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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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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1
책마음

2025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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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6.26MB)
ISBN 979119114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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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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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는 중국의 전한(前漢) 무제(武帝) 시대에 사마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오제(五帝)로부터 한나라 무제 태초 연간(기원전 104~101년)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이다. 본격적인 저술은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9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중국 최초의 임금인 황제(黃帝)부터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 별로 나누어 쓴 <사기> 130권은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획기적인 역사책이다. 이런 형식을 기전체(紀傳體)라고 하는데, 연대순으로 써가는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역사 기록 방법의 하나이다.
<사기>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연표인 표(表) 1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공명을 세운 사람들의 전기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은 서문(태자공자서)을 통하여 <사기> 전체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 수 있게 했다. 이편을 둘로 나누어 전반부는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의 아들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사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 등을 기록하고, 후반부는 <사기> 130편에 대하여 각 편을 기록하게 된 동기를 기록하고, <사기>를 저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황제(黃帝)부터 태초(太初) 연간에 이르기까지 총 130편에 526,500자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이광의 손자 이릉(李陵)이 흉노를 토벌하러 나갔다가 흉노에게 항복하자, 사마천이 무제(武帝)에게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 사실을 말하였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 6
권 84.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 57
권 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 98
권 86. 자객열전刺客列傳 | 118
권 87. 이사열전李斯列傳 | 184

사기 21
史記
열전列傳
5

사마천
우리고전연구회 역







차 례

권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 6
권 84.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 57
권 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 98
권 86. 자객열전刺客列傳 | 118
권 87. 이사열전李斯列傳 | 184
권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이편은 제나라 노중련(魯仲連)과 한나라 추양(鄒陽)의 합전이다. 노중련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기원전 305년경~기원전 245년)으로 유세가이며, 노련(魯連)이라고도 칭한다. 밀양 노씨(密陽 魯氏)의 시조 격이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여러 제후가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위안리왕(魏安釐王)은 변사(辯士) 신원연(新垣衍)을 조(趙)나라에 보내, 진(秦)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고하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노중련(魯仲連)이 “포악한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였다. 여러 제후가 이 말을 듣고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패퇴시켰다. 후에 제나라 장군 전단(田單)이 연(燕)에게 빼앗긴 료성(聊城)을 되찾으려고 군사를 동원하여 공격했으나 여러 달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에 노중련은 이해득실을 논하는 편지를 한 통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날려 보냈다. 연나라 장수는 노중련의 편지를 보고 싸우지도 않고 곧바로 항복해 왔다. 전단이 그에게 작위를 내려 상을 주려고 했으나, 그는 아무도 몰래 달아나 바닷가로 나가 숨었다.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1)
노중련(魯仲連)
魯仲連者(노중련자) 齊人也(제인야) 好奇偉俶儻之畫策(호기위척당지획책) 而不肯仕宦任職(이불긍사환임직) 好持高節(호지고절) 游於趙(유어조)
노중련(魯仲連)은 제나라 사람이다. 기발하고 뛰어나며 호방한 책략을 좋아하였으나, 벼슬하여 관직을 맡으려 하지 않고 높은 절개를 지녔다. 조나라에 유세하였다.

趙孝成王時(조효성왕시) 而秦王使白起破趙長平之軍前後四十餘萬(이진왕사백기파조장평지군전후사십여만) 秦兵遂東圍邯鄲(진병수동위한단) 趙王恐(조왕공) 諸侯之救兵莫敢擊秦軍(제후지구병막취격진군) 魏安釐王使將軍晉鄙救趙(위안리왕사장군진비구조) 畏秦(외진) 止於蕩陰不進(지어탕음부진)
조효성왕(趙孝成王) 趙孝成王(조효성왕) :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제8대 군주. 조나라 제3대 왕, 조씨종주(趙氏宗主)로는 제17대 종주. 이때까지는 조나라의 국력이 꽤 유지 되었지만, 장평 대전에서 패해 조나라 45만 정병을 잃고 국력이 쇠퇴하였다.
때, 진소양왕(秦昭陽王) 秦昭王(진소왕) : 진소양왕(秦昭襄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325~기원전 251년. 전국시대 진나라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惠文王)의 서자이며, 성은 영(嬴), 휘는 직(稷)이다.
은 백기(白起)에게 장평(長平)에서 약 40여 만의 조나라 군대를 무찌르게 하고, 진나라 군사가 마침내 동쪽 한단(邯鄲)을 포위했다. 조효성왕은 두려워했으나, 제후들의 구원병은 감히 진나라 군대를 치지 못했다.
위안리왕(魏安釐王) 魏安釐王(위안리왕) : ?~기원전 243년. 이(釐)는 희(僖)로도 쓴다. 성은 희(姬). 씨는 위(魏), 이름은 어(圉). 위소왕(魏昭王)의 아들이며, 전국시대 위나라의 6대 군주이다.
은 장군 진비(晉鄙) 晉鄙(진비) : ?~기원전 257년. 위나라에서 진비(晉鄙)를 보내 조나라를 구하게 했지만, 병사를 주둔시켜 둔 채 사태를 관망만 했다. 이에 신릉군(信陵君)이 후생(侯生)의 계책을 써서 여희(如姬)를 통해 호부(虎符)를 훔쳐 역사(力士) 주해(朱亥)를 시켜 그를 죽이게 하고, 병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에게 조나라를 구하게 했으나, 진나라는 두려워 탕음(蕩陰)에서 멈추고 나아가지 못했다.

魏王使客將軍新垣衍閒入邯鄲(위왕사객장군신원연간입한단) 因平原君謂趙王曰(인평원군위조왕왈) 秦所為急圍趙者(진소위급위조자) 前與齊湣王爭彊為帝(전여제민왕쟁강위제) 已而復歸帝(이이복귀제) 今齊[湣王]已益弱(금제[민왕]이익약) 方今唯秦雄天下(방금유진웅천하) 此非必貪邯鄲(차비필탐한단) 其意欲復求為帝(기의욕부구위제) 趙誠發使尊秦昭王為帝(제성발사존진소왕위제) 秦必喜(진필희) 罷兵去(파병거) 平原君猶預未有所決(평원군유예미유소결)
위안리왕은 객장군(客將軍) 客將軍(객장군) : 타국 출신의 장군.
신원연(新垣衍) 新垣衍(신원연) :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제후들은 진나라가 두려워 감히 조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위안리왕(魏安釐王)은 변사(辯士) 신원연(新垣衍)을 조(趙)나라에 보내, 진(秦)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고하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노중련(魯仲連)이 “포악한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니,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이겼다.
을 몰래 한단으로 들여보내,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을 통해 조효성왕(趙孝成王)에게 전하게 했다.
“진나라가 급히 조나라를 포위한 것은, 전에 제민왕(齊湣王)과 강약을 다투며 황제를 칭하였다가 곧바로 황제의 칭호를 취소하고 왕의 칭호로 돌아갔는데, 復歸帝(복귀제) : 황제의 칭호를 취소하고 왕호를 쓰다.
제(민왕)나라는 그 후로 더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진나라만 천하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단을 포위한 것은 반드시 한단을 탐내서가 아니라, 다시 황제를 칭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나라가 진심으로 사신을 보내, 진소양왕을 황제로 높여준다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기뻐하며 병사를 거두어 떠날 것입니다.”
평원군은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此時魯仲連適游趙(차시노중련적유조) 會秦圍趙(회진위조) 聞魏將欲令趙尊秦為帝(문위장욕령조존진위제) 乃見平原君曰(내현평원군왈) 事將柰何(사장내하) 平原君曰(평원군왈) 勝也何敢言事(승야하감언사) 前亡四十萬之衆於外(전망사십만지중어외) 今又內圍邯鄲而不能去(금우내위한단이불능거) 魏王使客將軍新垣衍令趙帝秦(위왕사객장군신원연령조제진) 今其人在是(금기인재시) 勝也何敢言事(승야하감언사)
이 당시 노중련은 마침 조나라에서 유세하고 있었는데, 진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하고, 위나라가 조나라에 명하여, 진소양왕을 황제로 높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평원군 平原君(평원군) : ?~기원전 251년.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공자(公子)이며 정치가이다.
을 만나 말했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실 것입니까?”
평원군이 말했다.
“내가 어찌 감히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 전에는 밖으로 병사 40만 명을 잃었고, 지금은 또 안으로 한단까지 포위당하고 있으나 물리치지 못하고 있소. 위나라 왕이 객장군 신원연을 보내, 조나라에 진나라를 황제로 받들라고 하는데, 지금 그 사람이 이곳에 있소. 내가 어찌 감히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

魯仲連曰(노중련왈) 吾始以君為天下之賢公子也(오시이군위천하지현공자야) 吾乃今然後知君非天下之賢公子也(오내금연후지군비천하지현공자야) 梁客新垣衍安在(양객신원연안재) 吾請為君責而歸之(오청위군책이귀지) 平原君曰(평원군왈) 勝請為紹介而見之於先生(신청위소개이현지어선생) 平原君遂見新垣衍曰(평원군수현신원연왈) 東國有魯仲連先生者(동국유노중련선생자) 今其人在此(금기인재차) 勝請為紹介(승청위소개) 交之於將軍(교지어장군) 新垣衍曰(신원연왈) 吾聞魯仲連先生(오문노중련선생) 齊國之高士也(제국지고사야) 衍人臣也(연인신야) 使事有職(사사유직) 吾不願見魯仲連先生(오불원현노중련선생) 平原君曰(평원군왈) 勝既已泄之矣(승기이설지의) 新垣衍許諾(신원연허락)
노중련이 말했다.
“전에는 그대를 천하의 현명한 공자라 여겼는데, 저는 이제 그대가 천하의 현명한 공자가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위(양)나라의 손님 梁客(양객) : 위나라는 기원전 340년 상앙이 이끄는 진나라군에 대패하여 황하 이서 지역을 잃었고, 진나라를 두려워하며, 수도를 안읍(安邑)에서 동쪽 지역인 대량(大梁, 현재의 開封)으로 천도하였다. 대량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별칭인 양나라(梁)로 불렸다.
신원연은 어디에 있습니까? 청하건대, 제가 그대를 위해 그를 꾸짖어 돌려보내겠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제가 그에게 선생을 소개하고 만나도록 주선해 보겠소.”
평원군은 결국 신원연을 만나 말했다.
“동쪽 제나라에 노중련 선생이 계시는데, 그가 지금 여기에 와있습니다. 제가 소개할 테니, 장군께서 교제하여 보시지요.”
신원연이 말했다.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고결한 선비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신하로 사자의 임무를 띠고 있기에, 노중련 선생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제가 이미 이곳에 계신다고 말했소.”
신원연이 허락했다.

魯連見新垣衍而無言(노련현신원연이무언) 新垣衍曰(신원연왈) 吾視居此圍城之中者(오시거차위성지중자) 皆有求於平原君者也(개유구어평원군자야) 今吾觀先生之玉貌(금오관선생지옥모) 非有求於平原君者也(비유구어평원군자야) 曷為久居此圍城之中而不去(갈위구거차위성지중이불거)
노중련은 신원연을 만났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원연이 말했다.
“제가 포위된 이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평원군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의 얼굴을 보니, 평원군에게 요구하는 게 없는 듯한데, 어찌하여 오래도록 포위된 이 성에 머물며 떠나지 않으십니까?”

魯仲連曰(노중련왈) 世以鮑焦為無從頌而死者(세이포초위무종용이사자) 皆非也(개비야) 衆人不知(중인부지) 則為一身(즉위일신) 彼秦者(피진자) 棄禮義而上首功之國也(기례의이상수공지국야) 權使其士(권사기사) 虜使其民(노사기민) 彼即肆然而為帝(피즉사연이위제) 過而為政於天下(과이위정어천하) 則連有蹈東海而死耳(즉련유도동해이사이) 吾不忍為之民也(오불인위지민야) 所為見將軍者(소위현장군자) 欲以助趙也(욕이조조야)
노중련이 말했다.
“사람들은 포초(鮑焦) 鮑焦(포초) : 춘추시대의 은자(隱者)이며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 죽음.
가 너그럽지 못해 죽었다는데, 모두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포초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 한 몸만을 위하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저 진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전쟁에서의 공로만 숭상하는 나라로, 권모술수로 병사를 부리며 백성을 노예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제멋대로 황제를 칭하며 천하에 잘못된 정치를 한다면, 저는 동해에 뛰어들어 죽을 뿐, 결코 그의 백성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장군을 만난 것은 조나라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新垣衍曰(신원연왈) 先生助之將柰何(선생조지장내하) 魯連曰(노련왈) 吾將使梁及燕助之(오장사량급연조지) 齊楚則固助之矣(제초즉고조지의) 新垣衍曰(신원연왈) 燕則吾請以從矣(연즉오청이종의) 若乃梁者(약내량자) 則吾乃梁人也(즉오내량인야) 先生惡能使梁助之(선생오능사량조지) 魯連曰(노련왈) 梁未睹秦稱帝之害故耳(양미도진칭제지해고이) 使梁睹秦稱帝之害(사량도진칭제지해) 則必助趙矣(즉필조조의)
신원연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조나라를 도우려 하십니까?”
노중련이 말했다.
“저는 위나라와 연나라가 조나라를 돕게 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초나라는 원래부터 조나라를 돕고 있었습니다.”
신원연이 말했다.
“연나라에 대해서는 저도 그 말을 믿겠으나, 위나라에 대해서는 믿기 어렵습니다. 제가 위나라 사람인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위나라가 조나라를 돕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노중련이 말했다.
“위나라는 진나라가 황제를 칭할 때의 해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황제를 칭할 때의 해악을 위나라가 안다면 틀림없이 조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2)
이 장은 노중련이 신원연에게 유세하는 내용이다.
新垣衍曰(신원연왈) 秦稱帝之害何如(진칭제지해하여) 魯連曰(노련왈) 昔者齊威王嘗為仁義矣(석자제위왕상위인의의) 率天下諸侯而朝周(솔천하제후이조주) 周貧且微(주빈차미) 諸侯莫朝(제후막조) 而齊獨朝之(이제독조지) 居歲餘(거세여) 周烈王崩(주열왕붕) 齊後往(제후왕) 周怒(주노) 赴於齊曰(부어제왈) 天崩地坼(천붕지탁) 天子下席(천자하석) 東藩之臣因齊後至(동번지신인제후지) 則斮(즉착) 齊威王勃然怒曰(제위왕발연노왈) 叱嗟(질차) 而母婢也(이모비야) 卒為天下笑(졸위천하소) 故生則朝周(고생즉조주) 死則叱之(사즉질지) 誠不忍其求也(성불인기구야) 彼天子固然(피천자고연) 其無足怪(기무족괴)
신원연이 말했다.
“진나라가 황제라고 칭할 때의 해악이란 어떤 것입니까?”
노중련이 말했다.
“옛날 제위왕(齊威王) 齊威王(제위왕) : ?~기원전 320년. 전국시대 제나라의 제4대 군주(재위 : 기원전 356~기원전 320)이다. 성은 규(嬀), 씨는 전(田), 휘는 인제(因齊), 또는 영제(嬰齊)이다. 이때부터 제나라 군주는 후작이나 공작이 아닌 왕을 칭하였다. 제위왕 16년 위(魏)나라 군대를 계릉(桂陵)에서 대파했다.
은 늘 인의를 지켜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리고 주(周)나라에 조회하였습니다. 朝周(조주) : 조현(朝見). 주나라의 조정에 문안하다.
주나라는 가난하고 쇠약하여 제후들은 조회하지 않았으므로, 제나라만 조회하게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나 주열왕(周烈王)이 붕어했을 때, 天崩地坼(천붕지탁) : =天崩地裂.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다. 제왕의 죽음을 비유한 말.
제나라가 뒤늦게 도착하자, 주나라 왕이 노여워하며 제나라에, ‘천자가 붕어하시어 나 천자도 돗자리에서 지내고 있다. 동쪽 속국 東藩(동번) : 동쪽의 속국. 주나라가 천자의 나라이므로, 제나라가 주나라의 속국이었다.
인 제나라가 늦게 왔으니, 목을 베야 할 것이다.’라고 꾸짖었습니다.
제위왕이 격분해 성을 내며, ‘뭐라는 거냐? 네 어미는 종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제나라 왕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주열왕이 살아있을 때, 제나라 왕은 주나라에 조회하다가 죽었습니다. 제나라 왕이 그 아들을 꾸짖은 것은, 참으로 주나라의 요구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자란 원래 그런 것이니, 괴이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新垣衍曰(신원연왈) 先生獨不見夫仆乎(선생독불견부복호) 十人而從一人者(십인이종일인자) 寧力不勝而智不若邪(영력불승이지불약야) 畏之也(외지야) 魯仲連曰(노중련왈) 嗚呼(오호) 梁之比於秦若仆邪(양지비어진약복야) 新垣衍曰(신원연왈) 然(연) 魯仲連曰(노중련왈) 吾將使秦王烹醢梁王(오장사진왕팽해양왕) 新垣衍怏然不悅(신원연앙연불열) 曰(왈) 噫嘻(희의) 亦太甚矣先生之言也(역태심의선생지언야) 先生又惡能使(선생우오능사)秦王烹醢梁王(진왕팽해양왕)
신원연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저 하인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하인 열 명이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이 어찌 힘이 약하고 지혜가 그만 못해서이겠습니까? 그것은 주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노중련이 말했다.
“아아! 위나라를 진나라에 비하면 하인과 같다는 말입니까?”
신원연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노중련이 말했다.
“제가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 죽이거나 烹醢(팽해) : 고대의 혹형으로 烹(팽)은 삶아 죽이는 것, 醢(해)는 죽여서 젓갈을 담는 형을 말한다.
젓갈을 담도록 해보지요.”
신원연이 언짢고 불쾌해하며 말했다.
“아! 선생의 말씀은 너무 지나치십니다! 선생께서 어떻게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 죽이거나 젓갈을 담도록 만든다는 것입니까?”

魯仲魯曰(노중노왈) 固也(고야) 吾將言之(오장언지) 昔者九侯(석자구후) 鄂侯(악후) 文王(문왕) 紂之三公也(주지삼공야) 九侯有子而好(구후유자이호) 獻之於紂(헌지어주) 紂以為惡(주이위악) 醢九侯(해구후) 鄂侯爭之彊(악후쟁지강) 辯之疾(변지질) 故脯鄂侯(고포악후) 文王聞之(문왕문지) 喟然而嘆(위연이탄) 故拘之牖里之庫百日(고구지유리지고백일) 欲令之死(욕령지사) 曷為與人俱稱王(갈위여인구칭왕) 卒就脯醢之地(졸취포해지지)
노중련이 말했다. 魯仲魯曰(노중노왈) : 노중련왈(魯仲連曰)의 誤字로 보인다.

“물론 할 수 있으니, 제가 장군께 말씀드리지요.
옛날 구후(九侯), 악후(鄂侯), 주문왕(周文王)은 주왕(紂王)의 삼공(三公) 紂之三公(주지삼공) : 은나라 주(紂)왕 때 삼공(三公)은 구후, 악공, 서백(西伯) 창(후의 주문왕) 세 사람이었다. 주왕은 구후의 딸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제로 구후의 딸을 첩으로 삼았다. 이에 분노한 구후가 악공과 함께 주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가 음모가 들통나자, 주왕은 구후와 악공을 붙잡아 구후를 젓갈로 담그는 사형에 처하고, 악공은 육포로 만드는 사형에 처했다.
이었습니다. 구후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왕에게 바쳤으나, 주왕은 못생겼다며 구후를 소금에 절여 죽였습니다. 악후가 강하게 만류하고 급히 변론하자, 악후를 포(脯) 떠서 죽였습니다. 주문왕이 이를 듣고 서글프게 탄식하자, 주문왕을 잡아 유리(牖裏)의 감옥 牖里之庫(유리) : 유리(牖里)에 있는 무기고. 여기서 庫는 감옥을 말한다.
에 1백 일을 가두어 두고 죽이려 했습니다.
어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왕이라 불러 끝내 포를 뜨이고 소금에 절여지는 신세가 되려고 하십니까?

齊湣王之魯(제민왕지노) 夷維子為執策而從(이유자위집책이종) 謂魯人曰(위노인왈) 子將何以待吾君(자장하이대오군) 魯人曰(노인왈) 吾將以十太牢待子之君(오장이십태뢰대자지군) 夷維子曰(이유자왈) 子安取禮而來[待]吾君(자안취례이래[대]오군) 彼吾君者(피오군자) 天子也(천자야) 天子巡狩(천자순수) 諸侯辟舍(제후피사) 納筦籥(납관약) 攝衽抱機(섭임포기) 視膳於堂下(시선어당하) 天子已食(천자이식) 乃退而聽朝也(내퇴이청조야)
제민왕이 노나라에 가려고 할 때, 이유자(夷維子)가 채찍을 잡고 따르며 노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우리 군주를 어떻게 대접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노나라 사람들은 ‘우리는 십태뢰(十太牢) 十太牢(십태뢰) : 제사 때, 소, 양, 돼지머리를 하나씩 제물로 바치는 걸 일태뢰(一太牢)라고 하며, 십 태뢰는 제후의 예로 대접한다는 뜻이다.
의 예의로 그대의 군주를 대접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유자는 ‘그대들은 어떤 예절을 근거로 우리 군주를 그렇게 대접하는가? 우리 군주는 천자이시오. 천자께서 순행하시면 제후들은 자기의 궁궐을 내주고, 성문과 창고의 열쇠를 넘기고, 옷깃을 걷어 올리고 탁자를 준비하고 대청 아래에서 수라상을 준비해 視膳(시선) : 밥상을 돌보다. 왕세자(王世子)가 아침저녁으로 임금이 드실 수라상을 몸소 돌보시는 일. 膳은 식사.
올리고, 천자께서 식사를 마치면 물러나 정사를 들어야 하오.’라고 말했습니다.

魯人投其籥(노인투기약) 不果納(불과납) 不得入於魯(부득입어노) 將之薛(장지설) 假途於鄒(가도어추) 當是時(당시시) 鄒君死(추군사) 湣王欲入弔(민왕욕입조) 夷維子謂鄒之孤曰(이유자위추지고왈) 天子弔(천자조) 主人必將倍殯棺(주인필장배빈관) 設北面於南方(설북면어남방) 然後天子南面弔也(연후천자남면조야) 鄒之群臣曰(추지군신왈) 必若此(필약차) 吾將伏劍而死(오장복검이사) 固不敢入於鄒(고불감입어추) 鄒魯之臣(추노지신) 生則不得事養(생즉부득사양) 死則不得賻襚(사즉부득부수) 然且欲行天子之禮於鄒魯(연차욕행천자지례어추노) 鄒魯之臣不果納(추노지신불과납)
노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문을 닫아 잠그고 제민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노나라에 들어갈 수 없자 설(薛)로 가려고 했는데, 추(鄒)나라의 길을 빌려야 했습니다.
당시 추나라 군주가 죽어 제민왕이 들어가 조문하려고 했는데, 이유자가 추나라 군주의 아들에게, ‘천자께서 조문하시면 주인은 반드시 관을 뒤로 하고 북쪽을 향해 남쪽에 자리를 펴고, 天子南面(천자남면) : 군주는 남면하고 신하는 북면한다.
그다음 천자께서 남쪽을 향해 조문해야 하오.’라고 말하자, 추나라의 신하들이 ‘꼭 그렇게 해야겠다면 우리는 차라리 칼에 엎어져 죽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끝내 추나라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추나라와 노나라의 신하들은 군주가 살아서는 제대로 모시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물과 옷가지를 넉넉히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자의 예를 추나라와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자, 추나라와 노나라의 신하들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今秦萬乘之國也(금진만승지국야) 梁亦萬乘之國也(양역만승지국야) 俱據萬乘之國(구거만승지국) 各有稱王之名(각유칭왕지명) 睹其一戰而勝(도기일전이승) 欲從而帝之(욕종이제지) 是使三晉之大臣不如鄒魯之仆妾也(시사삼진지대신불여추노지복첩야) 且秦無已而帝(차진무이이제) 則且變易諸侯之大臣(즉차변역제후지대신) 彼將奪其所不肖而與其所賢(피장탈기소불초이여기소현) 奪其所憎而與其所愛(탈기소증이여기소애) 彼又將使其子女(피우장사기자녀) 讒妾為諸侯妃姬(참첩위제후비희) 處梁之宮(처양지궁) 梁王安得晏然而已乎(양왕안득안연이이호) 而將軍又何以得故寵乎(이장군우하이득고총호)
지금 진나라는 만승 대국이며, 위나라 역시 만승의 대국입니다. 똑같이 만승 대국을 이끌고 각기 왕을 칭하고 있는데, 위나라는 진나라가 한 번 싸워 이기는 걸 보고 진나라에 복종하여 황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는 삼진(三晉)의 대신들을 추나라와 노나라의 남녀 종만큼도 못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 진나라가 황제를 계속 칭하면, 우선 제후의 대신들을 갈아치울 것입니다. 그들은 못마땅한 자의 지위를 빼앗아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그 지위를 줄 것이고, 미워하는 자의 지위를 빼앗아 좋아하는 자에게 그 지위를 줄 것입니다.
그들은 또 진나라 왕의 요사스러운 부녀자들을 제후들의 첩으로 삼아, 위나라의 궁궐에 머물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위나라 왕은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장군은 또 어찌 총애받을 수 있겠습니까?”

於是新垣衍起(어시신원연기) 再拜謝曰(재배사왈) 始以先生為庸人(시이선생위용인) 吾乃今日知(오내금일지) 先生為天下之士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를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하였다.
사마천은 <본기(本紀)> 12권에서 “제왕들이 일어나게 된 자취를 살폈는데, 그 처음과 끝을 탐구하고 그 흥망성쇠를 보되 사실에 근거하여 논하고 고찰하여 삼 대 이상은 간략하게 추정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상세하게 기록하되, 위로는 황제 헌원(軒轅)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孝武本紀第十二효무본기제십이)에 이르기까지 12편의 본기(本紀)로 저술하고, 종류별로 배열하였다.
<표(表)> 10권에서는 본기(本紀)에 나오는 제왕과 제후들의 흥망을 연표(年表)로 정리하였다. 사마천은 ‘세대가 다른 일이 같은 시기에 일어나고, 발생한 연대의 차이가 분명치 않은 사건들이 있으므로, 10편의 표(表)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書)> 8권에서 사마천은 ‘예악(禮樂)의 증감, 율력(律曆)의 개역, 병법의 권모술수와 산천의 귀신,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그 성패와 변화를 살피기 위해 8편의 서(書)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세가(世家)> 30권에서는 분봉한 국가의 군주나 제후들, 혹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의 사적 및 사회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마천은 ‘28수(宿)의 별자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수레바퀴 살 30개가 바퀴통에 모여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제왕을 보필하는 팔다리와 같은 신하들을 이에 빗대어, 충신으로서 도를 행하여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30편의 세가(世家)로 지었다.’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열전(列傳)> 70권에 대해서,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잘한 일에 매이지 않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 70편의 열전(列傳)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서평
Epub은 한자의 덧말 쓰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한자 옆에 훈을 달았다. <사기>를 이해하는 데에, 특히 한자 읽기에 큰 보탬이 되리라 기대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기의 기전체 서술은 역사의 줄기를 제대로 더듬어 갈 수 있게 안배하고 있다.
특히 <표> 10권은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료의 방대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사기》는 중국 전한 왕조인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로, 중국 이십사사의 하나이자 정사의 으뜸으로 꼽힌다.
본래 사마천 자신이 붙인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사공기(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고, 이 ‘태사공기’의 약칭인 ‘사기’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서, 그 서술 범위는 전설상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었다는 요(기원전 2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 말의 전한 무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서술 방식은 후대 중국의 역사서, 특히 정사를 기술하는 방식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 외에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는다.
《사기》의 내용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바로 ‘하늘의 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也非也)’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늘의 도리, 즉 인간의 세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사기》 열전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은 의인(義人)이 틀림없는 백이와 숙제가 아사(餓死)라는 초라한 죽음을 맞은 데에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서는 사마천 자신이 과거 친구이자 이릉의 불가피한 항복을 변호했던 올바른 행동을 하고도 궁형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은 데 대한 비통함이 깔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기》의 기술은 유교 사상이 주가 되는 와중에 다른 사상도 가미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실’을 추구한다는 역사서 편찬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역사 서술을 위한 간결하면서도 힘찬 문장은 ‘문성(文聖)’ 또는 ‘백전노장의 군대의 운용’과 같은 것이라 하여 격찬받았다. 특히 〈항우본기〉는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면에서는 정사로서 기술된 당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본 정보는 섬세한 기술로 당시의 생활이나 습관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서〉(書)의 내용은 전한 시대의 세계관이나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또 흉노를 비롯한 주변 이민족이나 서역에 관한 기술도 현재 알려진 지리와 유적 발굴 등에서 판명된 당시 상황과의 정합성이 높고, 이러한 지방의 당시를 알기 위한 귀중한 단서가 되고 있으며, 진시황 본기의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에 근위병 3천 인의 인형을 묻었다’는 기술에 대해서도, 시안시 교외의 병마용갱 발견으로 그 정확성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이 책이 경쟁 시대에 살아가는 당신의 새로운 무기를 연마하고 개발하는 데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사마천

사마천司馬遷
⁃ BC145년 : 중국 섬서성 용문시하양에서 태어났다.
⁃ 기원전 139년 : 아버지 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되어 무릉에거주하였다.
⁃ BC126년 : 아버지의 도움으로 2년간 천하를 여행했다.
⁃ BC124년 : 낭중(황제의 시종)이 되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 BC110년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시작한 <사기>를 완성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 BC108년 : 태사령이 되어서 한무제를 수행하며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을 통해 <사기>를 쓰는 데 필요한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였다.
⁃ BC104년 :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 BC99년 : 흉노와의 전쟁에서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을 두둔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당할 처지에 놓였다. 사형을 피하는 방법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치욕적인 궁형 대신 사형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하였다.
⁃ BC95년 : 황제의 용서를 받고, 환관 중 최고 직책인 중서령이 되었다.
⁃ BC91년 : <사기>를 완성하였다.
⁃ BC86년 :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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