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2014년 06월 12일 출간
국내도서 : 2014년 06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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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5771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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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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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냉동어
허생전
작가 연보
태평천하 p. 240~241
윤 직원 영감은 잠이 깨자 맨 먼저 머리맡의 놋요강을 집어 들고, 밤사이 피에서 걸러놓은 독소를 뽑습니다. 신진대사라니, 새날이 새것을 들여다가 새 생명을 떨치기 위하여 묵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묵은 것의 배설!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절절 절절, 쏟아져 나오는 액체를 윤 직원 영감은 연방 손바닥으로 받아 올려다가는 눈을 씻고, 받아 올려다가는 눈을 씻고 합니다. 매일 아침 소변으로 눈을 씻으면 안력이 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부터 일러오던 말인데, 윤 직원 영감은 시방 그 보안법保眼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십 년을 두고 해 내려오는 것인데, 만일 꼬노리야라도 앓았다면 장님이 되었기 십상이겠지만, 요행 그렇진 않았고, 소변 보안법의 덕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미상불 안력이 아직도 좋아서 원체 잔글씨만 아니면 그대로 처억척 보는 건 사실입니다.
누구, 의학박사의 학위 논문거리에 궁한 이가 있거들랑 이걸 연구해서〈뇨尿에 의한 시신경의 노쇠 방지와 및 그 원리에 관하여〉라는 것을 한번 완성시킨다면 박사 하나는 받아논 밥상일 겝니다.
윤 직원 영감은 이윽고 안약 장수를 울릴 그 보안법을 행하고 나서는, 자리옷을 여느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담뱃대에 담배를 붙여 뭅니다.
푸욱푹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아직도 한밤중인 듯 전등불이 환히 켜져 있는 방 안으로 자욱이 찹니다. 말도 없고 소리도 없고, 인간이란 단 하나뿐, 사람이 심심하다기보다도 전등과 방 안의 정물들이 도리어 무료할 지경입니다.
담배가 반 대나 탔음 직해서는 삼남이가 부룩송아지 같은 대가리를 모로 둘러, 사팔눈의 시점을 맞추면서 방으로 들어섭니다. 손에는 빨병을 조심조심 들고…….
아침마다 하는 일과라, 삼남이는 들고 들어온 빨병을 말없이 내바치고, 윤 직원 영감 또한 말없이 그걸 받아놓더니, 물었던 담뱃대를 뽑고 연상 서랍에서 소라 껍데기로 만든 잔을 꺼냅니다.
졸졸 졸졸, 놀면한 게, 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게, 어쩌면 마침 데운 정종 비슷한 것을 잔에다가 그득 따릅니다.
이것이 역시 오줌입니다. 하나, 여느 오줌은 아니고 동변童便이라고, 음양을 알기 전의 어린애들의 오줌입니다.
동변을 받아 먹으면 몸에 좋다는 것도, 오줌으로 보안을 하는 것과 한가지로 옛날부터 일러 내려오던 말입니다. 그걸 보면 요새 그, 오줌에서 호르몬이라든지 무어라든지 하는 약을 뽑는다는 것도 노상 허황한 소리는 아닌 듯싶고,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오줌에 들어 있는 호르몬을 발견해낸 명예는 아무리 해도 우리네 조선 사람의 조상이 차지를 해야 하겠습니다.
윤 직원 영감은 오줌을 그처럼 두루 이용하는데, 일찍이 삼십 년 전 오줌 보안법으로 더불어 이 오줌 장복도 시작했던 것입니다.
냉동어 p. 398~399
“거, 대체 누가 그대지 요란스런 사람이 떠나길래, 이 밤중에 부둥부둥 전송만 나가야 한다는 게요? 여보 형님!”
“애인이래두!”
“허어! 아냐…… 우리 형님이 이뭉해 놔서, 정말 애인이면 애인이라구 하덜 않지!”
“허허실실虛虛實實 모르나?”
“아냐 아냐……! 아뭏던지 꼭 도루 오시지? 두 시간 안에…….”
“아무렴……! 내가 선량한 자넬 저바릴 택이 있나!”
제 입으로 말을 해놓고 보아도 어쩐지 마음이 좀 언짢았다.
‘그러면 오늘 저녁은 작파하나?’
‘쯧! 그래도 좋지…….’
‘기왕이니 떠나도 좋고…….’
덤덤히 기다리기가 갑갑하여, 판은 헤식으나따나, 가야금 병창을 한 대문 듣고, 그리고 나서 이럭저럭 두 시 반이 된 것을 보고는 병수와 김, 박 세 사람을 상 앞으로 모이게 한 후 (마지막 작별인 양) 쓰렁둥 술잔을 나누었다.
이윽고, 차가 대령이 되었다는 전갈을 한다.
몸을 일으키다가, 넉넉하니 오 분만 지체하도록 일러두고서, 또 한 순 술을 돌렸다.
그리고는, 정말 인젠 동경으로 떠나느니라고 벌떡 일어서는 것을, 옆에서 병수가 팔을 붙잡아 앉히더니, 형님 눈치가 아무래도 좀 수상하다면서 꼭 도로 온다는 명세로 큰 잔에 한 잔을 먹인다.
그다음에는 또 제가 제풀에 주저앉으면서 (안 떠나도 그만이라고) 술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일어섰다.
그러나 다시 또 앉았다.
또다시 일어섰다.
또다시 주저앉았다.
이렇게 연해 앉았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섰다가는 주저앉고, 그러면서 줄곧 시계는 꺼내 보았다, 집어넣었다 하면서 하는 동안에 어언간 세 시가 되고, 이어서 오 분, 연달아 십 분, 마침내 십오 분…… 십오 분이자 드디어 최후의 시간은 완전히 지나버리고 말았다.
허생전 p. 439~440
도적들은 돈 무게에 몸을 지탱하지만 못할 뿐 아니라, 돈에 정신 또한 빠져 저희들이 도적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마당에 내동댕이친 식칼이며 몽동이며 창 등속의 장기─돈보다도 실상 더 소중히 할 것이며, 목숨과 같이
채만식의 풍자 소설 중 가장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태평천하>는 부정적인 상황들이 난무하는 시대 현실을 독자적인 문학적 기법과 비판의식으로 그려낸 장편소설로 판소리 사설의 반어, 자기 폭로, 비유, 과장, 희화화 등의 표현법에 사투리를 섞은 요설, 창을 듣는 듯한 느낌과 재미를 선사한다. 세태풍자소설의 장을 열었던 채만식이 쓴 가족사소설의 전형이다.
이야기는 채 하루가 안 되는 시간 동안 5대에 걸친 윤 씨 집안의 행태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화적패에게 죽은 아버지 윤용규와 고리대금업으로 재산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주인공 윤직원 영감, 그리고 그에게 붙어사는 식구들과 어린 기생, 하인 등을 통해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행태를 구수한 사투리와 발랄한 묘사로 재미있게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인간 군상을 통해 식민지 자본주의의 왜곡상과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채만식의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라 평가받는 1938년, <조광>에 <천하태평춘>이란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냉동어>에서는 일제 말의 질곡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잃고 시체가 되어가는 지식인과 조선인을 '냉동어'로 표현하며 한 무기력한 지식인의 삶을 냉소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문대영은 애초에 신념과 생활을 지닌 인물이었으나 더 이상 신념을 가지고 대처할 수 없는 냉엄한 시대에 묵묵히 자기응시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이다. 이런 냉소적인 그를 찾은 스미코와의 연애담이 주된 내용이지만 연애감정에서조차도 도무지 열의가 없는 작가 자신의 허무의식이 엿보인다. 일제 말기에 이르러 채만식이 친일문학 행위를 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냉동어>는 친일 행위를 본격화하는 첫 작품으로 채만식의 문학에서 ‘관념상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허생전>은 박지원의 《허생전》과 이광수의 <허생전> 그리고 채만식의 <허생전> 등 여러 책으로 각색된 설화로 전해져오는 이야기이다.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간 허생은 변 진사에게 돈 만 냥을 빌려 안정성의 과일을 매점하여 석 달 만에 열 배의 이익을 남긴다. 도적들이 돈을 훔치러 오지만 허생은 도적들을 감화시켜 새달 보름까지 강경 장터로 모이라 하고 돈을 주어 돌려보낸다. 허생은 변 진사에게 이만 냥을 갚고, 강경 장터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조직을 갖추어 사천여 명의 사람들을 배에 싣고 제주로 떠난다. 허생은 제주 목사의 횡포를 듣고 그를 쫓아내고 삼 년 동안 제주에 낙천지를 이룬 후 집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채만식의 또 다른 소설 <심봉사> <흥부전>과 더불어 고전소설을 대중화하고 현대화하려 했던 작가의 당시 창작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고전을 패러디한 이 세 작품은 일제 말기에 대일 협력적인 문필행위로 위기에 처했던 채만식이 작가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고전소설을 통한 새로운 글쓰기의 방법으로 찾아낸 결과이다.
작가정보

1933년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프로 문학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후 자전적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과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풍자성이 강한 사회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반어,비유,역설 등을 사용해 현실을 그려낸 채만식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태평천하>(원제목은 <천하태평춘>), <탁류>, <치숙>, <민족의 죄인>, <논 이야기>, <불효자식>, <아름다운 새벽>, <돼지>, <허생전> 등이 있다. 이외에도 희곡, 평론 등의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1950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옥구군 임피면에 있는 선산에 묻혔다. 1920년대 이래 한국 문학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풍자적 작품 세계를 개척하여, 오늘날 가장 개성 있는 문제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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