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명
- 발행기관
- 한국전략문제연구소
- 저자명
- 박명림
- 간행물 정보
- 『전략연구』통권 제20호, 208~240쪽, 전체 33쪽
- 주제분류
- 사회과학 > 정치외교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0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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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38 선 전선으로부터 서울의 육군본부, 그리고 이숭만ㆍ정부ㆍ국회ㆍ유엔 한국위원 단 및 미국대사관을 거쳐 동경과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다충 편제는 모스크바-북경-평양으로부터 발원하여 38선 전선으로 이어진 잘 짜여진 다층 공격메카니즘 못지 않게 신속히 대웅 메차니즘을 갖추어갔다. 공격진영의 편제에 대한 대응을 위한 수비진영의 편제구성은 놀랄만치 유사한 것이었다. 공격을 받은 그날 24시간 이내에 이미 서울-동경-워싱턴으로 이어지는 수비편대는 공격진영에 맞게끔 짜여지고 돌아갔다. 세계사에 서 이러한 양대 편대구성은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팽팽했던 긴장만큼이나 서로의 수읽기와 공수대웅 은 신속하였다. 냉전의 아슬아슬한 긴장이 한 지역에서 폭발 하자 이는 폭발의 순간 곧 국제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38선을 사이에 둔 전선의 군사 대결, 국내 수준의 서울 대 평양, 동아시아 수준의 동정 대 북경, 그리고 세계 수준의 워싱턴 대 모스크바, 냉전 시대 동안 역사적으로 이렇게 잘 짜 여진 공수 조합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워싱턴으로 부터 38선 남선(南線)까지의 편대와 모스크바로부터 38선 북선 (北線) 까지의 편대, 이 국제적 힘의 배열과 위계의 구성은 어떤 양태를 보이며, 어떤 전략과 정책으로 냉전 시대 초유의 이 사태를 주조해 갈 것인가 ? 1945 년 종전 이후 서로의 합의된 경계선을 누구든지 간에 명백한 군사행동을 통하여 넘은 이 최초의 사건에 대한 공수 양진영의 대용과 공방은 이 이후 오랜 시간을 두고 세계와 한국 현대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분명하였다. 우리는 왜 38 선을 터트리는 문제가 그토록 결정이 쉽지않은 문제였고, 단 순히 한반도 통일을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이 선의 터진 이후에 비 로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터진 이후의 사태를 보니 우리는 비로소 6월 25일 이전 38선에서 살을 에는 긴장이 지속되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선은 바로 세계양대 진영의 모든 힘들을 빨아들이는 인계철선이었고, 강대국들에게는 자신들과 상대방 의 의지와 역량과 전략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냉전 초기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것이다. 이숭만은 38선이 세계의 인계철선이자 리트머스 시험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6월 25일 새벽 사태의 시작과 함께 이 전쟁을 그곳으로 몰아갔고, 김일성은 6월 25 일 직전까지도 그렇지 않다고 믿으려 했다. 1945 년 8월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을 통해 둥장한 ‘한반도 군사분계선’이 5년의 동아시아 냉전의 전개와 맞물리면서 무시무시한 ‘세계냉전의 분계선’으로 변모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38선을 넘은 북한의 어린 병사들은 민족의 분단선과 세계냉전의 분계선을 동시에 타파하려는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전 자를 확실하게 알았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후자는 알고 있지 못했다. 아마도 그 들과 그 지도자들이 후자의 자기 아이벤티티를 알았다면 이 전쟁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그들의 지도자들조차 후자의 의미를 애써 모른 척 하려 했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무시하려 했다.
영문 초록
목차
초록
Ⅰ. 공격과 남진
Ⅱ. 미군참전, 그리고‘세계전쟁’으로의 전이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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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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