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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그물

윤정모 지음
교유서가

2025년 03월 07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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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452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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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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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동래온천장에 살던 예인이 토착 일본인의 그물에 걸려 청소년기를 짓밟히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밑바닥 세상으로 던져진 이야기입니다.” _「작가의 말」에서

시대가 펼친 가시 그물에 걸려
상처 입은 이들의 이야기

1980년대 한국소설을 대표하는 『고삐』를 비롯하여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슬픈 아일랜드』 등 근현대사의 첨예한 문제를 형상화하며 작품활동을 이어온 윤정모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윤정모 작가는 직접 경험하거나 취재하거나 수집한 자료를 통해 객관성, 진실성을 표본으로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나간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드러내 시대적 아픔을 재고하고 어떻게 분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유하게 한다.
『가시 그물』은 동래온천장의 예인 송다연이 토착 일본인의 후손 전기봉의 그물에 걸려 삶을 짓밟히고 그녀가 낳은 아들 전동규가 밑바닥 세상으로 던져지는 과정을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반복되는 고통을 그렸다. 액자소설을 통해 임진왜란 동래성전투에서부터 친일 잔재 세력이 활개를 치는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어 각 사건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적·개인적 상처는 물론 시대적 아픔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가시 그물
작가의 말

p. 45 오래 잠들어 있던 복수심이 심장에서 잠을 깼다. 여자는 나의 원적, 불행의 가마솥으로 내 인생을 던졌다! 나를 오물에 빠뜨렸다! 제거해야만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p. 76 우리 집안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에서 군수품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 네 할아버지는 자가용을 타고 다니다가 일본이 망하기 전에 모든 재산 다 정리해서 고향 진주로 귀국했다, 거기서 시누들과 사촌들은 각자 자기 살 곳으로 헤어졌고 우리는 대구에 땅과 건물을 사서 이리로 왔다…….’

p. 124 머릿속이 텅 비었는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강둑을 걷다가 금강공원으로 갔고 바위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거듭했다. 추에 달린 돌덩이가 사방에서 얼굴을 때렸다. 집으로 달려갔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부풀려 가슴에 꽉 차 있는 것을 신음으로 토해냈다. 생각이 살아났다. 공포와 절망도 뒤를 이었다. 아, 아부지. 아부지의 숙원사업, 저의 숙원사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깁니꺼?

p. 142 사람은 저마다 마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선한 마음으로 그릇을 채우면 운명의 강도를 순화할 수 있다. 그것만이 이승의 운명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다연 언니가 동규와 이별했던 것이 업보에 속했다면 그런 식의 이별이 아닌 옥경 언니가 동규를 데리고 떠난 것으로 귀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연 언니는 지혜와 선한 마음을 다 동원했는데도 결국 그렇게 휘말린 것은 악업의 힘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일까? 대체 어떤 악업이었기에 다연 언니의 일생이 그토록이나 모질었을까.

p. 160 언니의 살인은 동규를 살리기 위한 방편(方便)이었을까? 그렇게라도 동규를 살려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지키기 위해 언니가 그런 짓을 한 것이라면, 그 이유가 십바라밀 중 하나라면 그 행위는 천계의 은밀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모성 본능? 언니가 강조한 것은 순전한 자기 피붙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혈통? 언니는 철저하게 옹호와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성장 과정에 우리 가족들까지 동원되었던 것도 특별했다. 그러니까 언니에게는 피붙이라는 단순한 의미보다 자기에게 연결된 자식은 자신의 부친이 그랬듯이 철저하게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와 정신의 행로가 아니었을까?

p. 224 “너 그거 아니? 그 애의 거친 말투, 협박까지도 나에겐 행복이었다. 말린 개구리 같던 것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니? 나에게 골목대장처럼 명령했을 때도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단다. 은실아, 내 소망은 오직 하나다. 그 애한테 진짜 인생을 주는 것, 가정을 만들고 잘 꾸리면서 보통 사람들처럼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란다.”

p. 230 용서는 간단하지가 않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고마움은 별개다.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소. 용서할 수 없음은 망각에 묻으면 된다. 나를 위해 그래야 한다. 왠지 아시오? 내 미래의 지도를 깨끗한 도면으로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오. 뭐라고요? 당신 또한 나에게 미안했지만 내 무례했던 행동들은 용서할 수가 없다고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쁜 기억들은 우리 함께 망각의 숲으로 보내버립시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깨끗이 잊어버립시다.

p. 230 어젯밤에 꾼 꿈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환영이 버스 위를 덮는다. 컴컴한 바닷속에 그물이 있었다. 가시 그물이었다. 아기를 안은 인어가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쳤다. 가시에 온몸이 찔려 피가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인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 줄기 햇살이 밧줄처럼 길에 드리워져왔다. 하지만 햇살 밧줄은 그물에 닿지 않았다. 인어는 입을 벌려 그물코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입이 찢겨 피가 철철 흘렀으나 인어는 쉬지 않고 물어뜯기만 했다. 온 얼굴이 찢겼을 때 마침내 그물코가 끊어졌고 인어는 품속 아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아기는 햇살 밧줄을 향해 헤엄쳐갔다. 햇살이 아기를 받아 안을 때 어미 인어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100만부 베스트셀러 작가, 윤정모 귀환

“운명은 자기 생각으로 정하거나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팔자를 고쳤다는 거,
사람이 팔자를 고치는 게 아니라 고쳐질 팔자가 그 시간에 오는 거지요.
운명이란 이름으로 말이에요.”

“누군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 섣부른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윤정모는 아직 마르지 않은 그들의 눈물을 먼저 살핀다. 그는 역사의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가로서 윤정모의 필생의 숙명이다.”
_김대현(문학평론가)

“우리는 언제 가시 그물을 끊어낼 것인가. 아득하고 답답하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야 할 소설이고, 가슴을 치면서 들어야 할 이야기다. 아프지만 희망이 있어서 현실을 견디어나가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_황선열(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천성에 운명이 개입하면 족쇄가 되고
스스로 가두는 그물이 되기도 하는 거지요”

다연과 동규의 삶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이야기는 동규의 출소에서 시작된다. 동규는 어릴 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다연을 증오하고 복수하기 위해 가출하여 부랑생활을 하다 조직의 두목을 대신하여 살인죄로 입감되었던 것이다.
동규의 입장에서 다연과는 악연이었지만 동규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가혹한 운명으로 엮인,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륜. 다연의 삶을 짓밟고 동규를 증오 속에 가두어버린 이는 동규의 아버지이자 토착 일본인의 후손 전기봉이었다. 예술제에서 장원한 날 홀로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산에 묻고 내려온 그 밤, 다연은 끔찍한 전기봉에게 능욕을 당했고 동래성 추모제 학춤이라는 아버지의 숙원사업도 이루지 못한 채 거부할 수 없는 낯선 씨앗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연은 아이를 위해 전기봉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집안 승낙을 받으러 간 전기봉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후 전기봉이 다른 여인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연은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운다.
하지만 운명의 굴레에 갇힌 것일까? 과거의 그림자는 또다시 현재에 더욱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집안에서 정한 여인과 결혼한 전기봉에게 후사가 없자 다연의 아이, 전동규를 빼앗기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

“언니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업보지요. 언니, 그거 알아요? 업보의 변장술에는 속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130~131쪽)

동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과보였을까? 다연은 동규의 세번째 생일날 옷가지를 장만하여 전기봉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때 발가벗겨진 채 냉방에서 푸른똥을 뭉개고 앉아 울고 있는 동규의 모습을 보게 되고 다연은 전기봉의 아내를 과도로 찔러 죽인다. 이 일을 계기로 다연은 동규에게 엄마가 아닌 철천지수가 되고 족쇄를 찬 채 시대의 그물에 갇힌다.

개인적 상처 = 시대적 아픔
어떻게 분유할 것인가

윤정모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상처는 개인적인 상처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김대현이 “소설의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서로의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며 그들의 슬픔과 고통은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다. 누군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 섣부른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윤정모는 아직 마르지 않은 그들의 눈물을 먼저 살핀다. 그는 역사의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고 한 바와 같이 시대적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윤정모 작가만의 시대적·역사적 사건을 분유하는 방법이다.

왜놈들 앞에서 학춤을 춘다는 것은 언젠가는 떨치고 일어난다는 예언이 될 수 있다. 그래, 그것이다. 동래학춤의 참뜻은 부활, 놈들에게 부활을 예고해주는 것이다.(71쪽)

다연의 유언으로 동규가 회고하듯 다연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과 액자소설 『동래성 순절도』를 통해 개인적 상처가 어떻게 시대적 아픔과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것이다. 다연의 아버지 판술이 군무, 장수무, 형제무, 5학무, 홍백무, 아동무 등으로 동래성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진혼하려던 것과 토착 일본인이 우리 사회에 잔존하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하며 기억하려는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는 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황선열의 말처럼 “아프지만 희망이 있어서 현실을 견디어나가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정보

저자(글) 윤정모

1946년 출생. 부산 동래온천장에서 성장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이던 1968년 첫 장편소설 『무늬져 부는 바람』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밤길』 『님』 『고삐』(전2권) 『들』(전2권) 『나비의 꿈』(전2권) 『그들의 오후』 『슬픈 아일랜드』 『꾸야 삼촌』 『전쟁과 소년』 『봉선화가 필 무렵』『수메르』(전3권) 『자기 앞의 생』 『누나의 오월』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기금(신동엽문학상), 경기문학상, 단재문학상,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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