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정조대왕. 2
2013년 03월 29일 출간
국내도서 : 2007년 10월 15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6.46MB)
- ISBN 9791157740246
- 쪽수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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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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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어린 나이의 산(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갇혀 있는 뒤주를 찾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할아버지 영조가 금한 행동을 세손이 어기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게 되고, 그러한 아비의 죽음이 자식을 살리는 아이러니가 이산 앞에 놓인 운명을 암시한다.
파란만장한 정조대왕의 일생을 놓고 보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사도세자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끊임없이 성군의 자질을 시험받는가 하면, 외척의 모략과 암살 위협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그 가운데서도 왕조를 파국으로 몰아 간 파당정치를 해소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이루는가 하면, 부국강병으로 앞날을 도모하는 성군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정조대왕이다.
도화서
주검이 남긴 단서
폭풍 전야
재회, 그 가슴 시린 순간
정후겸
백색 안료 호분
한밤중의 난투극
몰아치는 검은 바람
무사 조직 박초
의궤의 진실
역풍
“동궁은 고개를 들어 대신들의 얼굴을 보라.”
대전으로 들라는 영조의 명을 받은 산이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느닷없는 영조의 하명이 산은 당혹스러웠다.
“뭣 하는 게냐? 어서!”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영조의 목소리는 범의 울음소리보다도 쩌렁쩌렁했다.
“…….”
산은 대신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어떠냐? 저들의 생각을 알겠느냐?”
영조의 질문은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송구하오나 전하, 무슨 말씀이시온지…….”
산이 말끝을 흐리자 영조는 용안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아직 멀었구나. 네가 장차 어좌에 앉으려면 저들의 얼굴만 보고도 속내를 읽을 수 있어야 해.”
“…….”
“좋다. 허면 이번엔 내가 알려주마. 저들은 모두 네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영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
산의 낯빛이 용포의 흑색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주먹을 꾹 움켜쥔 산은 무너져 내리려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늘한 눈으로 대신들을 보았다. 산의 도전적인 눈빛에 대신들이 슬슬 시선을 피하며 술렁거렸다.
그때였다.
“망극하오나, 전하! 소신들은 그런 불손한 생각을 품은 적이 없사옵니다.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오소서!”
잠자코 영조의 기색을 살피던 최석주는 소리를 높이며 부복했다.
“통촉하여 주시오소서!”
대신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들을 차갑게 외면한 영조는 산에게 다시 물었다.
“저들의 생각을 알려줬으니 저들의 생각에 답을 주거라. 정녕 네가 미쳤더냐?”
담담히 묻기는 했으나 영조의 속은 그리 편치 않았다. 죽은 사도세자가 광증을 처음으로 보인 것이 지금 세손의 나이인 20살 무렵이었다. 대신들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궐 내에 전염병처럼 떠도는 흉흉한 소문을 짐짓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조는 대신들의 눈썹 움직임 하나로도 그 소문을 소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해보아라. 너도 네 아비처럼 미쳤느냐?”
미친 자가 자신이 미쳤다고 말할 리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조는 산에게 물었다. 영조는 믿고 싶었다. 세손만큼은 절대 제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의 상황이 자꾸만 영조의 믿음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산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래, 좋다. 허면, 동궁은 네 정신이 온전함을 저들에게 보여 주거라. 나는 이달에 있을 청국 사신단의 접견을 너에게 일임토록 할 것이다.”
- 34쪽
“이번 일에는 무엇보다 도화서의 공이 컸네. 그래서 자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이렇게 왔네.”
“황공하옵니다, 저하. 제게 과분한 말씀을…….”
“아닐세. 자네의 공이네. 자네가 호분을 들고 오지 않았더라면 해결할 수 없었을 거네. 내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야.”
“송구하오나 저하, 호분으로 황저포를 염색하려 한 것은 소신의 생각이 아니옵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그런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인가?”
“실은, 일전에 저를 도와 그림을 그렸던 그 다모 아이가 일러준 것입니다.”
박영문은 새벽 도화서에서 송연을 만났던 이야기를 아뢰었다.
“그래, 그렇게 된 것이로군. 어린 다모 아이가 재주가 많은 모양이네. 일전에 연회에서 그린 그림도 필묵이 섬세하고 기세가 있었어.”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참, 그때 그 아이가 내가 낸 화제를 따라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저하.”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 혹, 지금 볼 수 있겠는가?”
“예, 한 번 찾아보겠사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한쪽에 있는 책상으로 간 박영문은 서랍을 열고 송연의 그림을 꺼내왔다.
“이것이옵니다, 저하.”
박영문은 산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
그림을 받아들던 산의 손이 흠칫했다. 어린 소년이 무명 저고리를 입은 어린 소녀의 팔에 선추를 묶어주는 그림이었다.
“……이게 정말 그 다모 아이가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림을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예, 저하.”
선추의 옥장식이 선명한 그림을 든 산의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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