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철학하다
2025년 11월 06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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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174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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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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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죽음(DYING)
제1장_살아있다는 것
생명 그리고 살아있는 존재ㅣ인간성, 인격성, 동일성
제2장_죽는다는 것
생명의 노화, 종결, 중단 그리고 존재의 소멸ㅣ죽었다는 기준
제3장_죽음에 관한 논쟁들
대칭 논증ㅣ시점의 문제ㅣ평온에 이르는 길
제4장_필멸의 해로움
삶의 타산적 가치ㅣ해악 논제
제5장_죽음은 언제 해로운가?
에피쿠로스의 도전ㅣ죽음이 나빠지는 다섯 시점
제2부_죽임(KILLING)
제6장_죽인다는 것
해악 설명ㅣ주체 가치 설명ㅣ동의 설명ㅣ결합 설명
제7장_스스로 죽는 것과 남의 손에 죽는 것
자살과 안락사ㅣ합리적으로 선택한 죽음ㅣ도덕적으로 선택한 죽음ㅣ막거나 돕거나
제8장_태아 살해의 딜레마
낙태 반대 논증ㅣ낙태 옹호 논증ㅣ철학으로 풀기 어려운 유일한 죽음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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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에도 당연히 계속 존재한다고 여기기에 현재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바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미래의 나도 결국 현재의 나다. 그와 동시에 미래의 나는 나 자신이 키우고 돌보는 아이와도 같다. 우리는 모두 그 아이가 훗날 행복하기를,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과거의 자신을 따뜻하게 기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오직 그 아이가 성장하고 번영할 때만 의미가 있다. 소멸, 즉 우리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일이 닥친다면 이 모든 계획과 돌봄은 무의미해진다. 인생에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돌봐야 할 미래의 내가 없기에 지금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고 새로 도전할 일도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따라서 죽음이 소멸을 뜻한다면, 우리 대부분에게 죽음은 매우 나쁜 일이다.
---「서문: 생명 과정의 돌이킬 수 없는 중단」 중에서
어떤 존재가 살아있다고 말하려면,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방식으로나 자기 유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자기 유지는 지속성 있는 복제자가 통제한다. 이 복제자는 스스로 증식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으며, 그 돌연변이를 다음 세대로 유전할 수 있다. 어떤 존재가 내부에 있는 지속적인 복제자의 통제 아래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과정을 반복할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존재를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다.
---「제1장: 살아있다는 것」 중에서
흔히 우리는 “늘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하곤 하지만, 죽음은 노화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노화는 우리 몸이 스스로 재생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는 과정이며, 부분적으로는 세포 노화의 결과다. 체세포에는 유전적으로 미리 설계된 ‘헤이플릭 한계(Hayflick’s limit)’라는 게 있어서, 이 한계에 도달하면 신체는 재생 및 유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노화한 세포는 더 쉽게 죽고, 보통은 세포가 터지면서 주변 조직에 손상을 입히는 ‘지저분한’ 방식인 ‘괴사’나 세포 스스로 생을 정리하는 ‘깔끔한’ 방식인 ‘세포자멸사’로 죽는다. 세포자멸사는 신체의 성장과 유지에 본래 포함된 정상적인 과정이다.
---「제2장: 죽는다는 것」 중에서
만약 죽음이 죽은 개체에 해악이 되려면 죽음 때문에 해를 입는 ‘주체’가 있어야 하고, 그 해가 무엇인지 ‘내용’이 분명해야 하며, 그 해가 발생하는 ‘시점’이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시점’이다. 다시 말해 죽음이 언제 나쁘냐는 것이다. 우리가 죽고 없는 마당에 해로울 게 어디 있느냐는 얘기다. 이 해악의 ‘시점’ 문제를 따져보면 삶이 끝나자마자 죽음이 따른다는 점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죽음이 살아있는 동안 해를 입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이후에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제3장: 죽음에 관한 논쟁들」 중에서
어떤 일은 우리에게 ‘전반적’으로 좋거나 나쁠 수 있다. 모든 전후 사정을 고려해 우리에게 좋거나 나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 삶이 더 나빠졌을 텐데 그 일이 일어나 좋아졌다면, 그 사건은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 삶이 더 나아졌을 텐데 그 일이 일어나 나빠졌다면, 그 사건은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나쁜 것이다.
한편 ‘전반적’으로 좋거나 나쁜 일이 있다고 할 때, ‘부분적’으로 좋거나 나쁜 일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배가 난파당한 상황에서 갈증을 달래려고 염분이 많은 바닷물을 마신다고 해보자. 잠시나마 갈증을 달랠 수 있으니 ‘부분적’으로는 이익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서 내재적으로 좋은 것들을 늘리거나 나쁜 것들을 줄이면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반적’ 이익이다. 왜냐하면 ‘부분적’ 이익이 오히려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4장: 필멸의 해로움」 중에서
죽음은 시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해롭다. 죽음은 우리가 죽지 않았을 때보다 우리 삶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는 내내 우리에게 해롭다. 그렇긴 하지만 시점의 문제에 답할 그럴듯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원히 필멸의 해악을 겪는다는 ‘영원주의’, 우리가 죽은 뒤에 해악을 입는다는 ‘후행주의’, 흐릿한 경계 개념을 내세워 우리가 필멸의 해악을 겪는 시점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주의’와 달리 ‘선행주의’는 우리가 죽음이 박탈하는 이익을 갖고 있는 동안, 즉 살아있는 동안 필멸의 해악을 입는다고 설명한다. 죽음 이후의 사건도 살아생전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한 마찬가지로 해롭다. 또 다른 해법인 ‘동시주의’는 우리가 죽는 동안 필멸의 해악을 겪는다고 보는데, 이 또한 합리적인 관점이다. 다만 우리가 언제 죽음 이후의 사건으로 해악을 입는지를 설명하는 관점은 되지 못한다.
---「제5장: 죽음은 언제 해로운가?」 중에서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를 따지는 일은 꽤 복잡한 문제다. 어떤 특성들이 잘못을 향해 있다면 그 행위가 잘못임을 강하게 시사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특성들은 해당 행위가 잘못이 아님을 가리킬 수도 있다.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 아닌지는 이런 모든 특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설령 어떤 행위가 잘못을 구성하는 특성을 가졌더라도, 종합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특성을 가졌다면 그 행위는 ‘일단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살해는 왜 잘못된 행위인가?”라고 묻는 대신 “어떤 특성 때문에 살해가 ‘일단의 잘못(prima facie wrong)’이 되는가?”라고 묻고자 한다.
---「제6장: 죽인다는 것」 중에서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어야 바람직할까? 치명적인 질병이나 부상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다. 생명 자체가 걸린 문제이므로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를 포함한 적극적인 의학적 치료를 찾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또 어떤 이들, 특히 생명이 직접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지만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돼 회복 불능인 상태의 사람들에게는 더 적극적인 선택이 최선일 수도 있다.
---「제7장: 스스로 죽는 것과 남의 손에 죽는 것」 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다가 언제 소멸하는가?
우리는 왜 ‘없어진 나’를 두려워하는가?
삶과 죽음에 대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들
예전보다는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과거에는 입 밖으로 꺼내기 조심스러웠던 안락사나 조력사망(의사조력자살)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한다. 낙태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어느 정도 개념이 정리돼서일까? 이제 우리는 무작정 죽음을 터부시하진 않는다.
그래도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썩 좋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대부분은 불안, 두려움, 상실을 떠올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필멸의 존재들이다. 이 사실이 때로는 우리 삶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필멸한다는 진리가 역설적이게도 더 잘 살려는 우리의 의지를 북돋는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좋은 것들을 앗아가는 동시에 나쁜 것들도 빼앗는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일 수도,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죽음이 나쁜 것이 되려면 우리는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을 철학하면 할수록 자꾸만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에피쿠로스의 도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우리에게 ‘쾌락주의(hedonism)’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os)가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Epistolē Pros Menoikea)』에 쓴 이 글이 촉발한 것이었다.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닐세.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네.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일세.”
에피쿠로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 논증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섰다. 죽음은 우리에게 해롭다는 ‘해악 논제’에 대항한 그의 논점은 이랬다. 뭔가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면 해를 입는 ‘주체’와 해악의 ‘내용’ 그리고 해가 발생하는 ‘시점’이 명확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죽음이 해롭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오직 우리가 살아있을 때와 죽은 후, 이렇게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세 논점을 짚어내기가 어렵다. 일단 죽고 나면 해를 입을 ‘나’라는 주체가 없으니 죽음이 나쁘다고 할 수 없고, 반대로 살아있을 때는 해를 입을 주체는 분명하나 아직 죽지 않았으니 죽음이 그 주체에게 어떤 해를 입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에피쿠로스가 죽음은 전혀 나쁜 게 아니라고 역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에피쿠로스의 이 논증은 얼핏 완벽해 보이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피쿠로스 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가 ‘아타락시아(ataraxia)’, 곧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하는 데 있었다. 죽음이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타락시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니 이를 제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죽음을 생각하면 불편하다. 이게 우리의 직관이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은 상태’가 아닌 ‘삶의 상실’인데, 에피쿠로스는 교묘하게 그 지점은 외면했다.
-시간의 비대칭: 왜 ‘없던 나’는 괜찮고 ‘없을 나’는 싫을까?
에피쿠로스를 추종한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Lucretinu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른바 ‘대칭 논증(symmetry argument)’이다. 그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없던 나’를 떠올려보라고 말했다. 그 과거의 비존재를 두고 불안이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그와 대칭을 이루는 죽은 뒤의 비존재인 ‘없을 나’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 ‘대칭 논증’은 곧바로 강력한 반론에 부딪혔다. 다름 아닌 태어나기 전의 비존재와 죽은 이후의 비존재는 다르다는 ‘비대칭 논증(asymmetry argument)’이다. 태어나지 않아서 없는 것과 죽어서 없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우리의 삶과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미래’ 지향적이다. 우리의 계획, 목표, 희망, 사랑은 하나같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향해 뻗어 나간다. 우리는 삶이 과거로 연장돼 더 일찍 태어나기보다 미래로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죽음은 우리가 더 살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을 ‘좋은 삶’을 앗아가지만, 태어나기 이전의 비존재는 그 어느 것도 빼앗은 적이 없다. 탄생은 앞으로 누릴 좋은 일들의 ‘시작’일 뿐이나, 죽음은 지금까지 누렸고 앞으로 누릴 수 있을 좋은 일들의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우리에게 전혀 해롭지 않다는 고대 철학의 관점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뿐 아니라, 시간을 경험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심리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죽음을 두려워할수록, 죽음을 나쁘게 받아들일수록, 자꾸만 삶을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두려움은 정말로 비합리적인 착각에 불과한 걸까?
-상실과 박탈의 해로움: ‘죽은 상태’가 나쁜 게 아니다
스티븐 루퍼 교수는 에피쿠로스의 도발적인 주장과 정교한 논리가 우리 마음을 온전히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두려움은 비합리적 감정이 아닌 삶을 향한 애착에서 비롯된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이라고. 잃을 게 많을수록 상실의 고통도 더 크다. 삶의 가치가 클수록 죽음도 더 두렵다. 죽음이 우리에게 나쁜 진짜 이유는 ‘죽은 상태’가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살아있었다면 누렸을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서 ‘박탈(剝奪/deprivation)’, 즉 빼앗아가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우리가 죽지 않았더라면 경험했을 사랑, 우정, 성취, 행복,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같은 온갖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릴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하는 것이야말로 죽음이 가하는 진짜 해악이라는 얘기다. 물론 죽음이 좋은 것들만 앗아가진 않는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죽음은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함께 빼앗는다. 회복 불가능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죽음은 그 고통을 박탈함으로써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삶은 나쁜 죽음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삶이 가치 있고 풍요로울수록 죽음으로 잃게 되는 것들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형편없는 삶을 살았다면 죽음으로 잃을 게 별로 없겠지만, 충만한 삶을 살았다면 죽음은 그만큼 더 큰 해악이 된다. 루퍼 교수의 비유처럼 “미래의 나는 나 자신이 키우고 돌보는 아이”와도 같다. 우리는 그 아이가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현재를 더 잘 살고자 애쓴다. 그런데 죽음은 바로 그 ‘미래의 나’라는 존재 자체를 소멸시킨다. 내가 애써 돌보던 아이가 사라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계획과 돌봄은 무의미해지고 만다. 이 관점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세운다. 죽음의 문제를 ‘죽은 이후’의 미스터리에서 ‘살아있는 동안’의 가치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이는 죽음의 무게가 삶을 어떻게 가꿔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속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만약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고 끔찍한 고통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때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죽음의 두 얼굴: 죽음은 삶의 거울이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좋은 삶도 박탈하지만 나쁜 삶도 거둬간다.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도 두 얼굴을 가졌다. 동전의 다른 면, 즉 삶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됐을 때 죽음이 오히려 해악으로부터의 구원이 될 수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이를 통해 삶의 가치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삶은 때때로 대단히 끔찍한 것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슬픔, 끝없는 고통만 가득한 질병,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와 같은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런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죽음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논의는 우리를 자살과 안락사라는 매우 어렵고 민감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끈다.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말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면, 고통 없는 죽음이 되레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이 아닐까? 루퍼 교수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문제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게 이 책의 모든 논의는 우리 스스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삶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될 것이다. 죽음 자체에 매몰되려고 죽음을 철학하는 게 아니다.
-죽음의 무게: 삶이 좋을수록 죽음은 무거워진다
죽음의 무게는 삶의 가치에 비례한다. 하찮은 삶의 끝에서는 가벼운 죽음이, 가치 있는 삶의 정상에서는 무거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 책은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에피쿠로스의 도발적인 주장을 시작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살핀 내용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것’, ‘죽는다는 것’, ‘죽인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스스로 죽는 것’과 ‘남의 손에 죽는 것’까지 깊숙이 들여다본다.
철학은 얼핏 어떤 질문에 관한 집요한 분석으로 보일 때가 많지만, 그 내면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우리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 『죽음을 철학하다』 또한 철저히 이성의 언어로만 죽음을 파헤치고 있는 것 같아도, 그 밑바탕에는 가슴 뜨거운 인간애가 담겨 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고 마는 필멸의 존재들이기에 죽음을 이해할수록 삶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결국 우리가 이 철학적 여정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유한한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다. 죽음이라는 명확한 끝이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 모든 관계, 모든 경험이 더욱 소중하고 절실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커다란 역설이다.
죽음이 우리가 살아생전 누리게 될 좋은 것들을 박탈해서 나쁘다면, 그런 죽음을 그저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삶을 더 좋게 만들어서, 죽음을 더 나쁘고 무거운 것으로 완전히 확정해버리는 게 어떨까?
인물정보
트리니티대학교 철학 교수. 베일러대학교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도덕철학)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아왔다. 특히 예일대학교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보다 1년 앞선 1994년에 시작해 지금껏 이어가고 있는 ‘죽음의 철학(Philosophy of Death)’ 강의가 학부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의 제안으로 그 강의를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지은 책으로 『삶과 죽음(Life and Death)》(‘케임브리지 철학의 동반자’ 시리즈), 『필멸의 대상들: 삶과 죽음을 꿰뚫는 존재의 동일성과 지속성(Mortal Objects: Identity and Persistence through Life and Death)』, 『존재한다는 것: 실존주의 사상 입문(Existing: An Introduction to Existentialist Thought)』, 『상처받지 않을 권리: 행복을 지키는 것에 관하여(Invulnerability: On Securing Happiness)』, 『회의론자들(The Skeptics)』, 『본질적 지식(Essential Knowledge)』 등이 있다.
안타레스 대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단행본 출판 편집자로 일하면서 인문 및 경제경영 분야 150여 종의 책을 기획·편집했고 저작권 에이전트로도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불안을 철학하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 『이코노믹 허스토리』, 『지루할 틈 없는 경제학』, 『로빈 니블렛의 신냉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리더십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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