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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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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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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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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6.18MB)
ISBN 9791191146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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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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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는 중국의 전한(前漢) 무제(武帝) 시대에 사마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오제(五帝)로부터 한나라 무제 태초 연간(기원전 104~101년)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이다. 본격적인 저술은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9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중국 최초의 임금인 황제(黃帝)부터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 별로 나누어 쓴 <사기> 130권은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획기적인 역사책이다. 이런 형식을 기전체(紀傳體)라고 하는데, 연대순으로 써가는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역사 기록 방법의 하나이다.
<사기>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연표인 표(表) 1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공명을 세운 사람들의 전기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은 서문(태자공자서)을 통하여 <사기> 전체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 수 있게 했다. 이편을 둘로 나누어 전반부는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의 아들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사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 등을 기록하고, 후반부는 <사기> 130편에 대하여 각 편을 기록하게 된 동기를 기록하고, <사기>를 저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황제(黃帝)부터 태초(太初) 연간에 이르기까지 총 130편에 526,500자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이광의 손자 이릉(李陵)이 흉노를 토벌하러 나갔다가 흉노에게 항복하자, 사마천이 무제(武帝)에게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 사실을 말하였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01.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 | 6
권 102.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 49
권 103.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 78
권 104. 전숙열전田叔列傳 | 109
권 105.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 139

사기 24
史記
열전列傳
8

사마천
우리고전연구회 역







차 례

권 101.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 | 6
권 102.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 49
권 103.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 78
권 104. 전숙열전田叔列傳 | 109
권 105.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 139
권 101.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은 전한(前漢)의 관료 원앙(袁盎)과 조조(鼂錯 : 晁錯)에 관한 합전(合傳)이다.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이 일어나자, 조조와 평소 원수지간이었던 원앙(袁盎)이 참소해 조조(鼂錯)를 장안 저잣거리에서 참수하게 했다.
원앙은 초(楚)나라 사람으로 자는 사(絲)이다. 서한(西漢) 시대의 대신으로 개성이 강직하고 재간과 담력이 있었다. 여후(呂後) 집정 시에 여록(呂祿)의 가신(家臣)이었지만, 한문제(漢文帝)가 즉위한 후 그 형 원쾌(袁噲)가 천거하여 중랑(中郎)이 되었다. 그는 조정에서 유가(儒家)의 예치사상(禮治思想)으로 통치할 것을 강조했고, 서슴없이 직간(直諫)하여 한문제(漢文帝)의 노여움을 사 농서도위(隴西都尉), 오상(吳相)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한경제(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조조(晁錯)를 주살하라고 간청하여 제후들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태상(太常)이 되고, 오(吳)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 초상(楚相)이 되었다. 그 후 양효왕(梁孝王)을 황제의 후사로 결정하는 걸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렸다가 안릉(安陵) 곽문(郭門) 밖에서 양효왕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었다.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 (1)
원앙(袁盎) (1)
袁盎者(원앙자) 楚人也(초인야) 字絲(자사) 父故為群盜(부고위군도) 徙處安陵(사처안릉) 高后時(고후시) 盎嘗為呂祿舍人(앙상위여록사인) 及孝文帝即位(급효문제즉위) 盎兄噲任盎為中郎(앙형쾌임앙위중랑)
원앙(袁盎)은 초(楚) 사람으로 자는 사(絲)이다.
그의 부친은 이전에 도둑의 무리였는데, 그 후에 안릉(安陵)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원앙은 여태후(呂太后) 高後(고후) : 여태후(呂太后). 여치(呂雉).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황후(皇后).
가 집정할 때, 여태후의 조카 여록(呂祿) 여록(呂祿) : 고황후의 작은 오라버니 여석지의 아들이며, 여칙, 여종의 아우로 전한 혜제 7년(기원전 188년) 혜제가 죽고 고황후가 태황태후로 임조칭제하면서 여태, 여산과 함께 남북군을 통제해 여씨 일족의 전제에 일조했다.
의 가신(家臣)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효문제(孝文帝) 孝文帝(효문제) : 한문제(漢文帝). 유방의 넷째아들 유항(劉恒).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태후가 죽고 주발, 진평, 제애왕, 성양경왕 등이 여씨 세력을 토벌하고 대왕(代王) 유항(劉恒)을 효문황제(한문제)로 세웠다.
가 즉위하자, 원앙의 형 쾌(噲)가 원앙을 추천해 중랑(中郎)이 되었다.

絳侯為丞相(강후위승상) 朝罷趨出(조파추출) 意得甚(의득심) 上禮之恭(상례지공) 常自送之(상자송지) 袁盎進曰(원앙진왈) 陛下以丞相何如人(폐하이승상하여인) 上曰(상왈) 社稷臣(사직신)
강후(絳侯) 降侯(강후) : 주발(周勃)을 말한다. 전한 초기의 무장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이다.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진나라 정벌에 공을 세워서 강후(絳侯)에 봉하여졌다. 여후(呂后)가 죽은 뒤 진평(陳平) 등과 함께 여씨 일족을 주살했다.
주발(周勃)이 승상(丞相)이 되었는데, 조회를 마친 후에 종종걸음으로 나오는 모습이 매우 으스대며 만족해했다.
황제도 그를 공경하여 예우해 주며 항상 그를 친히 전송해 주곤 하였다.
원앙이 황제 앞에 나가 간하였다.
“폐하께서는 승상 강후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제가 말했다.
“그는 사직(社稷) 社稷(사직) : 지신(地神)과 곡신(穀神). 옛날 군주는 토지신과 곡신(穀神)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 뒤로 국가를 지칭하여 쓰인다.
의 중신이라고 생각하오.”

盎曰(앙왈) 絳侯所謂功臣(강후소위공신) 非社稷臣(비사직신) 社稷臣主在與在(사직신주재여재) 主亡與亡(주망여망) 方呂后時(방여후시) 諸呂用事(제여용사) 擅相王(천상왕) 劉氏不絕如帶(유씨부절여대) 是時絳侯為太尉(시시강후위태위) 主兵柄(주병병) 弗能正(불능정) 呂后崩(여후붕) 大臣相與共畔諸呂(대신상여공반제여) 太尉主兵(태위주병) 適會其成功(적회기성공) 所謂功臣(소위공신) 非社稷臣(비사직신) 丞相如有驕主色(승상여유교주색) 陛下謙讓(폐하겸양) 臣主失禮(신주실례) 竊為陛下不取也(절위폐하불취야)
원앙이 말했다.
“강후는 이른바 공신일 뿐 사직의 중신은 아닙니다. 사직의 중신이란 군주와 공존해야 하고 생사를 함께해야 主亡與亡(주망여망) : 황제와 생사를 같이함.
합니다.
여태후 때 여씨(呂氏) 일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제멋대로 서로 왕이 되어, 유씨(劉氏)의 천하는 한갓 끊어지지 않는 실낱같아서 거의 단절될 뻔 不絕如帶(부절여대) : 끈처럼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상황. 유씨(劉氏) 왕조의 명맥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뜻.
했습니다.
이런 때에 강후는 태위(太尉)로서 병권을 장악하고 主兵柄(주병병) : 병권(兵權)을 장악함. 柄은 권력.
있었으면서도 이를 바로잡아 구하지 못했습니다.
여태후가 돌아가시자 대신들이 서로 힘을 합해 여씨 일족에게 반기를 들 때, 태위는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성공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므로 공신이라 할 수는 있으나, 사직의 중신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승상은 폐하께 교만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도리어 겸허하게 양보하시니, 이는 신하와 군주 모두 예를 잃은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는 폐하께서 취하실 태도가 아닙니다.”

後朝(후조) 上益莊(상익장) 丞相益畏(승상익외) 已而絳侯望袁盎曰(이이강후망원앙왈) 吾與而兄善(오여이형선) 今兒廷毀我(금아정훼아) 盎遂不謝(앙수불사)
그 후 조회 때부터 황제는 점차 위엄을 보이게 되었고, 승상도 점차 황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후는 원앙을 원망하며 말했다.
“나는 너의 형과 친한 사이인데, 지금 네 놈이 감히 조정에서 나를 비방하다니!”
그러나 원앙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及絳侯免相之國(급강후면상지국) 國人上書告以為反(국인상서고이위반) 徵系清室(징계청실) 宗室諸公莫敢為言(종실제공막감위언) 唯袁盎明絳侯無罪(유원앙명강후무죄) 絳侯得釋(강후득석) 盎頗有力(앙파유력) 絳侯乃大與盎結交(강후내대여앙결교)
강후가 승상에서 면직되어 자신의 봉국(封國)으로 돌아갔는데, 之國(지국) : 자기의 봉지(封地)로 돌아가다. 之는 도달하다.
봉국의 백성들이 강후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 徵系清室(징계청실) : 소환되어 감옥에 갇히다. 系는 수감되다. 清室은 관리를 전문으로 가두는 감옥.
고 상서를 올렸다. 이에 강후는 소환되어 감옥에 구금되었는데, 종실과 대신 중 아무도 강후를 위해 변호하지 않았다.
오직 원앙만이 강후가 죄가 없다고 증명하였다.
강후가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원앙이 힘썼기 때문이었다.
그 후 강후와 원앙은 교제가 깊어졌다.

淮南厲王朝(회남여왕조) 殺辟陽侯(살벽양후) 居處驕甚(거처교심) 袁盎諫曰(원앙간왈) 諸侯大驕必生患(제후대교필생환) 可適削地(가적삭지) 上弗用(상불용) 淮南王益橫(회남왕익횡) 及棘蒲侯柴武太子謀反事覺(급극포후시무태자모반사각) 治(치) 連淮南王(연회남왕) 淮南王徵(회남왕징) 上因遷之蜀(상인천지촉) 轞車傳送(함거전송)
회남여왕(淮南厲王) 淮南厲王(회남여왕) : 회남여왕유장(淮南厲王劉長 기원전 199년~기원전 174년)은 전한 초기 제후왕으로 고조 유방의 7남이다. 한문제의 이복동생이다.
유장(劉長)이 입조(入朝)했을 때, 벽양후(辟陽侯) 심이기(審食其)를 살해하고 殺辟陽侯(살벽양후) : 문제 3년(기원전 177년) 회남왕이 입조하여, 평소 심이기를 어머니의 원수로 여겨 원망하던 회남왕은 심이기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심이기는 회남왕을 만나러 나왔다가 회남왕이 휘두른 철추에 맞았고, 회남왕의 종자 위경(魏敬)이 목을 베었다. <사기 권 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행동거지가 매우 교만했다.
원앙은 황상에게 간언하였다.
“제후가 지나치게 교만하면 반드시 재난이 생깁니다. 그러니 봉지를 적당히 삭감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황제는 원앙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남왕은 더욱 거만하고 횡포해졌다.
극포후(棘蒲侯) 시무(柴武)의 태자 시기(柴奇)가 모반을 획책한 棘蒲侯柴武太子(극포후시무태자) : 시기(柴奇)를 말한다. 한문제 6년(기원전 174년), 극포후 시무의 태자 시기(柴奇)가 회남여왕 유장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사기 권 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사건이 발각되어 그의 죄를 조사하다 보니, 회남왕도 연루되어 회남왕을 징계하여 황제가 회남왕을 촉(蜀)으로 유배 보내기로 하고 죄수 호송 마차 轞車(함거) : 죄인을 호송하는 데 쓰던 수레.
에 실어 보내도록 했다.

袁盎時為中郎將(원앙시위중랑장) 乃諫曰(내간왈) 陛下素驕淮南王(폐하소교회남왕) 弗稍禁(불초금) 以至此(이지차) 今又暴摧折之(금우폭최절지) 淮南王為人剛(회남왕위인강) 如有遇霧露行道死(여유우무로행도사) 陛下竟為以天下之大弗能容(폐하경위이천하지대불능용) 有殺弟之名(유살제지명) 柰何(내하) 上弗聽(상불청) 遂行之(수행지)
원앙은 당시 중랑장(中郎將)을 맡고 있었는데, 바로 황제에게 간언했다.
“폐하께서는 평소 회남왕이 교만해도 조금도 금하지 않으셨기에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돌연 강경하게 그의 기를 꺾어버리려 하십니다. 회남왕은 강직한 사람인데, 만일 유배 도중에 감기 霧露(무로) : 풍한(風寒). 감기.
라도 걸려 죽어 버린다면, 폐하께서는 결국 천하의 대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우 하나 포용하지 못해 죽였다는 오명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황제는 원앙의 간언을 듣지 않고, 마침내 회남왕을 촉으로 유배 보냈다.

淮南王至雍(회남왕지옹) 病死(병사) 聞(문) 上輟食(상철식) 哭甚哀(곡심애) 盎入(앙입) 頓首請罪(돈수청죄) 上曰(상왈) 以不用公言至此(이불용공언지차) 盎曰(앙왈) 上自寬(상자관) 此往事(차왕사) 豈可悔哉(기가회재) 且陛下有高世之行者三(차폐하유고세지행자삼) 此不足以毀名(차부족이훼명)
회남왕은 옹(雍) 지방에 이르러 병사했다. 淮南王至雍(회남왕지옹) 病死(병사) : 회남왕을 태운 수레가 옹(雍)에 당도했을 때, 옹현 현령이 수레에 봉한 문을 열어 보고, 회남왕이 죽은 사실을 확인하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사기 권 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황제는 그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면서 매우 슬퍼했다.
원앙이 입조해 머리를 조아려 頓首(돈수) :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절하다.
자신의 죄를 청했다.
황제가 말했다.
“내가 공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렀소.”
원앙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이번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설사 후회하신들 어쩌겠습니까! 또 폐하께서는 세상에서 고결한 세 가지의 행적이 갖추고 계시니, 이번 사건으로 폐하의 명성이 훼손되진 않을 것입니다.”

上曰(상왈) 吾高世行三者何事(오고세행삼자하사) 盎曰(앙왈) 陛下居代時(폐하거대시) 太后嘗病(태후상병) 三年(삼년) 陛下不交睫(폐하불교첩) 不解衣(불해의) 湯藥非陛下口所(탕약비폐하구소) 嘗弗進(상불진) 夫曾參以布衣猶難之(부증삼이포의유난지) 今陛下親以王者修之(금폐하친이왕자수지) 過曾參孝遠矣(과증삼효원의) 夫諸呂用事(부제여용사) 大臣專制(대신전제) 然陛下從代乘六傳馳不測之淵(연폐하종대승육전치불측지연) 雖賁育之勇不及陛下(수분육지용불급폐하) 陛下至代邸(폐하지대저) 西向讓天子位者再(서향양천자위자재) 南面讓天子位者三(남면양천자위자삼) 夫許由一讓(부허유일양) 而陛下五以天下讓(이폐하오이천하양) 過許由四矣(과허유사의) 且陛下遷淮南王(차폐하천회남왕) 欲以苦其志(욕이고기지) 使改過(사개과) 有司衛不謹(유사위불근) 故病死(고병사)
황제가 말했다.
“짐이 세상에서 고결한 세 가지 행적을 갖추고 있다니,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원앙이 말했다.
“폐하께서 대(代)에 계실 때 居代(거대) : 유항이 황제가 되기 전에 대왕(代王)이었다.
태후(太后) 太后(태후) :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恆)의 모친 박태후(薄太后).
께서 이미 3년이나 병을 앓고 계셨는데, 폐하께서는 잠도 제대로 안 주무시고, 옷도 벗지 않고 탕약도 폐하께서 친히 입으로 맛본 것이 아니면 태후께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무릇 증삼(曾參) 曾參(증삼) : 공자의 제자로 효도로 이름이 높았다.
은 평민의 신분으로도 오히려 그렇게 하기 어려워했는데, 폐하께서는 왕자의 몸으로도 친히 실행하셨으니, 증삼의 효도를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여씨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대신들이 독단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으나, 폐하께서는 대(代)에서 여섯 대의 역마 乘傳(승전) : 역마. 역참에서 사용하는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
를 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 같은 경성으로 달려들었으니, 비록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賁育(분육) :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을 말한다. 맹분(孟賁)은 역사(力士)로 맨손으로 살아 있는 소의 뿔을 뽑았다고 한다. 하육(夏育)은 위(衛)나라 사람으로 1천 균(鈞)을 들 수 있고 소꼬리를 뽑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같은 용사라도 폐하께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 폐하께서는 경성에 있는 대왕(代王)의 객관(客館)에 이르시어 서쪽을 향해 천자(天子)의 자리를 사양하신 것이 두 번이었고, 남면하여 천자의 자리를 사양하신 것이 세 번이나 되었습니다.
무릇 허유(許由) 許由(허유) : 중국 고대의 은자(隱者). 허유(許由)는 요(堯)임금의 선양을 거절하면서 귀를 더럽혔다고 하여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었다.
가 천하를 사양한 것은 단지 한 번뿐인데, 폐하께서는 다섯 번이나 사양했으니, 허유보다 네 번이나 더 많습니다.
또 폐하께서 회남왕을 유배 보낸 것은 그가 마음속의 고통을 감내하여 스스로 잘못을 고치라고 하신 것이었는데, 호송하는 관리들이 그를 신중하게 보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병으로 죽은 것입니다.”

於是上乃解(서시상내해) 曰(왈) 將柰何(장내하) 盎曰(앙왈) 淮南王有三子(회남왕유삼자) 唯在陛下耳(유재폐하이) 於是文帝立其三子皆為王(어시문제립기삼자개위왕) 盎由此名重朝廷(앙유차명중조정)
이에 황제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가?”
원앙이 말했다.
“회남왕에게 아들이 셋 있는데, 淮南王有三子(회남왕유삼자) :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는 아들이 네 명으로 되어 있다. ‘효문제 8년(서기전 172년), 황제는 회남왕을 불쌍하게 여겨 모두 일곱 또는 여덟 살에 불과한 회남왕의 아들 4명을 모두 후(侯)로 봉했다. 유안(劉安)을 부릉후(阜陵侯), 유발(劉勃)을 안양후(安陽侯), 유사(劉賜)를 양주후(陽周侯), 유양(劉良)을 동성후(東城侯)로 각각 봉했다.’ <사기 권 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오로지 폐하께 달려 있습니다.”
이에 문제는 그 세 아들을 모두 왕으로 봉했다.
원앙은 이 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명성을 크게 떨쳤다.

원앙조조열전(袁盎鼂錯列傳) (2)
원앙(袁盎) (2)
이 장에서는 원앙의 강직함을 서술하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강직하게 간언하여 환관 조담(趙談)과의 관계가 악화한 것과 황제에 대한 거침없는 질책, 신도가(申屠嘉)의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한 면전(面前) 비판 등을 기술하고 있다.

袁盎常引大體慨(원앙상인대체개) 宦者趙同以數幸(환자조동이삭행) 常害袁盎(상해원앙) 袁盎患之(원앙환지) 盎兄子種為常侍騎(앙형자종위상시기) 持節夾乘(지절협승) 說盎曰(세앙왈) 君與鬬(군여투) 廷辱之(정욕지) 使其毀不用(사기훼불용)
원앙은 항상 대국적(大局的) 도리 大體(대체) : 중요한 이치. 대국적(大局的) 도리를 뜻한다.
를 인용하여 격앙하여 강개(慷慨) 있게 말했다.
환관 조담(趙談) 趙同(조동) : 당시의 환관 조담(趙談). 사마천(司馬遷) 아버지의 이름이 담(談)이었으므로 휘(諱 : 높은 사람의 이름)를 피하려고 조동(趙同)이라고 하였다.
은 여러 차례 황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항상 원앙을 해치려고 했기 때문에, 원앙은 그것을 우려했다.
원앙의 조카 원종(袁種) 兄子種(형자종) : 형의 아들 원종(袁種). 조카 원종.
은 상시기(常侍騎) 常侍騎(상시기) : 황제를 시종하는 기사(騎士).
로서 부절(符節)을 지니고 황제의 곁에서 호위하였는데, 夾乘(협승) : 황제의 좌우에서 호위함.
원앙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숙부님께서 조담과 암투를 벌이고 있는데, 조정에서 그에게 모욕을 주어 그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孝文帝出(효문제출) 趙同參乘(조동참승) 袁盎伏車前曰(원앙복거전왈) 臣聞天子所與共六尺輿者(신문천자소여공육척여자) 皆天下豪英(개천하호영) 今漢雖乏人(금한수핍인) 陛下獨奈何與刀鋸餘人載(폐하독내하여도거여인재) 於是上笑(어시상소) 下趙同(하조동) 趙同泣下車(조동읍하거)
어느 날 효문제가 순시 나갈 때, 조담이 황제를 모시고 수레에 함께 탔는데, 원앙이 수레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신은 천자께서 육 척의 수레에 함께 태우고 가는 사람은 모두 천하의 호걸과 영웅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비록 한(漢)나라에 인재가 없다고 하나,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환관 나부랭이 刀鋸餘人(도거여인) : 환관을 말한다. 궁형을 받은 사람. 刀鋸은 칼과 톱.
를 수레에 함께 태우십니까!”
이에 황제는 웃으면서 조담을 내리게 했다.
조담은 눈물을 흘리면서 수레에서 내렸다.

文帝從霸陵上(문제종패릉상) 欲西馳下峻阪(욕서치하준판) 袁盎騎(원앙기) 并車擥轡(병거람비) 上曰(상왈) 將軍怯邪(장군겁야) 盎曰(앙왈) 臣聞千金之子坐不垂堂(신문천금지자좌불수당) 百金之子不騎衡(백금지자불기형) 聖主不乘危而徼幸(성주불승위이요행) 今陛下騁六騑(금폐하빙육비) 馳下峻山(치하준산) 如有馬驚車敗(여유마경거패) 陛下縱自輕(폐하종자경) 柰高廟太后何(내고묘태후하) 上乃止(상내지)
효문제가 패릉(霸陵) 산 위에서 서쪽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수레를 몰고 내려가려고 했다.
이때 원앙은 말을 타고 접근하여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攬轡(남비) : 말고삐를 잡아당기다. 轡는 고삐.

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겁나는가?”
원앙이 말했다.
“신은 천금을 가진 집의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坐不垂堂(좌불수당) :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하면 위험하므로) 처마 밑에 가깝게 앉지 않다. 垂堂(수당)은 마루 끝.
백금을 가진 집의 아들은 누대의 난간에 걸터앉지 騎衡(기형) : 누대의 난간에 걸터앉다.
않으며, 성군은 위험한 것을 타고서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험준한 산비탈을 내달려 내려가려고 하시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폐하의 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도, 고조(高祖)의 사당 高廟(고묘) :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사당(廟).
과 태후(太后)는 장차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에 황제는 그만두게 하였다.

上幸上林(상행상림) 皇后慎夫人從(황후신부인종) 其在禁中(기재금중) 常同席坐(상동석좌) 及坐(급좌) 郎署長布席(낭서장포석) 袁盎引卻慎夫人坐(원앙인각신부인좌) 慎夫人怒(신부인노) 不肯坐(불긍좌) 上亦怒(상역노) 起(기) 入禁中(입금중)
황제가 상림원(上林苑)에 행차했을 때, 두황후(竇皇后)와 신부인(愼夫人)도 따라갔다.
그녀들은 궁중에 있을 때 항상 나란히 앉았다. 상림원 上林(상림) : 상림원(上林苑). 진나라와 한나라 황제가 사냥하던 곳.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서쪽.
에서 좌석을 마련할 때도 낭서장(郎署長)이 동석의 자리를 만들자, 원앙이 일부러 신부인 慎夫人(신부인) :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恆)의 첩.
의 좌석을 뒤로 밀어놓았다.
신부인이 노하여 자리에 앉지 않았다. 황제 또한 노하여 일어나 궁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盎因前說曰(앙인전세왈) 臣聞尊卑有序則上下和(신문존비유서즉상하화) 今陛下既已立后(금폐하기이립후) 慎夫人乃妾(신부인내첩) 妾主豈可與同坐哉(첩주기가여동좌재) 適所以失尊卑矣(적소이실존비의) 且陛下幸之(차폐하행지) 即厚賜之(즉후사지) 陛下所以為慎夫人(폐하소이위신부인) 適所以禍之(적소이화지) 陛下獨不見(폐하독불견) 人彘(인체) 乎(호) 於是上乃說(어시상내열) 召語慎夫人(소어신부인) 慎夫人賜盎金五十斤(신부인사앙금오십근)
원앙은 이 때문에 황제 앞으로 나아가 설득하였다.
“신은 존귀함과 비천함에 질서가 있어야 위아래가 화목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황후를 책봉하신 후라, 신부인은 첩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첩과 정처(正妻)가 어찌 나란히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존귀함과 비천함의 분별을 잃은 까닭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신부인을 총애하신다면, 그녀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십시오. 폐하께서 하신 행동은 신부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신부인에게는 바로 재앙이 되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혹시 여태후가 척부인을 ‘인간 돼지 人彘(인체) : 인간 돼지. 한고조(漢高祖)는 태자 유영(劉盈)이 한고조가 총애하던 척부인(戚夫人)이 낳은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만 못하다고 여겨 유영을 폐하고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장량(張良)의 계책으로 결국 태자를 바꾸지 못하였다. 후에 고조가 죽고 혜제(惠帝) 유영이 즉위하자, 여태후(呂太后)는 유여의를 수도로 불러들여 독살하고 척부인은 손발을 자르고 귀와 눈을 멀게 하여 돼지우리에서 살게 하여 인체(人彘 : 인간 돼지)로 만들었다. <사기 권 9.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로 만든 일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말을 들은 황제는 기뻐하며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말을 들려주었다. 이에 신부인은 원앙에게 황금 50근을 하사했다.

然袁盎亦以數直諫(연원앙역이삭직간) 不得久居中(부득구거중) 調為隴西都尉(조위롱서도위) 仁愛士卒(인애사졸) 士卒皆爭為死(사졸개쟁위사) 遷為齊相(천위제상)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를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하였다.
사마천은 <본기(本紀)> 12권에서 “제왕들이 일어나게 된 자취를 살폈는데, 그 처음과 끝을 탐구하고 그 흥망성쇠를 보되 사실에 근거하여 논하고 고찰하여 삼 대 이상은 간략하게 추정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상세하게 기록하되, 위로는 황제 헌원(軒轅)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孝武本紀第十二효무본기제십이)에 이르기까지 12편의 본기(本紀)로 저술하고, 종류별로 배열하였다.
<표(表)> 10권에서는 본기(本紀)에 나오는 제왕과 제후들의 흥망을 연표(年表)로 정리하였다. 사마천은 ‘세대가 다른 일이 같은 시기에 일어나고, 발생한 연대의 차이가 분명치 않은 사건들이 있으므로, 10편의 표(表)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書)> 8권에서 사마천은 ‘예악(禮樂)의 증감, 율력(律曆)의 개역, 병법의 권모술수와 산천의 귀신,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그 성패와 변화를 살피기 위해 8편의 서(書)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세가(世家)> 30권에서는 분봉한 국가의 군주나 제후들, 혹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의 사적 및 사회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마천은 ‘28수(宿)의 별자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수레바퀴 살 30개가 바퀴통에 모여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제왕을 보필하는 팔다리와 같은 신하들을 이에 빗대어, 충신으로서 도를 행하여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30편의 세가(世家)로 지었다.’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열전(列傳)> 70권에 대해서,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잘한 일에 매이지 않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 70편의 열전(列傳)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평
Epub은 한자의 덧말 쓰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한자 옆에 훈을 달았다. <사기>를 이해하는 데에, 특히 한자 읽기에 큰 보탬이 되리라 기대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기의 기전체 서술은 역사의 줄기를 제대로 더듬어 갈 수 있게 안배하고 있다.
특히 <표> 10권은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료의 방대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사기》는 중국 전한 왕조인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로, 중국 이십사사의 하나이자 정사의 으뜸으로 꼽힌다.
본래 사마천 자신이 붙인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사공기(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고, 이 ‘태사공기’의 약칭인 ‘사기’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서, 그 서술 범위는 전설상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었다는 요(기원전 2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 말의 전한 무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서술 방식은 후대 중국의 역사서, 특히 정사를 기술하는 방식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 외에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는다.
《사기》의 내용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바로 ‘하늘의 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也非也)’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늘의 도리, 즉 인간의 세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사기》 열전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은 의인(義人)이 틀림없는 백이와 숙제가 아사(餓死)라는 초라한 죽음을 맞은 데에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서는 사마천 자신이 과거 친구이자 이릉의 불가피한 항복을 변호했던 올바른 행동을 하고도 궁형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은 데 대한 비통함이 깔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기》의 기술은 유교 사상이 주가 되는 와중에 다른 사상도 가미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실’을 추구한다는 역사서 편찬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역사 서술을 위한 간결하면서도 힘찬 문장은 ‘문성(文聖)’ 또는 ‘백전노장의 군대의 운용’과 같은 것이라 하여 격찬받았다. 특히 〈항우본기〉는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면에서는 정사로서 기술된 당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본 정보는 섬세한 기술로 당시의 생활이나 습관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서〉(書)의 내용은 전한 시대의 세계관이나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또 흉노를 비롯한 주변 이민족이나 서역에 관한 기술도 현재 알려진 지리와 유적 발굴 등에서 판명된 당시 상황과의 정합성이 높고, 이러한 지방의 당시를 알기 위한 귀중한 단서가 되고 있으며, 진시황 본기의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에 근위병 3천 인의 인형을 묻었다’는 기술에 대해서도, 시안시 교외의 병마용갱 발견으로 그 정확성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이 책이 경쟁 시대에 살아가는 당신의 새로운 무기를 연마하고 개발하는 데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사마천

사마천司馬遷
⁃ BC145년 : 중국 섬서성 용문시하양에서 태어났다.
⁃ 기원전 139년 : 아버지 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되어 무릉에거주하였다.
⁃ BC126년 : 아버지의 도움으로 2년간 천하를 여행했다.
⁃ BC124년 : 낭중(황제의 시종)이 되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 BC110년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시작한 <사기>를 완성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 BC108년 : 태사령이 되어서 한무제를 수행하며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을 통해 <사기>를 쓰는 데 필요한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였다.
⁃ BC104년 :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 BC99년 : 흉노와의 전쟁에서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을 두둔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당할 처지에 놓였다. 사형을 피하는 방법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치욕적인 궁형 대신 사형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하였다.
⁃ BC95년 : 황제의 용서를 받고, 환관 중 최고 직책인 중서령이 되었다.
⁃ BC91년 : <사기>를 완성하였다.
⁃ BC86년 :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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