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정조대왕. 3
2013년 03월 29일 출간
국내도서 : 2007년 11월 2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6.49MB)
- ISBN 9791157740253
- 쪽수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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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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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어린 나이의 산(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갇혀 있는 뒤주를 찾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할아버지 영조가 금한 행동을 세손이 어기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게 되고, 그러한 아비의 죽음이 자식을 살리는 아이러니가 이산 앞에 놓인 운명을 암시한다.
파란만장한 정조대왕의 일생을 놓고 보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사도세자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끊임없이 성군의 자질을 시험받는가 하면, 외척의 모략과 암살 위협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그 가운데서도 왕조를 파국으로 몰아 간 파당정치를 해소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이루는가 하면, 부국강병으로 앞날을 도모하는 성군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정조대왕이다.
강목 사건
두 여인
숙적
능행에 드리워진 그림자
파란
돌아온 채제공
가슴에 새긴 이름, 남사초
전황의 문제
구리를 찾아서
왜선과 뱃길지도
예상치 못한 복병
돈 없는 돈 거래
잠시 호흡을 가눈 영조는 초헌례를 하기 위해 용작을 집어들었다. 용이 자루의 끝에 조각된 용작은 자루를 들고 작爵에 부으면 용두에 있는 용구龍口에서 울창이라는 술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제례용 긴 국자였다.
휘이익!
어느 찰나였을까. 용작을 든 영조의 옥수를 바람 한 줄기가 때리고 지나갔다. 그 순간, 겨울 제사에 쓰이는 잔인 황이黃彛로 향하던 용작이 후들거리는가 싶더니 울창이 잔 밖으로 비켜 부어졌다.
“전하……!”
산의 심장이 다시금 바닥을 쳤다. 산은 황급히 몇 발짝 나아갔다. 능에 도착하기 전보다 왕은 눈에 띄게 힘들어보였다.
“괜찮다…….”
영조는 힘겹게 손을 들어 산을 제지했다. 눈만 감으면 오래 전에 죽은 시체처럼 여겨질 정도로 핏기 하나 없는 용안이었다. 그 용안에서 식은땀이 빗물처럼 줄줄 흘렀다.
차마 재차 만류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마지못해 물러나는 산의 심장이 누군가 꽉 움켜쥔 것처럼 답답했다. 축축하게 땀이 번진 영조의 면복 겨드랑이와 후들후들 떨고 있는 옥수를 바라보는 산의 눈동자가 영조의 옥수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아…… 하아……. 걱정 마라……. 계속할 수…… 있다…….”
영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술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쨍그랑!
미끄러지듯 옥수에서 떨어진 술잔이 바닥에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영조가 썩은 고목처럼 푹 쓰러졌다.
“전하!”
무덤 속처럼 고요하던 신전에 신하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할바마마!!”
하얗게 질린 산은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가 쓰러진 영조를 안았다. 순간 산의 얼굴이 백짓장보다도 창백하게 변했다. 영조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어, 어의……! 어의는 어디 있느냐?”
- 106쪽
“저하…….”
송연은 가만히 산을 불렀다. 그러나 연일 지샌 날들로 피곤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산의 눈꺼풀은 열릴 줄 몰랐다.
“…….”
송연은 다시 산을 부를 엄두를 못낸 채 얼마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결에도 한기를 느끼는지 잔뜩 어깨를 옹송그리던 산이 양손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눈에 띄게 꺼칠해진 모습으로 추위를 타는 산이 송연은 가슴 저리게 안쓰러웠다. 개유와의 방구들은 서빙고의 얼음처럼 차가웠다. 세손이 있어 서고임에도 불을 넣기야 하겠지만, 밤새 식은 구들이 덥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저하, 이런 것밖에 없어 송구해요…….”
무릎걸음으로 산에게 간 송연은 앞가리개를 풀어 그의 지친 어깨와 가슴에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그 손길에도 산은 몸을 살짝 뒤척였을 뿐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산에게서 송연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파리한 안색조차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가인이었다. 어느 곳 하나 버릴 데 없이 소중한 가인을 송연은 빨아들일 듯 보았다. 그의 눈, 코, 입, 긴 손가락까지 송연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고 싶었다.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정인이었고, 그 정인에게로 향하는 절절한 연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연모의 애달픈 감정이 일렁이는 송연의 시선이 앞가리개 밖으로 뻗어 있는 산의 손가락에 가 닿았다. 한 번만이라도 저 손을 잡아볼 수 있다면……. 동무로서가 아니라 정인으로 그리 할 수 있다면…….
송연의 떨리는 손이 저도 모르게 산의 손가락을 향해 뻗어나갔다. 흡사 만지면 부서지는 모래인형이라도 되는 듯 송연은 산의 손가락에 살짝 제 손을 대었다가 급히 떼었다. 찰나의 마찰이었는데도 송연의 온 신경이 파다닥 일어서며 찌릿한 전기가 통했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아…….”
송연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심장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신음을 쏟았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욕심이 솟구쳤다. 이 사람의 저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입술과 미려한 뺨도 만져보고 싶었다.
더는 안 된다. 함부로 이 못된 손을 대었다가 저하가 깨기라도 하면 그땐 어쩌려고…… 저하께 내 마음을 들키는 날에는…….
송연은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그러나…….
이런 날이 또 언제 올지 몰랐다.
▶ 한류 드라마의 바람을 몰고 온 이병훈 스타일
사극의 대가 이병훈 PD는 사극 전문 작가들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핏 보면 비합리적인 듯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극 전문 작가로는 기존 사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기존 사극을 뛰어넘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이병훈 PD가 연출한 드라마 〈허준〉 〈상도〉에 이어 한류 드라마의 원조 〈대장금〉이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이후 ‘퓨전 사극’은 유행처럼 번졌다. 역사적 사실(팩트)을 새롭게 해석(픽션)한 팩션이 퓨전 사극의 모체라면 사극 전문 작가들보다는 새로운 성격의 작가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병훈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허준〉 〈상도〉의 최완규 작가에 이어 〈이산〉의 대본 집필을 책임지고 있는 김이영 작가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보인 바 있다. 작가가 〈이산〉에서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병훈 스타일에 대한 무한한 신뢰 때문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영조로 열연하는 이순재 선생은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히 이병훈 감독과 작가에게 큰 믿음이 간다. 반드시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다.”
▶ 〈대장금〉의 아기자기함과 〈주몽〉의 스케일
〈이산〉은 드라마로 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초기 단계부터 기획을 함께한 이병훈 PD와 최완규 작가, 그리고 김이영 작가라는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한류 드라마 바람을 몰고 온 〈대장금〉의 이병훈 PD,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 작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로 새로운 감각을 선보인 김이영 작가!
이들이 모여 무슨 일을 벌일지 기대를 모은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허준〉에서는 의술을, 〈대장금〉에서는 음식을 숨은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는 이병훈 PD가 정조대왕 〈이산〉에서는 과연 어떤 아이템을 숨은 주인공으로 등장시킬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수백 가지 아이템 가운데서 이들이 고르고 고른 것이 바로 정조대왕 ‘이산’이다. 그리고 드라마 〈이산〉의 숨은 주인공은 ‘그림’이다. 이산의 운명적 사랑 성송연이 도화서 출신 다모로 설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영?정조 시대, 국가 행사는 물론 다양한 장비의 설계도까지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도화서는 ‘수원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기관이다.
아기자기한 내용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면서 여성스러운 감각을 자랑하는 이병훈 PD와 스케일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완규 작가, 그리고 이를 능히 소화해낼 것으로 배우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김이영 작가라는 조합은 ‘퓨전 사극의 인큐베이터’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 그려낼 수 없는 세계까지 그려낸 소설
‘퓨전 사극의 인큐베이터’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은 조합에 소설가 류은경이 합세하며 그 힘을 응축해 놓은 것이 바로 소설 〈이산 정조대왕〉이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며 기대를 받고 있는 신예 소설가 류은경의 등단작 〈가위〉는 빠른 전개와 정밀한 묘사라는 양날의 칼이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독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 여운을 남긴 역작이다.
소설 〈이산 정조대왕〉에서도 그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된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가다 문득 바늘 끝에 찔린 듯 아려 오는 심금을 견디어낼 독자들이 얼마나 될까. 정밀한 묘사를 넘나들 듯 빠른 전개가 양날의 칼을 휘두르며 목을 조여 올 때 눈물을 참아낼 독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소설 〈이산 정조대왕〉은 10분마다 한 번씩 독자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매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드라마 〈이산〉은 이렇듯 〈이산 정조대왕〉으로 글자 한 자 한 자가 새롭게 태어났다. 도화서의 성송연이 그림을 그려 이산을 도왔다면 소설가 류은경은 글자로 그림을 그리듯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한 작품’을 만들겠다던 이병훈 PD의 드라마 〈이산〉이 숨은 주인공으로 ‘그림’을 선택했다면 소설 〈이산 정조대왕〉은 드라마가 그려낼 수 없는 세계까지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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