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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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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08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8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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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5.32MB)
ISBN 97889324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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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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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일랜드에서 시인으로 명성을 쌓아 가던 데리언 니 그리파가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 『목구멍 속의 유령』은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글은 시인이자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작가 자신에 관한 에세이이자 200여 년 전에 단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진 여성 시인 아일린 더브에 관한 전기이다. 그리고 이 두 줄기는 서로 얽히면서 기묘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17세기 말에 죽은 남편의 피를 손바닥에 받아 마신 뒤 전설적인 시를 구술한 여성이 있다. 그리고 21세기 초에 (자신의 결정으로) 아이를 넷 낳고 가사 노동에 전념하며 스스로를 지워 가기를 택했던 여성이 있다. 한 편의 시가 이 둘을 연결하고, 그 연결에서 계시와 같은 예감을 얻은 오늘의 여성이 이 글을 썼다. 이 책이 때로 자전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 계시의 열망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에게는 진실일 수밖에 없는 시적 비전vision이 현실을 수시로 물들이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감각과 판단의 왜곡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에세이는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 에세이라는 장르의 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숙명에 처하게 된다.

어떤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는 구성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지만, 시인이 쓴 『목구멍 속의 유령』은 그 깨달음을 보다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안겨 주는 감동은 명쾌하기보다는 마치 어떤 징조처럼 뇌리를 맴돈다. 시의 형태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깨달음은 확고한 형태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알게 된 것’과 ‘느낀 것’, ‘깨달은 것’은 무성히 피어난 덤불처럼 서로 뒤얽혀 있다. 시와 문학을 향한 열망이 여성의 몸과 출산에 관한 집요한 관찰과 뒤섞인다. 즉, 이 작품 속에서는 한 시인이 지금까지 열망해 왔던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다. 여기서 삶과 시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여성의 텍스트
액체로 된 메아리
다른 숨 쉴 곳을 찾아
유축실에서
비과학적인 뒤죽박죽
해부실
차가운 입술을 차가운 입술에
지하 감옥
진흙 속의 피
제각기 흐릿해진 두 개의 길
방울. 방울.
전조-비행기와 찌르레기
표면을 갈라지게 하는 것
지금, 그때
일련의 그림자들
야생 벌들과 벌들의 부글거리는 호기심
흐릿해진 가시금작화

부록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
the keen for art ó laoghaire
caoineadh airt uí laoghaire
감사의 말
참고 도서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다른 누군가의 옷을 개는 동안에 쓰였다. 내 심장이 이것을 단단히 품으면, 이것은 내 두 손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수없이 수행하는 동안 부드럽게, 천천히 자라난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죄책감과 욕망에서 태어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에 꿰매진 텍스트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존재하는 것조차 작은 기적인 텍스트다. 이것이 활자라는 평범한 경이를 만나 또 다른 의식까지 들어 올려진 지금 이 순간처럼.
-10쪽

만약 하루하루가 글자들로 가득한 페이지라면 나는 거기 적힌 글자들을 문질러 닦으며 내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 속에서 내 노동은 내 존재를 지우는 행위가 된다.
-47쪽

나는 내가 아일린 더브의 작품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 내가 좋아하는 그 요소는 텍스트 너머에서, 연과 연 사이의 공백에서, 번역할 수 없는 곳에서 맴돌았다. 그 공백에 난 계단 위에 서면 한 여자의 숨결을,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숨결을 느낄 때마다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한다. 어째서일까, 그 숨을 쉬었던 몸은 이미 다른 숨 쉴 곳을 찾아 서둘러 달려 나간 지 오래인데도.
-57~58쪽

결국 ‘텍스트’라는 단어의 어원은 ‘엮다, 녹이다, 땋다’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텍세레texere’다.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의 형식은 여성에 의해 쓰이고 엮인 문학 장르에 속하며, 따라서 그 시는 여성의 몸에 담겨 전해지는 여성의 목소리 가닥들을 서로 얽어 놓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런 독특한 형태는 경이롭고 감탄할 만한 것일 뿐, 원작자를 의심해야 할 사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98~99쪽

딸아이가 태어나면 바다 이름을 따서 붙이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했지만, 분만실 바깥의 기다란 형광 전구들 아래 누워 있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빛이라는 뜻의 이름을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내가 커튼을 열어젖힐 때마다 내 목소리는 그 애의 꿈속 멀리까지 나아가며 그 애를 부른다. 빛아, 빛아.
-170쪽

나는 왼쪽 유방 속에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멋지면서 각각이 하나의 단서에 해당하는 두 개의 덩어리를 지니고 있다. 내 몸이 해부실에 눕혀지고 나면, 어떤 학생은 내 문신과 제왕 절개 흉터, 혹은 부러진 앞니를 읽어 내는 것만큼이나 쉽게 이 텍스트들을 읽어 낼지도 모른다. 그 학생은 그 덩어리들을 일종의 흔적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몸속으로 흘려보냈던 그 많은 모유가 남긴 흔적. 나는 그 덩어리들을 쉼표라고 여긴다. 마침표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 모유의 나날들이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런 날들에 다시 가닿을 수는 없을 것만 같다. (...)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놓아두지 않을 테니까. 나는 혼자서 되뇐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언제나 나의 기념품을, 진주와 마노로 만들어져 내 가슴 속에 단단히 박힌 이 내밀한 브로치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결함이든 장식이든,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이고, 나는 그것을 내 심장 가까이에 지니고 다닌다.
-298~299쪽

어느 시인의 열망과 불안에서 시작된
기이하고 아름다운 깨달음

시인이자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니 그리파는 육아와 가사 노동에 몰두한다. 시는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에 쓴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족이라는 의무에 짓눌린 여성의 불공평한 희생에 관한 이야기 같지만, 그 기조는 금방 달라진다. 이 시인이 자신에게 부과된 가사 노동을 사랑하고 있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아이를 더 낳고 싶어 하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한 오래 이어 가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가부장적인 가족 논리를 옹호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그런 단순한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니 그리파는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남성 위주의 세계관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가족의 수를 늘려 가고 그들 모두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건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열망 때문이다. 다른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이 열망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아 온 수수께끼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열망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하면, 그는 희생이 선사하는 기묘한 행복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소재다. 창작과 관련된 인물의 정신적 고뇌는 주로 고립 혹은 고독과 연관되어 있지만, 니 그리파는 관계와 희생을 향한 열망이라는 희귀한 욕망을 드러낸다.

한편, 니 그리파가 17세기의 시인 아일린 더브를 열성적으로 파고든 계기 역시 충동적이다. 특히 그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아일린 더브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몇 년간이나 노력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여성이자 엄마이자 시인이라는 동질감’이라는 최초의 동기는 무척 빈약해 보인다. 사실 여기에는 더 큰 동기가 숨겨져 있다. 니 그리파는 이 탐구의 과정과 결말 속에 자기 삶에 관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어떤 대상이나 욕망에 충동적으로 끌려드는 자기 내면에 관한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마주해야 할 숙제와 비로소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목구멍 속의 유령』에 등장하는 두 시인은 자신에게 걸맞은 자리를 찾아가려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일린 더브는 그 명성에 걸맞은 곳으로 올라서야 하며, 통제할 수 없는 열망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안겨 주었던 니 그리파는 그 열망을 길들여야 한다. 『목구멍 속의 유령』은 그 힘겹지만 포기할 수 없는 여정에 관한 기록이다. 이 여정이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는 순간, 독자 역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려 버린 ‘시(인)의 삶’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Doireann Ní Ghríofa, 1981~ )
1981년 아일랜드 골웨이 출생. 아일랜드어와 영어를 함께 구사하는 이중 언어 작가다. 2011년에 첫 시집 『주소Résheoid』를 출간한 뒤 2023년까지 여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중견 작가로 자리 잡았다. 2020년에는 첫 산문 『목구멍 속의 유령』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아이리시 북 어워드와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후 미국과 독일 등 각국에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호평을 얻었다.

기자, 편집자, 작가 등 글을 다루는 다양한 일을 하다가 번역을 시작했다. 거대하고 유기체적인 악기를 조율하는 일을 닮은 번역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파트먼트』,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코펜하겐 삼부작』,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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