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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7: 조선 왕비 시해되다

김용삼 지음
백년동안

2023년 12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1월 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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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9.77MB)
ISBN 979119839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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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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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의 일본 완승 → 고종의 대러시아 접근 → 춘생문 사건
→ 조선 왕비 시해 → 아관파천 → 김홍집 총리 살해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일곱 번째 책이다. 이번 책은 청일전쟁이 마무리되고 조선 내부적으로 일본이 등을 떠민 갑오개혁이 진행되는 시기부터 일본의 민 왕후 시해와 그에 따른 고종의 아관파천까지의 이야기다. 청일전쟁은 늙은 대국 청나라의 허약함을 드러내며 일방적으로 끝났고, 일본은 이제 청이라는 배후의 존재를 떨어버린 조선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한다. 그들은 친일 관료들을 이용해 국왕을 제끼고 자기네 입맛에 맞는 조선의 내정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권을 빼앗긴 고종과 민 왕후는 러시아에 접근해 일본을 배제하려 하고, 이를 용인할 수 없었던 일본은 남의 나라 왕비를 궁궐로 쳐들어가 살해한다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인다. 그들의 엄청난 음모는 무기력한 조선을 상대로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굴욕을 당한 고종은 자기 나라 안에서 다른 나라 공사관으로 망명한다는 역시 기상천외한 반격으로 맞선다.
프롤로그

제1장 제2차 갑오개혁 추진되다
제2장 일본, ‘조선의 이집트화’ 추진
제3장 청일전쟁의 피날레, 웨이하이웨이 전투
제4장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제5장 삼국간섭의 국제정치학
제6장 패전으로 거덜 난 청나라
제7장 또다시 러시아와 손잡은 조선
제8장 미우라 공사, 서울에 오다
제9장 작전명 ‘여우 사냥’
제10장 왕비 시해 그 후
제11장 단발령에 저항, 의병 봉기
제12장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

연표
참고문헌

조선 정부의 모든 정책은 일본인 고문관의 사전 검열을 받은 후 시행됐다. 국가 기밀 사안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 정부 곳곳에 배치한 일본인 고문관을 통해 조선 행정 기관의 속사정과 국가 기밀까지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했다. 이를 통해 일본에 불리한 정책이나 반일적 동향을 파악해 예방할 수 있었다. (66쪽)

조선 정부의 내정에 간섭하고, 기밀 서류 빼돌리며 꼬박꼬박 고액 월급을 챙겨 가는 고문관들이 점점 늘어 급기야 ‘고문정치 시대’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친일 성향의 개화 정권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연립 내각의 대표적인 친일 개화파인 박영효는 “조선 정부는 일본의 간섭을 받고, 그 고문관은 각 부에 가득 차 있으며, 일본인들은 무슨 일에나 파고든다. 조선은 어떻게 자립할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68~9쪽)

리훙장 암살 미수 사건은 1891년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공격당한 오쓰 사건을 연상시켰다. 이 무렵 육군상으로 복귀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리훙장 저격 소식을 듣는 순간 책상을 치면서 “이자가 국가 대사를 생각지도 않고 일을 저질렀다”라고 분노했다. 저격범의 범행은 “상대국 외교 사절은 살해하지 않는다”라는 국제적 외교 관례를 위반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전승 열기에 들떠 있던 일본 사회는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113쪽)

일본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요구한 진정한 목표는 중국과 조선 간에 얽혀 있는 주종 관계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그 후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를 통해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중국을 퇴출시킨 후 조선을 보호국화하기 위한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빗장을 연 셈이다. (121쪽)

일본은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거액의 종잣돈을 배상금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894년 말부터 1903년 말까지 일본에서 각종 회사 창업 붐이 일었다. 이 기간 기업 숫자는 3,067개에서 9,247개로, 기업의 자본 총액은 2억 5,543만 엔에서 8억 8,760만 엔으로 9년간 세 배가 늘었다. 연간 세수의 네 배나 되는 막대한 배상금은 군비 확장과 산업혁명의 에너지원이 되었고, 일본이 금본위제로 나가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124쪽)

일·청 양국 대표가 시모노세키강화조약에 서명한 4월 17일, 러·프·독 삼국은 “일본이 세 나라의 ‘우호적 조언’을 수용하지 않으면 삼국 공동으로 군사 행동에 돌입하며, 중국 대륙에 파견된 일본군과 일본 본토 간의 해상 수송로를 차단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군을 고사시킨다”라는 내용에 합의했다. 삼국간섭이 완성된 것이다. (145쪽)

일본은 본토 수비 병력까지 쥐어짜 내 즈리 결전과 펑후제도 점령에 투입하는 바람에 본토는 무인지경이었다. 삼국 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 본국과 중국 대륙에 진출해 있는 원정군 사이의 해상 수송로가 차단되면 일본군 전체가 적진에 고립될 위험이 있었다. (146쪽)

삼국간섭은 만주와 조선을 둘러싼 러-일 대립의 출발점이었다. 그전까지 동아시아에 대한 자국의 정책 표출을 삼갔던 러시아가 일본의 랴오둥반도 할양 사태를 맞아 프랑스·독일과 손잡고 직접 개입함으로써 자국의 핵심적 이권 영역을 명백히 드러냈다. 조선 입장에선 청일전쟁 이전까지 세력 균형을 형성했던 중국의 빈자리를 러시아가 메우도록 만든 결정적 촉매제였다. (183쪽)

고종과 민 왕후는 러시아야말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제어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나라, 게다가 조선을 침략할 뜻이 없는 친절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그 결과 러시아와의 결속이 자신들의 왕권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189쪽)

일본 정부는 5월 31일, 이노우에 공사에게 귀국을 지시했다. 귀국 인사를 위해 고종과 민 왕후를 알현한 이노우에는 박영효가 위험인물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6월 7일 이노우에가 쫓기듯 귀국하는 모습을 본 고종과 민 왕후는 삼국간섭의 위력에 놀란 이노우에가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인하고 사임하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197쪽)

조선 보호국화 정책의 주인공은 이노우에 가오루였다. 그의 구상이 물거품이 됐으니 일본 정계의 거물이 조선 공사로 근무해야 할 명분이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1895년 8월 17일, 이노우에 공사의 해임 및 귀국을 결정했다. 격랑이 일고 있는 중대한 시기에 주한 공사 교체를 결정한 것은 일본의 고질병 중의 하나인 외교 라인과 군부의 대립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214쪽)

일본은 다양한 정보 라인을 통해 러시아를 조선에 끌어들여 상황을 꼬이게 만든 주인공은 민 왕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이제 조선과 러시아의 연결 고리인 민 왕후를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이처럼 긴박한 시기에 주한 공사를 맡게 된 미우라는 자신이 조선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는 눈 감고도 이해할 줄 아는 사나이였다. (221쪽)

미우라가 마주한 서울 상황은 친러파의 권력 장악과 기부금 300만 엔을 통한 왕실 매수 실패 등의 여파로 최악의 국면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서울에 온 시바 시로, 다케다 한시, 쓰키나리 히카루 등 세 명의 ‘조선 문제 전문가’를 통해 서울의 낭인 그룹과 연결됐다. 미우라 공사의 정치고문을 맡게 된 시바 시로는 미국 유학 인연을 동원해 외교고문 르장드르와 교제했다. 또 조선에서 활동하는 낭인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225쪽)

이때 미우라는 아다치 사장에게 술을 권하면서 “아무래도 한번은 ‘여우 사냥’을 해야 할 것 같다. 자네 밑에 젊은 녀석들이 몇 명이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순간 아다치는 머릿속에 섬광 같이 번쩍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다치는 “신문 경영을 위해 데려온 자들이라 대체로 얌전한 자들밖에 없다. 힘깨나 쓰는 녀석들이 필요하다면 암호 전보 한 통으로 고향에서 필요한 애들을 언제든 부를 수 있다”라고 답했다. 미우라는 “그럴 필요는 없다. 이것은 절대 비밀”이라고 말했다. (228쪽)

미우라 공사는 9월 17일, 대본영의 가와카미 소로쿠 육군참모차장에게 “동학군 잔당 소탕 목적”으로 경성수비대 지휘권을 조선 공사에게 일임해 줄 것과, 그 취지를 외상을 거쳐 자기에게 알려달라는 전문을 보냈다. 일본 외상의 지휘 감독을 받는 주한 공사가 외상을 무시하고 대본영 앞으로 현역 군부대 지휘권을 요구하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자 사이온지 외상 대리는 격노했다. (238쪽)

미우라의 최초 계획은 조선인을 앞세워 왕후를 시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인 자객들은 시해 대상이 왕비라는 사실을 알면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본 낭인을 이용하기로 했다. 낭인을 동원한 것은 이들이 민간인이어서 혹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일본 정부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하는 안전 조치였다. 미우라는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에게 휘하 낭인을 동원해 ‘여우 사냥’의 전위를 맡아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240~1쪽)

“훈련대를 조종하고 왕비의 정적인 대원군을 앞세워 궁중의 간신을 제거하고 국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적개심에 불타는 훈련대가 경복궁에 난입해 왕비를 시해하고 반러·친일 정권을 수립한다. 이때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국왕을 압박해 전신선 확보와 일본군 주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왕비 살해는 조선인 병사들이 담당하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 조선에서 활동하는 일본 낭인들이 시행한다.” (243쪽)

10월 7일 밤, 조선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과 일본군 교관들은 야간 훈련을 명분으로 1개 소대만을 남기고 병사들에게 실탄을 휴대시켜 출동했다. 야간 훈련은 일본 교관의 지휘에 따라 군부의 앞 또는 추성문 앞, 동소문 밖, 훈련원 등에서 실시된 적이 있었다. 훈련을 위해 부대가 출동하려면 직속상관인 홍계훈 연대장에게 보고해야 했으나 우범선은 이를 무시했다. (255쪽)

낭인들은 오카모토의 지휘 아래 일본도를 빼 들고 방마다 들쑤시고 다니면서 왕비를 찾으려 혈안이 됐다. 낭인 중 왕비의 용모를 식별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낭인들은 문을 비틀어 열고 난입해,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여성을 붙잡아 왕비라고 생각되는 여성 세 명을 살육했다. 살해한 여성의 사체와 체포한 여성들의 얼굴을 조사했는데, 나이가 젊어 사전에 설명 들었던 왕비의 나이와는 맞지 않았다. (265쪽)

낭인들은 무단 침입을 꾸짖는 고종을 강제로 주저앉혔으며, 이 과정에서 국왕의 옷이 찢어졌다. 낭인 중 한 명은 고종의 어깨를 잡아끌고 다녔고, 옆방에서 권총을 발사하는 자도 있었다. 왕세자도 다른 방에서 머리채를 휘둘리는 통에 관이 벗겨지고 칼등으로 목덜미를 얻어맞아 기절했다. 곧 의식을 회복한 왕세자는 고종에게 달려갔다. 낭인들은 세자빈에게 칼을 겨누고 왕후가 있는 곳을 대라고 협박했다. (267쪽)

관련 사료를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곤녕합에 난입한 미야모토 소위, 특무조장 마키, 낭인 나카무라가 궁녀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민 왕후를 발견했다. 그들은 왕후를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친 다음 가슴을 발로 세 번 짓밟은 후 미야모토 소위가 칼로 찔러 시해했는데, 이때 나카무라는 미야모토의 칼에 의해 오른손에 상처를 입었다. 이어 나카무라가 두 번째로 시해했다. (272쪽)

일본이 조선의 단발령과 복제 개정에 직접 개입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에비슨 선교사는 조선인의 상투에는 전통문화 의식과 민족 정체성이 결집돼 있으므로 이것을 자르면 정신도 없앨 수 있어 원활한 지배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일본산 면제품의 판로 확대라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방적업이 크게 발달한 일본은 조선을 자국 상품 판매 시장으로 확보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청일전쟁을 통해 일본은 중국 상인을 퇴출시키고 조선에서 면제품 시장을 확보했다. 이런 점에서 청일전쟁은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328쪽)

2월 11일 새벽 기온이 급강하해 강추위가 엄습했다. 오전 6시경 엄 상궁이 미리 준비한 궁녀 복장으로 갈아입은 고종과 세자가 커튼이 두껍게 쳐진 궁녀 가마에 올랐다. 한 대에는 박 상궁과 고종이, 다른 가마에는 궁녀와 왕세자가 탔다. 여성이 탄 가마는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조선의 관습이었다. 덕분에 이날 이른 아침, 궁궐 파수병들은 궁녀 가마를 검문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346쪽)

국왕이 사전에 어떤 메시지도 없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대신들은 경복궁의 내각 사무실에 모여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어명을 받은 병사들이 들이닥쳐 김홍집을 체포해 갔고, 경무청 순검들이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를 자택에서 체포해 경무청으로 구인했다. 고종은 경무청 밖에서 두 사람의 목을 치라고 어명을 내렸다. 순사들은 김홍집과 정병하를 발로 차서 쓰러뜨린 후 총검으로 난자하고 가슴과 등을 칼로 내리쳐 죽였다. (349~50쪽)

조선은 일본이라는 맹수의 아가리 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누가 더 근대적 전쟁술을 잘 도입했느냐의 대결이었던 청일전쟁은 일본의 완승으로 끝났다. 청은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덩칫값도 하지 못하고 꼬마에게 무릎을 꿇었다. 거한을 무릎꿇린 꼬마는 기고만장했다. 청에게 막대한 배상금과 여기저기 영토롤 잘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청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기네의 이해관계를 위협받은 러시아 등 세 열강이 나섰다. 랴오둥반도 할양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투력을 총동원해 해외로 출진시킨 일본은 세 열강이 군사력을 동원하면 자국이 무사하지 못할 상황이라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랴오둥반도를 포기하는 대신 만만한 청나라에게서 배상금을 추가로 뜯어내고 마무리했다.
일본이 당초 전쟁을 벌인 이유는 배상금이나 할양받은 영토가 아니었다. 조선을 손아귀에 넣는 것이었다. 이제 청과의 관계를 끊은 ‘독립국’ 조선은 그들의 ‘밥’이었다. 당초에는 영국이 이집트에 했던 것을 모델로 해서 조선을 자기네 ‘보호국’으로 만들려 했다. 친일 내각을 구성하고 그들을 통해 조선 내정 개혁을 추진하면서 일본인 고문들을 대거 임용케 해서 실권을 장악했다. 왕은 국정에서 배제하고 친일 내각에 형식상의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모든 국정은 조선 대신 수준의 봉급을 받는 일본인 고문관들을 거쳐야 했다. 고문관들이 사실상 대신이었던 셈이다.
허수아비가 된 고종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삼국간섭으로 일본에게 랴오둥반도를 토해 내게 했던 러시아에 접근했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몰아내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고자 했다. 러시아도 베베르 주조선 공사를 통해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을 둘러싼 상황은 일본에게 점차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주조선 공사를 교체했다. 이노우에 대신 미우라 고로였다. 미우라는 외교 경험이 없는 군 장성 출신이었다. 일본 국내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반응이 나왔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 ‘무언가’는 미우라가 조선에 부임하고 불과 한 달여 만에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미우라는 조선에 부임하면서, 배후에서 일본의 국책을 돕는 잡다한 궂은일을 하는 ‘낭인’들을 보좌관 격으로 데려왔다. 조선에는 이미 다른 경로로 들어와 「한성신보」 같은 곳을 거점으로 움직이고 있는 다른 낭인들도 있었다. 미우라는 외교관 신분이었지만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지휘권을 인수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이들 낭인 세력을 동원할 준비를 했다.
그가 준비한 것은 정상적인 정신상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의 나라 궁궐에 쳐들어가서 그 안주인을 죽인다는 것이었다. 고종과 민 왕후가 노골적으로 러시아 쪽에 밀착해 일본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예 무식한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이 서울에 주둔해 있고 조선 군대도 그들 손아귀에 잡혀 있는 상태여서,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현실이 됐다.
일본은 일본군과 낭인들, 일본에 붙은 조선군을 동원하고 대원군을 억지로 앞장세워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조선의 경비 병력은 간단하게 제압됐다. 일인들은 왕비의 침전까지 쳐들어가 왕비를 끌어내 무참하게 살해했다. 전쟁 상황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평시에 일어난 것이다. 조선은 꼼짝없이 이런 일을 당할 만큼 무력했다.
다시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꾸려졌다. 고종은 다시 허수아비로 돌아갔다. 고종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했고, 고종을 탈출시키려던 춘생문 사건은 실패했다. 이후 고종은 슈페예르 러시아 공사를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의 탈출을 타진했고,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다. 왕비가 시해되고 일본 주도의 정국으로 돌아간 지 석 달 만이었다. 친일 내각을 이끌던 김홍집은 아무런 절차 없이 고종의 명령 한마디로 잡혀와 살해당했다.
이 시기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이 다른 열강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엎치락뒤치락하며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잇달아 만들어낸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은 일본이라는 맹수의 아가리 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용삼

조선일보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다.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 특종 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상 수상, 2015년 저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공동수상했다. 현재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이승만학당 교사로 있다.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과 망국까지의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포개 읽으면서, 올바른 미래를 위해 과거사를 바로 보려는 기획이다.
주요 저서로는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북앤피플), 『이승만의 네이션빌딩』(북앤피플),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백년동안), 『박정희 혁명(1·2)』(지우출판), 『박정희의 옆얼굴』(기파랑),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 『김일성 신화의 진실』(북앤피플), 『김일성 진실을 말하다』(미래H), 『대구 10월 폭동/제주 4·3사건/여·순 반란사건』(백년동안), 『황교안 2017』(민초커뮤니케이션).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백년동안),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1~6(백년동안) 등이 있다.
공저로는 『반일 종족주의』(미래H), 『이승만 깨기』(백년동안), 『시간을 달리는 남자』(백년동안), 『박정희 바로 보기』(기파랑), 『박정희 새로 보기』(기파랑),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기파랑), 『대한민국 건국 이야기 1948』(기파랑), 『쉽게 풀어쓴 청일전기』(북앤피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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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7: 조선 왕비 시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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