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松隱 安昌濟의 西間島 亡命詩 硏究
이용수 234
- 영문명
- Study of Songeun An Chang-Je's poems of exile in West-Gando
- 발행기관
- 대동한문학회
- 저자명
- 이은영(Lee Eun young)
- 간행물 정보
-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第41輯, 495~525쪽, 전체 31쪽
- 주제분류
-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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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松隱 安昌濟는 꼿꼿한 문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자신의 형 守坡 安孝濟만큼이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갑오개혁 때 상소를 올렸다가 옥고를 치른 일이 있다. 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全國 13도 유생 대표로 을사오적을 斬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세 차례나 올린 일이 있다. 이렇듯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송은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고국에서 일제의 노예가 되어 그들과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술국치를 당하자마자 고구려의 옛 영토인 滿洲 西間島로 마음을 의탁하기 위해 망명을 떠났다. 이는 경술국치 후 3개월도 채 안 된 시점으로, 송은의 형 수파가 1911년에 망명을 떠났을 때보다 1년이나 앞선 것이다. 망명을 떠난 후 22년간 한 번도 고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그는 망명지에서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책을 읽고 손수 농사짓고 살면서 여유가 좀 생기면 자신의 감정을 詩로 술회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大韓獨立團에 참여하여 光復을 도모하는 등 항일투쟁에 힘쓰기도 하고, 全國儒敎聯盟 東三省學會 分會長을 역임하며 기울어가는 儒敎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망명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은 역할을 찾아서 활동하였다. 그러던 그는 1931년 7월 일제의 간계로 벌어진 萬寶山事件 이후 조선인을 일본인과 한통속이라고 여기던 중국인들에 의해 그해 8월 피살되었다. 이때 그의 부인과 아들 또한 함께 희생되었다. 그는 망명지에서 활약한 항일투쟁의 공로가 인정되어 현재 독립유공자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송은이 망명지에서 자신의 정서를 술회한 작품들이 그의 유고집인 『松隱遺稿』에 실려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 많은 작품이 전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그가 갑자기 妻子와 함께 희생되면서 그가 남긴 원고를 제대로 챙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고가 모두 전하지 않아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현재 전하는 작품만으로도 그가 망명을 떠난 동기나 그의 망명 정서 등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하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는다.
현재 『송은유고』에는 그가 대한제국의 멸망을 슬퍼하며 지은 시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의 멸망에 대해 언급한 시 말미에는 언제나 조국광복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송은의 망명시의 대표적 특징이자, 망명생활을 점철한 바탕이었다.
영문 초록
Songeun An Chang-Je(松隱 安昌濟, 1866∼1931) was as upright as his elder brother Supa An Hyo-Je whose name is well known for his honest personality as a vassal. He once served his term of imprisonment because of his opposition appeal for Gabo reformation. When Eulsaneukyak(乙巳勒約) is signed coercively, he recoursed three times on behalf of all the 13 provinces' Confucians of the whole country for putting five Eulsa traitors to the scaffold. Since he was an upright person in this way, when Gyeongsul Gukchi which is a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is matched, he could not live in his homeland with foes being their slave. That is why he left to West-Gando in Manchuria for asylum. It is before 3 months have passed which is 1 year before Supa left.
After leaving to asylum, never proceeding to his homeland for 22 years, he tidied up himself, read books, did farming everyday and reminisced his emotion writing poems while he did what he could do for fight against Japan like planning independence participating in Daehan independence group or trying to revival of declining Confucian.
In August of 1931, he was murdered by some Chinese who considered Korean as Japanese after Manboshan Incident is occurred in July 1931. At this time, his wife and son were murdered together. He is now acknowledged as an independence patriot.
Songeun's literatures revealing his emotions remain in his Posthumous book "SongeunYugo" but not that much works are in there. There was no time to get his works in order because he was murdered. Although all his works do not exist, remaning works are enougth to consider his motive to exile or emotion in life of exile.
In SongeunYugo, there are poems mourning the fall of Daehan Empire. But there are always strong expectation for independence in the end of the poems. This is the representative trait of Songeun's patriotic poems and the base of relating his life of exile.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생애와 서간도 망명
3. 망명의 정서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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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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