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通典』의 한국고대사 인식과 杜佑의 중화사상
이용수 33
- 영문명
- Perception of Ancient Korean History and Cinocentrism Seen Through ≪Tongdian≫
-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저자명
- 송영대(Young-Dae Song)
- 간행물 정보
- 『한국고대사탐구』제35집, 453~488쪽, 전체 3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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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중국에서는 隋代부터 漢四郡의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는 郡縣回復論이 제창되었다. 이는 漢代의 樂浪과 玄菟가 본래 중국의 땅이었으니 회복해야한다는 주장으로, 고구려 원정의 주요 명분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한국 고대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틀로 자리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君臣의 논의에서 거론되었던 것이, 唐代 중반에 작성된 『通典』에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논문에서는 『通典』의 내용 분석을 통하여 중국의 한국 고대 국가 인식이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당대의 현실 및 對外觀과도 연계하여 고찰하는 작업을 하였다.
『通典』의 「州郡門」은 중국의 역대 疆域 변천을 다룬 것으로, 여기에서 낙랑과 현도는 중국의 고유 영토인 것처럼 다뤄진다. 특히 杜佑는 前漢과 後漢의 영토를 唐의 영토 기준으로 삼으면서, 서술 당시 시점에는 東夷의 땅이 되었다고 하였다. 「邊防門」에서는 고조선부터 삼국에 이르는 국가들을 다루었으며, 이 중에서 고구려와 신라 등에 대한 기록에서 낙랑이나 현도와의 연관성을 거론하였다. 두우는 중국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고대 국가들이 본래 중국의 영역 혹은 중국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대외관을 가져, 주변의 夷狄을 힘으로 복속시키거나 敎化시켜야한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당은 安史의 亂을 계기로 주변 지역 제압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도리어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두우는 기존의 패권주의에서 벗어나서,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중화의 영광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향후 국력 회복 이후 동이 지역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관념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通典』을 통해 제시되었다. 이후 『通典』은 역대 관리들의 필독서가 되면서, 『通典』의 한국 고대 국가에 대한 인식은 한국고대사를 바라보는 틀이 되어 후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영문 초록
China insisted a theory of Four Commanderies recovery since Shu(隋) dynasty. It became the main reason for the expedition to Goguryeo(高句麗). They claimed that Lelang(樂浪) and Xuantu(玄菟) which originally belonged to Han(漢) should be restored. This perception later became a framework to look at the entire ancient Korean nations. What had been previously mentioned in discussion among the ruler and officials reached the level of being systematically organized in ≪Tongdian(通典)≫ written in the middle of Tang(唐) period. This study explores ≪Tongdian≫ to examine how China's perception of ancient Korean nations emerged. The external conception and political climate of that time are also considered.
in ≪Tongdian≫ deals with China's territorial change. In the context, Lelang and Xuantu are treated as their own territory. Duyou(杜佑) considered the territories of the Former and Later Han(後漢) as Tang's domain. Then, he states that it became the land of Dong-yi(東夷) at the time of writing. On the one hand, addresses several countries ranging from Gojoseon(古朝鮮) to Three Kingdoms(三國). In particular, Goguryeo and Silla(新羅) are stated in relation to Lelang or Xuantu. Emphasizing a connection with China, it delivered a message to form a perception that the ancient Korean countries originated from the Chinese territory, by extension, established by Chinese.
Traditionally, China had the external conception based on Sinocentrism. In this context, barbarians are needed to be ruled or edified by them. However, Tang became unable to dominate surroundings due to “Anlushan Rebellion(安史之亂)”. Moreover, Tang was losing ground. Duyou sought to diverge from the existing hegemony and continue the glory of China by emphasizing their cultural superiority. In this process, a future plan to claim the right for territory of Dong-yi after restoration of national power was formed and it was presented in ≪Tongdian≫. The book became a must-read for the officials afterwards. Furthermore, its perception of ancient Korean nations formed a framework for ancient Korean history which influences later generations.
목차
Ⅰ. 머리말
Ⅱ. 『通典』 「州郡門」의 한국고대사 인식
Ⅲ. 『通典』 「邊防門」 東夷目의 한국고대사 인식
Ⅳ. 杜佑의 관념과 東夷 인식
Ⅴ.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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