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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세상 기획시선 14

카뮈에게

이명수 지음 | 이명수 사진
시로여는세상

2025년 02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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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9.72MB)
ISBN 979119451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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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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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세상》 기획시선 14권. 이명수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카뮈에게』가 발간되었다. 시집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자아의 발견, 2부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3부는 제주에서의 생활에서 얻어진 사유, 4부는 서울에서의 일상을 다룬 시로 그 얼개가 숨 가쁘게 짜여 있다.
엄경희 평론가는 98쪽의 긴 해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명수 시인의 동사들은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 들어감과 나감 사이, 우연적 재난과 침묵 사이, 불가역적 시간과 가역적 시간의 체험 사이를 드나든다. 그것은 한 존재의 신체와 정신으로부터 촉발되는 다양한 경로와 지점들을 점유하고 횡단하며 출렁인다.”
“시인은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다시 자신의 몸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동일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신성함을 탈환하고자 하는 필사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관성운동과는 다르다. 시 ?신구간(新舊間)?의 화자는 ‘나는 경계인(境界人)이다’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명수 시인이 지향하는 의식의 운동성을 볼 때 이러한 자기규정은 진실이다. 그는 ‘꺼내다’와 ‘들어가다’를 반복하면서 일상과 신성 사이를 오가는 경계인이다. (……) 나는 그의 시집 『카뮈에게』를 읽으며 그의 시세계를 구도행 혹은 수도행으로 규정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며 이 글을 썼다. 이유는 이러한 어휘들이 그의 시편에 담긴 고뇌와 그 고뇌를 드러내기 위한 내밀한 맥락들, 행간 사이에 놓인 여백의 풍부함을 피상화 내지는 추상화로 몰고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집을 통해 그가 보여준 경험과 상상력의 그물망은 구도행이나 수도행 이상의 복잡한 인간상을 입체화한다. 그의 ‘숨은 神’은 신성에 닿고자 하는 실존인으로서의 고뇌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담지한 인격적 몸이다. 나는 이러한 그의 몸의 여정을 읽으며 ‘탈신성’이라는 말을 역으로 자꾸 떠올리곤 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담론이 무반성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둔감하게 ‘탈신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몰고 올 고귀함의 상실, 존엄성의 와해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두렵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묻게 된다.”(해설 ?만 리 여정을 가는 맨발의 숨은 神? 중에서)
또한 박성현 시인은 표제작 『카뮈에게』의 해설에서 “…… 시인은 ‘삶의 의미보다 삶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의미’에 집착할수록 삶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여행의 위치보다 여행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순수한 여행이란 여행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지 그 ‘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행을 퉁해 ‘그곳’에 자신만의 내밀한 ‘장소’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느 계절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듯// 카뮈여,/ 두려운 것은 여행보다 먼 곳에 있다’는 이 영롱한 문장은 우리에게 삶과 여행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안겨준다.”고 말한다.
목차
1부

나는 놀고 있다
어제를 두리번거리다
썩은 부처
새벽 건너기 연습
허리 굽히지 마라
초상화
12초 동안
흔한 것
할 수 있는
나를 불러내다
가혹한 사진
위험하다, 책
꼬리뼈의 감동

2부

行萬里路
카뮈에게
론다는 절벽을 낳고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
메두사의 머리
에페스의 발자국
夢遊臥
관흉국(貫胸國) 사람들
에게해가 아프다
밍글라바 쉐다곤
몬세라토 가는 길
서천(西天) 꽃밭에 가다
밍군 아이들

3부

능소, 다음 이야기
폭설수행(暴雪修行)
묵언수행(默言修行)
내 자전거
내 자전거사史
신구간(新舊間)
봄 바다
신문(神門)
소통
어두운 사람들
월동

4부

오늘의 십년
월요일의 시
생일
환승역에서
우리 동네
우리 동네 경씨아찌
마을버스를 타고
문득, 가을
오늘은 선물입니다
죽비가 하는 일
겨울 저녁에
마이너스, 플러스
할머니 구름

작품해설
만 리 여정을 가는 맨발의 숨은 神ㅡ엄경희

나는 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뭐 하시나 묻길래

그냥 놀고 있지 뭐,

티라노사우루스와 놀고
구름표범과 놀고
무지개산과 놀고
베두인과 놀고

그래, 오늘 잘 놀았다

부지런히 노는 것도 공부다

잘 노는 것이 하느님이다

열린 문틈 사이로 하느님이 보인다

능소, 다음 이야기

지난여름 태풍에 허리를 꺾여
땅바닥에 뒹굴었습니다
벽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늘과 함께
누가 능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았나요

죽은 뿌리 밑동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줄기마다 낙지 빨판 같은 흡착 뿌리가 돋아났습니다
천 개의 손은 혹시 천수관음의 손인지요

누구나 손이 있지요

능소는 왜 기를 쓰고 기어오르는 것일까요

나간다는 것은 조금 죽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가 있을까요*

능소는 지붕 위에 올라가 자주색 꽃등을 켭니다
꽃으로 불을 살려내
밤마다 천억 광년 먼 별을 봅니다

꽃으로
불을 끄기 위해

*선불교의 화두 모음집 『무문관』의 화두를 풀어 쓴 강신주의 저서명을 변용했음

새벽 건너기 연습

아직은 오늘이다 오늘을 다 써버린 시간의 방엔 삼순이와 아내와 내가 누워있다 삼순이가 내 발치에서 꼼지락대다가 내 침대와 아내의 침대를 넘나드는 사이 온전한 내일이 오늘이 됐다 누군가 던진 공이 새벽으로 굴러와 새벽의 말이 된다 나는 자꾸만 깊은 의문부호 속으로 빨려 들어가 검은 방에서 또 다른 의미의 공을 만든다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트랜지스터 다이얼을 돌려 떠다니는 주파수를 잡는다 지지직거리는 낱말들이 시간의 톱니에 갈려 먼지가 된다 2시와 3시 사이, 라디오 디톡스에선 소설가 박영옥이 젊은 시인을 초대해 알쏭달쏭한 시 인생을 나눠 갖는다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인가?*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가 없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를 모호한 낱말로 두리뭉실 감싸 ‘놀라운 것들의 방’에 공기처럼 가둬 놓는다

중력을 잃은 사물들이 어둠을 두드린다 사물들은 나무처럼 성장하며 어둠 속 방을 채운다 3시의 경계를 넘으면 또 다른 주파수가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 멈춘다 왜 또 부끄러운 나의 과거 한순간을 주파수가 잡아내는가 시간의 주파수가 4시 경계쯤에 멈추면 책 읽어주는 남자가 나와 곡절 많은 사연 들을 읊어대고 나는 내 인생의 비밀들을 어느 방에 숨겨 둘까 아주 가난한 사람처럼 걱정한다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내면 애국가 4절이 끝난다 새벽의 신이 귓속말로 타이른다 사는 일 슬퍼하지 않기, 헤어지는 일 증오하지 않기, 배신당한 일 분노하지 않기, 어제 버스에서 마주친 여자를 생각하지 않기, 불꽃바우어새가 색색의 말을 물고 새벽을 건너온다 어제의 낱말, 어제의 마음을 챙겨놓고 색색의 암호를 공중에 칠하기 위해 투명한 붓을 들고

*오은의 시 「분더캄머」 중에서

론다*는 절벽을 낳고

론다를 보러 갔다
협곡 사이 절벽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수상한 나무 두 그루 서로의 절벽을
움켜잡고
긴팔원숭이가 이쪽저쪽을 넘나들고 있다

절벽감옥이라 했다
어느 고독한 혁명가의 집이었는지
절벽 계단을 타고 100미터를 내려갔다
감옥에서 감옥으로 통하는 절벽
또 하나의 방이 있다
낯선 수행자의 토굴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절벽에는 절벽이 산다
절벽감옥이다
절벽수도원이다

며칠째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꾸었다
어둠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가느다란
줄 한 가닥 잡고
밤새 감옥과 수도원을 오가며
절벽을 지우고
돌 속에 갇힌 나를 꺼냈다

론다는 어느 여자의 이름이었을까
론다와 절벽 사이에
지금도 아이가 태어난다

*기이한 절벽 위에 세워진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지역 남부 도시

이명수 시인의 동사들은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 들어감과 나감 사이, 우연적 재난과 침묵 사이, 불가역적 시간과 가역적 시간의 체험 사이를 드나든다. 그것은 한 존재의 신체와 정신으로부터 촉발되는 다양한 경로와 지점들을 점유하고 횡단하며 출렁인다.

시인은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다시 자신의 몸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동일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신성함을 탈환하고자 하는 필사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관성운동과는 다르다. 시 「신구간新舊間」의 화자는 “나는 경계인境界人이다”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명수 시인이 지향하는 의식의 운동성을 볼 때 이러한 자기규정은 진실이다. 그는 ‘꺼내다’와 ‘들어가다’를 반복하면서 일상과 신성 사이를 오가는 경계인이다.

나는 그의 시집 『카뮈에게』를 읽으며 그의 시세계를 구도행 혹은 수도행으로 규정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며 이 글을 썼다. 이유는 이러한 어휘들이 그의 시편에 담긴 고뇌와 그 고뇌를 드러내기 위한 내밀한 맥락들, 행간 사이에 놓인 여백의 풍부함을 피상화 내지는 추상화로 몰고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집을 통해 그가 보여준 경험과 상상력의 그물망은 구도행이나 수도행 이상의 복잡한 인간상을 입체화한다. 그의 ‘숨은 神’은 신성에 닿고자 하는 실존인으로서의 고뇌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담지한 인격적 몸이다. 나는 이러한 그의 몸의 여정을 읽으며 ‘탈신성’이라는 말을 역으로 자꾸 떠올리곤 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담론이 무반성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둔감하게 '탈신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몰고 올 고귀함의 상실, 존엄성의 와해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두렵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묻게 된다.

― 「만리 여정을 가는 맨발의 숨은 神」 중에서, 엄경희 평론가

작가정보

저자(글) 이명수

이명수 시인은 1975년 월간시지《심상》초창기 박목월 시인의 사사를 받아 추천받았다. 2015년 시인협회상을 받기까지 44년간 『카뮈에게』(2019년)에 이르기까지 8권의 시집과 시선집 『백수광인에게 길을 묻다』를 상재한 현역시인이다. 나이 70에 이르러 쓰기 시작한 『카뮈에게』 시편 50편은 제주생활과 여행, 그리고 오랜 명상을 통해‘자기 본질’, 자기 정체성‘ 찾기를 통해 나름 깨달은 자유인의 삶을 지향한 시편들, 자연과 동물들과 상생하는 삶의 추구 등을 젊은 시각으로 이뤄낸 감성시집이다.
이 시집은 제2의 창작이라는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특히 시집을 묶을 때 미학적 장정 등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40여 년간 사진을 공부하고 일상과 여행에서 특색 있는 사진을 찍어왔고, 최근 ‘어둠 시리즈’ 사진 중 시와 상징적으로 연관된 사진 10여 편을 시집에 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주에 칩거하며 ‘마음 알아차림’의 명상에 정진할 생각이며, 매년 2회 해외 오지 탐사, <사람들>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사진작업을 이어 갈 것이라고 한다. 또한 ‘나’에 관한 화두로 시에 전념할 것이며, 이는 나를 찾아 떠나는 성스러운 순례 여행길이 될 거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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