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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작가정신

2025년 0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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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26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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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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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죽음’이란 화두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천착해온 작가 정용준이 신작 산문집 『밑줄과 생각』을 선보인다. 2024년 오영수문학상과 젊은예술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대상에 대한 집요함, 세계에 대한 균형 감각, 정직함, 서사적 밀도, 뚜렷한 문제의식 등을 탁월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세 권의 소설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 두 권의 중편소설을 펴내고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뚜렷한 문학적 궤적을 남겨왔다.

『밑줄과 생각』은 2009년 데뷔 후 15년간 소설의 안팎에서 활발하고도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온 작가 정용준이 “읽기와 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에 관해 적어 내려간 기록들의 모음으로, 문예지, 일간지, 단행본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산문 37편이 수록되어 있다. 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이라는 뜻의 ‘산문’이란 단어에 걸맞게 주제와 내용, 형식과 분량이 모두 일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고 다채롭다. 때론 자기만의 내밀한 고백이 담긴 일기 같고, 때론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을 담은 연서 같으며, 한편으로는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와 같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소설적인’ 글들이다.

정용준 작가는 이 책에서 타인의 마음에 드리운 ‘숲’과 ‘바다’를, 인간의 감정과 감각에 깃든 ‘바람’과 ‘별자리’를 만나게 해준 문장들에 밑줄을 긋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곳으로,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깊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일, 서로가 서로에게 발견되는 일. 그것이 바로 ‘읽기’와 ‘쓰기’라고 말했던 작가가 읽어낸 무수한 문장들의 행간과 문맥을 짚어가면서, 우리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는 귀하고도 고마운 통찰과 깨달음을 얻는다.

한 줄의 문장. 그 밑에 그은 한 줄의 밑줄. 그 곁으로 여러 생각들이 만들어지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공감과 동감의 끈으로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마을과 세계가 만들어지듯 같은 생각 같은 감정으로 우리가 엮이고 뒤엉켜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비슷해진다면. 마침내 같아진다면. 거울처럼. 유리처럼.
_‘작가의 말’ 중에서
한 줄의 문장
ㆍ좋은 글 15
ㆍ여기 아닌 다른 곳 19
ㆍ스물셋의 올빼미 24
ㆍ내게 없는 내 목소리 39
ㆍ운명을 사랑한다는 것 50
ㆍ삶을 움직이는 두 개의 진동 59
ㆍ생각하는 자는 멀고 깊은 곳까지 64
ㆍ미래를 지키는 이야기 73
ㆍ그것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81
ㆍ잘츠부르크의 팽이 89
ㆍ리얼 월드 102

한 줄의 밑줄
ㆍ자책하며, 쓴다 111
ㆍ그림자들 121
ㆍ유니크들에게 126
ㆍ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두부 133
ㆍ미래 생각 147
ㆍ세 번의 언덕 154
ㆍ한여름 이 생각 저 생각 - 읽기와 쓰기에 관한 열 개의 메모 165
ㆍ기이한 전개 해피한 엔딩 177
ㆍ춤추는 자의 춤 184
ㆍ당신이 본 것과 내가 보여준 것 192
ㆍ내가 만난 슬픔 씨 196

한 줄의 생각
ㆍ소설의 기술 203
ㆍ끝나지 않는 아이러니 211
ㆍ마음을 태우는 작가 215
ㆍ귀 있는 자들에게 223
ㆍ‘고통’이라는 ‘불명료함’에 반대하며 228
ㆍ감각하는 앎 237
ㆍ나는 사랑해서는 안 될 소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250
ㆍ서술자들이여 우리가 다정해지자 255
ㆍ대답하소서 267
ㆍ뫼르소에게 묻는다 275
ㆍ미화하지 않고 패배를 아름답게 말하는 기술 281
ㆍ인간의 변호사 293
ㆍ숨 쉴 곳을 찾아 떠난 이에게 297
ㆍ작가를 떠난 영혼에게 건네는 열 개의 쪽지 308
ㆍ소설이라는 부력 321

깊은 밤 어둠과 고요에 젖는 것을 즐겼다. 심심하고 고독하기까지 한 그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을 불안이 아닌 평안으로 감각했다. 사느라 분주했고 관계 속에 지쳤던 나를 들여다보며 복잡한 마음을 살폈다. 날카롭게 일어선 감정의 결을 조심스럽게 더듬어봤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붐비는지, 내 감정은 무엇으로 인해 그토록 뜨거워졌는지, 찬찬히 헤아려봤다. 그러다 찾아오는 약간의 멜랑콜리도 나쁘지 않았다. _33쪽, 「스물셋의 올빼미」

목소리는 나에게 나의 많은 비밀을 알려줬다. 목소리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비밀을 탐하고 말을 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랑을 말할 때 사실을 말하는 이가 싫다. 팩트를 정의라고 믿는 이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일기와 편지를 미워하는 이들이 밉다. 소설책으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과 이야기를 거짓과 가짜라고 가르쳤던 화학 선생이 싫다. 번호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책을 읽으라고 했던, 읽지 못하는 나를 죽어도 포기하지 않던 송곳니가 뾰족했던 국어 선생이 싫다. _46쪽, 「내게 없는 내 목소리」

마음을 어지럽히던 크고 작은 감정들. 그때마다 어떻게 했었나요? 해결책을 찾고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도움을 받았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모른 채 그것들은 몇 번의 밤과 몇 번의 계절 속으로 햇빛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 없어졌을 거예요. 그 순간에는 내게 답이 없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나는 강하고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달랠 수 있습니다. _145~146쪽,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두부」

아직도 난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다. 이 세계가 좁아지고 얇아지고 마침내 투명해지더라도 기쁠 것 같다. 그 안에 사는 동식물들이 작고 작아져 색채도 부피도 무게도 개성까지 잃고 마침내 뼈만 남은 까만 막대기 같은 글자 하나로 남더라도 나는 그 행간에 놓여 있는 내 운명이 좋다. 누군가 읽어줄 문맥 속에 숨어 있는 내 운명이 좋다. 누군가는 소리 내 읽어줄 문장 속에 있다는 것이 좋다. 때론 그저 문장이 되었다는 것이 좋다.
_169~170쪽, 「한여름 이 생각 저 생각 - 읽기와 쓰기에 관한 열 개의 메모」

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공감의 영역에서 만났다면,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는 멈춤의 순간에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면, 그건 실제 사건과 경험이 같거나 유사해서가 아니다. 나도 그 인물처럼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는 실존적인 이해다. _206쪽, 「소설의 기술」

뫼르소에게 나는 배웠다. 타인의 인정이나 보증을 필요치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삶에 절실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소외될 수도 없지. 타인에게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느라 내면의 소리에 반응할 수 없었던, 나는 반성한다. 희미하게 다짐하며 나 자신에게 부탁해본다. _279쪽, 「뫼르소에게 묻는다」

“밑줄 긋는 것이 좋습니다.
그 문장이 몸과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도 좋습니다”

정용준 작가는 단 한 사람의 편이 되어 그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소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번다한 마음도, 잠 못 이루는 마음도, 한 줄 문장과 한 편의 소설을 자기편으로 삼아 이겨내며 또다시 삶이 있는 곳으로 한 발을 내디디는 사람이다.
그는 왜 그렇게 ‘읽기’와 ‘쓰기’를, 그리고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작가는 이에 대해 이론적 추상적으로 묻고 답하는 대신, 그것을 겪고 감각하며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 과정을 이 책을 통해 펼쳐 보인다. 그는 소설이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잘 알려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나와 타인, 삶과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게 해준 ‘소설’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을 읽은 독자가 공감의 영역에서 만났다면,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는 멈춤의 순간에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면, 그건 실제 사건과 경험이 같거나 유사해서가 아니다. 나도 그 인물처럼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는 실존적인 이해다.
_206쪽


“어떤 단어는 손끝에 만져졌다
어떤 문장은 온도가 느껴졌다
어떤 장면에선 마음이 아팠고,
어떤 대화에선 마음이 환해졌다”

정용준 작가에게 작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영웅’이다. 세상의 영웅들과 달리 ‘나의 영웅’인 그들은 내가 누군지 말해줬고, 나를 이해하게 해줬으며, 나를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게 했다. 나에 대해서, 또 타인에 대해서도 섣불리 해석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마음의 동기와 감정의 복잡함”을 헤아리게 했다. 그에게 어떤 글들은 단순한 이해와 공감을 넘어서, 이입되고 투사되며 심지어는 이식되기도 하는 강력한 무엇이다.
존 쿳시는 몰락하는 자가 인식의 힘으로 그것을 헤쳐나가는 한 방법을 보여준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마음을 태워 ‘진짜’에 가까운 솔직한 이야기들을 통해 불꽃을 만들어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진정한 자기 이해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최고의 자기계발서이며, 백 년 전 소설인 조지 오웰의 『숨 쉴 곳을 찾아서』는 박제된 삶에서 깨어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게 한다. 『고통에 반대하며』의 프리모 레비는 불명료한 글쓰기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밀란 쿤데라는 인간을 설명할 가장 탁월한 예술이 소설임을 증명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글은 ‘음악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이며, 자극된 적 없는 세포를 자극하는 언어적 상상력을 지닌 다와다 요코의 문장들은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든다. 문학청년 시절에 만난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소설만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으며, ‘소설을 산다’라는 표현을 매 순간 증명하는 작가 이승우로부터는 소설 쓰기의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


“깊고 은밀하게 숨은 마음과 감정의 길을 찾아서”

『밑줄과 생각』은 작가를 사로잡은 소설과 글들에 관해 말하면서도, 일상에 매몰되어 감각하지 못하는 수없는 마음의 형상과 생각들, 또 거기에서 비롯되는 의미와 성찰에 대해 들려준다.
깊은 밤 어둠과 고요에 젖는 일에 대해, 상처받지 않으려 사람에게 기대지 않게 되는 마음에 대해 말한다. 글이 안 써지던 어느 여름밤에 대해, 어느 해 크리스마스 화재 참사를 당한 가족에 대해, 그 엄청난 충격과 비극 속에서도 남겨준 숭고한 온기에 대해 말한다. 다른 사람, 다른 삶으로 향하게 하는 이별이란 소중한 경험에 대해, 강력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인간의 충동과 본성에 대해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이름 모를 묘지와 그곳에 내가 잠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결말을 바꾸었던 한 소설의 집필 과정과 기후변화 시대 소설의 역할에 대해, 지식의 앎이 아니라 감각하는 앎,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내는 진짜 앎에 대해 말한다…….
그 목소리들이 깊고 은밀해서, 두서없이 겹겹이 포개진 마음의 결을 하나씩 펼쳐 환한 볕 아래 두는 것만 같다. 그 시선이 솔직하고 담백해서, 무겁고 심각한 일들을 들려줄 때조차도, 꼭 내 이야기를 내 편에 서서 들려주는 것만 같이 따스하고 든든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그 시선에, 그 마음에 기대게 하는 소설과 문학과 문장 들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로 하여금 “깊고 은밀하게 숨은 마음과 감정의 길을 찾아” 한 발 한 발 걷도록 이끄는 작가를 따라서.

다시 태어날 순 없다. 나 아닌 다른 것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다시 할 순 있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는 자는 그곳이 어디든 멀고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_71~72쪽

작가정보

저자(글)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소나기마을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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