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은혜 안에 머물기
2025년 08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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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PDF (1.81MB)
- ISBN 9791193755846
- 쪽수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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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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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7
I 은혜의 보배 22
II 신년 강복 50
III 구별하는 은혜 78
IV 자유로운 은혜 99
V 사라와 하갈의 우화들 127
VI 율법과 은혜 154
VII 은혜와 영광 180
VIII 다시 만날 그 날까지 201
IX 은혜의 영광 221
X 참 장막과 그 은혜와 평강의 영광 241
은혜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베냐민의 분깃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는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의 열 배를 받는다. 비록 우리의 필요 이상은 아니나 하나님이 언약과 약속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놀라운 풍성함에 우리는 종종 놀랄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 더 살펴보자.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이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어떤 사람의 부요함은 자녀들이나 종들, 또는 그의 집안 식구들이 입는 의복을 통해 판단될 수 있다. 가난한 자의 자녀가 아무리 단정히 입는다 해도 왕자들이 입는 옷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입는 의복은 어떠한가? 그들이 어떻게 차려입고 있는지 보자. 여기서 나는 상상력이 매우 필요한 주제를 말하나 내 상상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옷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나 하늘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살 수 없는 무봉(無縫)의 의복이다. 직물의 정밀함은 상인들의 고운 베보다 탁월하며, 그 흰색은 몰아치는 눈보다 더 순결하다. 이 땅의 어떤 베틀로도 만들 수 없으며,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를 들여 나의 의의 옷을 짜셨다. 베틀의 각 바퀴마다 피 한 방울이 들어 있었고, 각 실은 그의 심장 고통으로 이루어졌다. 이 옷은 신성하며 완전한 의복이다.
에덴의 완전함 속에서 아담이 입었던 옷보다 나은 옷이다. 아담은 인간적이며 완전한 의만 가졌으나, 우리는 신적으로 완전한 의를 가진 것이다. 오, 내 영혼아, 너는 참으로 놀랍게 차려입었도다. 너의 구주 예수의 의복이 네게 입혀졌도다. 다윗 왕의 옷이 요나단을 감싸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라, 그들이 성화의 의복도 입고 있도다. 그러한 옷이 또 있었는가? 문자 그대로 보석으로 단단하게 꾸며져 있다. 그는 자기 백성 중 가장 낮은 자도 매일 결혼식 날처럼 입히신다. 신부가 보석으로 자기를 단장하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주셨고 그들을 오빌의 금으로 차려입히신다. 그렇다면 자기 자녀들을 이토록 입히시는 하나님 안에는 얼마나 큰 은혜의 부요함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껏 말한 바의 결론을 맺자면, 실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부분이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온전히 알고자 한다면,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죽게 하실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독생자요 사랑하시는 이를 향해 진노를 쏟으실 때, 아버지의 얼굴에 새겨진 그 선들을 읽어야 한다. 또한 넘치는 슬픔의 파도가 그 가슴을 덮을 때 십자가 위에서 고통에 떨며 신음하는 구세주의 육체와 영혼에 새겨진 신비한 글자들을 읽어야 한다.
만일 사랑을 알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가야 한다. 그러면 피로 물든 머리와 머리털, 옷을 입은 채 온몸이 고통으로 가득한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큰 핏방울 같이 쏟아진 그 땀을, 그가 그 땀을 흘리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을 알고자 한다면, 전능자가 그 피조물들에게 조롱받는 모습을 보아야 하리라. 흠 없는 이가 죄인들에게 모욕당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리라. 영원하신 이가 생명을 잃으며 신음하고, 죽음의 고통 가운데 외치는 그 음성을 들어야 하리라. - 35-37쪽 중에서 -
또 하나, 죄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그리고 만일 그 영광스런 재림 이전에 죽음이 그를 가로막는다 해도, 그는 이렇게 안다.
“나에게는 갑작스런 죽음이 곧 영광의 시작이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화와 양심의 고요함을 소유한 그는 마지막 엄숙한 시간이 이르렀을 때,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침상에 두 발을 모으며 성도들과 친구들과 아내와 자녀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눈을 하늘에서 다시 뜨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단 한 점의 두려움도 없다.
아마도 용서받은 죄의 기쁨은 죽음의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법이다. 나는 종종 죽음의 침상 곁에 앉아 있을 때, 종교의 능력을 시험해 볼 특권을 가져왔다. 지금은 천국에 있는 한 젊은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 교회의 한 지체였다. 나는 사랑하는 한 집사님과 함께 그녀를 방문하였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폐병의 마지막 단계에 있었지만, 그녀는 참으로 아름답고도 평화롭게 보였다. 나는 그 소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과 같은 말을 내 생애에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녀는 실망도 겪었고 시험도 있었고 여러 고난도 겪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원망의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더 주님께 가까이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에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목사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내 인내가 다하지는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앞으로도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너무나 연약한 것이 슬프긴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아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저에게 매우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내가 알며, 그분께서 불말과 불수레를 보내 나를 데려가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혹시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아니오, 전혀 없습니다, 목사님. 왜 의심해야 하나요? 나는 내 팔을 그리스도의 목에 감싸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목사님. 그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나는 구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죽음의 순간이 닥쳤을 때도 지금처럼 담대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나를 떠나신다면 아닐 것입니다, 목사님. 그러나 주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이 곧 복음이고 은혜이며 믿음이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 죄 사함을 받게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 48-50쪽 중에서 -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 가운데 하나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이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복음 대신 세운다. 또 어떤 이들은 복음을 율법 대신 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율법과 복음을 수정하여, 율법도 복음도 아닌 것을 전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복음을 들여옴으로써 율법을 완전히 폐지해버린다. 율법이 곧 복음이라고 생각하며, 사람은 자선, 정직, 의로움, 절제 등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많다.
이러한 자들은 오류에 빠진 자들이다. 반대로, 복음이 곧 율법이며, 복음 안에도 어떤 명령들이 있어서 그에 순종함으로써 사람이 자격 있게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도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이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다. 또 어떤 부류는 율법과 복음이 섞여 있다고 주장하며, 율법의 순종과 하나님의 은혜가 결합되어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 또한 진리를 알지 못한 자들이며 거짓 교사들이다.
오늘 아침 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면,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다음으로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에게 보이려 한다. 율법의 도래는 그 목적에 따라 설명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이어지는 복음의 사명은 이렇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154-156쪽 중에서 -
세 번째로 “영광”이란 말은 실현, 성취, 완전한 누림을 의미한다. 그 누림이 무엇일지는, 내가 거기에 가 본 후에야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렸다. 그분의 날을 누렸다. 그분의 언약을 누렸다. 그분의 사랑을 누렸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을 누린다는 것, 그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누린다는 것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나의 큰 기쁨”이라 하였지만(시 43:4), 그것은 이 땅에서의 고백이다. 하늘에서의 누림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무게의 영광”(고후 4:17)이 될 것이다. 나는 최근 한 회중집회 주간에 그 본문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너무도 은혜로우셨고, 모든 성도들에게도 기도에 응답하셔서,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리고 매 아침 깨어날 때마다, 나는 마치 기쁨의 무게에 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제야 ‘영광의 무게’가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땅에서도 은혜의 무게를 감당하려면 강건한 체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튼튼한 영혼이 필요하다. 때로 그것은 사람을 죽일 만큼 압도적이다. 지나친 슬픔으로 죽을 수 있다면, 지나친 기쁨으로도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영혼이 확장되고 강하게 될 때는 어떠할 것인가?
하늘나라에서 오 분만 있다가 돌아온다면! 그러나 만약 돌아온다면, 나는 아마도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말들,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비밀들을 듣고 왔을 것이다(고후 12:4). 내가 거기에 가 본 적이 없기에, 하늘의 영광을 이루는 놀라운 것들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다녀온다 해도,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으니, 나는 그 성역(聖域)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겠다. 다만 이 한 가지를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거기로 가자. 그리고 직접 보자.
“그 길이 어디인가?”
누군가 묻는다. 예수께서 우리 앞에 서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당신이 또 묻는다.
“정말 그 길이 맞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곧 진리요.”
“그러나 주여, 우리가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이라.”
본문의 앞부분이 뒷부분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준다. 왜냐하면 은혜의 길이 곧 영광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 사랑하는 죄인이여, 그 길은 당신에게도 열려 있다! 당신은 은혜를 필요로 하고, 은혜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은혜를 주시리라.” 그리고 그분은 영광도 주실 것이다. 그때 당신과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해가 달을 비추면, 달도 해를 반사하여 빛을 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비추면, 우리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지금 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우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에게 감사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은혜”라는 단어는 때로 단지 값없는 호의만이 아니라 감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식사 전에 은혜를 말합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에게 감사드리자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은혜를 생각하고 은혜로 살고 은혜를 노래하자. 그리고 우리가 하늘에 이르면, 우리는 영광으로 살고, 영광을 노래하며, 모든 영광을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이”(계 1:5)께 돌리게 될 것이다. - 198-200쪽 중에서 -
서평자인 나는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며 수십 년 동안의 불성실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최고의 설교 모델이다. 미래의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좋은 교본이다. 평신도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더 깊은 은혜와 감동의 메시지이다.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 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은혜 안에 머물기이다. 은혜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이며 은혜의 가치와 그 영광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은혜 안에 머무느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찰스 해돈 스펄전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140여 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설교집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힌다.
스펄전은 단순한 설교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어린이들을 돌보았으며, 목회자 대학을 세워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그의 사역과 가르침은 현재까지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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