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과 그의 시대
2025년 03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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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72245009
- 쪽수 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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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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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은 단순한 정보기관장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은 핵심 기획자였다!
국가정보 연구의 선구자 정주진이 전하는
논쟁적 인물 이후락의 야망과 생애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후락만큼 중요한 인물은 드물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 실세로서 권력의 최전선에서 정치를 설계하고, 정보기관을 활용하여 체제를 공고히 했던 전략가였다. 박정희가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던 시기, 이후락은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 청와대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하며 그의 눈과 귀, 두뇌가 되었다.
특히,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그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주도했다. 1972년 평양 밀행을 감행해 김일성과 회담을 진행함으로써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으며, 유신체제를 기획하여 박정희의 종신집권체제를 제도화했다. 또한, 김대중 납치 사건을 실행하며 독재 권력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락은 단순한 정보 책임자가 아닌 정보기관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적극 활용한 정치인이었다.
이 책은 박정희 정권 내 권력 투쟁과 정보기관의 역할을 탐구하는 국가정보의 역사서이자, 이후락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평전이다. 저자인 정주진 박사는 국가정보기관에서 30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 삼아 당대 인물들의 증언과 회고, 언론 기사, 비밀 해제된 정부 문서 등 방대한 사료를 분석하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후락의 행적을 재구성했다. 한국 정보기관의 역사와 작동 원리를 분석해온 그는, 이번 저서를 통해 이후락을 중심으로 박정희 시대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이후락은 시대가 만든 인물인가, 아니면 시대를 만든 인물인가?
그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 정치, 정보, 권력이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보기관이 권력과 결합할 때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중요한 연구서이자,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필독서가 될 것이다.
이후락은 누구인가?
추천사
남북대화의 개척자(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행정학 박사)
이후락의 공과에 대한 실증적 접근(최용환 전 주이스라엘 대사)
박정희 대통령 다시 보기(최현철 전 국가정보대학원장, 법학 박사)
1장 이후락과 김형욱의 박정희 3연임 공작
김종필의 반발과 무마
박종규의 김형욱 전화 도청
이만섭의 3선 개헌지지 전제조건
이만섭의 배후 김재규 육군보안사령관
육군 보안사령관을 자랑스러워한 김재규
보안사의 탄생과 변천
김형욱과 경합하다 거세된 윤필용
박종규와 전두환과의 인연
윤필용의 심복이 된 노태우
김재규가 10·26 저녁 김계원을 쏘지 않은 이유
박종규를 하수로 본 김형욱과 김종필
김재규 보안사령관과 윤필용 수경사령관의 마찰
2장 닉슨 독트린과 박정희의 불안
자주국방 노선의 역사적 배경
닉슨의 자주국방 요구
키신저가 닉슨 독트린을 입안한 이유
1970년 전후 안보위협에 대한 박정희의 인식
박정희의 충격
미 의회 대상 로비의 착상
주미 한국대사가 최초 수집한 주한미군 철수 정보
제3의 박정희 살해 시도
미국 부통령의 폭탄 발언
미 7사단 철수와 휴전선 한국군 전담 방어
박정희의 자주국방론
친미 지식인들의 고자질로 실패한 핵무기 개발
국산무기 개발을 위한 방위산업 육성
북한 게릴라 대응전략으로서의 새마을운동
대미 의회 로비의 중요성과 박동선의 부상
김형욱 부장이 박동선 뒤를 봐준 배경
배신자로 낙인찍힌 김형욱
3장 김형욱과 김대중의 내통
대선 참모장으로 픽업된 강창성
박정희와 김대중의 마키아벨리스트들
김형욱의 김대중 선거운동 지원
이후락을 중앙정보부장에 앉힌 이유
중앙정보부에 포섭된 엄창록
김대중의 중앙정보부 해체 공약
김재규의 대규모 간첩단 사건 발표
자동차 사고 암살음모 주장의 신빙성
김대중의 4대국 안전보장론
4장 항명세력 제압과 평양 밀행
70년대 초 국내외 정세의 요동
학원·종교·재야 대정부비판활동의 확산
이후락의 라오스 잠입 경험
경찰정보망을 장악한 김성곤의 도발
이후락의 항명 주동자 제압
남북 이산가족 찾기는 중앙정보부 작품
평양의 정치회담 시도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대한 북측의 반발
이후락으로의 대북창구 변경
밀사 정홍진의 평양 잠입
남북 비밀접촉의 누설과 김형욱 조사
김일성의 이후락 예찬
김일성의 박 대통령에 대한 사과
북한 제2인자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오판
남북대화는 강력한 국가건설을 위한 ‘시간 벌기’
이후락과 김종필의 국가보안법 문제를 둘러싼 충돌
이후락의 정치성 공개행보에 대한 비판
5장 국가비상관리체제의 기안
박정희의 정치제도 변혁 구상
신앙적으로 모신 위대한 지도자
자유권적 기본권의 일부 유보
베트남전 참전 조건을 저버린 미국
유신의 주역과 본당
새로운 정치체제의 창조
이후락의 김형욱 은닉자금 출처 조사
유신 전야
긴급조치권의 탄생
김재규의 유신헌법 비판
청와대 해외 정보 담당관제 신설
강창성 보안사령관의 수사권 장악
미 CIA 한국지부장에 대한 박정희의 경고
박정희의 고독
6장 이후락-윤필용 커넥션 수사와 윤필용 숙청
김형욱과 박정희의 최후의 만찬
이후락에게 물먹은 박종규의 분노
20세기 김춘추가 된 이후락
김형욱의 유정회 탈락과 해외도피 준비
병든 김재규의 서울 입성
이후락과 윤필용 유착에 대한 박정희의 불안
박정희 정권 친위부대 수경사의 탄생
이후락 후계론에 대한 박정희의 분노
노태우의 읍소
박정희의 친국
권총처럼 보인 녹음기
윤필용의 불복
박정희의 이후락 체포 지시와 김정렴의 만류
박종규 계략에 강창성 협조설
7장 강창성과 전두환의 군권 암투
군인 전두환을 키우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
김형욱의 야반도주
이후락의 김형욱 회유
미 CIA 끄나풀이 된 김형욱
강창성에 포착된 하나회
하나회의 뿌리는 오성회
박종규의 전두환-노태우 비호
이종찬의 이후락 보복 우려
보안사 친구 덕에 살아난 하나회원들
박정희의 하나회 감싸기
권력 종말의 서막
보복 대 보복의 악순환
역사가 전두환을 소환
8장 김대중 희생양 만들기의 실패
김대중과 조총련 내통 의혹
김대중의 한민통 해명
이후락의 불안과 초조
중정 6국장의 김대중 귀국 설득
강압적 송환
김대중 증언의 신빙성
박 대통령 지시설에 대한 반론들
미 CIA 한국지부장의 증언
박 대통령의 진상조사 지시
김영삼의 중앙정보부 비판
김형욱과 문명자의 협공
박 대통령의 해명
김대중의 납치행동대원 포용
9장 이후락의 퇴장
북한의 남북대화 중단 선언
일본 경시청에 꼬리가 밟힌 중앙정보부
대학가의 반발
서울법대 교수 수사 도중 사망 파문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은 조작인가
김종필의 분노
미 CIA 한국지부장의 이후락 퇴임 압력
김일성의 이후락 살해 지령
이후락의 해임과 행방불명
망명의 길목에서 만난 이종찬
도피성 망명자 이재현의 중앙정보부 비판
박동선의 미 의회 로비 단서 노출
이후락의 제2차 해외 도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이후락 프로필
연표
서평
정주진 박사의 《이후락과 그의 시대》를 읽고(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권력핵심 안에서 본 현대사의 기록(김건연 전 국정원 정책분석관)
한국정보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최성규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일류정보기관을 위한 성찰과 전진의 길잡이(변경석 전 국정원 정책정보관)
54년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의 행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김민상 중앙일보 기자)
● 책 속으로
노태우는 1961년 6월 10일자로 방첩부대장에 부임한 김재춘의 요청으로 방첩대로 옮겨 방첩대의 국가재건최고회의 담당 연락장교가 됐다.
곧이어 김복동, 권익현, 박갑용, 최찬욱 등 육사 11기가 중앙정보부에 임용됐다. 노태우는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김복동 등의 임용을 건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재춘 방첩대장이 1963년 2월 21일자로 제3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할 때 김복동 등의 임용을 건의하여 성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남은 그들의 중앙정보부 임용 배경에 대해 다른 증언을 남겼다. 이동남에 따르면 1962년 박정희 의장 경호대의 규모가 확장됐다. 그에 따라 전두환은 박종규의 지시에 따라 김복동, 권익현, 박갑용 등 13명을 추천했다고 한다.
경호대에 임용된 13명은 2주간의 경호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을 수료하는 날 김복동 대위가 술에 만취되어 소란을 피우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에 분개한 박종규 경호대장이 경호원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모두 중앙정보부로 보내버리라고 지시해서 김복동 등이 중앙정보부로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 51쪽
하지만 미국이 모르게 추진해야 했다.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핵무기 통제시스템에서 한국이 벗어나는 사태를 미국은 걱정하고 있었다.
박정희와 김종필은 미국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당시 프랑스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여 미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밟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5월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을 비밀리 프랑스에 보내 원자력 기술협력과 재처리 시설 도입을 타진했다. 오원철 경제2수석에게는 캐나다를 방문해 캔두(CANDU)형 원자로를 도입하는 협상을 벌였다.
김종필 총리는 1973년 6월 조르두 퐁피두 대통령과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 등을 만나 핵재처리 기술, 미사일 도입, 항공기 구매사업 등을 협의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75년 4월 한국의 원자력연구소와 프랑스의 재처리 국영회사 사이에 ‘재처리시설 건설 및 기술용역 공급계약’이 체결됐다.
- 99쪽
김대중은 향토예비군도 폐지하자고 했다. 향토예비군은 북한 게릴라의 청와대 기습사건을 계기로 1968년 4월 1일 창설됐다. 청와대 기습사건에 이어 그해 10월과 11월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가 나타났을 때는 그 효용을 인정받은 제도였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이를 폐지하자고 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불과 2년여 지난 시점이었고 당시 한국처럼 공산 게릴라들이 준동하고 있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서도 공산 게릴라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편으로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안보를 빌미로 전 국민을 군사 조직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 일부 예비군들이 돈을 주고 훈련에서 빠지거나 다른 사람을 대리로 참석시키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 등이 김대중의 폐지 논거였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국가존립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정책이라며 즉각적인 공약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역풍이 강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김대중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향토예비군 폐지공약을 철회하지 않았다.
- 145쪽
그에 따라 박종규는 궁금한 나머지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나 김정렴은 초특급 비밀인 유신 작업을 경호실장에게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하에 박종규에게 아무 일 없다고 딱 잡아뗐다.
이렇게 해서 박종규는 10월 17일의 계엄선포와 국회해산 등의 중대발표를 도쿄에서 듣고 깜짝 놀랐다. 계엄이 선포되던 10월 17일 밤 박종규는 도쿄 시내의 어느 요정에서 당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자격으로 도쿄에 와있던 이병희 공화당 의원과 술을 마시면서 이후락을 마구 비난했다.
아니, 각하가 정말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 그리고 이후락 그 친구도 김정렴 실장도 말이야. 비밀이라지만 나한테까지 감출 수 있는 거냔 말이야. 나한테 말해줘도 내가 연기를 그만큼 못할까. 정말 각하가 일본에 오는 것처럼 경호 준비하면 되는 거 아냐. 내 서울에만 가면 이후락 이 친구 가만 안 둘 거야(김진, 1992: 208).
- 253쪽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1월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고 대통령 직속으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최종길 교수 사망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최종길 교수가 타살됐는지 자살했는지, 간첩혐의는 사실인지 여부가 쟁점화됐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당시 최종길을 수사했던 차 수사관은 2002년 3월 신동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천지신명에 맹세코 나는 최 교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17개월간의 조사 끝에 “최종길 교수의 간첩혐의는 조작되었고 수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고 2002년 5월 24일 최종 결정했다.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 감찰실에서 최종길 사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최종길이 간첩임을 자백한 사실이 없으며 수사관들이 최종길을 고문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고문한 사실을 은폐하고 마치 최종길이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조직을 보호할 목적으로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 자살 동기를 조작했다.”고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판단했다(김학민, 2017: 464).
- 379쪽
작가정보

1958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 충남대 철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석사), 가천대 행정대학원(박사) 등에서 공부했다. 국가정보기관에서 30년 동안 정책정보담당관으로 일하다 2014년 퇴임했다. 2015년부터 사단법인 21세기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으로 일하다 2023년부터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2016년 9월부터는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로 5년간 재임하고, 지금은 전임 연구원 신분으로 한국적 국가정보이론을 연구한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정보의 역사와 주변 4강의 한반도 문제 개입 정보활동에 집중하여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정보조직-암행어사에서 중앙정보부까지』(2013, 필명: 정규진), 『중앙정보부의 탄생』(2021), 『박정희와 김일성의 스파이전쟁』(2021), 『스파이가 만든 한국사의 굴곡』(2022), 『김창룡 특무대장 암살사건 해부』(2022), 『한 권으로 읽는 국정원법 이야기』(2023)등이 있으며, 한국국가정보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인 『국가정보 연구』(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소련 군정기 북한정보체계 형성과정」(2018), 「한미 정보협력의 이완과 6ㆍ25전쟁 예측 실패」(2020), 「이승만 정부 중기 특무대기능 팽창과 특무대장의 암살」(2021), 「정보독점의 부작용에 관한 역사적 사례 고찰」(2022), 「한국정보기구 비민주적 법제 개혁 경로」(2024) 등의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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