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을 기대하지 않는 찬란
2025년 06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6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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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359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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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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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하고 테레비에 나오는 말하고 뭐가 다르노?”라며 의아해하던 부산 소녀 이유진은 스무 살, 서울의 한 고시원으로 캐리어 하나 끌고 혼자 떠나왔다. 가수가 되고 싶었고, 그보다 자기 음악을 더욱 하고 싶었던 그는 보컬 트레이닝 수업을 그만두고 홍대 앞 작은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스며들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직접 모든 곡을 쓰고 프로듀싱한 첫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음반상에 노미네이트되고, 그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그에게 찬란한 앞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끈은 그냥 나만 잡고 있는 끈이 아닐까, 내가 놓으면 예술가의 삶은 끝나버리는 거 아닌가.’ 그는 우여곡절 끝에 기획사를 나와 두려움을 딛고 독립음악가의 삶을 선언한다. 언론 인터뷰 중 ‘인디신의 BTS’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기준 미달의 ‘불법 싱어송라이터’ 같다고 농을 치면서도 홀로 방에 앉아 아주 사적인 고찰로 쌓아 올린 것들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올 때의 기쁨이야말로 음악 하며 사는 삶의 이유라고 고백한다. 언젠가 저 여름밤을 수놓은 피날레 불꽃과 같은 뮤지션을 꿈꾸었던 그는 이제 불꽃과 불꽃 사이 깊은 고요와 적막 속에, 그 사이사이의 지난한 보통의 날들에서 발견하는 작은 설렘과 기대 속에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찬란이 있음을 쓴다.
이 책에는 작가의 필름 사진들로 하나의 서사를 엮어낸 사진 산문 〈사라지기 위해 무늬가 되는 것들은〉을 수록했다. 또한 이 책을 위한 특별한 선물로 한정 공개하는 CD 〈찬란 플레이리스트〉에는 첫 산문집을 위한 작가의 미공개 데모 〈슬픔을 위한 체리〉를 비롯해 권영찬, 전진희 두 뮤지션이 프롬의 곡을 피아노 연주로 편곡하여 수록했다.
프롤로그 - 시간은 실시간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잘 도착했어요
불꽃이 번지는 속도
더 많은 노래가 남아 있어요
나의 이름은
이름을 불러줘
여름을 사랑한 첫날
내가 꿈꾸던 집
창백하고 아름답고 공평한
하루의 끝
슬픔을 위한 체리
마음의 감각
명작과 습작 사이에서
어느 봄밤의 증명들
불법 싱어송라이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세요?
장마의 시작
당신의 심장박동은
밀려드는 것
기억력의 행방
떠날까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얼마만큼의 하늘이 담겼나
샤워와 빗장
나의 불량함은
무지개 별과 용궁 사이
차가워지지 않는 것은
영원 같은 밤에
인생, 도쿄 그 어딘가
에필로그 - 두 개의 빛
부록 - 찬란 플레이리스트
낮 인간과 밤 인간이 있다면, 나는 밤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사람. 밤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내가 해가 지지 않는 곳에 서 있다니. 운명의 실타래가 풀리다 한 올 어긋나 도달해버린, 어딘가 비틀린 장면 같았다.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31쪽
나 역시 혼자 방에서 곡들을 차곡차곡 모아올 때 느꼈지만 아주 사적인 고찰로 쌓아 올린 것들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할 때의 환희, 그것들이 무심결에 출렁일 때 오는 반짝임이 있다. 그로부터 오는 감동은, 그것들이 알게 모르게 세상 어딘가에 스며들어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결국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믿게 한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가닿는다. 물론 닿지 않아도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예술이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더 많은 노래가 남아 있어요〉 66~67쪽
베란다로 뛰쳐나가 탁, 하고 숨을 들이마신 순간이 어제처럼 기억난다. 내 안에 뜨겁게 달궈진 공기를 뱉어내고 파랗게 들이마신 여름 저녁을. 초저녁 가로등이 켜지던 길가, 빙글빙글 새파랗게 발광하며 휘돌던 하늘빛, 이제 막 차분해질 준비를 하던 여름의 공기와 대로변을 줄지어 지나던 노랗고 빨간 자동차의 불빛들, 어디선가 스치듯 옅게 낫던 치자꽃 향까지 이 모든 게 어지럽게 기억 속에 얽혀들었다. 한 번의 숨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이미지들이 쏟아지던 그 순간은 살아 있다는 생생한 감각과 함께 내게 가장 불덩이 같은 여름 기억으로 각인됐다.(…)
선명한 여름의 장면들이 전부 ‘기록’되는 게 아니라 조각난 ‘기억’이 되는 이유는 햇살이 장면의 일부를 몰래 가지고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발화시키고는 그 색깔들을 가지고 조용히 사라지는 게 햇빛이니까. 여름 내내 창가에 있던 책 표지가 바래는 것처럼. 햇빛은 기억의 색깔도 뭉근하게 바꾸어버리는 것이라고, 그래서 해를 쬔 기억들은 대부분 그렇게 바래고 뭉개지고 웃음소리 같은 것만 남게 되기 마련이라고. 그건 앞으로도 햇살이 내 삶 곳곳에 더 깊게 깃들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을 사랑한 첫날〉 85~88쪽
그 집에서 꼬박 겨울을 보내고 처음 맞은 봄. 언니와 엄마와 나의 늙은 개 수롱이와 복동이까지 집 근처 야트막한 성미산에 올랐던 날이다. 평생 한곳에서만 살았던 우리 가족이 새로운 동네로 이주해 낯선 공기 속에서 새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을 돌리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조그만 낮달이 떠 있었다. 창백하고 아름답고 또 공평했다. 모두가 올려다볼 수 있는 달이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세기를 넘어 모두 같은 달을 바라보고 살아왔겠지.(…)
거의 언덕 같은 산이지만 그것도 산이라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에서는 어떤 낙관적인 희망이 생겨나는가 보다. 그래서였나. 그날 우리는 도란도란 가쁜 숨을 쉬어가며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따뜻한 집에 살자고. 쇼윈도가 있는 가게에서 예쁜 식기 같은 것도 사보자고. 각진 쇼핑백에, 선물상자에 포장해주는 그런 걸 사자고. 생존 너머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번 사보자고.
〈창백하고 아름답고 공평한〉 101~102쪽
십 년 조금 넘게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것들만 해결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밀려왔다. 이 기분을 어찌해야 좋을까. 이토록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됐다. 그러다 문득 체리를 떠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꼭 나를 위한 체리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나의 슬픔을 위한 체리. 오늘의 슬픔을 위로해줄 팔천구백오십 원짜리 친구를 사기로. 씻어서 투명 볼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급한 일들을 끝내면 아사삭 깨물어 먹어야지. 씨도 툭툭 뱉어야지. 그렇게 오늘의 슬픔을 뱉어내야지.(…)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오바쎄바를 떨었던 걸까. 요즘 겪고 있는 슬픔은 알고 보면 딱 체리만큼의 크기인지도 모른다고 체리를 씹으며 생각했다. 고작 이만큼의 달콤함이면 녹아버릴 슬픔이었을지도. 너무 많은 마음이 고여 있어서 쉽게 파동이 일고 넘치는구나, 하고 곰곰이 그 안을 들여다본다. 오늘의 슬픔은 꼭 그만큼의 분량으로 입속을 뒹굴며 사라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작 체리 크기의 슬픔 하나가 나를 얼마나 출렁이게 하는지 알게 된 하루다.
〈슬픔을 위한 체리〉 114~115쪽
그러다 내 주변 모두가 당신을 잊어가던 즈음 어느 여름, 버스 안이었어. 버스 차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투명인간처럼 나의 가슴을 투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내 안에 모든 말이 사라지는 느낌. 얇은 교복 천을 들추면 내 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말이야. 아, 당신이 사라진 그때부터 여태껏 내 가슴엔 구멍이 있었구나.
〈마음의 감각〉 120쪽
스케치를 모아두는 것까지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상상하던 것들을 현실로 꺼내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회피하고 싶은 공포다. 왜 모든 건 가능성으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다울까? 흩어진 조각일 때 완벽했던 것들이 현실로 끌려나오는 순간 초라해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보았다. 영화 속 꿈결 같은 장면을 쫓다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건 형광등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비친 민낯 같은 것이었다. 그 실망감을 끝없이 유예하기 위해 완성으로부터 매일매일 열심히 도망치는 것이다.
〈명작과 습작 사이에서〉 124쪽
당장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자칫하면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노래들, 타이틀곡이 되지 못해 곁에 선 수록곡들. 완벽하지 않아서, 때를 놓쳐서, 스스로 미완이라고 여겨서 망설였던 순간들. 결국 그것들이 모여 내 삶의 빈틈을 메우는 모래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다음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꺼내고, 부르고, 내어놓아야 한다. 흘러가야 할 것들이 흐를 수 있도록.
〈명작과 습작 사이에서〉 131~132쪽
음악은 밑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충분히 현실로 끌어올 수 있는 세계다. 모든 색깔의 물감을 내가 직접 만들어 쓰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물감의 색 배합까지 스스로 해내는 장인이 되고 싶다는 이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가 그런 장르의 사람이 아닌 걸 받아들여야지 어떡하겠나.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놀라운 색깔을 가진 페인터들이 많다. 그들은 내가 준비한 밑그림 위에 자신의 색깔을 더해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도록 기꺼이 도와준다. 나는 그들과 함께 그림 작업을 지휘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나간다. 이 조화로운 작업 과정은 음악을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내가 뛰어나지 않은 덕분에 내 음악은 늘 조금 더 아름답게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불법 싱어송라이터〉 146~147쪽
“이 음악 꼭 너 같아. 사람은 자기와 닮은 음악을 듣잖아. 가끔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게 그 사람의 심장박동 같아.” 언니가 말을 건네자 지금 흐르는 노래가 심장에서부터 혈류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플레이리스트가 그 사람의 심장박동이라. 언니다운 말이네.
〈당신의 심장박동은〉 166~167쪽
앞으로는 불필요한 오지랖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두가 확신을 사고팔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요즘, 내가 확신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내 위장이 일반적인 다른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세상의 룰과 반대로 움직이는 이상한 점이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장기 모양까지도 다 제각각인데,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답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음, 이번 노래는 다시 집에서 녹음해봐야지. 의외로 순순히 그냥 그렇게 결정해버렸다. 엔지니어들이 소스 상태가 별로라고 한 소리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결정했다. 나에게만 유효한 룰을 치열하게 찾아가는 것이 삶 아니겠어? 이런 게 어른이지. 골골대는 위장이 결국 신곡 녹음까지 결정하게 하다니 역시 세상에 허투루 일어나는 일은 없다. 군것질을 못 하니 심심해서 뻗어나간 생각인 줄도 모르고 이건 신이 준 표지라며 잠시 신나 한다. 내일부터는 당분간 따뜻한 것만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왼쪽으로 돌아눕는다.
〈나의 불량함은〉 213~217쪽
유기견보호소에서 긴급 구조해 십 년 넘게 키웠던 바나를 급성췌장염으로 떠나보내면서 생각했다. 바나의 소소한 버릇이나 표정, 특유의 사랑스러움은 세상에서 오로지 나밖에 모르겠구나. 너의 세상엔 오직 나뿐이었구나.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피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한 우주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는 일이구나.
〈무지개 별과 용궁 사이〉 221쪽
바람이 불 때마다 찬이가 으악! 내가 으악! 우리는 돌림노래처럼 비명을 지른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우스워서 막 웃는다. 참 이상하지. 이렇게 춥고 고통스러운 순간인데도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차가워지지 않는다니. 여전히 따뜻하게 지켜진다. 이제 이곳에서 다시 시작될 내일에 대한 기대가 뜨거운 불씨가 되어 내 안을 데우는 것일까.
〈차가워지지 않는 것은〉 229쪽
함께해왔던 회사와의 이별이 다가오며 한꺼번에 몰아친 수많은 일들 속에서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이거였어. 지금껏 나의 일부를 오려가며 만든 작업물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 이는 음반 시장에서 흔하다면 꽤 흔한 일에 속했지만, 내 현실을 뒤늦게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막막하고 버거웠어. 나는 내가 늘 자격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나 미안해하기만 했잖아. 우리 고향 사람들은 대부분 늘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하면서 살잖아. 나도 한동안 그게 잘 안 고쳐졌어.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뭘 한 걸까?
〈영원 같은 밤에〉 235쪽
다만 그때쯤 나는 적어도 내가 만드는 노래의 주인이기로 마음먹었다는 거야. 여러 상황의 압박 사이에서 나는 홀로서기를 결정했어. 누군가의 조력이 없다면 완전히 망해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내 노래의 주인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인생에 ‘자의’라는 오만한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선택은 늘 나의 몫이었다고 믿고 싶지만, 그 결정들이 진짜 ‘나’의 것이었는지는 자신이 없었어. 돌아볼수록 그 모호함은 늘 발끝 언저리에 남아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거든.
〈영원 같은 밤에〉 241쪽
두렵고 또 두렵지 않은 마음으로
무대의 아래에서, 삶의 모든 순간에서
찬란을 발견하고 음악을 세공하며 산다는 것
‘찬란을 기대하지 않는 찬란’의 태도와 지향이 끝내 지켜내는 것은
보편과 정상성의 취향에 가둘 수 없는 우리의 고유한 서사, 그 자체다
“눈이 아니라 마음이 부시는 이런 빛을 ‘찬란’이라 일컫는 것인지……” _요조 뮤지션, 작가
“그러므로 이 책은 ‘심장박동’이다. 프롬을 영원히 사랑하게 되겠구나.” _안희연 시인
싱어송라이터 프롬Fromm 이유진의 첫 산문집
꿈결 같은 잔향의 따스함 속에서, 늘 상실을 향할 뿐인 계절을 응시하며 끝없이 잃고 그리워하고 그러나 결코 차가워지지 않는 청춘의 아이러니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프롬. 그의 첫 산문집 《찬란을 기대하지 않는 찬란》이 출간되었다. 그는 첫 산문집을 쓰며, 아스라한 시어와 선율을 스스로 세공하고 소리의 캔버스에 구현하며 살아가는 이가 매일 마주하는 환희와 슬픔, 그 과정의 찬란함과 두려움을 아프도록 솔직하게 담아냈다.
“우리가 쓰는 말하고 테레비에 나오는 말하고 뭐가 다르노?”라며 의아해하던 부산 소녀 이유진은 스무 살, 서울의 한 고시원으로 캐리어 하나 끌고 혼자 떠나왔다. 가수가 되고 싶었고, 그보다 자기 음악을 더욱 하고 싶었던 그는 아이돌 보컬 트레이닝 수업을 그만두고 홍대 앞 작은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스며들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직접 모든 곡을 쓰고 프로듀싱한 첫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음반상에 노미네이트되고, 그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그에게 찬란한 앞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끈은 그냥 나만 잡고 있는 끈이 아닐까, 내가 놓으면 예술가의 삶은 끝나버리는 거 아닌가.’ 그는 우여곡절 끝에 기획사를 나와 두려움을 딛고 독립음악가의 삶을 선언한다. 언론 인터뷰 중 ‘인디신의 BTS’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기준 미달의 ‘불법 싱어송라이터’ 같다고 농을 치면서도 홀로 방에 앉아 아주 사적인 고찰로 쌓아 올린 것들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올 때의 기쁨이야말로 음악 하며 사는 삶의 이유라고 고백한다. 언젠가 저 여름밤을 수놓은 피날레 불꽃과 같은 뮤지션을 꿈꾸었던 그는 이제 불꽃과 불꽃 사이 깊은 고요와 적막 속에, 그 사이사이의 지난한 보통의 날들에서 발견하는 작은 설렘과 기대 속에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찬란이 있음을 쓴다.
이 책에는 작가의 필름 사진들로 하나의 서사를 엮어낸 사진 산문 〈사라지기 위해 무늬가 되는 것들은〉을 수록했다. 또한 이 책을 위한 특별한 선물로 한정 공개하는 CD 〈찬란 플레이리스트〉에는 첫 산문집을 위한 작가의 미공개 데모 〈슬픔을 위한 체리〉를 비롯해 권영찬, 전진희 두 뮤지션이 프롬의 곡을 피아노 연주로 편곡하여 수록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할 이야기를 결국 노래로 만들어 세상에 까발리는 행위,
이 모순적인 순간에 내가 진짜 인간이라고 느껴”
K-POP 자본이 차별화된 인디신의 다양성까지 흡수하여 잘 만들어진 음악이 쏟아지는 시대, 그런 한편 자기 방 침실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더 이상 ‘인디’라는 이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시대다. 곡을 쓰는 일부터 음반 프로듀싱, 비주얼 아트워크, 공연 기획과 프로모션 그리고 사장의 일까지 모두 스스로 해내는 독립음악가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작가는 ‘오로지 내가 스스로 숨을 쉬고 체력을 안배해가며 조금씩 헤엄을 치고 있는 기분’이라며, 어떤 날은 추천 알고리듬에 따라 끝없이 노래를 듣는 일이 어쩐지 미안하고 피로해져 음악 없이도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우울해졌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두려움과 권태에도 음악 하는 일을 계속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에게 이 일이란 성취해야 할 결과 이전에 세상의 빛과 그림자들에 속절없이 매혹되는 일이며, 바래고 재조합되는 기억 속에서 그만의 서사가 되려는 한 편의 이야기를 기어코 완성해내고 누군가에게 가닿으려는 가장 근원적 욕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노래를 만들 줄 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한 방식, 조금 덜 외로운 인간으로 사는 방식, 매일의 슬픔을 조금씩 지워가고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이 일은 참 탁월하다고 느끼니까. 내가 마주한 시간들을 시기마다 하나의 결과물로 만든다는 것. 우리가 어릴 때 나눴던 꿈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가끔 너무 감사해서 다 가짜 같아.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마저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마음.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할 이야기를 결국 노래로 만들어 세상에 까발리는 행위. 이 모순적인 순간에 내가 진짜 인간이라고 느껴. 뜨거운 피가 흘러 관심과 온기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신의 피조물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야.”(본문에서)
킥킥 대며 웃다가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온전히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천생 이야기꾼, 프롬
그러나 프롬의 서정적인 음악들이 그러하듯이, 하루와 계절이 지나는 빛과 어둠의 시간을 예민하게 감각하며 상처로 남은 지난날들을 섬세한 언어로 치유하는 산문을 기대했다면, 이 책에서 만나는 작가의 또 다른 면모에 놀랄 것이다. 그는 ‘오바쎄바’ ‘또또분식’ ‘크롬이요?’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계절의 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짝이는 서정의 문장들로, 때로는 가장 슬픈 이야기로 독자를 담담히 초대해놓고 급습하듯 웃음 버튼을 누르니 우린 눈가가 촉촉한 채로 킥킥 대고 웃다가 너덜너덜하게 넓어진 마음으로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여기에는 부산 사람의 궁둥이 들썩이는 신촌 도착기와 그때 그 가난의 미열과 훗날 음악이 될 일상의 작은 경이들이 능란한 입담으로 버무려져 있다.
“신촌과 이대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혼자 입을 틀어막고 궁둥이를 들썩이며 오두방정을 떤다. 커브를 도는 버스 차창에 얼굴을 딱 붙이고 이대 골목길이 보이려나 한참을 째려본다. (…) 처음 영등포의 큰 표지판 아래를 지날 때는 ‘영등포’라는 글씨의 위압감이 나를 짓눌러 버스 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고, 여의도공원을 지날 때는 글자 속 동그라미 네 개가 떠나온 거리만큼의 속도로 심장을 훅, 하고 관통해 지나는 것만 같았다.”(본문에서)
작가의 동료 예술가들은 뮤지션 강아솔의 말대로 ‘탐잼 인간’. 자기 노래와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미칠 듯이 웃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상대를 파고들어 웃길 타이밍을 노리다가도 집으로 돌아가면 가만히 자신의 시간에 몰두한다. 기타를 튕기고, 시나리오를 쓰고, 드로잉을 하고, 책을 엮는다. 작가는 문득 모든 삶이 웃음과 어울려 지나가는 순간임을 깨닫는다. 더불어 ‘우리가 만드는 소리와 이야기는 그저 예술이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고리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각자의 삶과 맞물려 있다는 것도’. 남들보다 조금 더 반짝이지 않으면, 세상이 권하는 정상성과 보편의 취향에 동의하지 않으면 오래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 ‘찬란을 기대하지 않는 찬란’의 태도와 지향이 끝내 지켜내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서사, 그 자체가 아닐까.
작가정보

싱어송라이터 프롬Fromm이자, 맥신Maxine 레이블의 대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옮겨와 홍대 앞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따스한 석양과 몽환을 닮은 선율과 언어와 소리를 세공하는 독립음악가이자 프로듀서로 십이 년 넘도록 살아가고 있다. 2013년 《Arrival》을 시작으로 《Moonbow》 《Mood, Sunday》까지 세 장의 정규앨범을 비롯해 《Midnight Candy》 《Cellophane》 등 여러 장의 EP앨범과 싱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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