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22
2025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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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114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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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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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중국 최초의 임금인 황제(黃帝)부터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 별로 나누어 쓴 <사기> 130권은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획기적인 역사책이다. 이런 형식을 기전체(紀傳體)라고 하는데, 연대순으로 써가는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역사 기록 방법의 하나이다.
<사기>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연표인 표(表) 1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공명을 세운 사람들의 전기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은 서문(태자공자서)을 통하여 <사기> 전체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 수 있게 했다. 이편을 둘로 나누어 전반부는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의 아들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사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 등을 기록하고, 후반부는 <사기> 130편에 대하여 각 편을 기록하게 된 동기를 기록하고, <사기>를 저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황제(黃帝)부터 태초(太初) 연간에 이르기까지 총 130편에 526,500자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이광의 손자 이릉(李陵)이 흉노를 토벌하러 나갔다가 흉노에게 항복하자, 사마천이 무제(武帝)에게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 사실을 말하였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 20
권 90.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 71
권 91. 경포열전黥布列傳 | 90
권 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123
권 93.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 97
권 94. 전담열전田儋列傳 | 229
사기 22
史記
열전列傳
6
사마천
우리고전연구회 역
차 례
권 88. 몽염열전蒙恬列傳 | 6
권 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 20
권 90.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 71
권 91. 경포열전黥布列傳 | 90
권 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123
권 93.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 197
권 94. 전담열전田儋列傳 | 229
권 88. 몽염열전蒙恬列傳
몽염(蒙恬)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진나라 장군 몽무(蒙武)의 아들이자 몽의(蒙毅)의 형으로, 전국 통일 이후 북쪽의 흉노를 몰아내고 만리장성 건축 및 북방의 수비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진시황제의 신임을 얻고 그의 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으나, 진시황제 사후 조고 등에게 모함당하여 태자 부소가 자살한 후, 2세 황제 호해(胡亥)의 압박에 못 이겨 자살하였다.
몽염열전(蒙恬列傳) (1)
蒙恬者(몽염자) 其先齊人也(기선제인야) 恬大父蒙驁(염대부몽오) 自齊事秦昭王(자제사진소왕) 官至上卿(관지상경) 秦莊襄王元年(진장양왕원년) 蒙驁為秦將(몽오위진장) 伐韓(벌한) 取成皋滎陽(취성고형양) 作置三川郡(작치삼천군) 二年(이년) 蒙驁攻趙(몽오공조) 取三十七城(취삼십칠성) 始皇三年(시황삼년) 蒙驁攻韓(몽오공한) 取十三城(취십삼성) 五年(오년) 蒙驁攻魏(몽오공위) 取二十城(취이십성) 作置東郡(작치동군)
몽염(蒙恬)의 선조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몽염의 할아버지 몽오(蒙驁) 蒙驁(몽오) : ?~기원전 240년.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장수. 본래 제(齊)나라 사람이었는데, 진소왕(秦昭王)을 섬겨 벼슬이 상경(上卿)에 이르렀고, 후에 장수가 되어 여러 번 한(韓)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를 쳐서 전공을 세웠다.
는 제나라에서 진나라로 와 진소양왕(秦昭襄王) 秦昭襄王(진소양왕) : 秦昭王(진소왕). 기원전 325년~기원전 251년, (재위: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 전국시대 진나라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영(嬴), 휘는 직(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을 섬기며 관직이 상경(上卿)에 이르렀다.
진장양왕(秦莊襄王) 진장양왕(秦莊襄王) : 기원전 281~기원전 247. 전국시대 진나라의 왕으로 진시황제의 아버지이다. 초명은 영이인(嬴異人)이었지만, 초나라 출신인 적모 화양부인(효문왕의 정비)의 양자가 된 후, 초나라의 후예라는 뜻의 자초(子楚)로 개명하여 영자초(嬴子楚)라 불렸다. 아버지는 효문왕. 어머니는 하희(夏姫)이다.
원년(기원전 249년), 몽오는 진나라 장수가 되어, 한나라를 정벌하여 성고(成皋)와 형양(滎陽)을 빼앗고 삼천군(三川郡)을 설치했다.
장양왕 2년(기원전 248년), 몽오가 조(趙)나라를 공격해 37개의 성을 빼앗았다.
진시황(秦始皇) 3년(기원전 244년) 몽오가 한(韓)나라를 공격해 13개의 성을 빼앗았다.
진시황 5년, 몽오가 위(魏)나라를 공격해 20개의 성을 빼앗고 동군(東郡)을 설치했다.
始皇七年(시황칠년) 蒙驁卒(몽오졸) 驁子曰武(오자왈무) 武子曰恬(무자왈염) 恬嘗書獄典文學(염상서옥전문학) 始皇二十三年(시황이십삼년) 蒙武為秦裨將軍(몽무위진비장군) 與王翦攻楚(여왕전공초) 大破之(대파지) 殺項燕(살항연) 二十四年(이십사년) 蒙武攻楚(몽무공초) 虜楚王(노초왕) 蒙恬弟毅(몽염제의)
진시황 7년(기원전 240년) 몽오가 죽었다.
몽오의 아들은 몽무(蒙武), 몽무의 아들은 몽염(蒙恬)이다.
몽염은 일찍이 소송에 관한 기록 書獄(서옥) : 소송에 관한 기록 업무. 獄은 소송.
과 재판에 관한 문서를 담당했다. 典文學(전문학) : 소송에 관한 문헌 서적을 담당하다. 典은 주관(主管)함. 文學은 문헌 서적. 문건과 자료.
진시황 23년(기원전 224년) 몽무가 진나라의 비장군(裨將軍) 裨將軍(비장군) : 부장군(副將軍).
이 되어 왕전(王翦) 王翦(왕전) :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로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다.
과 함께 초나라를 공격해 크게 무찌르고 항연(項燕)을 죽였다.
진시황 24년(기원전 223년) 몽무가 초나라를 공격해 초왕을 사로잡았다. 몽염의 동생은 몽의(蒙毅)이다.
始皇二十六年(시황이십육년) 蒙恬因家世得為秦將(몽염인가세득위진장) 攻齊(공제) 大破之(대파지) 拜為內史(배위내사) 秦已并天下(진이병천하) 乃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내사몽염장삼십만중북축융적) 收河南(수하남) 筑長城(축장성) 因地形(인지형) 用制險塞(용제험새) 起臨洮(기림조) 至遼東(지요동) 延袤萬餘里(연무만여리) 於是渡河(어시도하) 據陽山(거양산) 逶蛇而北(위이이북) 暴師於外十餘年(폭사어외십여년) 居上郡(거상군) 是時蒙恬威振匈奴(시시몽염위진흉노)
진시황 26년(기원전 221년) 몽염은 집안 대대로 장수를 지냈기에 진나라 장군이 되어 因家世得為秦將(인가세득위장군) : 몽염(蒙恬)과 몽의(蒙毅)는 형제이며, 조부는 몽오(蒙驁), 아버지는 몽무(蒙武)로 몽염의 집안은 진시황 때 대표적 무가(武家)였다.
제나라를 공격해 크게 무찌르고, 궁중의 일을 기록하는 내사(內史)로 임명되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자, 몽염에게 3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융적(戎狄) 戎狄(융적) : 야만족. 고대 중국에서 서쪽 이민족을 융(戎)이라 하고, 북쪽 이민족을 적(狄)이라 했다.
을 쫓아내게 하여 황하 남쪽 땅을 점거했다.
장성을 쌓으며 지형에 따라서 험난한 요새를 만들고, 用制險塞(용제험새) : 험난한 요새를 만들다. 험새(險塞)는 험악한 지세를 이용하여 쌓아 만든 요새(要塞). 제(制)는 설립(設立).
서쪽 임조(臨洮)에서 동쪽 요동(遼東)까지 길이가 일만여 리를 뻗어갔다. 延袤(연무) : 연(延)은 동서(東西), 무(袤)는 남북(南北)의 뜻으로 넓고 멀리 뻗은 길이.
황하를 건너 양산(陽山)을 거점으로 하여 구불구불 逶蛇(위이) : 위이(逶迤)를 뜻한다. 길이 구불구불 멀리 이어진 모양. 蛇는 구불구불갈 ‘이’.
북쪽으로 이어갔다. 비바람을 맞으며 외지를 10여 년간 전전하다 상군(上郡)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때 몽염의 위세가 흉노(匈奴)에 떨쳤다.
始皇甚尊寵蒙氏(시황심존총몽씨) 信任賢之(신임현지) 而親近蒙毅(이친근몽의) 位至上卿(위지상경) 出則參乘(출즉참승) 入則御前(입즉어전) 恬任外事而毅常為內謀(염임외사이의상위내모) 名為忠信(명위충신) 故雖諸將相莫敢與之爭焉(고수제장상막감여지쟁언)
진시황제는 몽씨 일족을 매우 존중, 총애하고 신임했으며, 현명하다고 여겼다. 몽의와 친근하게 지내서 몽의의 지위가 상경에 이르렀고, 출궁 시에는 수레를 함께 타고, 입궁해서는 곁에 두었다. 몽염은 궁 밖의 일을 맡고, 몽의는 언제나 궁 안에서 계책을 세우며 충직하고 믿음직스럽다는 명성을 얻었으므로, 비록 장수나 재상들도 감히 이들과 다투려 하지 않았다.
趙高者(조고자) 諸趙疏遠屬也(제조소원속야) 趙高昆弟數人(조고곤제수인) 皆生隱宮(개생은궁) 其母被刑僇(기모피형륙) 世世卑賤(세세비천) 秦王聞高彊力(진왕문고강력) 通於獄法(통어옥법) 舉以為中車府令(거이위중거부령) 高既私事公子胡亥(고기사사공자호해) 喻之決獄(유지결옥) 高有大罪(고유대죄) 秦王令蒙毅法治之(진왕령몽의법치지) 毅不敢阿法(의불감아법) 當高罪死(당고죄사) 除其宦籍(제기환적) 帝以高之敦於事也(제이고지돈어사야) 赦之(사지) 復其官爵(복기관작)
조고(趙高)는 조나라 왕족의 먼 친족 諸趙(제조) : 조씨 왕족의 각파. 疏遠屬(소원속) : 먼 친족.
이었다. 조고의 형제 몇은 모두 환관으로 살았고, 隱宮(은궁) : 궁형(宮刑)을 받은 자는 어두운 방에 있으므로 은궁(隱宮)이라고 한 것이다. 宮은 음란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남자는 거세하고 婦人은 유폐(幽閉)한다.
그의 어머니는 형벌을 받아 刑僇(형륙) : 형벌을 받다. 僇은 戮과 통한다.
죽었으므로 대대로 비천했다.
진왕은 조고가 능력이 뛰어나고 형법에 능통하다는 말을 듣고 등용해 중거부령(中車府令)으로 삼았다.
조고는 개인적으로 공자 영호해(嬴胡亥)를 섬기었고, 죄를 판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조고가 큰 죄를 짓자, 진왕은 몽의에게 법대로 다스리라고 명했다.
몽의는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해 조고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므로 그의 환적(宦籍)을 삭제했다.
진시황제는 조고가 일 처리가 뛰어나다며 죄를 용서하고 그 관작을 회복해 주었다.
始皇欲游天下(시황욕유천하) 道九原(도구원) 直抵甘泉(직저감천) 乃使蒙恬通道(내사몽염통도) 自九原抵甘泉(자구원저감천) 塹山堙谷(참산인곡) 千八百里(천팔백리) 道未就(도미취)
진시황제는 천하를 순시하기 위해 구원(九原)을 경유하여 곧장 감천궁(甘泉宮)에 이르도록 몽염에게 길을 닦도록 했는데, 구원에서 감천궁까지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塹山堙谷(참산인곡) :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다. 塹은 (땅을) 파다.
게 1,800리에 달했다. 그러나 길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未就(미취) : 완성하지 못함. 就는 완성. 길이 완성되기 전 시황제가 서거했다.
始皇三十七年冬(시황삼십칠년동) 行出游會稽(행출유회계) 并海上(병해상) 北走瑯邪(북주랑야) 道病(도병) 使蒙毅還禱山川(사몽의환도산천) 未反(미반)
진시황 37년(기원전 210년) 겨울, 출행하여 회계(會稽)를 유람하다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낭야(琅邪)에 이르렀다. 도중에 병이 나서 몽의를 시켜 도성으로 돌아가 산천에 기도하게 했으나, 아직 도성에 돌아가지는 못했다. (진시황이 서거했다).
몽염열전(蒙恬列傳) (2)
이 장에서는 진시황제 사후 조고(趙高)의 이간질로 몽염의 동생 몽의를 죽이고 몽염을 죽게 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始皇至沙丘崩(시황지사구붕) 祕之(비지) 群臣莫知(군신막지) 是時丞相李斯(시시승상이사) 公子胡亥(공자호해) 中車府令趙高常從(중거부령조고상종) 高雅得幸於胡亥(고아득행어호해) 欲立之(욕립지) 又怨蒙毅法治之而不為己也(우원몽의법치지이불위기야) 因有賊心(인유적심) 乃與丞相李斯公子胡亥陰謀(내여승상이사공자호애음모) 立胡亥為太子(입호해위태자)
진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러 붕어하자, 始皇至沙丘崩(시황지사구붕) : <資治通鑑綱目>에서 ‘진시황(秦始皇)은 신묘(辛卯 기원전 210년) 진시황제(秦始皇帝) 37년 가을 9월에 사구(沙丘)에 이르러 붕(崩)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이사열전(李斯列傳)에도 언급되어 있다. <사기 권 87. 李斯列傳>
이를 비밀로 하였기에 군신들은 알지 못했다.
당시 승상 이사(李斯), 공자 호해(胡亥), 중거부령 조고(趙高)가 늘 진시황을 수행하였다.
조고는 평소 호해에게 총애받았기에 호해를 옹립하고자 했다. 또 몽의(蒙毅)가 법대로 처리해 자신을 처벌한 것에 원한을 갖고 있었다. 이에 해치려는 마음 賊心(적심) : 해치려는 마음. 사악한 생각.
을 품고 승상 이사와 공자 호해와 음모하여 호해(胡亥)를 태자로 세웠다.
太子已立(태자이립) 遣使者以罪賜公子扶蘇蒙恬死(견사자이죄사공자부소몽염사) 扶蘇已死(부소이사) 蒙恬疑而復請之(몽염의이부청지) 使者以蒙恬屬吏(사자이몽염촉리) 更置(경치) 胡亥以李斯舍人為護軍(호해이이사사인위호군) 使者還報(사자환보) 胡亥已聞扶蘇死(호해이문부소사) 即欲釋蒙恬(즉욕석몽염) 趙高恐蒙氏復貴而用事(조고공몽씨부귀이용사) 怨之(원지)
태자로 세운 후 사자를 보내 공자 부소(扶蘇)와 몽염에게 죄를 씌우고 죽음을 내렸다.
부소는 죽었으나, 몽염은 의심하며 다시 명령을 청했다. 사자는 몽염을 관리에게 넘기고 屬吏(촉리) : 주관하는 관리에게 처리하도록 넘김.
다른 사람으로 (몽염의 자리를) 대체했다. 호해는 이사의 측근을 호군(護軍)으로 삼았다.
사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호해는 부소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몽염을 풀어주려고 했다. 조고는 몽씨가 다시 귀하게 되어 정권을 잡으면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까 두려웠다.
毅還至(의환지) 趙高因為胡亥忠計(조고인위호해충계) 欲以滅蒙氏(욕이멸몽씨) 乃言曰(내언왈) 臣聞先帝欲舉賢立太子久矣(신문선제욕거현립태자구의) 而毅諫曰(이의간왈) 不可(불가) 若知賢而俞弗立(약지현이유불립) 則是不忠而惑主也(즉시불충이혹주야) 以臣愚意(이신우의) 不若誅之(불약주지) 胡亥聽而系蒙毅於代(호해청이계몽의어대) 前已囚蒙恬於陽周(전이수몽염어양주) 喪至咸陽(상지함양) 已葬(이장) 太子立為二世皇帝(태자립위이세황제) 而趙高親近(이조고친근) 日夜毀惡蒙氏(일야훼오몽씨) 求其罪過(구기죄과) 舉劾之(거해지)
몽의가 (산천에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자, 조고는 호해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낸다면서, 몽씨(蒙氏)를 없애기 위해 말했다.
“신이 듣건대 선제 先帝(선제) : 진시황제를 말한다.
께서 현명한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한 지 오래되었으나, 몽의가 ‘안 됩니다.’라고 간언했습니다. 만약 현명한 것을 알면서도 태자로 세우지 않는 게 낫다고 한 것은 불충이며 군주를 미혹한 행위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그를 죽이는 편이 낫습니다.”
호해는 이 말을 듣고 몽의를 대(代)에 가두었다. 앞서 몽염은 이미 양주(陽周)에 갇혀 있었다.
운구가 함양(咸陽)에 이르러 장례를 마치자, 태자가 즉위하여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되었다.
조고가 가까이 모시면서 밤낮으로 몽씨를 헐뜯고 그 죄과를 찾아내 죄상을 탄핵했다.
子嬰進諫曰(자영진간왈) 臣聞故趙王遷殺其良臣李牧而用顏聚(신문고조왕천살기량신이목이용안취) 燕王喜陰用荊軻之謀而倍秦之約(연왕희음용형가지모이배진지약) 齊王建殺其故世忠臣而用后勝之議(제왕건살기고세충신이용후승지의) 此三君者(차삼군자) 皆各以變古者失其國而殃及其身(개각이변고자실기국이앙급기신) 今蒙氏(금몽씨) 秦之大臣謀士也(진지대신모사야) 而主欲一旦棄去之(이주욕일단기거지) 臣竊以為不可(신절이위불가) 臣聞輕慮者不可以治國(신문경려자불가이치국) 獨智者不可以存君(독지자불가이존군) 誅殺忠臣而立無節行之人(주살충신이립무절행지인) 是內使群臣不相信而外使鬬士之意離也(시내사군신불상신이외사투사지의리야) 臣竊以為不可(신절이위불가)
영자영(嬴子嬰) 子嬰(자영) : 영자영(嬴子嬰). 진시황제의 황태자 부소(扶蘇)의 장남.
이 이세황제에게 나아가 간언했다.
“신은, 옛날 조나라 왕 천(遷) 趙王遷(조왕천) : 조왕천(趙王遷) 7년(기원전 229년), 진나라가 조나라에 반간계를 써서 이목과 사마상이 반란을 꾀한다고 하여 조왕천은 이목을 죽이고 안취를 장군으로 하였는데 대패하여 조나라가 멸망하였다. <사기 권 81. 廉頗藺相如列傳>
은 어진 신하 이목(李牧)을 죽이고 안취(顏聚)를 등용했고, 연나라 왕 희(喜)는 은밀히 형가(荊軻)의 계책을 써서 燕王喜陰用荊軻(연왕희음용형가) : 형가(荊軻)는 연(燕)나라의 사신으로 위장하여 값진 보물과 함께 땅을 바치겠다는 뜻으로 독항(督亢)이란 지역의 지도를 바치기로 하였다. 진왕 정이 백관들을 모아 놓고 사신을 접견하였는데, 이때 형가(荊軻)가 지도 속에 감춰둔 단검을 빼 들고 진왕 정을 죽이려고 하다 실패하여 죽임을 당했다. <사기 권 86. 자객열전>
진나라와의 약속을 배반했으며, 제나라 왕 건(建) 齊王建(제왕건) :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자 제나라 왕 건(建)은 즉묵대부(卽墨大夫)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후승(後勝)의 말을 들어 진나라에 항복했다. 진나라에서는 그를 공성(共城)의 숲속에 가두어 굶겨 죽이고 말았다. <사기 권 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은 선대의 충신을 죽이고 후승(后勝)의 건의를 받아들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 군주는 모두 각각 옛것을 바꾸어 나라를 잃고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습니다.
지금 몽씨는 진나라의 대신이며 모사인데, 군주께서 하루아침에 이들을 버리려 한다면, 신은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신은, ‘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며, 홀로 지혜로워서는 군주의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 들었습니다.
충신을 죽이고 절조가 없는 자를 세우면 안으로는 신하들이 서로 믿지 않을 것이고, 밖으로는 전사들의 마음이 흐트러질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胡亥不聽(호해불청) 而遣御史曲宮乘傳之代(이견어사곡궁승전지대) 令蒙毅曰(영몽의왈) 先主欲立太子而卿難之(선주욕립태자이경난지) 今丞相以卿為不忠(금승상이경위불충) 罪及其宗(죄급기종) 朕不忍(짐불인) 乃賜卿死(내사경사) 亦甚幸矣(역심행의) 卿其圖之(경기도지)
호해는 이를 듣지 않았다.
어사(御史) 곡궁(曲宮)을 보내 말을 타고 대(代)로 가서 몽의에게 명을 전하게 했다. 乘傳(승전) : 말을 타고 명령을 전하다.
“선제께서 태자를 세우고자 하셨을 때, 경은 이를 비난했다. 지금 승상은 경을 불충하다고 하며 죄가 일족에 미친다고 했다. 짐은 차마 그럴 수 없기에 경에게 죽음을 내리니, 이 또한 매우 다행으로 여겨라. 경은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라!”
毅對曰(의대왈) 以臣不能得先主之意(이신불능득선주지의) 則臣少宦(즉신소환) 順幸沒世(순행몰세) 可謂知意矣(가의지의의) 以臣不知太子之能(이신부지태자지능) 則太子獨從(즉태자독종) 周旋天下(주선천하) 去諸公子絕遠(거제공자절원) 臣無所疑矣(신무소의의) 夫先主之舉用太子(부선주지거용태자) 數年之積也(수년지적야) 臣乃何言之敢諫(신내하언지감간) 何慮之敢謀(하려지감모) 非敢飾辭以避死也(비감식사이피사야) 為羞累先主之名(위수루선주지명) 願大夫為慮焉(원대부위려언) 使臣得死情實(사신득사정실) 且夫順成全者(차부순성전자) 道之所貴也(도지소귀야) 刑殺者(형살자) 道之所卒也(도지소졸야)
몽의가 대답하였다.
“신이 선제의 뜻을 몰랐다고 하시나, 신은 젊었을 적부터 벼슬하며 선제께서 승하하실 때까지 총애받았습니다. (선제의) 뜻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태자의 능력을 몰랐다고 하나, 태자만 홀로 선제를 따르며 천하를 두루 돌아보셨으니, 여러 공자보다 뛰어나다는 걸 신은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선제께서 태자로 삼으시려던 것은 몇 년이나 생각해 온 일인데 신이 어찌 감히 간언하고,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감히 핑계를 대서 죽음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선제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럽기 羞累(수루) : 선제의 명예에 누를 끼쳐 부끄럽다.
때문입니다. 원컨대 대부께서는 이를 헤아리셔서 신을 정당한 죄로 죽게 해주십시오.
또 순리에 따라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숭상하는 바이며, 형벌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昔者秦穆公殺三良而死(석자진목공살삼량이사) 罪百里奚而非其罪也(죄백리해이비기죄야) 故立號曰(고립호왈) 繆(목) 昭襄王殺武安君白起(소양왕살무안군백기) 楚平王殺伍奢(초평왕살오사) 吳王夫差殺伍子胥(오왕부차살오자서) 此四君者(차사군자) 皆為大失(개위대실) 而天下非之(이천하비지) 以其君為不明(이기군위불명) 以是籍於諸侯(이시적어제후) 故曰(고왈) 用道治者不殺無罪(용도치자불살무죄) 而罰不加於無辜(이벌불가어무고) 唯大夫留心(유대부류심) 使者知胡亥之意(사자지호해지의) 不聽蒙毅之言(불청몽의지언) 遂殺之(수살지)
옛날 진목공(秦穆公)이 세 어진 신하를 죽였고, 秦穆公殺三良而死(진목공살삼량이사) : 진목공 39년, 목공이 죽자, 옹(雍)에 안장하고, 177명을 순장했는데, 진(秦)나라의 어진 신하였던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 엄식(俺息), 중항(仲行), 침호(鍼虎) 세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애도하며 ‘황조(黃鳥)’라는 시를 지어 노래했다. <사기 권 5. 진본기(秦本紀)>
백리해(百里奚)에게 죄를 물었으나 罪百里奚(죄백리해) : 진목공이 소를 키우던 백리해를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예물로 보내서 진나라로 데려와 좌서장으로 임명하였고, 진목공이 정(鄭)나라를 치려 하자 만류하였지만, 진목공은 듣지 않고 정나라를 공격했으나 진(晉)나라에 의해 대패하였다. <사기 권 5. 진본기>
죄를 지은 게 아니기에 ‘목(繆)’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立號曰繆(입호왈목) : 시호를 ‘목(繆)’으로 받았다. 목은 繆(틀릴 ‘류’)로 발음될 수 있어 부정적 의미이므로 시호를 잘못 받았다고 한 것이다.
진소양왕(秦昭陽王)은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를 죽였습니다. 昭襄王殺武安君白起(소양왕살무안군백기) : 백기는 장평(長平) 전투에서 조나라 군대에 대승을 거둔 다음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을 하룻밤 사이 구덩이에 묻어 죽여 천하를 경악하게 했다. 그 후 진나라가 한단(邯鄲)을 포위했다가 실패했는데, 백기는 원래 이 전투에 찬성하지 않아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사오(士伍)로 강등되고, 재상 범수와 틈이 벌어져 자결하고 말았다. <사기 권 73. 백기왕전열전>
초평왕(楚平王)은 오사(伍奢) 伍奢(오사) : 오자서(伍子胥)의 아버지. 비무기(費無忌)의 흉계로 인하여 초평왕(楚平王)의 노여움을 사 아들 오상(伍尙)과 함께 처형되었다. 오자서는 오나라로 달아났다. <사기 권 66. 오자서열전>
를 죽였습니다. 오왕 부차(夫差)는 오자서(伍子胥)를 죽였습니다. 吳王夫差殺伍子胥(오왕부차살오자서) : 백비가 오자서를 모함하여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자결하도록 칼을 내리니, 오자서는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부차는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담아 강에 던져 버렸다. <사기 권 66. 오자서열전>
이 네 군주는 모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천하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그 군주들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제후들이 나쁘게 평판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로 다스리는 자는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무고한 자를 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오직 대부께서 이를 유념하여 주십시오!”
사자는 호해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몽의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몽의를 죽였다.
권 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장이진여열전은 문경지교를 맺은 장이(張耳)와 진여(陳餘)의 합전(合傳)이다.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말기 위(魏)나라 대량(大梁) 사람이다. 장이는 진여(陳餘)와 함께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으며, 진나라 2세 황제 호해 원년 진섭(陳涉 : 진승)이 반란을 일으키자, 함께 교위(校尉)가 되어 무신(武臣)을 따라 조(趙) 땅을 정벌했다. 무신이 조왕(趙王)이 되자 장이는 우승상(右丞相)에 올랐고, 진여는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그 후 장이와 진여는 사이가 벌어져, 진여가 장이를 공격하자, 장이는 유방(劉邦)에게 투항했고, 진여는 조왕 헐을 도와 조나라 왕으로 세웠으나, 전한의 장수 한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초한전쟁(楚漢戰爭) : 기원전 206년 진나라 멸망 후 서쪽 초나라 패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과의 5년에 걸친 전쟁. 진나라(秦)의 급격한 통일 정책과 농민에 대한 과중한 부역(賦役)으로 기원전 210년 시황제의 죽음 이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기원전 206년 옛 6국 중 초나라(楚) 귀족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타도했다. 이후 항우와 그의 협력자였던 유방(劉邦)과의 5년간에 걸친 사투(死鬪)가 벌어졌다.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1)
張耳者(장이자) 大梁人也(대량인야) 其少時(기소시) 及魏公子毋忌為客(급위공자무기위객) 張耳嘗亡命游外黃(장이상망명유외황) 外黃富人女甚美(외황부인녀심미) 嫁庸奴(가용노) 亡其夫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를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하였다.
사마천은 <본기(本紀)> 12권에서 “제왕들이 일어나게 된 자취를 살폈는데, 그 처음과 끝을 탐구하고 그 흥망성쇠를 보되 사실에 근거하여 논하고 고찰하여 삼 대 이상은 간략하게 추정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상세하게 기록하되, 위로는 황제 헌원(軒轅)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孝武本紀第十二효무본기제십이)에 이르기까지 12편의 본기(本紀)로 저술하고, 종류별로 배열하였다.
<표(表)> 10권에서는 본기(本紀)에 나오는 제왕과 제후들의 흥망을 연표(年表)로 정리하였다. 사마천은 ‘세대가 다른 일이 같은 시기에 일어나고, 발생한 연대의 차이가 분명치 않은 사건들이 있으므로, 10편의 표(表)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書)> 8권에서 사마천은 ‘예악(禮樂)의 증감, 율력(律曆)의 개역, 병법의 권모술수와 산천의 귀신,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그 성패와 변화를 살피기 위해 8편의 서(書)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세가(世家)> 30권에서는 분봉한 국가의 군주나 제후들, 혹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의 사적 및 사회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마천은 ‘28수(宿)의 별자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수레바퀴 살 30개가 바퀴통에 모여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제왕을 보필하는 팔다리와 같은 신하들을 이에 빗대어, 충신으로서 도를 행하여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30편의 세가(世家)로 지었다.’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열전(列傳)> 70권에 대해서,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잘한 일에 매이지 않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 70편의 열전(列傳)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평
Epub은 한자의 덧말 쓰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한자 옆에 훈을 달았다. <사기>를 이해하는 데에, 특히 한자 읽기에 큰 보탬이 되리라 기대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기의 기전체 서술은 역사의 줄기를 제대로 더듬어 갈 수 있게 안배하고 있다.
특히 <표> 10권은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료의 방대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사기》는 중국 전한 왕조인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로, 중국 이십사사의 하나이자 정사의 으뜸으로 꼽힌다.
본래 사마천 자신이 붙인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사공기(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고, 이 ‘태사공기’의 약칭인 ‘사기’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서, 그 서술 범위는 전설상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었다는 요(기원전 2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 말의 전한 무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서술 방식은 후대 중국의 역사서, 특히 정사를 기술하는 방식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 외에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는다.
《사기》의 내용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바로 ‘하늘의 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也非也)’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늘의 도리, 즉 인간의 세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사기》 열전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은 의인(義人)이 틀림없는 백이와 숙제가 아사(餓死)라는 초라한 죽음을 맞은 데에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서는 사마천 자신이 과거 친구이자 이릉의 불가피한 항복을 변호했던 올바른 행동을 하고도 궁형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은 데 대한 비통함이 깔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기》의 기술은 유교 사상이 주가 되는 와중에 다른 사상도 가미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실’을 추구한다는 역사서 편찬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역사 서술을 위한 간결하면서도 힘찬 문장은 ‘문성(文聖)’ 또는 ‘백전노장의 군대의 운용’과 같은 것이라 하여 격찬받았다. 특히 〈항우본기〉는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면에서는 정사로서 기술된 당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본 정보는 섬세한 기술로 당시의 생활이나 습관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서〉(書)의 내용은 전한 시대의 세계관이나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또 흉노를 비롯한 주변 이민족이나 서역에 관한 기술도 현재 알려진 지리와 유적 발굴 등에서 판명된 당시 상황과의 정합성이 높고, 이러한 지방의 당시를 알기 위한 귀중한 단서가 되고 있으며, 진시황 본기의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에 근위병 3천 인의 인형을 묻었다’는 기술에 대해서도, 시안시 교외의 병마용갱 발견으로 그 정확성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이 책이 경쟁 시대에 살아가는 당신의 새로운 무기를 연마하고 개발하는 데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사마천
사마천司馬遷
⁃ BC145년 : 중국 섬서성 용문시하양에서 태어났다.
⁃ 기원전 139년 : 아버지 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되어 무릉에거주하였다.
⁃ BC126년 : 아버지의 도움으로 2년간 천하를 여행했다.
⁃ BC124년 : 낭중(황제의 시종)이 되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 BC110년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시작한 <사기>를 완성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 BC108년 : 태사령이 되어서 한무제를 수행하며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을 통해 <사기>를 쓰는 데 필요한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였다.
⁃ BC104년 :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 BC99년 : 흉노와의 전쟁에서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을 두둔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당할 처지에 놓였다. 사형을 피하는 방법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치욕적인 궁형 대신 사형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하였다.
⁃ BC95년 : 황제의 용서를 받고, 환관 중 최고 직책인 중서령이 되었다.
⁃ BC91년 : <사기>를 완성하였다.
⁃ BC86년 : 세상을 떠났다.
번역 우리고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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