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신라의 報德國 경략과 一統 이념
이용수 88
- 영문명
- Silla’s domination of Bodeok State and Unification Ideology
- 발행기관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 저자명
- 권창혁(Chang-hyuck Kwon)
- 간행물 정보
- 『중원문화연구』제33집, 267~307쪽, 전체 41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12.31
7,720원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국문 초록
668년 이래 신라는 나당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반도 삼국의 분할·병존을 골자로 하는 당 기미주 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더불어, 그를 파훼하며 영향력을 부식시키기 위한 전략적 안배 아래 서북방면의 고구려 부흥운동을 배후에서 직간접적으로 후원하였다. 그에 따라 여러 유민 집단이 신라의 후원과 책봉 아래 고구려 왕실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계승자(嗣子)’ 안승을 매개로 결합하면서 670년 초 ‘한성 고구려국’의 수립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이 한성 고구려국과의 연계 및 후원을 통해 북방전선을 상당 기간 안정시킨다는 실질적인 전략상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한반도 역내에서만큼은 신라 중심의 헤게모니와 도덕적 명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게 하는 이념적 장치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672-673년 당군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면서 한성 고구려국은 원 근거지를 상실하고 잔여세력이 신라 영내로 유입되었다. 신라는 원활한 통제를 위해 이들을 금마저(익산)에 집단적으로 안치시켰으며, 아울러 674년에는 안승을 ‘고구려왕’에서 ‘보덕왕’으로 다시금 책봉하여 상하 위계를 한층 명확히 하였다. 이는 결국 상황 변화로 인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전략적 가치를 대체하여, 보덕국을 복속시킨 신라의 ‘위덕(威德)’을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의례적·이념적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조치로도 이해된다.
이후 나당전쟁이 사실상 신라의 승전에 가까운 형태로 일단락되면서 보덕국의 처리가 중요한 의제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문무왕대와는 달리 신문왕대에 들어서는 즉위 직후 김흠돌 세력의 숙청을 계기로 중앙집권화·관료화라는 정치적 지향에 따라 보덕국의 처리 역시도 전면적인 해체와 동화라는 급진적인 방식을 택하였다. 이는 즉 대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고구려 유민 문제의 해결을 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684년 보덕성민의 대대적인 반란으로 비화되었다. 반란 자체는 무력으로 진압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던 옛 삼국 유민의식이 가진 폭발력을 다시금 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신라는 반란 진압 이후에도 보덕성민에 대해 강경책만이 아니라 온건책도 병행하되, 철저히 신라 중심적인 기준으로 여러 주민집단 상호 간의 연계를 막으며 감시와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정치적 필요성 아래 신라를 중심으로 한 일통 이념 역시도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영문 초록
Since 668, Silla, on the eve of the Silla-Tang War, directly and indirectly supported the Goguryeo’s restoration uprising in the northwest side of Korean Peninsula, in addition to the accumulated discontent with the Tang’s Jimifuzhou(羈縻府州) system, which was based on the division and coexistence of the old three kingdoms, and strategically arranged to undermine it and erode its influence. Accordingly, various refugee groups joined forces through An-seung(安勝), the successor who guaranteed the legitimacy of the Goguryeo kingdom under Silla’s support and investiture, lead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Hansung Goguryeo State(漢城 高句麗國)” in early 670. From Silla’s perspective, it was able to gain the practical strategic advantage of stabilizing the northern front for a considerable period of time through its connection and support with this Hansung Goguryeo State. In addition, it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n ideological device that allowed it to flaunt Silla-centered hegemony and moral legitimacy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at least within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as the Tang army began its full-scale offensive in 672-673, Hanseong Goguryeo State lost its original base and its remaining forces flowed into Silla territory. In order to control them smoothly, Silla encamped them in Geummajeo(金馬渚, Iksan), and in 674, An-seung was re-appointed as ‘the King of Bodeok(報德王)’ from ‘the King of Goguryeo(高句麗王)’, further clarifying the hierarchy. This can also be understood as a measure to maximize the ceremonial and ideological value of Silla as a symbol of ‘dignity and virtue’ that subjugated Bodeok State(報德國), replacing the strategic value that was no longer expected due to the change in circumstances.
Afterwards, as the Silla-Tang War ended in a form that was virtually a victory for Silla, the handling of Bodeok State began to emerge as an important agenda. However, unlike King Munmu, King Sinmun took a radical approach of complete dissolution and assimilation in the Bodeok State administration in accordance with the political orientation of centralization and bureaucratization immediately after his ascension to the throne, triggered by the purge of the Kim Heumdol’s faction. This meant that while internally establishing a centralized bureaucratic system, externally seeking to resolve the Goguryeo refugee and restoration movement issue in order to improve diplomatioc relations with Tang. However, this measure escalated into a large-scale rebellion by the People of Bodeok Stronghold(報德城民) in 684. Although the rebellion itself was suppressed by force, it became an turning point to recognize the explosive power of the old Three Kingdoms refugee consciousness that still remained strong. Therefore, even after the suppression of the rebellion, Silla adopted not only a hard-line policy but also a moderate policy toward the People of Bodeok Stronghold, and thoroughly blocked connections between various resident groups based on Silla-centered standards, making surveillance and control easier. On the other hand, under such political necessity, the unified ideology centered on Silla was also able to develop into a more specific and refined form.
목차
Ⅰ. 머리말
Ⅱ. 문무왕 시기 나당전쟁의 추이와 한성 고구려국의 역할
Ⅲ. 신문왕 시기 보덕국의 해체와 일통 이념의 구현
Ⅳ.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중원문화연구 제33집 목차
- 나당군사동맹의 체결 시점 재고
-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
- 나당전쟁기 고구려 백수성의 위치에 대하여
- 삼국통일 후 신라 6정·10정의 재편과 운용
- 신라 한주 관방시설 정비의 군사사적 의미
- 신라의 삼국통일 전후처리와 통일인식
- 신라 中·下代 전국 도로망과 지역 네트워크
- 삼국통일전쟁의 軍事史的 연구와 역사적 함의
- 신라의 報德國 경략과 一統 이념
- 충북의 철도 노선 변화와 도시공간구조
- 문화유산으로서의 선사시대 유적 활용 방안 검토 - 부여 송국리유적을 대상으로
- 한성기 백제 지방성으로서의 충주 장미산성 검토
- 666-667년 고구려-당 전쟁의 전황
- 남한지역 무기단식 적석묘의 전개양상과 축조집단에 대하여
- 670년대 이후 고구려 유민과 신라·당 관계
- 삼국통일전쟁기 김유신의 전략과 전술
참고문헌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신라문화25
- 한국고대사연구95
- 신라사학보 51
- 군사129
- 역사비평128
- 학연문화사
- 신라사학보59
- 역사와 실학72
- 이기백선생고희기념한국사학논총( )
- 일조각
- 백산학보52
- 신라사학보32
- 선사와 고대36
- 한국사학보16
- 한국고대사연구59
- 사림19
- 역사와 현실78
- 진단학보126
- 진단학보81
- 한국사론41 42
- 한국사론41 42
- 군사34
- 사계절
- 신라사학보38
- 한국사학보31
- 한국사학보84
- 한국고대사연구86
- 대구사학133
- 이화사학연구63
- 동국사학38
- 아세아문화사
- 인문학연구78
- 학연문화사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사회과학원
- 대구사학132
- 영남학84
- 신라사학보52
- 사총46
- 동양학 69
- 한국사학보53
- 고려대학교
- 일조각
- 일조각
- 동양사학연구120
- 대구사학120
- 박영사
- 역사교육논집45
- 주류성
- 고대사 연구의 자료와 해석
- 한국고대사탐구23
- 군사104
- 동아시아고대학67
- 북악사론18
- 중국중세사연구38
- 국사관논총69
- 한국사론95
- 일본역사연구31
- 한국고대사연구105
- 역사와 현실72
- 서경문화사
- 한나래
- 한국사학보94
- 역사학보35 36 ・ 합집
- 역사와 현실101
- 온샘
- 역사와 경계87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북악사론18
- 역사와 담론56
- 역사와 담론66
- 한국고대사탐구29
- 군사110
- 한국고대사연구78
- 서울대학교
- 혜안
- 한국사학보61
- 경주사학 21
- 한국고대사탐구30
- 중앙사론56
- 한국정치외교사논총41-2
- 동북아역사논총47
- 신라사학보49
- 대구사학58
- 신라사학보50
- 신라문화59
- 혜안
- 서경문화사
- 한국사연구201
- 인문연구48
- 동국사학17
관련논문
최근 이용한 논문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