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명
- The Origin of Ruling Ideology over Ethnic Groups in the Worldview of the “Stele of King Kwanggaet’o”
-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저자명
- 이종록(Jong-rok Lee)
- 간행물 정보
- 『한국고대사탐구』제50집, 99~143쪽, 전체 45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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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논문은 5세기 초 「광개토왕비」 비문의 고구려 천하관 속에서 나타난 이종족 인식과 지배 이념으로의 기능을 검토한 글이다. 비문 속 고구려의 천하관에서는 주변의 여러 집단에 대한 우월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이 우월의식은 백제와 신라와 같은 주변 국가들만이 아니라 肅愼과 같은 이민족 및 고구려에게 편입된 ‘新來韓穢’와 같은 종족집단에게도 적용되었다. 이 고구려의 천하관 속 우월의식은 중국의 중화이념과 같은 자민족 중심적인 면을 가진 동시에, 이로부터 유래된 이종족 개념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었던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천하관 속 이민족에 대한 지배이념은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내적 논리 구축이 요구되었다.
이와 같은 중국 입장에서의 이민족이면서,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자 주변인들에게 우월의식을 보유하는 모습은 5세기 무렵 고구려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었다. 오호십육국-남북조 성립 과정에서 오호의 정권은 중화의 ‘다원화’가 발생하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천하관 또한 이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족의 정권이 붕괴되고 중원에 유입된 오호의 정권은 각자 자신들만의 ‘中華’를 구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중화의 주인이라는 자격은 胡漢의 여부보다는 군주의 ‘덕’의 유무가 강조되었다. 동시에 타 집단 및 이민족에 대한 복속은 덕의 우열에 따른 ‘왕화’로 정당화되었다. 이 논리는 고구려인들에게도 차용되며 같은 이민족인 자신들의 천하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근거가 된 한편, 주변 세력에 대한 조공과 수묘인의 차출과 같은 고구려의 영역 내 이종족에 대한 지배의 근거이자 이후 고구려의 공민화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문 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perception on ethnic groups and its function as a governing ideology within Koguryŏ’s worldview (天下觀), as reflected in the “Stele of King Kwanggaet’o” during the early fifth century. As is well known, Koguryŏ’s worldview expressed a sense of superiority over other political and ethnic groups. This perspective was applied not only to neighboring states such as Paekche and Silla, but also to the ethnic groups incorporated into Koguryŏ, including the so-called “Newly Arrived Han and Ye (新來韓穢),” who were drafted as Sumyoin (隨墓人; tomb guardians). However, since Koguryŏ largely adopted self-ethnocentric ideology similar to the Chinese Sinocentric worldview, it would have been necessary to construct an internal logic that could justify such a perception as a ruling ideology.
In this context, Koguryŏ’s perspective on the other ethnic groups was strongly influenced by the pluralized “Sinocentrism (中華)” during the period of the Sixteen Kingdoms of the Five Barbarians. With the collapse of Han Chinese regimes and the rise of the “Five Barbarians” in mainland China, each dynasty formulated its own version of Sinocentrism. During this process, the qualification to be a legitimate ruler of this Chinese world was claimed to be determined less by ethnic background, and more by the possession of virtue (德). At the same time, the subordination of other peoples was justified as a process of “reformation by the ruler (王化),” whose superior virtue legitimized their authority. This logic was appropriated by Koguryŏ’s ruling class, providing the basis for its ethnocentric world. It also served as the ideological foundation for Koguryŏ’s domination over other ethnic groups within its sphere, including the extraction of tribute and conscription of tomb guardians.
목차
Ⅰ. 머리말
Ⅱ. 「廣開土王碑」 비문의 이종족 인식
Ⅲ. 「廣開土王碑」 비문의 舊⺠과 新來韓穢
Ⅳ. 4~5세기 中華의 다원화와 고구려의 ‘王化’
Ⅴ.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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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사탐구 제50집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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