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汪喜孫과 朝鮮文人의 往來 尺牘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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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淸人汪喜孫與朝鮮文人往來尺牘考論
- 발행기관
- 대동한문학회
- 저자명
- 劉婧
- 간행물 정보
-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第37輯, 39~63쪽, 전체 25쪽
- 주제분류
-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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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본 연구에서는 淸人 汪喜孫이 朝鮮文人들과 往來한 尺牘을 조사 정리하고 그 내용과 의미, 척독의 작자귀속 문제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척독자료의 일부는 그 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본고는 이러한 척독자료의 내용과 전승 과정을 통해 청인 汪喜孫과 조선문인들 간의 학술 교류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19세기 전반에 淸朝文化가 조선으로 流入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위한 청인 汪喜孫의 적극적 노력의 일면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汪喜孫은 청대 楊州學派의 중심인물 중 한 명 이었던 汪中의 아들이다. 汪喜孫이 청대楊州學派를 계승함으로써, 그의 사상과 학술은 일찍이 중국학계의 주목을 받아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汪喜孫과 조선문인 사이에 주고받은 척독의 확실한 수량에 대해 학계는 아직까지 정확한 숫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척독 교류의 통계적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藤塚鄰의 『淸朝文化東傳的硏究』(「汪孟慈和院堂」) 중 『海外墨緣』에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한・중・일 삼국에서 검토한 『淸朝文化東傳的硏究』・ 『阮堂先生文集』・ 『蘭言彙鈔』・ 『恩誦堂集』・ 『金正喜與韓中墨緣』・ 『中士尺牘』・ 『尺牘藏弆集』등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汪喜孫과 조선 문인들 간 왕래한 척독 자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汪喜孫과 조선문인들 간의 왕래한 척독에 관한 문헌자료를 통해 척독 량을 분석하고 척독의 내용을 정리하여 고증하였다. 汪喜孫과 교류한 조선문인들 총 여덟 명이었으며 道光 7年(1827)부터 道光 19 (1839)까지 척독의 왕래가 있었다. 汪喜孫과 조선문인들이 주고받은 척독은 24통 이었다 실제로 藤塚鄰의 『淸朝文化東傳的硏究』중 藤塚鄰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 32통의 척독 원본과 필사본을 현재 검토된 서신자료와 하나하나 열거하여 비교하여 그 중 9통의 척독문헌의 자세한 내용과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많은 논쟁이 있던 『海外墨緣』의 작가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한 결과, 『海外墨緣』의 작가는 조선문인 權敦仁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汪喜孫과 조선 문인들 간의 척독의 내용으로 볼 때 척독은 漢宋학술에 대한 논쟁과 經學방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는데 집중되었다 그들이 학술 토론을 위해 주고받은 척독은 하나의 著述로 간주될 수 있다. 이와 같은 尺牘 著述은 朝・淸 학자들의 學緣과 19세기 동아시아 학술사상을 고찰하는데 풍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문 초록
本文以淸人汪喜孫和朝鮮文人往來尺牘爲硏究對象, 首先對這些尺牘的數量進行了調査, 進而對這些尺牘的發信時間, 內容, 作者問題, 尺牘的特徵等進行了考察. 這些尺牘資料中有一部是學界中未被硏究和引起重視的資料, 筆者通過對這些尺牘的內容和傳承過程進行分析, 不但可以把 握汪喜孫和朝鮮文人之間學術交流的具體細節, 還可以通過19世紀前期淸 朝文化傳入朝鮮和兩國文人的文化交流的具體過程, 來瞭解淸人汪喜孫在 淸代學術東傳朝鮮的過程中所作出的積極作用。
汪喜孫是淸代揚州學派的中心人物汪中之子, 因汪中早逝, 汪喜孫兒 時進京後即出入于大學者翁方綱, 阮元等人的門下受學. 朝鮮學者金正 喜在1810年出使京師時和翁方綱, 阮元有過密切交往, 也和汪喜孫等展開 了廣泛的交流. 之後, 通過金正喜的介紹, 汪喜孫得以結識金正喜之弟金 命喜及知友權敦仁、李尙迪、金善臣等人. 本論文中所考察的汪喜孫和 朝鮮文人的尺牘文獻是現今韓、中、日三國所存文獻中收錄的尺牘, 這些文獻有: 藤塚鄰的 『淸朝文化東傳的硏究』,『海外墨緣』,『阮堂先生文集』,『蘭言彙鈔』, 『恩誦堂集』, 『金正喜與韓中墨緣』,『中士尺牘』,『尺牘藏弆集』等. 通過以上文獻中所錄汪喜孫和朝鮮文人的來往尺牘, 可以歸納爲以下三點: 第一, 汪喜孫所交流的朝鮮文人有八人, 這些人物都和金正喜有一定的親緣或學緣關係. 另通過藤塚鄰所言個人所曾收藏的尺牘資料, 可知汪喜孫和朝鮮文人交往的人物並不限於此等八人, 不過此八人以外的 尺牘資料現今爲止還沒有被發現. 第二, 汪喜孫和朝鮮文人尺牘交往的時 間跨度是從道光七年(1827)開始, 道光十九年(1839)爲止. 因汪喜孫和朝 鮮文人的結識早於道光七年, 他們的尺牘文獻也應還有發掘整理的空間。第三, 汪喜孫和朝鮮文人之間收藏的尺牘數量爲二十四通. 又根據藤塚鄰所曾言說個人收藏的三十二通和汪喜孫與朝鮮文人的尺牘資料進行對比,可以得知其三十二通中有九通可以確認其具體內容, 而其中有三通是原跡, 這些尺牘文獻具有重要的文獻和藝術價值. 另外還可以得知汪喜孫與周 經和嘉湖侍的郞尺牘是藤塚鄰所未經眼過的。
根據以上所統計的尺牘材料中存在的一些問題, 首先對『海外墨緣 』尺 牘的作者進行了進一步的分析舉證, 來判定出其作者是朝鮮文人權敦仁。 對於汪喜孫和朝鮮文人來往尺牘的特徵來看, 他們所交流的世紀上半期 正是淸代學術繁榮昌盛的時期, 淸人之間往往也是通過尺牘交流來發表自己的學術觀點, 所以汪喜孫與朝鮮文人之間的來往尺牘可以看作是淸人之 間學術交流的延續和範圍的擴大化, 他們之間的來往尺牘也可以看作是學術著述. 這些尺牘文獻對硏究朝鮮和淸代學者之間的學術交流及19世紀東亞各國的學術思想交流都具有重要的文獻價值. 另外, 根據以上所統計 的汪喜孫和朝鮮文人之間往來尺牘的內容也可以得知一下兩點: 第一, 本 文所論汪喜孫和朝鮮文人的尺牘交流爲個案, 可以非常詳細地瞭解淸人和 朝鮮文人之間文化和學術交流的具體細節. 第二, 歷代韓中文化的交流都 可歸納爲書籍之間的交流和文人之間的直接交流這兩種方式, 而文人之間 的直接交流對兩國之間的文化和學術的影響程度更大. 汪喜孫作爲揚州 學派的傳承者, 其在和朝鮮文人交流的尺牘中, 非常系統地介紹了淸代學術以及個人的學術主張. 通過以上尺牘內容可以看出汪喜孫是有目的的、積極地傳播淸代的經學主張的、所以在考察韓中兩國的學術思想時,只考察朝鮮文人一方的積極作用是片面的, 也應該注意到淸代學者在傳播自身學術主張時所起的積極作用。
總之,古代韓中兩國文人之間的文化交流是多層次、多元化的, 他們之間的尺牘交流是其中重要的一部分, 不過因尺牘作品的流動性較大, 對這些尺牘文獻的發掘和整理頗爲不易, 今後還需要投入更多的資金和精力, 做更深入的硏究才行。
목차
국문초록
1. 序論
2. 汪喜孫과 조선문인 간에 왕래된 척독의 현황
3. 汪喜孫과 朝鮮文人 간의 往來 尺牘의 諸問題
4. 結論
참고문헌
中文提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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