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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誠齋) 정규석(鄭珪錫)의 일제강점기 현실인식과 시적 표출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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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Seong jae Jeong Gyu-seok’s Cognition of reality and Poetic expressio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발행기관
동방한문학회
저자명
문정우(Jung-woo Moon)
간행물 정보
『동방한문학』제104호, 301~332쪽, 전체 32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5.09.30
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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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성재(誠齋) 정규석(鄭珪錫, 1876~1954)은 북관대첩을 이루어낸 명장 충의공(忠毅公)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동생 정문익(鄭文益)의 후손이다. 정문부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승전하였음에도 인조(仁祖)에 대하여 반역을 꾀한다는 역모에 연루되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정문익은 정문부의 동생으로서 참화를 직접 겪었으므로 경상남도 진주로 이주하여 터전을 마련했다. 이후 정문익의 증손 명암(明庵) 정식(鄭栻, 1683~1746)은 명암이라 자호(自號)하고, 명(明)나라에 대한 의리를 수호하며 산청의 덕산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였다. 명암은 이곳에서 도통(道統)을 이어가고자 주희(朱熹, 1130~1200)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한(漢)나라 수복의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성재는 이와 같은 가문의 정신적 기반을 간직한 인물로서 조선왕조,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시대, 광복 및 전쟁까지 경험하여 시대에 민감하게 감응하였으며, 내면세계 또한 복잡다단했다. 성재는 충절의식을 이어받으며, 정통유학을 고수하여 사림(士林)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지역 학문을 진작시키고자 했다. 성재의 대표적 업적은 첫째, 선현(先賢)의 정신을 계승한 무이정사 중건이다. 두 번째 업적은 산청에서 후생 교육의 공간인 삼성재(三省齋)의 건립을 주도한 것이다. 세 번째 업적은 무이정사의 초대(初代) 내임(內任)으로서, 다양한 학문 연원을 접하고 교유 관계를 확대하여 사림의 결속과 유대를 강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재는 지역 학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노사학파(蘆沙學派)・간재학파(艮齋學派)・한주학파(寒洲學派)・남명학파(南冥學派) 등과의 접점을 통해 유자(儒者)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난에 대처하고자 했다. 성재는 가학(家學)의 전통과 학문의 내용과 선비의식을 주로 기행을 통해 표출했다. 성재로서는 위기의 시대에 지역에서 학문에만 침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현실인식과 표출 방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성재의 일제강점기 현실인식과 시적(詩的) 표출 양상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토변모(國土變貌)의 감개(感慨)이며 둘째, 충절의식(忠節意識)의 고취(鼓吹)이며 셋째, 모성존현(慕聖尊賢)의 갈망(渴望)이다. 성재는 우리나라의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애국을 바탕으로 국토 변모에 대한 감흥과 안타까움을 드러내었다. 충절의 발자취를 찾아 충의의 인물을 추모하고 절의를 본받아 격변의 현실에서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또한 성현에 대해 깊은 존모의 마음을 표출했는데, 이는 정통유학과 성현의 가르침을 근대 전환기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영문 초록

Seong jae Jeong Gyu seok is a descendant of Jeong Mun ik, the younger brother of General Jeong Mun bu. Although Jeong Mun bu achieved victori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he tragically died after being accused of treason against King Injo. Because he personally experienced his older brother's tragedy firsthand, Jeong Mun ik moved to Jinju and built a new life there. In later years, Jeong Mun ik’s great-grandson, Jeong Sik, who called himself Myeongam, moved to Deoksan in Sancheong, remaining loyal to the Ming dynasty of China. In this place, Myeongam built the Mui Jeongsa, modeled after Zhu Xi’s Nine Bends of Wuyi, and reflected on Zhuge Liang’s loyal spirit toward the Han dynasty of China. Growing up in a family with such a legacy, Seong jae experienced the Joseon Dynasty, the Korean Empire, Japanese occupation,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which left him with a deeply conflicted heart. Seong jae’s key achievements include: rebuilding the Mui Jeongsa to honor his ancestors’ spirit; founding Samseongjae in Sancheong to educate young scholars; and managing the Mui Jeongsa to explore various fields of study and strengthen ties with Confucian scholars. Seong jae played a key role in the local academic community and, through connections with schools like Nosa, Ganjae, Hanju, and Nammyeong, embraced his duty as a Confucian scholar in times of national crisis. Seong jae expressed his scholarly and moral convictions through travel, believing that study alone was not enough in a time of crisis. Seong jae’s response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his poetry can be summed up as mourning the changed homeland, fostering loyalty, and honoring sages. Seong jae reflected on Korea’s past and mourned the land’s changes. He honored loyal figures and tried to follow their example. He respected sages and aimed to uphold Confucian teachings during modernization.

목차

1. 머리말
2. 성재 정규석의 학문 연원과 지역 활동
3. 일제강점기 현실인식과 시적 표출 양상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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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Jung-woo Moon). (2025).성재(誠齋) 정규석(鄭珪錫)의 일제강점기 현실인식과 시적 표출 양상. 동방한문학, (), 3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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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Jung-woo Moon). "성재(誠齋) 정규석(鄭珪錫)의 일제강점기 현실인식과 시적 표출 양상." 동방한문학, (2025): 3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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