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명
- Ideological Reflections on the Discourse Surrounding the Performance of the Sajik Kikoje Ritual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 저자명
- 이상(Sang LEE)
- 간행물 정보
- 『태동고전연구』제54집, 211~239쪽, 전체 29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5.06.30

국문 초록
본 글은 숙종대 기곡의례의 재설정 과정에서 나타난 사직기곡제 설행 논의를 사상적인 맥락에서 분석한 글이다. 17세기 후반 조선은 극심한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고, 숙종대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두된 것이 바로 새로운 기곡 의례의 재설정이었다. 기곡 의례 재설정 과정에서 남인 세력은 국속에 기반한 친경례와 선농제를 통해 기곡의 의미를 구현하려 했다. 허목은 고례와 한나라 때의 고사를 들면서 친경례와 선농제 실시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보강하기 위하여 조선에서도 이 고사를 받들어 시행한 적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지는 기곡 의례를 경전적 근거를 두고 재설정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서인 세력은 경전적 근거를 통해 기곡의례를 재설정하고자 했고 그를 위해 주장된 것이 바로 사직기곡제이다. 김수흥, 송시열, 민정중 등은 비록 기곡제가 천자의 의례이지만 그 이면의 의도에 의하면 제후국도 기곡에 대한 의례를 실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의례 자체와 의도를 분리하여 보았다. 숙종 9년 사직에서 기곡제가 섭행과 21년 친행은 이러한 논리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러한 논의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의례관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후국으로서의 형식보다 행례의 의도를 중시하며 기존 계급적 의례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서인 세력은 경전적 근거를 통해 사직기곡제를 정당화하고, 조선의 유교 질서를 능동적으로 재구축하려 했다. 이는 조선이 유교 문명 질서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자율적 주체임을 천명한 시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숙종 후반 대보단 설치 등과 연계해 볼 때, 조선이 청 중심의 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 의례 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즉, 조선이 제후국에 머물지 않고 유교 문명 주체로서 정당성과 주체성을 모색한 정치·의례적 실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ideological context surrounding the performance of the Sajik Kikoje(社稷祈穀祭) ritual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in late seventeenth-century Joseon. Amid prolonged famine and natural disasters, the state sought to restore agricultural rites. The Namin faction emphasized chingyeong and seonnong rituals based on historical precedents and native customs but lacked textual justification. In contrast, the Seoin faction—including Kim Su-hung and Song Si-yeol—argued that although Kikokje was an imperial rite, it could be adapted by a vassal state if the intent was emphasized. They cited the Zhouli to justify performing the ritual at Sajik in 1683 and 1695. This shift from form to intent reflects a broader effort to reinterpret Confucian ritual hierarchies. The debates reveal Joseon’s emerging desire to move beyond passive acceptance of Qing-centered order by asserting its own ritual autonomy. The Sajik Kikokje thus marked not only a response to crisis but also a political and ideological assertion of Joseon’s Confucian agency.
목차
1. 머리말
2. 숙종 9년, 기곡의례 재설정 논의와 그 영향
3. 사직기곡제 설행론에 대한 사상적 분석
4. 맺음말
참고문헌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최근 이용한 논문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