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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부키

2025년 01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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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5.35MB)
ISBN 9791193528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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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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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고, 살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 같은 건 없길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닥치는 불행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구하려고 법이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그 법조차 내 편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법보다 사람 편에 서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친구 같은 변호사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차가운 법의 빈틈을 사람의 온기로 채우려 애쓰는 천수이 변호사가 그런 사람이다. 그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출근한 첫 직장은 구청 화장실 앞 복도에 세워진 칸막이 너머 한 평짜리 무료 법률 상담소였다. 공짜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노숙자,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 일용직 건설 노동자, 유언장을 쓰려면 한글부터 배워야 하는 할머니 등 가장 법의 보호가 필요하면서도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어서 그저 손 한번 지그시 잡아 드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의뢰인들은 속 시원한 법적 해결을 원해서만 그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변호사의 돈이 되는 백 마디 조언보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관심이 더 절실하고, 그것만으로 힘이 날 때가 있다.
난생처음 듣는 별의별 사연들 앞에서 당황하고 허둥대던 초짜 변호사를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맞장구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운 건 오히려 의뢰인들이었다. 학교나 책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할 인생 경험을 한 보따리씩 풀어놓고 가는 이들 덕분에, 다른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답을 줄 때, 저자는 의뢰인에게서 자기 인생의 답을 배웠다. 그렇게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어 가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추천의 말
프롤로그: 법의 빈틈을 채우는 사람의 온기

1장 준비―달동네 K-장녀, 로스쿨에 가다
태어나 보니 다 정해져 있더라
이름이 바뀌면 인생도 바뀔까
돼지에서 영웅이 되는 반전 드라마
결핍이 독이 아닌 득이 되도록
녹슨 칼의 쓸모

2장 시작―변호사인 듯 변호사 아닌 변호사 같은
긴가민가할 때는 대부분 기다
진실과 사실은 다릅니다
속는 것도 나, 속이는 것도 나
사실 우리는 모두 괜찮지 않다
변호사를 고소하고 싶어요
목도리도마뱀의 가을

3장 가족―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압구정 이 씨도 가능한 세상인데
끔찍하게 소중한 내 아이가 끔찍한 사람이 되지 않길
내 딸이 아닌 사람이 호적에 있어요
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고요
브라보, 아빠의 인생
이제 고작 100일 주제에 탕수육을

4장 관계―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매일 아침 10시에 동료가 온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하늘 아래 태양은 둘이 될 수 있어요
친애하는 이웃육촌들에게
대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낭만
인정사정 볼 것 있다

5장 삶―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들
다음이 궁금해서 눈을 감지 못합니다
조금 구겨져도 괜찮아요
가혹한 삶의 끝에 헛된 희망이라도
망할 병에 걸렸습니다
차가운 머리도 그들 편에 함께 서 있기에

6장 끝―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
가장 슬픈 공지를 합니다
누구보다 더 힘차게 살아남을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마지막 순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에필로그: 잘 듣다 갑니다

변호사의 ‘호(護)’자는 ‘말씀 언(言)’과 ‘자 확(蒦)’이 결합한 것으로, ‘말로 붙잡다’라는 의미다.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말로 보살피고 돕는 것이 변호사다. 내 인생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던 츄리닝 수험생이 타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여 그들을 이해하고 보살피고 도와야 하는 정장 입는 변호사가 됐다. 이 폭풍 같은 변화가 아직도 꿈만 같다. 내 앞의 작은 서류봉투 속에 담긴 의뢰인 한 분 한 분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변화는 있어도 변함없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다.(63쪽)

영화의 도입부에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진실이 힘이 없어 사실과 균형을 잃었다면, 진실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변호사다. 소송이 끝나면 다른 변호사들의 역할은 끝이 나지만, 내 역할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 아닐까. 누구라도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법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 주고 싶다. 사실과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니.(83쪽)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서 하늘이 가려지는 건 어린아이일 때뿐이다.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려도 술래에게는 내가 보이는 것처럼, 내가 억지로 못 본 체하더라도 남들에게는 내 잘못이 다 보인다. 어쩌다 운 좋게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데 성공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남을 속이는 것으로는 잠깐 행복해질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나를 속여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91쪽)

“마음이 힘드세요?” 남자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힘을 내려고 해도 잘 안되시죠? 힘내지 마세요. 죽는 데 쓸 힘이면 안 내시는 게 더 나아요. 저는 죽을힘조차 없어서 석 달 동안 누워 있었어요. 그때 망가진 허리가 요즘도 비가 오기도 전에 먼저 쑤셔요.” 남자가 울어야지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 “여기 법률 상담소 아니에요?” “뭐, 이것저것 다 해요 저는. 그러니까 언제든 오세요.”(100~101쪽)

일을 하다 보니 자주 오시는 분들이 생기고, 냄새만으로도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른다. 내 의뢰인들에게는 삶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집에서 양파를 까며 모은 쌈짓돈을 빌려줬다 떼인 아주머니에게는 찐득한 기름 냄새가, 반지하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아낀 돈을 사기당한 청년에게는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눅눅한 곰팡내가, 우리나라에 자기 손 안 탄 건물이 없다며 늘 자랑하지만 그 멋진 건물과 손가락 하나를 맞바꾼 일용직 아저씨에게는 시큼한 땀 냄새가 난다. 꽃이나 나무 같은 자연의 향기가 어떤 어려움 없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면, 이들의 냄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이 배어 있다.(102쪽)

잘못했다가는 나한테도 고소장이 날아올 수 있으니, 비장의 무기인 아이스 커피를 탄다. 옆 부서에 가서 얼음을 얻어다가 복도 끝 정수기에 가서 물을 받아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셋을 넣는다. 휘휘 저어 “이거 변호사가 탄 비싼 커피예요” 하고 내밀면 아무리 무서운 얼굴을 한 의뢰인도 이렇게 먹는 사람이 아직도 있냐며 웃는다.(104쪽)

매일같이 내 책상을 닦아 주는 청소 아주머니, 별일 없냐며 일부러 순찰을 돌아 주는 청원경찰 아저씨, 소속도 이름도 모르지만 한번씩 간식을 가져다 주는 같은 층 공무원까지 동료들이 건네는 말과 행동은 건강 음료처럼 내 몸에 흡수되어 하루치 힘을 책임진다. 때로는 사소한 불행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좋은 동료들을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소한 행복이 나를 기쁘게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주변에도 분명 당신을 빛나게 해 주는 동료가 오늘도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174쪽)

“어디가 하늘이고 누가 태양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표현대로라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기간 동안 하늘에 태양은 두 개입니다.”(192쪽)

유죄 판결을 받아도 큰소리 떵떵 치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한테 피해를 줄세라 말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법원의 형벌보다도 더 큰 죗값을 자신에게 부여한다. 기어이 죗값을 치르고 싶다던 의뢰인의 주름진 셔츠가 떠오른다. 애써 다려 입어도 금세 다시 주름이 지고 마는 그 옷이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계속해서 고난이 뒤따르는 그의 인생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옷을 입어도 그저 툭툭 털며 ‘조금 구겨졌네. 오늘도 내가 열심히 살았나 보네’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 본다.(229쪽)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공지를 보며 무연고 죽음이 참 외롭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계속 지켜보니 공지조차 올라오지 않는, 어설프게 연고가 있는 죽음이 더 외롭고 슬픈 경우도 많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는데도 외로운 것이 진짜 외로움이라고 했던가?(267쪽)

한 할머님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양식을 들고 오셨다. (...)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힘이 듭니다. 의미 없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내가 미리 결정하고, 남은 날들을 후회 없이 살려고 해요. 살고 싶어도 더 살 수 없는 날이 온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서류는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나의 의지입니다.”(286~287쪽)

때로는 같고 때로는 다른 이야기들을 파고들면 그 안에는 늘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아끼는 그 마음, 사랑과 신뢰가 깨질 때 문제가 발생하고 법적 분쟁이 시작된다. 그러니 사랑을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 숱한 상담을 하면서, 엄격한 법적 논리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이 보다 나은 답이 되는 순간이 많았다.(290~291쪽)

★ ‘밀리의 서재’ 독자들이 먼저 읽고 입소문 난 화제작
★ 《해방의 밤》 은유 작가 추천

“법이 당신 편이 아닌 순간에도
여전히 당신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빈틈을
사람의 온기로 채워 간 682일의 기록

리어카를 끌며 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리어카로 비싼 자동차를 긁어 재판까지 가게 됐다. 판사가 제발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타령을 하듯 그간 본인의 고단한 삶을 다 토해 냈다. 급기야 상대측 변호사에게 거짓말쟁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참다못한 판사도 같이 소리쳤다. “자꾸 이렇게 소란 피우면 감치할 겁니다!” 할머니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어차피 설명해 봤자 말만 길어진다고 생각한 판사는 이렇게 답했다. “엄청 무서운 거예요!” 심각한 분위기와 그렇지 못한 대사에 웃음이 터지려는 그때,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돈 드는 거예요?”
사회복지사의 요청으로 엉겁결에 할머니의 재판에 동행한 변호사는 그 말을 듣고 10톤 화물 트럭에 실려 있던 돌들이 가슴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법정에서 나왔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터라 밥이라도 들고 가시라고 하자, 집에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묶어 놓고 와서 얼른 가 봐야 된다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젊어서 바람피운 일이나, 늙어서 아픈 것도 다 감당할 수 있는데, 날씨가 궂은 날에 폐지를 줍지 못하면 벌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드는 돈이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한다. 평생 게으름이나 낭비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돈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삶은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식사라도 챙기시라고 수중에 있는 현금을 몽땅 털어, 한사코 거절하시는 손에 쥐여 드렸다. 저희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런다고, 손녀가 주는 용돈이라 생각하고 맛있는 고기반찬 사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구청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법률 상담소
그곳에서 만난 찡하고 짠한 사람과 세상 이야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 주는 변호사가 있다. 법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고, 살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 같은 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닥치는 불행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구하려고 법이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그 법조차 내 편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법보다 사람 편에 서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친구 같은 변호사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당장 명쾌한 법적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해도, 내 억울한 처지와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심정을 헤아려 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지금은 신림동이라고 불리는 난곡 달동네에서 나고 자란 천수이 변호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달동네 판자촌에서 사회운동에 헌신한 부모님과 달리, 그는 누구보다 가난이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또다시 어려운 사람들 곁에 머물며 그들을 돕는 자리에 가게 됐다. 구청 복도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무료 법률 상담소가 그곳이다.
공짜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노숙자,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 일용직 건설 노동자, 유언장을 쓰려면 한글부터 배워야 하는 할머니 등 가장 법의 보호가 필요하면서도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어서 그저 손 한번 지그시 잡아 드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의뢰인들의 무력한 모습에서 어린 시절 이웃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고, 별 도움도 못 되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고민이 깊었다. ‘의뢰인들이 나보다 더 훌륭한 변호사를 만났다면 더 좋은 답을 얻어 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상담을 거듭할수록 이 자리는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들어 주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들은 속 시원한 답을 원해서만 그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변호사의 돈이 되는 백 마디 조언보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관심이 더 절실하고, 그것만으로 힘이 날 때가 있다.
난생처음 듣는 별의별 사연들 앞에서 의뢰인보다 더 황망해하던 초짜 변호사를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맞장구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운 건 오히려 의뢰인들이었다. 학교나 책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할 인생 경험을 한 보따리씩 풀어놓고 가는 이들 덕분에, 다른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답을 줄 때, 저자는 의뢰인에게서 자기 인생의 답을 배웠다. 그렇게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어 가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출생의 비밀’부터 전세 사기와 보이스피싱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은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뜰 준비가 된다.”

아동 추행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다녀오니 가족들은 다 이사가 버리고 어디 하나 자신을 받아 주는 곳이 없어 노숙자가 되었다는 남자. 그는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은 보상받을 수 없더라도 가족은 되찾고 싶다며 변호사를 찾아왔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임신한 몸으로 집을 뛰쳐나와 과거를 숨기고 재혼한 여자. 뱃속의 아이를 차마 입양 보낼 수 없어 현재 남편의 아이인 양 키운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남아 있는 50년 전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지 묻는다. 괴롭더라도 자신만 입을 다물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다 보행자와 부딪쳐 상해를 입힌 의뢰인은 지체 장애가 있다. 기초수급 70만 원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400만 원의 벌금과 2000만 원의 민사소송 보상금을 마련할 돈이 있을 리 없다. 노역이라도 해서 벌금을 내고 피해를 보상하고 싶지만, 불편한 몸을 그렇게 죗값을 치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벌금을 감경해 주십사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게 된 이유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더니, 어려서부터 ‘수이한’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저자는 변호사가 되어서도 기막히고 억울하고 엉뚱한 사연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출생의 비밀’부터 보이스피싱, 깡통주택 전세 사기, 사생활 동영상 유포, 명예훼손, 파산/회생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겪을 법한 불운할 일들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언뜻 흔하고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는 사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라마 같지 않은 인생이 없다. 법적으로는 판단이 분명하나, 인간적으로는 잘잘못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상황도 많다. 배가 고파서 마트에서 즉석밥과 라면을 훔친 현대판 장발장 같은 어르신, 살아서 평생 가족들에게 짐만 된 아버지의 장례 치르기를 거부하는 자식을 뭐라고 나무랄 수 있을까. 법은 옳고 그름과 유무죄를 냉정하게 가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그렇게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저마다 안타깝고 어찌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그러니 내가 그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어떤 것도, 그 누구의 삶도 쉽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법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세상만사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에 법 또한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2006년 대전고등법원의 한 판결문에서는 법을 기성복에 비유했다. 아무리 다양한 치수의 옷을 만들어 두어도 모든 사람이 그 옷에 맞을 리 없는 것처럼, 법의 이성에도 빈틈이 있다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사랑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사랑이라고 해서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 인생에 시린 겨울이 닥칠 때, 저자가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듯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것, 힘들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붙잡기도 하며 그 계절을 무사히 헤쳐 나가는 것이다. 저자의 믿음처럼, 이 책에는 고단하고 팍팍한 사연들 사이로 곳곳에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다. 의뢰인들이 수임료 대신 놓고 간, 갓 쪄 낸 고구마와 손수 튀긴 오징어 튀김처럼 말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천수이

변호사, 법학전문박사(민사법), 사회복지사(2급).
달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더불어 함께’라는 가훈 아래 사회운동에 헌신한 부모님과 달리, 가난이 누구보다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때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 시절에 500시간 가까이 멘토링 봉사활동을 하고, 변호사가 되어서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자리를 택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떠났지만, 틈틈이 마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 자문, 학교 밖 청소년·한부모 가정·스토킹 범죄 피해자 등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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