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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 선언

최태현 지음
디플롯

2025년 02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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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01MB)
ISBN 979119359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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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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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타적 마음을 강요하거나, 칭송하거나, 이타심으로 가득한 세계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각자의 곁에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소고이자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수많은 타인 사이에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이타심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이정표다. 우리는 ‘너’에 대해서 말하고, ‘너’를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고유의 맥락을 가진 타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데에는 서툴다. 또한 이기심의 대상이 ‘나’를 돌아보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의 타인으로 존재하는 ‘나’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할 때, 추상적이고 막연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세계로서 ‘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이타주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저자 최태현은 강의의 충실성,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2023)을 수상하고, 제도와 마음의 공공성에 관한 논문으로 한국행정학회 학술상(2019)을 받은 교육자이자 연구자다. 그런 그가 모니터 안의 데이터를 통해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다가 “문득 모니터 바깥의 사람들을 보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세상과 어울리고 싶어졌다”며 상아탑 밖의 사람들 곁으로 뛰어들었다. 투쟁의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 박경석을 따라다니다가 그에게 발각되어 혼이 날 뻔했던 에피소드는 ‘운동판’의 사람들에게는 꽤 알려진 이야기다. 그가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슬픔 앞에서 오롯이 위로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첫 에세이를 펴냈다. 《이타주의자 선언》은 “학문의 자리에 살던 이가 ‘현장’의 사람들 곁에 어떤 마음으로 다가왔는지에 대한 아주 사적이면서 이타적인 기록”(홍은전)이다.
들어가며  ̄ 타인이라는 아름다움

1장 타인들
너와 나|타인을 향한 감정|아픔이 아픔에게|마음의 거리

2장 태도들
배려|합창에 대하여|희생하지 마세요|나의 언어, 우리의 언어|그 하나의 이름

3장 가족이라는 타인
모쿠슈라|딸: 일기들|어느 별이 되었을까

4장 시민이라는 타인
늦게 만난 세계|인간, 자연, 그리고 거리|헌정|영웅과 시민: 달의 어두운 면

5장 내려놓음
시간, 사람, 깨달음|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누구나 어디선가 멈춘다

6장 죽음
또랑이의 죽음|아버지가 가시던 밤|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무엇을 위해 살고, 싸우고, 죽을 것인가

나가며  ̄ 늦은 고백

감사의 말
참고문헌

우리는 단순히 딱 잘라서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여러 마음이 얽혀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마음은 각자의 경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성숙,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빚어지고 발현됩니다. 마음의 갯벌에는 참으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자주, 특별히 발견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_들어가며, 〈타인이라는 아름다움〉, 14쪽

이타심은 타고난 마음으로만 영글지 않습니다. 이타심은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인지상정’이 있지 않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지랖’이라는 말도 있죠. 이해 없는 본능적, 즉각적 이타심을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는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그 타인에게 얼마나 모멸적으로 느껴질지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 없는 이타심은 위험합니다.
_1장 타인들, 〈너와 나〉, 28쪽

이타심은 사랑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최소한 그런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하나 되기의 욕망을 제어하고 그것을 거리 두기로 바꾸어낼 때, 타인을 지향하는 마음은 비로소 서로에게 작열하는 불길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 될 수 있습니다.
_1장 타인들, 〈타인을 향한 감정〉, 39~40쪽
가끔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소중해서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고 싶다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을 헤아려보는 게 익숙해지면서, 평생 순수하게 가까워짐을 느끼며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과 이론과 실천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습니다. 죽을 때까지 궁금함을 품고 가까워짐만을 느끼며 관계를 이어가다가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_1장 타인들, 〈마음의 거리〉, 53쪽

세상일도 그러합니다. 가족, 직장,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어그러진 일들이 꼭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잘 불린 합창곡이 내 덕분이 아니듯, 좀 못 불린 합창곡 역시 내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근거도 소득도 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다독입니다. “무책임해져도 돼. 오히려 좋아.” 그래야만 나도 자유롭고, 나의 책임감을 다른 이에게도 요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_2장 태도들, 〈합창에 대하여〉, 68쪽

힘들다면 마음껏 이기적이 되어봅시다. 마음이 불편해질 때까지, 사람이 보일 때까지. 그 지점을 알고 나면 이제 우리는 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쯤 멈춰 서게 될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나를 잘 아는 이기심은 이타심의 출발선입니다.
_2장 태도들, 〈희생하지 마세요〉, 78쪽

이제 묻게 됩니다. 나의 방언은 무엇일까. 지식인이 상아탑을 벗어나 ‘현장’으로 다가갈 때 이내 말하기의 윤리와 정면으로 대면합니다. 현장의 언어는 구체적이고, 투쟁적이고, 절실합니다. 상아탑의 언어는 대개 추상적이고, 완곡하고, 냉정합니다. 똑같은 말도 그럴듯하게 말하려 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도 계속 말할 때입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을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 상대의 짧은 지식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더 공부하고 오라”는 교만한 말이 그 예지요.
_2장 태도들, 〈나의 언어, 우리의 언어〉, 86쪽

마지막으로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건, 결국 가족이 관계의 이상적 유비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가족은 다시 정의될지언정 여전히 가족입니다. 참사의 유가족들은 또 다른 유가족들을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가족이란 단순히 선택한 적 없는 혈연 집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연이든 함께 삶을 빚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상실이 비탄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얽힌 관계의 총체입니다.
_3장 가족이라는 타인, 〈모쿠슈라〉, 107쪽

딸은 제가 어쩌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아름답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딸을 타자로 바라보았던 날, 비로소 딸을 ‘너’로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를 타자로 바라볼 날의 딸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_3장 가족이라는 타인, 〈딸: 일기들〉, 120쪽

늦게 만난 세계는 늘 우리를 깨웁니다. 익숙했던 세계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새로운 세계는 아직 낯설고 두렵지만, 알면 알수록 두 세계는 공존해온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연하지요. 지구는 하나니까요. 모든 인간사란 이 지구 위에서 벌어져 왔으니까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모든 늦게 만난 세계는 다시 만난 세계입니다. 우리가 그 세계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든, 조심스레 다가가든, 와락 끌어안든, 이미 주어진 세계입니다.
_4장 시민이라는 타인, 〈늦게 만난 세계〉, 137~138쪽

그런 와중에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열어가는 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뭔가 활동을 하여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모임, 단체, 운동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존재가 반짝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아니 사람은 변했는데 세상은 변하지 않은 10.20년 세월을 지나왔다면 그 존재는 역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_4장 시민이라는 타인, 〈헌정〉, 150쪽

권력. 나는 순수하게 남을 수 있다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 길이 누군가가 가야 할 길이고 누군가는 점유해야 하는 자리라면, 더 아름답고 더 순수한 이가 가기를 원했다. 그들이 끝내 반지의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그 옆에 샘이라는 친구가 있고 골룸이라는 복잡한 운명의 대리자가 있는 한 승리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프로도 같은 이들이 있다고 믿는다.
_5장 내려놓음, 〈시간, 사람, 깨달음〉, 169~170쪽

그래도 아주 드물지만 손을 모으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소한 제가 아는 한 너무도 선량해서, ‘저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선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작 흔들리는 내 마음 때문에 실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망하느니 차라리 이면을 알지 못하기를, 실망의 고통보다는 거리의 인내를 선택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_5장 내려놓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180~181쪽

저는 여전히 삼겹살을 먹지만 일상에서 가능하다면 채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건 메뉴가 있으면 반갑습니다. 최소한 비건을 생활화한 이들에게 “고기 먹으러 가자”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비건 식당을 찾는 일을 불편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혼자서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갈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지만 여기저기서 그들을 만났던 기억을 간직하고,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연구를 반길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19 백신 희생자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모두의 곁에 함께 서 있을 수는 없어도 그들의 등 뒤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_5장 내려놓음, 〈누구나 어디선가 멈춘다〉, 186쪽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몇 시간 동안 저는 계속 의식적으로 다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울어라” “이제 그만 돌아가자”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기로. 아이가 우는 동안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고, 산책길에서도 가만히 따라다녔습니다. 아이가 처음 접한 작은 죽음으로부터 죽음을 대하는 자신만의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것이 저보다 무겁게 또랑이의 죽음을 대하고 있었던 아이에게 제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만의 애도 과정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_6장 죽음, 〈또랑이의 죽음〉, 194쪽

지금도 생각한다. 그 밤에 지위와 인맥을 통해 ‘아는’ 사람들을 동원했더라면, 청탁금지법은 잊고 내가 가진 사회자본을 최대한 활용했더라면, 그래서 한 시간 안에 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떠올리면 괴롭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가 구급차에서 사경을 헤매시던 그 세 시간 동안 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린 적이 없다.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저 질문보다 더 무거운 질문은 ‘만일 내가 그런 선택을 해서 아버지가 더 사셨다면, 나는 과연 떳떳했을까’였다.
_6장 죽음, 〈아버지가 가시던 밤〉, 196쪽

우리에게는 각자의 싸움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패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렵게 한 골 넣고 수비를 걸어 잠그는 축구 경기처럼 대부분 우리는 인생에서 한 번의 행운을 부여잡고 살아갑니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타인의 패배를 너무 동정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전투에서 패배했을지는 모르지만, 신의 눈에 비친 그의 삶은 다를 것입니다. 아픈 정신을 안고서도 누구보다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을 지키던 이를 바라보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시구를 절로 떠올립니다.
_6장 죽음,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204쪽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무심하게 툭 던진 질문에 생각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대?” 지금도 저는 그 세미나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세미나였다고 생각합니다(학계라는 공간에 국한할 때). 하지만 아내의 질문은 제 인식의 지평이 얼마나 좁았는지, 제 안에 타자의 경계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일깨우는 스님의 죽비와도 같았습니다. 아니, 제 마음속 그날의 주인공이 참사를 겪은 이들이 아니라 세미나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사실을 아내에게 들켰던 것입니다
_6장 죽음, 〈무엇을 위해 살고, 싸우고, 죽을 것인가〉, 209쪽

이타적 마음은 꼭 무언가를 ‘해주려는’ 동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싸움을 싸웁니다. 모르도르로 향하던 프로도의 싸움처럼 도무지 도와줄 수 없는 싸움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나를 마지막으로 본 그 자리, 그의 눈에 죽음의 그림자가 임박했을 때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어 눈길을 돌려 바라볼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인지 모릅니다.
_맺으며, 〈늦은 고백〉, 221쪽

“조용히 그의 뒤를 밟고 싶을 만큼 나는 그가 궁금했다.
지극하게 솔직한 것은 왜 이토록 아프고 아름다울까.” - 추천사에서

시대가 만들어낸 오해의 늪에서 이타심을 건져내고
타인이라는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섬세하고 치밀한 탐구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슬픔 앞에서도 극단으로 분열되는 시대,
오롯이 위로하고 애도하는 방법에 대하여

★백온유(소설가), 장일호(《슬픔의 방문》 저자), 홍은전(인권활동기록가) 강력 추천!

이 책은 이타적 마음을 강요하거나, 칭송하거나, 이타심으로 가득한 세계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각자의 곁에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소고이자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수많은 타인 사이에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이타심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이정표다. 우리는 ‘너’에 대해서 말하고, ‘너’를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고유의 맥락을 가진 타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데에는 서툴다. 또한 이기심의 대상이 ‘나’를 돌아보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의 타인으로 존재하는 ‘나’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할 때, 추상적이고 막연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세계로서 ‘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이타주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저자 최태현은 강의의 충실성,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2023)을 수상하고, 제도와 마음의 공공성에 관한 논문으로 한국행정학회 학술상(2019)을 받은 교육자이자 연구자다. 그런 그가 모니터 안의 데이터를 통해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다가 “문득 모니터 바깥의 사람들을 보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세상과 어울리고 싶어졌다”며 상아탑 밖의 사람들 곁으로 뛰어들었다. 투쟁의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 박경석을 따라다니다가 그에게 발각되어 혼이 날 뻔했던 에피소드는 ‘운동판’의 사람들에게는 꽤 알려진 이야기다. 그가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슬픔 앞에서 오롯이 위로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첫 에세이를 펴냈다. 《이타주의자 선언》은 “학문의 자리에 살던 이가 ‘현장’의 사람들 곁에 어떤 마음으로 다가왔는지에 대한 아주 사적이면서 이타적인 기록”(홍은전)이다.

나를 잘 아는 이기심이 출발선, ‘나’로부터 시작해서 ‘너’에게로 뻗어가는 이타심

우리는 이타주의(이타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편견이 있다. 보통 순수하게 나 아닌 존재를 위한 행동이나 태도를 두고 이타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예를 들어 ‘거액을 기부한 연예인’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기부금으로 어떤 이의 삶이 더 나아졌으니 이타적인 행위인가, 기부 행위로 명성을 쌓아 더 거액의 광고를 따내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으니 이기적인 행위인가. 딱 잘라서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행동 혹은 사람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존재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가 넉넉하지 못한 시대에서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곡해된다. 어떤 행위가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되었더라도 위선이라고 비판하며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선의에 따라 행동했지만 “휴머니즘이 사람 살리는 거 아니다”와 같은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다. 종종 ‘자선사업’이라는 단어를 현실감각 없고 순진하기만 해서 실속 못 챙기는 사람에게 놀림조로 쓰기도 한다.

저자는 시대가 만들어낸 오해의 늪에서 이타심을 건져내고 그것의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탐험을 시작한다. 우선 이타심을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알아채고 신경 쓰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되면 이기심과 이타심이 뒤섞인, 마치 갯벌과 같은 공간에 진입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긴다. 역설적이지만 이타심의 시작을 ‘너’가 아닌 ‘나’로 설정하기를 권한다. “어쨌든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존재는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각들이 있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걱정을 덜어주기도 한다. 그런 다음 타인이 자리하고 있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1,2장),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존재하는 타인인 동료 시민과 가족에 대해서(3,4장), 타인을 이해할 실마리로서의 쇠락과 죽음에 대해서(5,6장)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회적 참사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건네는 고백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큰 맥락은 세월호 참사다. 행정학 교수로서 공공성, 민주주의, 시민참여 등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저자의 삶은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렸다. 저자는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한 지난날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2014년 어느 날, 저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국제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세미나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대?”라는 아내의 질문을 들은 후 멈춰버린 그는 고심하게 된다. 인식의 지평이 얼마나 좁았는지, 타자의 경계가 어디까지였는지 돌아보게 된 저자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참사를 겪은 이들이 아니라 세미나 그 자체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순간이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계기들을 마주하며 당황하고, 부서졌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동권 투쟁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 장애 당사자이면서 사회와 인간을 탐구하는 연구자 등을 만나면서 “삶의 균형추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그 기울어짐의 순간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2024년 세밑에 마주했던 제주항공 참사는 다시 한번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세월호 참사, 코로나 팬데믹, 10·29 이태원 참사,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등 늘 마지막이기를 바라지만 종종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아픔들이 있다. 참사의 고통을 함께 견뎌내는 방법은 무엇인지, 공적 슬픔에 적절한 그리고 충분한 애도의 과정과 태도는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이 책은 하나의 답이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이타심은 그 마음이 향하는 타인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기에 위험하다”고 말한다. 슬픔, 아픔을 겪고 있는 이를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적 반응이 일어난다. 문제는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마음에 머물면서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모멸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위로와 애도의 과정에서도 본의 아니게 드러날 수 있다. 참사의 당사자, 유가족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연민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진정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타자도생의 시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인간다움의 구성 요소로 이타심을 꼽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생사가 교차할 때, 일확천금의 기회가 눈앞에 있을 때와 같이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많은 이가 가장 먼저 버리게 되는 마음 또한 이타심일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것이 우리의 전부인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우리 안에 타인의 조각들을 찾고, 모으고,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도생의 통념이 끊임없이 주입하는 강박, ‘결국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속삭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정한 이타주의의 시대는 ‘타자도생’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너’를 한 사람의 타자로서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세상. 그래서 이해 없는 공감, 즉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누군가를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세상. “타인을 생각하는 존재가 가장 아름답다”는 저자의 말처럼 타자도생의 시대는 가장 아름다운 시대가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태현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책결정과 공공성, 행정윤리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2024년에는 “분열의 시대, 다양성과 포용이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개최된 ‘경향포럼’의 강연자로 힐러리 클린턴, 캐시 박 홍 등과 함께 대중 앞에 서기도 했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책을 썼지만 여전히 타인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기어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도 그런 의지가 때로는 어떤 선을 넘을지도 모르기에 주저하고 망설이기를 반복한다. 모든 아픔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만 공적 슬픔을 남긴 기억에 마음이 조금 더 기운다. 이 책을 쓰던 가운데 문득 “나의 이야기가 타인이 욕망할 만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서사 없음’의 서사라는 역설에 다다랐다.
좋은 사람들이 일으킨 삶의 미세한 기욺에서 운명과 진실을 읽어내기, 오후 햇살 드는 연구실에 앉아 멍하니 있기, 합창, 밀크티,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배긴스, 〈스파이 패밀리〉의 아냐 포저 등을 좋아한다.
《모두를 위한 사회 연구》(2021),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202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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