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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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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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정치권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되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중국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냉전 시기의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중국의 민주화‧시장화를 들여다본 근대화 연구,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맞서고 있는 중국을 진보적 변화의 주축으로 보는 관점의 연구,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를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로 간주하는 시각에서의 연구, 중국의 혁명사 속 대안적 근대화를 밝히는 연구를 비롯하여 중국을 거대한 시장이자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간주하는 상업주의적, 시장주의적 접근 등이 주를 이뤘다.
학계에서 현재 가장 새롭고 첨예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신진 연구자들이 제시한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는 기존의 중국 논의들이 결국 중국을 ‘우리와 다른 타자’로 상정해왔음을 비판하며, 오늘날의 중국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중국을 분석 대상이 아닌 분석 도구(방법)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중국의 특수성과 세계와의 연관성을 함께 살피는 시좌 안에서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농촌과 도시, 제국과 제3세계의 이분법적 딜레마를 넘어 중국의 실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양태, 세계가 중국을 변화시키는 양태를 드러내는 키워드로 노동, 디지털 감시(감시 자본주의), 신장 위구르, 일대일로 및 중국의 해외 투자, 교육을 꼽으며 이 책은 비판적 중국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들어가며
1. 지구적 시각에서 살펴본 중국의 노동
2. 디지털 디스토피아
3. 신장 위구르
4. 일대일로
5. 학계
나가며
저자 후기
주
중국은 세계의 일부인가? 서구의 많은 정치 담론과 미디어, 대중의 인식에 따르면 그 대답은 ‘아니오’로 보인다. 지
구적 사회・경제 체제에 통합된 지 40년이 지나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경제체가 된 지금에도 중국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중국을 ‘실재’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타자’로 상정하며 계속되고 있다.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중국은 일반적으로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외부 세력으로 묘사된다. 중국에 대한 ‘타자화된’ 묘사는 중국의 공식 및 비공식 담론에서도 흔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은 외부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내부에서 경험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_25쪽
이 책에서 우리는 중국이 진공 상태나 세계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프레임들의 한계를 극
복하고자 한다.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을 분석하는 이들이 단지 자신의 야심과 불안을 반영하기 위해서 중국을 납작하게 묘사하는 것을 “중국 없는 중국학”이라고 명명하며 이와 같은 분석이 만연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미조구치 유조가 내세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을 따라 “중국 없는 중국학”의 분석을 넘어서려 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세계란 중국을 하나의 구성 요소로 하는 세계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 견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단순히 중국의 존재를 그 자체로 세계의 한 구성 요소로 인식하기보다는 중국이 지구적 역사, 과정, 현상, 추세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_37~38쪽
이 책의 요점은 중국이 오늘날 자본주의 동역학에 따라 작동하는 세계 체제의 대안이라기보다는 그 체제의 필수적인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이러한 중요한 연결점과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지도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분석은 실패할 것이며, 현대 중국과 지구적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중첩된 형태의 야만에 대한 우리의 비판과 투쟁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중국을 논의하기 위한 대안적인 분석 틀과 방법론적 접근으로 ‘글로벌 차이나’를 제안한다. 다시 말해 중국 사회, 국내 및 대외 정책과 관련된 문제를 우리가 현재 위치한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내재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추세와 기저의 동역학과 연관해 해석하는 일련의 틀을 채택하는 것이다. ‘글로벌 차이나’global China(소문자g)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서, 중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점점 더 고립되어간다고 인식되던 마오쩌둥 시대에도 중국은 항상 ‘글로벌’했다고 손쉽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글로벌 차이나’Global China: (대문자G)라는 개념을 중국과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중국의 국제적 관여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이론적 틀로 적용하고자 한다. _39~40쪽
중국은 더 넓은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읽혀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즉, 중국을 이해해야만 지구적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고, 지구적 자본주의를 이해해야만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개념적, 방법론적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_42쪽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권위주의화, 억압적 기술의 발달, 대량 구금 체제의 일상화와 같은 심각하게 불안한 추세를 목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중국에 돌리기는 쉽다. 물론 중국의 행위자들이 이 모든 것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러한 추세들은 단지 한 국가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경우는 서로 연결된 지구적 현상, 즉 더 광범위한 힘들에 의해 형성되는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본질주의적, 그쪽이야말로주의적, 산파술적 접근법을 넘어 이 암울한 전환을 조장하는 중국의 역할을 주의 깊게 기록하고(그리고 고발하고), 중국의 발전이 다른 지역의 사건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강조해야 한다. _44~45쪽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중국의 노동 문제는 세계와 더욱 연관성을 갖게 되었다. 선진 세계에서는 중국의 WTO 가입으로 인해 중국의 ‘사회적 덤핑’이 자국 노동자들의 복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노동조합과 정책 입안자들의 질책이 수없이 쏟아졌다.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는 각국 정부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을 약속하면서 중국은 노동 조건과 관련해 ‘바닥으로의 경주’를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들이 당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복잡성을 공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각들은 중국이 신자유주의로의 세계적 전환과 공산주의 실험의 붕괴로 인해 이미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조건이 침식되고 있는 국제적 맥락에 스스로 편입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진입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국제 경쟁의 동역학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각들은 이 과정에서 중국 스스로도 변화와 적응을 강요받았다는 점을 잘 다루지 않는다. _50~51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채의 기능은 항상 개인과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모두 감시하는 기술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다. 전통적인 신용 점수는 신용도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감시하고자 해왔으며, 충분한 서류상의 흔적이 없는(즉, 충분히 감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보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의지하고 스스로 감시를 받아야 했다.30 데이터 분석의 알고리즘 자동화와 더불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방대한 양의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은 자본주의적 신용 평가 시스템의 진화와 경제적 통합 확대라는 더 광범위한 목표를 위한 필연적인 진행 과정이다. 중국의 사회적 신용은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이러한 발전의 중요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중국이 이 부분에서 독특하지 않다고 해서 이러한 발전이 덜 디스토피아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욱 디스토피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내재된 불평등과 예속의 형태를 고착화하고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부자와 권력자가 휘두르는 감시와 사회경제적 통제의 억압적인 도구가 계속 날카로워짐에 따라 이 체제가 공유하고 있는 합리성, 관행, 잠재적 결과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러한 기술을 재편하고 이러한 기술에 집단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우리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_92~93쪽
‘테러 자본주의’ 혹은 우리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구적인 현상이다. 중국과 다국적 기업들이 신장 지역에서 사용되는 감시 기술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대런 바일러가 강조한 바와 같이, 최근 신장의 지방 정부는 민관 협력을 통해 감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및 국유 기술 기업에 치안 업무를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이 기업들, 특히 인공
지능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들은 중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_ 106쪽
일대일로에만 초점을 제한하면 우리는 현재 중국의 지구화의 많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특히 일대일로를 크게 의식하다보면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중국 당국이 위로부터의 글로벌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획일적인 행위자라는 이미지에 갇혀서 글로벌 차이나의 거대하고 형식적인 양상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중국의 국제적 관여를 묘사하게 되면, 중소 규모의 비공식적인, 때로는 불법적, 편법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중국의 해외 투자와 교류를 놓치게 된다. 수만 명의 중국 금 채굴 업자들이 갑자기 가나로 불법 이주한 결과로 발생한 정치적 격변과 환경 문제부터 전 세계에서 다양한 맥락으로 발생하고 있는 중국 소상공인들과 현지 행위자 사이의 여러 투쟁과 협상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부터의 글로벌 차이나’는 현재 중국의 지구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일대일로와 관련된 것들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만 주목받았다. _ 124쪽
19세기 후반부터 외국 정부와 종교 단체는 정치적 영향력 강화, 기독교 전파 혹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이유로 중국 내 교육 기관을 후원해왔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최고 학문 기관으로 남아 있는 베이징대학은 1898년에 이와 같은 목표 아래 설립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 ‘산파술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국인 유학생 수와 연구 협력의 급속한 증가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중국 학계와 서구 학계와의 교류를 중국에 자유주의 국제 체제의 규범과 가치를 ‘교육’하는 광범위한 전략의 핵심 도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출판사, 연구자들이 중국 행위자들과의 협업과 관련해 스캔들에 휘말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서구의 학문적 참여는 점점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서구 대학 내에서 중국을 본질적으로 외부의 부패한 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이러한 담론의 주를 이루고 있다. _ 143~144쪽
우리는 이 책에서 수십만 명의 위구르족 및 기타 소수민족에 대한 구금, 노동운동 탄압, 감시 강화, 비판적 내용에 대한 검열 등 최근 몇 년간 중국 당국이 채택한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새로운 상황들이 광범위한 지구적 추세 속에 어떻게 내재해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시야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한다. 우리는 이러한 연결점과 유사점, 지속과 진화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체제의 근본적인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정치적 행동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 _165쪽
세계 경제의 활력소, 서구 자본주의 모델의 대안, 글로벌 민폐 국가, 사회주의 독재 국가…
환상과 환멸을 넘어, 비판적 중국 연구는 가능한가?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비해서는 다소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중국에 대한 감정은 부정적이다. 한국만의 상황도 아니다.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기에 서구에서는 이미 21세기 버전의 황화론(黃禍論)이 등장했다. 지난 20년간 세계 각국의 반중 감정에 관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시진핑 집권 이후부터 주요 국가들에서 중국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가 고조되기 시작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반중 감정이 심화되었다. 한국에서는 2016년 사드 배치를 기점으로 한중 관계가 점차 악화되었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지난 30년을 지나 지금의 젊은 세대 사이에선 혐중 정서가 만연하다. 정치권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 애국주의, 포퓰리즘 흐름이 거세지면서 한국에서도 ‘친중 공산주의자’ 프레임을 활용해 반중 정서 쇼비니즘에 올라타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다.
미디어와 정치권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되어온 가운데 학계에서는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냉전 시기의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중국의 민주화‧시장화를 들여다본 근대화 연구,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맞서고 있는 중국을 진보적 변화의 주축으로 보는 관점의 연구,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를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로 간주하는 시각에서의 연구, 중국의 혁명사 속 대안적 근대화를 밝히는 연구를 비롯하여 중국을 거대한 시장이자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간주하는 상업주의적, 시장주의적 연구 방법론이 주를 이뤘다. 이 책은 이러한 시각이 중국을 우리와는 다른 특수한 장소, 이데올로기, 문화로 타자화하는 시선에서 비롯되었음을 짚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교차하고, 도시와 농촌이 공간적으로 뒤섞이고, 제국과 제3세계적 양태가 겹쳐진 오늘날의 중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세계 속에 깊게 연루된 중국으로부터 더 나은 공동의 미래를 상상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과 관련한 오늘날의 논쟁은 우리와 같은 편인지 다른 편인지 가르려는 사람들이 점차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비판적 이해와는 양립할 수 없는 시각이다. 이 책은 중국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지구 내에 위치시킴으로써 흔히 ‘중국적인 것’으로만 읽히는 문제들이 실제로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복잡한 역학 관계와 상호 연결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현재의 중국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중국은 무엇인가’ 대신,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중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기를 제안한다.”
-본문 중에서
‘중국은 무엇인가’에서 ‘중국과 세계는 어떻게 얽혀 있는가’로
오늘날의 중국을 왜곡 없이 바라보는 인식론적 전환
기존 논의의 한계를 극복할 연구 방법론으로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는 중국을 분석 대상(목적)이 아닌, 세계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주체로 간주하며 지구적 자본주의의 거대한 역동을 이해하는 수단(방법)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관계적 관점이다. 서구적 기준으로 아시아를 재단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아시아를 수단으로 삼아 서구를 조명한 시도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다케우치 요시미), 중국을 일반화해 분석 대상으로 삼는 대신 중국을 세계 내 하나의 구성 요소로 보고 각 요소들이 서로를 상호 참조하는 다원적 세계를 인식의 기반으로 두는 ‘방법으로서의 중국’(미조구치 유조)의 계보를 잇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는 근본적으로 세계가 정적이고 고유한 각각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기존의 인식론 대신, 사회적 실재를 역동적이고 연속적이며 과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특수성은 고려해야 하지만, 이를 따로 떼어내 세계와 분리된 요소로 놓고 그 특성만 강조하는 것은 이롭지도 정확하지도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닫힌 체계의 이론 틀이 아닌 만큼 중국과 세계의 복잡한 연루를 꿰어내는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의 키워드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테지만, 이 책에서는 지금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쟁점으로 노동, 디지털 감시(감시 자본주의), 신장 위구르, 일대일로 및 중국의 해외 투자, 교육을 꼽는다.
1장에서는 1990년대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한 후의 중국 노동 체제를 살펴본다. 중국의 노동 착취가 세계적으로 ‘바닥을 향한 경주’를 촉발했다는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중국의 노동 구조와 노동권이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역으로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바꾸어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알아본다.
2장 ‘디지털 디스토피아’에서는 중국의 디지털 감시 기술을 포용금융(신용) 시스템의 렌즈를 통해 살펴보고, 이것이 중국만의 독특한 디지털 디스토피아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감시 자본주의 궤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동시에 이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3장에서는 신장 위구르족 및 기타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억류 사태를 분석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과의 유사성과 공모 관계를 알아본다. 이렇듯 불안하고 부당한 상황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다국적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4장에서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해외 투자 계획들이 어떻게 서구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미 활용되어온 프로젝트, 아이디어, 운영 방식에 기대어 구축되었는지 알아보고, 이외 중국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제도들이 기존 서구의 모델을 어떻게 모방하고 참조해왔는지를 분석한다.
5장에서는 중국의 해외 영향력 확대, 서구의 중국 내 영향력 확대 수단이 된 학계를 화두로 가져온다. 대학, 출판, 연구의 신자유주의화가 어떻게 검열을 용인하고 학문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는 장이다.
중국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양태, 세계가 중국을 변화시키는 양태에 면밀히 다가가며 이 책은 결국 ‘친미 대 친중’의 낡고 오래된 진영론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동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를 제안한다. 특별히 한국어판에는 중국 연구의 현황과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상세히 밝힌 공저자의 후기와 국내 소장학파 핵심 연구자이자 이 책을 번역한 하남석 교수의 촘촘하고 친절한 해제까지 실려 깊이를 더했다. 이 책을 경유해 독자들은 ‘글로벌 민폐 국가’ ‘인권 탄압국’ ‘저물어가는 거대 시장’으로서의 중국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계가 무엇을 소외하여 무엇을 축적하고 있는지, 그 거대한 구조에 깊이 연루된 중국의 역동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호주 멜버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당대중국연구센터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메이드 인 차이나 저널'(The Made in China Journal)과 '글로벌 차이나 인민 지도'(The People's Map of Global China), '글로벌 차이나 펄스'(The Global China Pulse) 창립자이자 공동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의 노동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왔으며, 《중국 공산주의의 유산들》(Afterlives of Chinese Communism, 2019), 《신장 원년》(Xinjiang Year Zero, 2022), 《프롤레타리아 중국》(Proletarian China, 2022)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온라인 사기 산업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노예제도에 관한 새 책을 집필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대 중국의 체제 변동과 대중 저항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공저)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차이나 붐》 《제국의 충돌》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중국의 신자유주의 논쟁과 그 함의> <1989년 천안문 사건과 그 이후> <시진핑 시기 중국의 청년 노동 담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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