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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엘리

2025년 04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4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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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1.22MB)
ISBN 9791191247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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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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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소설, 꿈 기록, 설화 등을 처음으로 한데 모은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벤야민은 사는 내내 소설, 꿈,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문학작품들을 썼다. 그 벤야민 사상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이야기는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사이의 문턱을 넘나드는 꿈의 세계,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성애적 긴장감,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 도박과 점술, 소망의 독특한 관계 등을 아우르며 벤야민이 사는 내내 천착했던 주제들을 탐구한다. 한편 이 책은 각 단편이 시작되는 책장마다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예술가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들을 수록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다.
1부: 꿈과 몽상

몽상
1. 실러와 괴테: 어느 문외한의 비전
2. 어느 크고 오래된 도시에서: 미완성 노벨레
3. 건강염려증 환자가 있는 풍경
4. 황후의 아침
5. 저녁의 목신
6. 두 번째 자아: 새해 전야의 성찰을 위한 이야기


7. 이그나츠 예조베르의 『꿈의 책』에 실린 꿈들
8. 너무나 가까운
9. 이비사에서 꾼 꿈
10. 꿈꾸는 사람의 자화상들
손자 | 관찰자 | 구애자 | 식자 | 비밀 엄수자 | 연감 편찬자
11. 꿈 1
12. 꿈 2
13. 또 한 번
14. 투트 블라우폿 턴 카터에게 쓴 편지
15. 어느 크리스마스캐럴
16. 달
웰티의 〈달밤〉 | 물잔 | 달 1 | 어둠 속에서 | 꿈 | 달 2
17. 일기
18. 서평: 알베르 베갱, 『낭만적 영혼과 꿈』

2부: 여행

도시와 이동
19. 숨기고 있던 이야기
20. 비행사
21. 아버지의 죽음: 노벨레
22. 세이렌
23. 흙먼지로 흩어져버린: 노벨레
24. D...y 저택
25. 서평: 프란츠 헤셀, 『내밀한 베를린』
26. 서평: 범죄소설은 여행 중

땅과 바다의 풍경
27. 북유럽 바다
도시 | 꽃 | 가구 | 빛 | 갈매기 | 조각상
28. 고독의 이야기들
성벽 | 파이프 | 불빛
29. 마스코테호의 항해
30. 선인장 울타리
31. 서평: 풍경과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

32. 서평: 프랑크푸르트 동요 모음집
33. 문장 공상
34. 〈디 리터라리셰 벨트〉에서 제작한 1927년 벽걸이 달력
35. 수수께끼
외지인의 대답 | 간명하게
36. 라디오 게임
37. 짧은 이야기들
코끼리를 ‘코끼리’라고 하는 이유 | 배가 발명된 경위, 그리고 그것을 ‘배’라고 하는 이유 | 우스운 이야기: 아직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38. 네 가지 이야기
경고 | 서명 | 소원 | 감사
39.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40. 행운의 손: 도박에 관한 대화
41. 식민지 교육론: 알로이스 얄콧치, 『동화와 현대』 서평
42. 기초를 푸르게: 톰 자이데만-프로이트, 『놀이 입문 2』 및 『놀이 입문 3』 서평-놀이 입문서에 관한 추가 논의

편집자 해제: 발터 벤야민과 말장난의 흡인력

편집자의 말
파울 클레에 관하여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널찍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갈 때는 한쪽이 절벽이었는데, 폐허가 된 신전이 절벽 위쪽까지 높이 튀어나와 있었고, 절벽 아래에서는 거센 강물의 슬픈 포효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토실한 남자 하나가 벼랑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양손을 비비는 모습은 편안해 보였고 웃는 표정은 떨떠름했다. 남자 앞에는 밀랍과 철필이 놓여 있었다. 우리를 본 그가 뭔가를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최초의 문필가, 호라티우스예요.” 나의 인도자가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똑똑히 알려주었다. 얼마나 갔을까, 나는 급히 발을 멈추었다. 한 층계참에 주름이 크게 잡힌 토가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연설 중이었고, 약해 보이는 몸은 연설을 멈추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느라 떨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외치고 있긴 했지만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경악에 사로잡혔다.
-- 「실러와 괴테」 중에서

나이 든 백발 남자 하나와 젊은 남자 하나가 조용한 마침표처럼 정적으로 가르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를 싣지 않은 들것을 옮기는 중이었다. 젊은 쪽은 이따금 들것에 시선을 보냈고,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얼마 후부터는 입에서 슬픈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산의 절벽에서 수천 번의 흐느낌으로 메아리쳤다. “붉은 아침이여, 붉은 아침이여, 나를 이른 죽음으로 인도하라.”
-- 「건강염려증 환자가 있는 풍경」 중에서

그녀는 문제 하나를 추적했다. 무슨 문제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황후가 주변 사람들과 그 문제를 나누던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얼버무리는 대답뿐, 거의 격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둔한 얼버무림뿐이었던 탓에, 황후는 그 문제를 들고 점점 더 아랫사람에게로, 말동무에게서 시녀에게로, 시녀에게서 마구간지기에게로, 마구간지기에게서 부엌 하녀에게로, 끝내 아이들에게로 내려가야 했다. 과연 아이들은 그녀의 문제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천둥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밖에는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창문 앞 기도대에서 무릎을 꿇고 신께 거듭 빌기도 했건만.
-- 「황후의 아침」 중에서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 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처음으로 경험한 그리움, 아예 그리움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된 그리움이었다.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 「너무나 가까운」 중에서

약하게 흔들리는 밤의 빛이 손과 나를 안정시켜주고 나면, 하나의 집요한 질문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곤 했다. 어쩌면 그 질문은 내 방문 앞에 소음 차단용으로 달려 있던 커튼의 주름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질문은 수없이 지나간 밤들의 찌꺼기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아니라면, 그 질문은 달이 내 내면에 침투시킨 의아함의 이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이었다. 세상에는 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세상은 왜 있는 것일까?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니, 나는 그것이 늘 놀라웠다. 그때 내게 세상이 없다니 정말일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고 해도 세상이 있다니 정말일까 하는 의심보다 정도가 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있음이 아무것도 없음을 향해 윙크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달은 세상의 그 있음을 상대로 가벼운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 「달」 중에서

독서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철도의 신들이 마음에 들어할 뭔가를 하고 있다는 애매모호한 기분을 느끼며 그 펄럭이는 책들을 향해 손을 뻗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승객은 자신이 이제 저 헌금함에 주화를 넣고 신도가 되면, 밤을 밝히면서 타오르는 화로의 신이, 기차 곳곳에서 장난치는 연기의 정령들이, 세상 모든 자장가를 알고 있는 아늑한 객실의 유령이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것을 잘 안다. 승객은 그 모든 신을 꿈에서 보았기에 다 알고 있다.
-- 「서평: 범죄소설은 여행 중」 중에서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천 년 전 지구가 얼려둔 나날이. 사람은 스물네 시간마다 하루를 소모하지만, 지구는 하루를 이렇게 반년에 한 번씩 소모할 뿐이다. 이곳이 아직 무사한 것은 그 덕분이다. 시간은 바람 없는 고요한 정원의 키 작은 나무에 가 닿지 못했고, 선원들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당도하지 못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그것들 위에서 두 미광이 만나 구름을 나누어 가지듯 그것들을 나누어 가지고는 당신을 빈손으로 집으로 돌려보낸다.
-- 「북유럽 바다」 중에서

포템킨 총리는 우울증이 심했고 거의 주기적으로 재발했는데, 그런 시기에는 그에게 가까이 가거나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궁정에서는 아무도 그의 우울증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특히 그의 우울증을 언급하면 누구라도 카타리나 여왕의 눈 밖에 나게 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장관의 우울증이 유달리 길게 진행되면서 심각한 실정(失政)이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여왕이 처리하라고 한 서류들이 쌓여 있었지만 포템킨의 서명 없이 서류를 처리하기는 불가능했다. 고위 관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 「네 가지 이야기」 중에서

벤야민은 최고의 이야기꾼인 프루스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였다.” 벤야민에 대해, 그리고 벤야민 본인의 픽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 해제: 발터 벤야민과 말장난의 흡인력」 중에서

“벤야민이 쓴 문학작품들이 지금껏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된 적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가디언

아렌트, 아도르노, 브레히트, 버틀러, 이글턴, 지젝, 손택, 쿳시, 버거…
수많은 현대의 지성들이 추앙한 모더니티의 증인이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을 붙들고자 했던
그 무엇으로도 분류될 수 없는 문인 발터 벤야민
그의 이름 아래 출간된 유일한 문학작품집 국내 초역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 50여 점 수록
주디스 버틀러, 존 쿳시 강력 추천

위대한 문인-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꾸었을까?
벤야민 이론의 공명판이 된 그의 문학작품들

벤야민은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껏 알려진 그의 많은 문장에서도 문학적 섬광이 엿보이고, 나아가 그의 글 자체가 시문학 없이 생겨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벤야민의 글을 접해본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문학작품을 쓰는 벤야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벤야민이 픽션을 쓴다면 어떤 작품들을 창조해냈을까?’ ‘벤야민이라면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어떤 종류의 문학으로 빚어내고 싶어했을까?’ 노벨레, 꿈 기록, 철학적 우화, 비유담, 설화, 수수께끼 문제 등을 묶은 이 문학작품집은 그 오랜 궁금증을 매력적으로 해소해준다. 이 책은 벤야민 생전에는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텍스트들이기에 출간이 더욱 특별하다.
이 책이 지닌 또 한 가지 특별한 면모는 여기 실린 작품들이 벤야민의 아이디어, 사유의 움직임을 앞서 공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네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차르의 말단 관리 슈발킨과 유대교 경건파 걸인은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에 다시 등장한다. 「두 번째 자아」에 등장하는 ‘카이저파노라마’는 『일방통행로』 속 글을 되비추는 한편으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그리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 배치된 자서전적 콩트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듯 이 책은 밴야민이 자신의 이론적 관심사들을 어떤 형식으로 연출하고 연기하고 선보였는가를 예시한다.

이야기 들려주기에 대한 벤야민의 이론과 실천-실험
경험의 전달이 불가능한 ‘지금’ 시대에 이야기의 가능성을 잇다

벤야민이 문학적 글쓰기를 계속해나간 배경에는 자신만의 이야기 이론이 있다. 그는 ‘이야기 들려주기(구술,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론을 여러 텍스트에서 다루었는데, 「이야기꾼」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여기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경험은 민담과 동화의 형태로 대대로 전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대를 대대로 이어주었던 “경험이라는 붉은 실”은 전쟁과 함께 끊어졌다. 생존자들의 “연약한 육체”는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유출과 폭발의 역장”에 휘말렸던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는 것.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사라지고 있는 경험의 전달 가능성을 다시 새롭게 상상한다.
벤야민이 찾은 방법은, 경험을 휘발시키는 ‘저널리즘’ 언어 대신 구술 전통을 모방해 이야기를 들려주어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텍스트들에서 구술 전통을 모방해 목소리를 겹겹이 쌓는다. 이를테면 한 선장이 한 승객에게 썰을 풀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기가 겪은 신기한 일을 들려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지인 이야기를 전하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는 인용, 수수께끼 같은 말, 시점들이 쌓인 세계를 창조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의 채록과 재구술이라는 긴 전통을 연장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경험은 새로운 지반을 찾는다. 말하자면, 벤야민이 시도했던 것은 변화된 조건들 아래에서 스토리텔링의 구술성을 재활성화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참호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까? 그가 자신의 문학 실험을 통해 거듭 탐구한 테마는 꿈과 공상, 여행과 소외, 놀이와 교육론 등이다.

기상천외하게 밀어붙이다가 아이처럼 허물어뜨리는 이야기의 세계
책의 구성: (1)꿈과 몽상, (2)여행과 이동, (3)놀이와 교육론

이 책은 벤야민의 문학적 작업물을 꿈과 몽상, 여행과 이동, 놀이와 교육론 등 세 부로 나누었다. 여기 실린 글들에서 벤야민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을 놀라운 방향으로, 형식이 스스로 허물어질 수도 있을 지점까지 밀어붙인다. 먼저 1부의 글들은 꿈과 몽상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가 밤에 꾼 꿈이 지금 이 세계의 고통을 반영하고 과장한다면, 그가 쓴 공상 작품들은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그려 보인다. 꿈결 같은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으스스한 배회라는 단골 테마가 그런 고통의 반영과 과장을 보여주고, 「어느 크고 오래된 도시에서」나 「저녁의 목신」에서 묘사되는 색채는 ‘고통 없는 세계’의 비전을 배경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여행을 다루는 2부는 지상과 해상의 풍경을 지나는 이야기들과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 그리고 거기서 자극받은 성애적 동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한다는 것은 친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행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생활을 열어낸다. 이를테면 「마스코테호의 항해」에서 선상은 바다 위의 마법 도시다. 광란이 규범이고 선장은 아무 권위도 없다. 또 여행은 문턱을 가시화한다. 기차역과 항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이다. 「북유럽 바다」 같은 여행담에서는 합리적 이성의 세계와 망상의 세계를 나누는 문턱이 낮아진다. 무엇보다 여행-이동은 어딘가로 인도한다. 「숨기고 있던 이야기」처럼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건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 가게 된 사람은 가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3부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으로 놀이와 교육론을 제시한다. 여러 편의 글이 말장난과 놀이를 탐색하고 있다. 벤야민의 사유에 비추어보면, 어른들은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 연장선에 도박과 점술도 있다. 「행운의 손」의 주제는 도박의 탈을 쓴 놀이다. 놀이하듯 배우는 것은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여서, 「1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에서는 라디오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놀이하듯’ 다룬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글은 대개 짧다. 벤야민은 이야기 형식을 실험하며 이야기가 품은 에너지를 짧은 분량으로 압축했는데, 덕분에 에너지는 최대한 강력한 상태로 집약된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들과 언젠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현실들의 농축물을 만들어 삼투시킨다. 그런 글들은 만질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세계의 무언가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한편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때로 마법처럼 판타지처럼 압도적이고 신비한 경험이 되도록 부려놓는다.

* * *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벤야민이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조각조각 써 내려간 까닭에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라, 제대로 편집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파편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벤야민 연구자들의 충실한 편집과 분류, 벤야민의 사유와 예술론을 관통하는 해설, 마지막으로 벤야민이 사랑했던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글 한 편 한 편과 엮은 노력 덕분에 이 모음집은 벤야민이라는 신비로운 별자리를 완성해낸다.
『고독의 이야기들』이 지닌 가치는 ‘벤야민이 위태로운 정치적 현실과 실존 속에서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했었고, 그것을 묶어낸 책이 처음으로 나왔다’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벤야민 평생의 관심사였던 전승된 경험으로서의 이야기, 꿈과 환상, 여행,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소외의 문제 등을 그의 사상에서 어떻게 배치해서 읽어내야 하는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맥락을 가시화하는 책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찬사처럼 이 책은 벤야민 읽기의 메커니즘을 바꿔놓을, 벤야민 자신이 의도했던 사유의 단초가 집약된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 *

『고독의 이야기들』은 샘 돌베어, 에스터 레슬리, 서배스천 트루스콜라스키가 편역한 Walter Benjamin, The Storyteller: Tales out of Loneliness(London and New York: Verso, 2023)를 완역한 것으로, 한국어판에서는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II, IV, VI, VII(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1)을 공동 저본으로 삼았다. 표지 제목은 벤야민이 사용한 독일어로 표기했으며, 이 책과 관련이 깊다고 판단하여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 실린 「달」을 추가로 번역해 실었다. 모두 원서 편집자들의 동의를 얻었다.

작가정보

독일 출신 유대계 언어철학자, 문예학자, 비평가, 번역가. 1892년 7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베를린대학, 뮌헨대학, 스위스 베른대학에서 철학, 독일 문학사 및 예술사, 심리학을 공부하고, 1919년 6월 베른대학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졸업 후 여러 신문사와 출판사에 에세이와 서평 등을 기고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학문 연구를 계속하여 1925년에 교수 자격 취득 논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제출한다. 그러나 그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한 교수들과의 갈등 끝에 심사 신청을 스스로 철회한 뒤, 대학 사회로 진출하려던 생각을 접고 재야에서 문예비평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한다. 그는 유물론적 사유와 유대 신학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아방가르드적 실험 정신에 바탕을 둔 글을 써나가며 '좌파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1940년, 테오도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지원 아래 미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프랑스를 빠져나가던 중 프랑스-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서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괴테의 친화력』 『독일 비애극의 원천』 『일방통행로』 『사유 이미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 『모스크바 일기』 『독일인들』 『파사주 작업』(미완성) 등이 있고,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이야기꾼」 「생산자로서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가의 과제」 「폭력 비판을 위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등의 에세이를 남겼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발터 벤야민이 노벨레의 형식을 갖춰 집필한 글들과 문학적 테마가 담긴 글들을 묶은, 벤야민의 이름 아래 출간된 유일한 문학작품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에로틱한 긴장감, 이성과 환상을 넘나드는 꿈의 알레고리,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을 아우르며, 벤야민이 사는 내내 천착한 주제들을 문학이라는 그릇으로 빚은 결과물이다. 한편 각 단편이 시작되는 책장마다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예술가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들을 수록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다.

번역가. 옮긴 책으로 『발터 벤야민 평전』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아카이브 취향』 『에세이즘』 『프닌』 『비폭력의 힘』 『진실과 회복』 『3기니』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자살폭탄테러』 『미국 고전문학 연구』 『마음의 발걸음』 『걷기의 인문학』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등이 있다.

그림/만화 파울 클레

스위스 출신 독일 화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로, 색과 선을 탐색하는 작업으로 유명했다. 그가 쓴 방대한 색채론 자료와 1921년부터 1931년까지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형식과 조형론에 관한 글들』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토대를 마련해준 텍스트로 여겨지고 있다. 1937년, 나치는 독일 내 공공 소장품 중 100점이 넘는 클레의 작품을 '퇴폐 예술'로 명명하고 압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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