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2
2025년 06월 16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5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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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714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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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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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기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자 미술사가인 김인혜 작가가 한국 근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다룬 『살롱 드 경성 2』를 출간했다. “BTS RM도 열독”한다는 『조선일보』 인기 칼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묶어낸 『살롱 드 경성』의 후속작이다. 칼럼 후반부 글 20편과 새로 쓴 이응노·서세옥·윤형근 편까지 총 23명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루는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좀더 넓은 시간과 공간을 포괄한다. 오세창, 고희동, 변관식 등 1800년대 후반에 태어난 화가들부터 전혁림, 원계홍, 윤형근 등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화가들, 전통의 한국화부터 첫길을 열고 세계로 나아간 서양화가들까지 실로 넓고 다채롭다.
이들은 조선의 몰락부터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가장 큰 풍랑을 연이어 맞아야 했지만 이에 꺾이지 않았다. 통영의 전혁림이나 대구의 정점식 등 지역을 터전으로 한 화가들은 물론, 전국을 떠돌며 평생 금강을 그렸던 변관식이나 ‘방랑 화가’ 변종하, 미국으로 건너갔던 모험가 김동성, 파리에서 한국 예술의 기상을 드높였던 이응노 등 한계를 모르고 뻗어 나갔던 이들의 활약이 책을 읽는 이의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김인혜 작가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전작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사려 깊은 서술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역사적 암흑기에도 예술혼을 꽃피웠던 천재 화가들, 자신만의 예술을 위한 고뇌에 처절하게 빠져들고 예술의 맥을 잇고 살아남기 위해 연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감동을 안겨준다.
1장 격변의 시대, 예술의 경로
01 “은인자중하다 기회가 오면 와락 출동해야 하네” _오세창
02 그의 붓끝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됐다 _안중식
03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가 그린 조선인의 자화상 _고희동
04 조선의 그림판을 뒤흔든 ‘멍텅구리’ 사내들 _김동성과 노수현
05 난세에 배 띄운 어부는 어찌 이리 평화롭나 _이상범
06 금강처럼 고집 센 상남자, 그가 그린 웅대한 한국의 산 _변관식
2장 예술을 향한 간절한 기원
01 은은한 백제 불상의 빛,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열다 _전화황
02 몸무게 40킬로그램의 사내는 화폭 위를 구르며 대작을 그렸다 _박생광
03 가장 가난했던 화가가 그려낸 가장 찬란한 보물 _전혁림
04 고향이 떠오를 때마다 그린 석양, ‘상실의 시대’를 붓질하다 _윤중식
05 오직 하나의 길, 회화의 본질을 찾아 삶을 바치다 _원계홍
3장 가지 않은 길 위의 선인들
01 방에서 매일 들리던 망치 소리, 근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_김종영
02 이건희 컬렉션에만 70여 점, 다재다능했던 한국 공예의 개척자 _유강열
03 예술가들의 사랑방 주인이자 안목 좋은 소장가 _정무묵
04 천재의 날개를 달고도 끝내 날아오르지 못한 소 _진환
05 세 번이나 화구를 갖다 버렸지만, 그림은 운명이었다 _정점식
06 절망을 여행한 뒤 화가는 자신의 ‘22페이지’를 펼쳤다 _천경자
4장 한국의 예술로 세계와 통하다
01 파리까지 사로잡았으나 지독히 외로웠던 집념의 한국인 _남관
02 바람 잘 날 없던 질곡의 삶, 그 끝에 그린 것은 공생이었다 _이응노
03 “화가는 정신 연령이 다섯 살 넘으면 그림을 못 그려” _권옥연
04 예술 향해 돌진했던 한국의 돈키호테 _변종하
05 형상 너머의 형상을 표현하는 불가능에 도전하다 _서세옥
06 무심히 퍼져가는 공간, 그곳에서 열리는 차원의 문 _윤형근
미주
차마 말할 수도, 울 수도 없는 세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림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그런 세계가!
이들의 ‘한’을 합치면 그 힘만으로도 나라 하나는 거뜬히 새로 세울 판인데, 이 한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근대미술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확신한다. 확신의 근거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조각가 김종영이 말했던 사랑. 그는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사랑이 그 바탕이며, 예술은 사랑의 가공(加工)”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천은 증오나 시샘이나 분노가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사랑이다. 사람들의 애정이 모이면 힘이 되고, 그 힘이 무언가를 움직이고 가공하리라. 그런 ‘근거 있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만드는 데 이 책이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죽음과도 같다”_이응노
오세창을 존경했던 후배 화가 고희동의 회고에 의하면, 오세창은 경술국치 직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와 행동을 은인자중하며 지내다가 기회를 당하면 놓치지 않고 와락 출동하여야 하네. 두고 보게.”
그렇게 그는 은인자중하면서 고문헌을 정리하여 책을 쓰고, 금석학을 연구하여 고전을 복원했으며, 서예와 인장을 대거 수집하거나 손수 제작했다. 한가로이 노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1919년 ‘와락’ 일어나 손병희와 함께 3·1운동을 주도했고, 그로 인해 2년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장 〈01 “은인자중하다 기회가 오면 와락 출동해야 하네” _오세창〉 중에서
그가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런 일화가 있었다. 한 일본인 교수가 하얀 석고상을 가리키며 “이게 무슨 색인가?” 하고 물었다. 고희동은 왜 이런 싱거운 질문을 하는가 싶어서 “백색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석고상을 또 가리키면서 “이건 무슨 색인가?” 하고 물었다. 고희동은 내심 자신을 무시하나 싶어 기분이 나쁜 것을 참으며 마찬가지로 “백색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이 면은 빛을 받아서 희게 보이지만, 그 반대편은 광선을 못 받아 음영이 졌는데 그래도 같은 색으로 보입니까?” 하고 반문했다. 고희동은 자신의 무지함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그는 음영법을 처음 배웠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법을 익혔다. 이는 수천 년간 지속되었던 동양화의 시각과는 철저히 다른 접근법이었다.
1장 〈02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가 그린 조선인의 자화상 _고희동〉 중에서
1977년, 서울 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후원자를 얻기도 했다. 박생광이 그에게 먼저 부탁했다. “죽기 전에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니, 나를 도와달라.” (중략)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역사화를 그렸다. 1983년에 〈명성황후〉를 완성했고, 1985년에 〈전봉준〉을 그렸다. 다음으로 안중근과 윤봉길을 그릴 참이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박생광은 이미 1984년 7월에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화가의 마음은 더 급해졌고, 하루 10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렸다. 후원자 김이환은 박생광이 후두암에 걸린 이유가 늘 입으로 빨아서 뱉어낸 경면주사 때문일 것이라고 한탄했다. 물감 중에서도 유독 비쌌던 주사(朱砂)를 쓴 후에 박생광은 붓을 꼭 입으로 씻었다. 입안에서 살살 물감을 빨아낸 후 물감 접시에 조심스레 뱉어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물감을 아끼느라고 그랬겠지만, 경면주사의 광물 성분이 암을 유발했던 게 아니었을지. 박생광은 물감까지 아껴가며 후세에 보여줄 그림이 그렇게도 많았나 보다.
2장 〈02 몸무게 40킬로그램의 사내는 화폭 위를 구르며 대작을 그렸다 _박생광〉 중에서
그래서 지난 2023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원계홍의 탄생 100주년 전시는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1980년대에 유족이 보관하던 원계홍의 작품을 보고 첫눈에 반한 두 명의 소장가가 있었다. 이들은 40여 년간 작품을 오롯이 보관하다가, 화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그의 작품 100여 점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전시가 MZ세대의 입소문을 타고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사실이었다. 방탄소년단 RM을 필두로 한 젊은 관객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전시 기간이 연장되기까지 했다.
100여 년 전에 태어나 전쟁과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원계홍의 정신세계를 우리 세대가 이해하기는 도무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화가의 말대로 ‘회화의 본질’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통하는 것일까? 원계홍은 그 사실을 이제라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로지 하나의 길, 그림 그리는 일에 바쳐 이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2장 〈05 오직 하나의 길, 회화의 본질을 찾아 삶을 바치다 _원계홍〉 중에서
이상하게도 이런 불안과 행복이 뒤엉킨 상태에서 그린 천경자의 1960년대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당시 그녀의 작품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우면서 미세한 불안감으로 떨린다. 이른바 ‘여성적 감수성’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표현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통상적으로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오류’로 치부되던 것들, 즉 연약함, 불안감, 헛된 희망 같은 것이 천경자의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주제로 등장했다. 슬프고 청승맞고 부서질 듯 여린 감성이 꿈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마르크 샤갈 부럽지 않은 환상적인 작품들이다.
3장 〈06 절망을 여행한 뒤 화가는 자신의 '22페이지'를 펼쳤다 _천경자〉 중에서
1976년 늦가을, 최순우가 도쿄에 있을 때 그는 『타임』 도쿄지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최 선생, 미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으십시오. 서울 홍익대 교수이며 최 선생의 가까운 친구 한 분이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최순우는 유강열의 급서 소식을 이렇게 들었다. 유강열은 이날 새벽 심장마비로 56세의 생을 마감했다.
유강열의 마지막 연구조교였던 신영옥은 유강열이 죽기 하루 전날 밤, 우연히 신촌 길거리에서 그를 만났다고 한다. 술 한잔 걸치고 택시를 잡으려는 유강열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유강열은 “너는 열심히 해서 작가가 돼라.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라는 격려의 말을 남기면서, 스스로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나도 이제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
3장 〈02 이건희 컬렉션에만 70여 점, 다재다능했던 한국 공예의 개척자 _유강열〉 중에서
그는 1958년 《살롱 드 메》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점차 프랑스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1952년 도쿄에서 보았던 그 《살롱 드 메》에 어떻게든 입성한 것은, ‘집념의 사나이’에게 주어진 정당한 보상이었다. 자크 뷔스(Jacques Busse)라는 《살롱 드 메》 위원이 남관을 높이 평가했고, 남관은 《살롱 드 메》에 거의 매년 초청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런던, 함부르크 등 유럽 유수의 화랑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급기야 그는 1966년 프랑스의 망통에서 열린 《국제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유럽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인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àpies)가 명예상을 받았던 해에 한국인이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였다. 한국 신문에도 이 소식이 대서특필되었고, 이를 기념해 남관의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는 1968년에 짐을 싸서 귀국하며 신문 인터뷰에 대고 말했다. “나는 할 일을 하고 돌아왔다.”
4장 〈01 파리까지 사로잡았으나 지독히 외로웠던 집념의 한국인 _남관〉 중에서
그리고 동백림 사건이 터졌다. 1967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였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 체제가 견고해질 무렵이었다. 동백림 사건은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동백림(東伯林, 동베를린)을 드나들면서 북한과 내통하여 이적 활동을 펼쳤다는 죄목으로, 유럽의 문화예술계와 학계에서 활동하던 인사 194명을 잡아들인 사건이었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가 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중략) 이 사건으로 이응노는 수차례 법정에 섰다. 어떤 때는 “우리 모두 같은 민족 아닙니까?”를 외치며 꺼이꺼이 울었고,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을 때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허무하게 웃었다. 그가 울고 웃던 장면들은 모두 사진으로 찍혀 시대의 기록으로 남았다.
4장 〈02 바람 잘 날 없던 질곡의 삶, 그 끝에 그린 것은 공생이었다 _이응노〉 중에서
베스트셀러 『살롱 드 경성』,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오다!
“김인혜의 목소리에 의해 험난한 한국 근대사를 살다 간
100명의 작가가 부활하기를 기대한다!”_양정무
미공개 원고
3편 추가 수록
난세의 구한말 우리 고유의 미를 지켜낸 한국화의 거장들과
개화의 물결 속 첫길을 낸 근대미술의 선구자들까지
우리 예술의 명맥을 잇고 마침내 세계로 뻗어 나간
위대한 화가들의 고뇌와 분투를 만나다!
예술을 향한 간절함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계보와 스펙트럼
우리의 눈앞에 되살아난 천재 화가들의 놀라운 성취
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크게 4가지로 보여준다. 1장은 1800년 후반에 태어난 한국화 거장들이다. 자칫하면 한국화의 명맥이 끊어질 뻔했던 이 시기에 화가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돕고 전통을 혁신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오세창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스승이었고, 안중식은 한국 화단의 거두인 제자 노수현과 이상범을 각별히 아꼈다. 2장은 예술을 향한 간절함 하나로 시대와 개인의 불운을 이겨낸 화가들의 이야기다. 재일조선인으로 어렵게 살다 두 형마저 억울하게 잃었지만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불상을 그렸던 전화황, 가난 속에서도 죽기 전까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많아 물감을 입으로 씻어가며 그림을 그렸던 박생광 등을 통해 이들의 집념과 분투를 엿볼 수 있다.
3장은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한 이들의 이야기다. 근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부터 이건희 컬렉션에만 70여 점이 있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던 한국 공예의 개척자 유강열, 우글우글한 뱀 그림으로 미술계에 충격을 던졌던 희대의 예술가 천경자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4장은 세계로 뻗어 나간 화가들이다. 《살롱 드 메》에 입성하며 파리 예술계에서 확고히 입지를 다졌던 남관부터 비장한 결심으로 파리로 떠나 수많은 푸른 눈의 화가들을 육성하며 끝내 한국의 정신을 세계로 전파한 이응노 등이다.
화가, 작품, 시대의 맥락을 아우르며 우리 근대미술을 더 풍성하게 만난다
미술을 감상하는 일은 작품 하나만 두고도 할 수 있지만, 작품, 화가, 시대의 맥락을 알고 있을 때 훨씬 더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향유할 수 있다.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파리로 추방당했던 이응노 작가의 우여곡절 많은 삶을 이해한다면 그가 유독 개미 떼처럼 모인 군중을 많이 그린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정점식은 또 어땠는가. 일제 폭압이 극심했던 1920년대 유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구차한 얘기는 속으로 삭이는 성품이었던 그의 삶에 대해 듣는다면, 이를 악물고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추상화도 더는 막연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며 직접 근대 화가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유족들과 인터뷰하며, 전시를 기획해 온 김인혜 작가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 근대미술의 보석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아 있는 자료로 화가들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고, 173개의 도판과 함께 각 작가의 작품 세계를 선명히 구현하고자 했다.
저자 김인혜는 시대의 파란에 스러져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데 전시한 근대미술관 하나 갖추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를 간파한 듯, 한국종합예술학교 양정무 교수는 “조르조 바사리가 100명이 넘는 르네상스 작가를 불멸의 예술가로 만들었듯이, 김인혜의 목소리에 의해 험난한 한국의 근대사를 살다 간 100명의 작가가 우리 눈앞에 부활하기를 기대한다”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이 책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입문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근대미술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미술 애호가, 예술계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도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 눈부신 성취를 남기고 떠난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뒷모습은 우리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묵직한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작가정보
미술사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1930년대 중국 목판화 운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을 시작했다.
2012년부터 한국 근대 작가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수집 및 구축하는 업무를 처음 기획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중섭:백년의 신화》, 《유영국:절대와 자유》, 《윤형근》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고, 2021년에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을 기획했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연재를 시작했고, 2022년 월간미술대상, 2023년 정진기언론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24년 9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2023년 첫 책 『살롱 드 경성』을 펴냈고, 『청소년을 위한 박물관 에세이』를 공저했다. 앞으로도 전시 및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에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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