon)
- 간행물 정보
- 『개인저작물 - 인문』제43집, 169~195쪽, 전체 27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개인저작물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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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논문은 수나라에 유학하였던 신라 승들이 신라로 귀국한 이후 벌인 활동이 신라 불교계의 기반을 이루었다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신라는 6세기 말부터 7세기 접어들면서 陳, 隋, 唐에 유학승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이는 새로운 사조의 유입에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보다 적극적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귀국 후의 활동으로 불교가 신라에서 사회사상으로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유학승들이 역할과 평가에 있어 안함의 예와 같이 사료의 착종 등 혼란스러운 내용만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이들이 유학승이므로 신라의 대외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신라는 진평왕 대인 6·7세기에 진, 수, 당의 교체에 따른 잦은 대외정국의 변화를 겪었을 뿐 아니라, 이후 나당연합에서 나당전쟁으로, 그리고 대당관계의 재개라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잦은 정국의 변화는 이러한 문제들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 고는 6·7세기 신라 유학승들의 활동과 신라 불교계의 상황을 수화 당의 교체 정국과, 나·당 연합에서 나·당 전쟁으로의 변화에 따른 신라불교계의 행보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다. 신라가 수나 당과의 외교관계가 순탄했을 때와는 달리, 나당전쟁이라는 상황에 처해짐으로 해서, 원광과 안함, 자장등을 계승한 명랑, 원효 등의 불교계 지식인들은 신라의 자주권 확보라는 측면에서 행보를 함께 하였다. 그러나 당과의 관계가 다시 재개되면서 이들 가운데 수유학승에 대한 평가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안함과 관련한 참서의 등장과 『삼국사기』와 최치원에 의한 사료의 착종과 같은 문제가 생겨났다고 추정된다.
그렇지만 수·당의 교체정국과 나·당연합에서 나·당전쟁, 나·당관계정상화라는 변수 속에서도 신라인들의 자존의식이 當代의 고승들의 행보에 잘 드러나 있었다고 생각되며, 이들은 신라를 호위하는 사상적인 축을 잘 지탱하고 있었다.
영문 초록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strate that the Shilla buddhist monks who studied in Sui established the base of Shilla buddhism. Many of the Shilla buddhist mon한 went to Chin, Sui, Tang for their studies from the end of the 6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7th century. This reflected that Shilla was more active in accepting the new trend of thought than Baeckje and Koguryeo. Thus, the activities of the monks returned to Shilla contributed to the settlement of buddhism as a social thought in Shilla. Despite this fact, the studies about the role of the Shilla monks who studied in foreign countries and the evaluation of their activities, like the evaluation of Anharm, had some problems derived from the confusion of historical documents and the confounded folk tales.
In order to solve these problems, we need to concentrate our attention on the foreign relations of Shilla because the monks studied in foreign countries. Shilla under the king of Jinpyung from the 6th century to the 7th century experienced the frequent political changes resulted from the transformation from Chin to Sui and from Sui to Tang. Moreover, the great changes from alliance to war and from war to re-alliance between Shilla and Tang had appeared since the transformation. In short, these frequent political changes could bring about the problems above mentioned.
Accordingly, this study analyzed the activities of the Shilla monks who studued in foreign countries and the characters of Shilla buddhism during the 6th and the 7th century, in terms of the movement of buddhist society in Shilla by the change from alliance to war between Shilla and Tang. When Shilla was the under the war against Tang, unlike when it had the good relations with Sui and Tang, th buddhist intellectuals including Myungran and Wonhyo, who succeeded to Wonkwang, Anharm, and JaJang, agreed o secure the right of independence for Shilla. However, when Shilla reopened the friendly relationships with Tang, the evaluation of the buddhist monks who studied in sui was problematic. In addition, some problems derived from the foretelling books by Angarm and the confusion of historical documents by the author of Samguksaki and Choi Chiwon began to appear.
However, we can find the independent spirit of Shilla buddhist monks in their activities even under the frequent political changes, such as the transformation from Sui to Tang, the alliance and war between Shilla and Tang, and the reopening of friendly relationships between Shilla and Tang. In sum, they sustained the axis of the thought to protect Shilla.
목차
Ⅰ.머리말
Ⅱ. 수․당의 교체와 신라의 유학승
Ⅲ. 나당연합에서 나·당전쟁으로의 변화와 신라 불교계의 행보
Ⅳ. 나당관계 재개 이후 안함의 평가와 사료의 착종
Ⅴ. 맺음말
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수·당의 교체정국
수유학승
나당연합에서 나당전쟁으로의 변화와 신라불교계
나당관계의 재개와 안함의 평가
The transformation from Sui to Tang
The monks who studied in Sui
Buddhist society in Shilla and the change from alliance to war between Shilla and Tang
Evaluation of Anharm and the reopening of friendly relationships between Shilla and Tang
Confusion of historical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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