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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대한제국기 鄭安立의 계몽운동과 학교 설립

이용수  99

영문명
Jeong-Anlip’s Enlightenment Movement and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during the Great Han Empire period
발행기관
한국근현대사학회
저자명
김건실
간행물 정보
『한국근현대사연구』제102집, 7~41쪽, 전체 35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2.09.30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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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계몽운동과 재만 한인자치운동을 펼쳤던 정안립의 활동 중 국내 교육운동에 관한 부분이다. 정안립(정영택)은1873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888년 생원시에 입격한 후 법관양성소·관립한어학교에서 근대학문을 수학해 법관양성소 교관, 법률기초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1905년 보성전문학교 초대 학감에 선임된 이후 충청지역에 사립근대학교를 설립·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 그는 괴산의 시안학교, 청주의 청호학교(충북보성중학교), 아산과 온양의 보성학교 등을 설립하거나 교장으로서 직접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교육운동은 이용익의 근대사립학교설립운동에 힘입은 것으로 교육운동을 전개하면서 서북지역 인사들과의 인맥을구축하고 교유관계를 지속했다. 그는 신민회 초기 단체인 대한신민회의 간부로 선임되었으며,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이라는 신민회의 노선과 장정에 따라 1908년 기호흥학회를 조직했다. 정안립은 대한협회 및 기호흥학회의 간부로서중앙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충청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해서도 기여한 바가크다. 그는 근대교육의 지역 확산을 위해 학교 설립 및 교무 지도뿐 아니라 기호흥학회의 지회 설립 및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강한 교육적 사명감에 비해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현실인식은 철저하지 못했다. 결국 통합된 힘으로 국가적 흥학을 조속히 이루고자 했던 그의 교육운동은 초심과는 달리 국권회복이라는목표를 상실하고 말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에도 그는 여전히 비정치적 ‘순수’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등 시대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explores a part of An-lip, Jeong’s domestic activities, who developed educational movements inside and outside of Korea, and the self-governing movement for the Korean people who lived in Manchuria during the Great Han Empire Period and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An-lip, Jeong was born in Jincheon, Chungcheongbook-do in 1873. He worked as an instructor at a law school after he graduated the Legal Training School and the Official Chinese Language School. He served as a member of the law committee. He developed modern education domestic ally from 1905 to 1910, and especially devoted himself into the movements of the modernized private school establishments. He was designated to be the first superintendent at Boseong-College in 1905. He devoted himself into establishing and running modernized private schools in Chungcheon-do afterwards. In1907, he worked as one of the executives when Daehansinminhoe was organized. He founded ‘Giho Heonghakhoe’, to set its target on restoring national rights, which was followed by the line of Sinminhoe. He led and served the ‘Giho Heonghakhoe’ in various positions. He came back to Boseong-College and became the school master in 1908 and ran the school till 1910.

목차

1. 머리말
2. 근대교육의 수학과 任宦
3. 교육운동과 기호흥학회의 설립
4. 충청지역에서의 교육운동과 현실 인식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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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실. (2022).대한제국기 鄭安立의 계몽운동과 학교 설립. 한국근현대사연구, (),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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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실. "대한제국기 鄭安立의 계몽운동과 학교 설립." 한국근현대사연구, (2022):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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