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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김쿠만 지음
허블

2025년 03월 12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3월 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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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13MB)
ISBN 9791193078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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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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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에서 김쿠만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현장 묘사가 발군인” “AI에 대한 통찰이 깊은 소설”(김보영 소설가), “자유롭고 능청스럽게 끌고 가는 이야기”(인아영 평론가)를 설계하며 “생생한 인물들”과 “문장 사이에 잽처럼 날리는 유머”(김성중 소설가)를 능란하게 써 내려가는 그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엮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를 낸다. 표제작에서도 암시하듯 김쿠만의 소설은 미래적인 것과 과거적인 것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다. 게임 속 AI의 과거 회상담, 미래 자율주행 시대에 구식 자동차만 허가된 고장에서 벌어지는 연애 후일담, 로봇 손 시대에 초밥 장인이 고수하는 전통, 우주 전쟁에서 울려 퍼지는 뽕짝…. 하나하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향연이기도 하거니와 SF적 상황 속에서 레트로한 분위기가 넘실댈 때의 매혹이 압권이다. 그 어긋남 혹은 거리감이 유연한 입담을 통해 발현될 뿐만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보편 정서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쿠만 작가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에서 소설 쓰기가 곧 삶 쓰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과 밀착해 있으면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삶 쓰기. 그의 소설은 AI 시대 인간이 품은 느린 마음에 대한 찬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007
남쪽 바다의 초밥 047
Encyclopedia of Pon-Chak 085
백년열차 099
남해, 자율주행 금지 구역 141
이제 하와이에선 파티가 열리지 않는다 171
타란티노의 마지막 필름 203
미래 235

게임의 ‘게’ 자도 모르는 옛날 사람은 요즘 시대에도 있을 테니까. 말했잖아. 살아가는 시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고. 분명 기원전 희랍 시대에도 옛날 사람이 있었을걸?
_「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11~12쪽

일본의 초밥 전문 잡지 《すしの雑誌》는 寿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최고점인 별점 4점을 매겼다.
-한 손으로 움켜쥐는 남쪽 바다.
_「남쪽 바다의 초밥」, 52쪽

하지만 이 박사는 뭐라도 불러야 했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장병들을 위해서 말이야. 바로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노래가 〈몽키 매직〉이었던 거지.
_「Encyclopedia of Pon-Chak」, 94쪽


그들의 대화는 백년열차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갔다.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중 지루함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_「백년열차」, 140쪽

-악몽이라도 꿨어? 왜 그렇게 놀라?
-응. 우리가 다시 사귀는 꿈.
-악몽 맞네.
_「남해, 자율주행 금지 구역」, 157쪽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는 서로 다른 평행 세계에 있다고 해도 될 만큼 다른 존재였다. 그때의 아이린과 지금의 아이린처럼 말이다.
_「이제 하와이에선 파티가 열리지 않는다」, 189쪽

질서정연한 소리를 내며 〈펄프 픽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 필름 속의 타란티노가 엇박자로 내게 속삭였다.
이래야 소설이지.
_「타란티노의 마지막 필름」, 234쪽

나는 미래에게 묻고 싶었다.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 이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미래라는 것이 이렇게나 예측이 쉬워도 되는 건지. 과연 내가 다음 문장을 제안할 수 있는지. 책장에서 미래의 소설집을 꺼내 아무 장이나 펼쳐 봤다. 미처 읽지 못한 미래. 무심코 지나간 미래. 어쩌면 안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
_「미래」, 268쪽

김쿠만식 매혹적인 레트로
쿵짜작 뽕짝 트랜스 트랜스 스토리

게임의 ‘게’ 자도 모르는 옛날 사람은 요즘 시대에도 있을 테니까. 말했잖아. 살아가는 시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고. 분명 기원전 희랍 시대에도 옛날 사람이 있었을걸?
_「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11~12쪽

위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위트 넘치는 표현은 김쿠만 소설의 특장점을 보여준다. ‘레트로 마니아’라는 그의 첫 소설집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소설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간직하면서 나아가 유쾌한 레트로함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흡사 “과거를 찾아 헤매지만 왜 과거를 찾는지 모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드벤처 게임”(18쪽)처럼. 특히나 그 배경이 SF적이라서 기묘한 이질감과 균형감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소설집에서 다섯 번째로 수록된 「남해, 자율주행 금지 구역」에서도 미래와 과거가 공존한다. 옛 커플의 우연한 해후와 애증 관계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이 소설의 배경은 ‘남해’다. 특정 지역이라기보다는 남쪽 끝 바닷가 고장인 남해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등 금지된”(147~148쪽) 동네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졌는데, 이곳은 유달리 옛것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뿐. 하지만 포터 트럭을 모는 욕쟁이 할머니와 주차장 안내원인 속사포 래퍼 할아버지의 초현실주의적인 활력은 AI 시대의 젊은 사람들을 압도하며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정말 믿기지 않지만 한때 뽕짝의 시대가 있었다. 저 하늘에서 사라진 별만큼이나 까마득하게 먼 옛날이지만. 잔인할 정도로 흥겨웠던 그런 시대가 정말로 있었던 모양이다.
_「Encyclopedia of Pon-Chak」, 98쪽

「Encyclopedia of Pon-Chak」이야말로 김쿠만식 레트로의 진면목 아닐까. 소설에서 기자인 ‘나’는 이 박사 특집 취재를 위해 ‘우주뽕짝예술협회’의 사무국장을 찾아간다. 이 박사는 누구인가. 뽕짝의 대명사, 신바람 메들리의 주인공, 〈몽키매직〉과 〈영맨〉의 이 박사 아닌가. 그는 이 소설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바야흐로 때는 제3차 은하 전쟁 시기. 참전할 당시 이 박사는 군가 대신 〈몽키 매직〉을 불렀고, 그 노래는 어쩐 일인지 적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그리하여 온 우주에는 이 박사의 팬들이 별처럼 무수하다. 이처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의 SF는 레트로한 설정이 전면에 부각되며 인간 보편적 감성인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하는데, 이는 독자가 그의 소설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특유의 유연성과 유머러스함 덕분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수록된 소설 「남쪽 바다의 초밥」에서 선장이 주방장에게 남긴 말처럼 “너무 그리워하지”(55쪽) 않는 것. 그리워하되, 조금씩만 그리워하는 그 사뿐한 거리감. 해설에서 노태훈 평론가가 적시했듯, 김쿠만식 레트로가 소설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대로 애정하되 아예 과거로는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 정서야말로 작가의 소설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285쪽) 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곧 삶 쓰기

느린 마음에 대한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이야기

“공교롭게도 그해는 프로젝트 미래가 시작된 해였고,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과격하게 보자면, 우리는 문학 동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_「미래」, 236쪽

어쩌면 우리는 지금 미래가 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아닐까. 미래가 예지하고 있는 소설 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
_「미래」, 264쪽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은 소설과 소설 쓰기에 대한 다면적인 탐색으로 가득하다. 이 소설집을 닫는 마지막 작품은 「미래」이고, 첫 작품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인데, 그 둘은 ‘미래’와 ‘과거’(Once Upon a Time)를 가로지르는 소설 쓰기에 대한 내용으로 짝 맞춤한다. 「미래」는 소설을 써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미래’와 개발자이자 소설가인 ‘나’에 대한 이야기이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는 게임으로 개발된 AI가 서술자가 되어 과거를 술회하는 오토픽션인 까닭이다. 사실 이 소설집의 거의 모든 곳에는 소설과 소설가와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인간 소설가, AI 소설가, ‘과거’의 소설가(절필), ‘미래’의 소설가(지망생), ‘현실’의 진짜 소설가, 소설가로 ‘둔갑’한 다른 장르 예술가….
「백년열차」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숨 가쁘게 바삐 달리는 현대에서 잠깐만이라도 한없이 느렸던 지난 세기의 속도로 살아보지는 취지”(104쪽)로 ‘백년열차’가 기획되는데, 소설가인 ‘나’는 그 기차 안에서 소설을 써보라는 철도국의 제안을 받는다. 이야기는 ‘나’가 달리는 ‘백년열차’ 안에서 소설을 쓰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달리고 있는 열차의 ‘현재’와 소설가가 구상한 허구의 ‘이야기’가 내내 ‘접속’한다는 점일 텐데, 실로 김쿠만의 소설들은 허구를 현실에 현실을 허구에 맞닿게 한다. 흩뿌려진 이야기들 속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라는 김쿠만의 작업은 소설=삶 혹은 소설=삶 쓰기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쓰는 데 더 집중할 거라고 말”(244쪽)하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그에게 소설이 현실이고 현실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는 김쿠만이라는 인간 소설가가 소설로써 해낼 수 있는 삶 쓰기이다. 그의 소설 쓰기는 현실과 엉겨 붙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조각나고 해체된 이야기, 통제 불가능한 의외성, 현란하게 흐트러진 서사”(278쪽)에 매료되는 인간의 소설 쓰기.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오래전의 이야기”(45쪽). 과거를 돌올히, 인간의 어떤 느린 마음에 대해 천천히 천천히.

그들의 대화는 백년열차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갔다.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중 지루함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_「백년열차」, 140쪽

작가정보

저자(글) 김쿠만

김쿠만
2020년 웹진 《던전》에 입장했고, 2021년 문예지 《에픽》에 등장했으며, 2022년에 소설집 『레트로 마니아』를, 2024년에 장편소설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을 책장에 꽂았다.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로 제16회 쿨투라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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