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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

신동호 지음
한겨레출판사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5년 01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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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6.29MB)
ISBN 979117213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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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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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기습 담화에서 비롯된 국가 위기 상황, 유튜브 음모론에 심취해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진 대통령의 언어 또한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극단적이고 실체가 불분명한 언어가 단숨에 국운을 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섭게 깨닫는 시기다.
작금의 일을 분석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중지를 모으고, 차기 지도자를 새로 그려 보아야 할 시기, 심도 있고 풍부한 영감을 제공할 책 《대통령의 독서》가 출간되었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담화문, 기고문에 담긴 독서의 자취를 따라가며, 어떤 책이 대통령의 생각의 씨앗이 되어 그의 말과 글로 탄생했는지, 한 권의 책이 어떻게 지도자의 가치관, 세계관, 역사관의 토대가 되었는지 그 경로를 살펴보는 책으로, 청와대 연설비서관 5년을 지내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작성을 보좌한 신동호 시인의 정치ㆍ독서 에세이다. 책을 소재로 하는 책인 만큼 애서가로 유명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글이 다수 소개된다. 특히, 감성적인 동시에 역사적이고, 진영의 언어를 초월해 국민의 공감을 우선했다는 평을 듣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글쓰기ㆍ말하기 노하우를 충실하고 다채롭게 풀어냈다.
책을 펴내며

1장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 희망을 향해 책장을 넘기다
2장 비과학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3장 우리는 더 친절해져야 한다
4장 권력 따위 지옥에나 보내 버려!
5장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갈 만큼 힘센 나라
6장 함께 산 5000년, 헤어진 70년
7장 K컬처, 대한민국 진경시대
8장 체르노빌, 후쿠시마, 그리고 월성
9장 국민 한 사람의 존엄이 곧 애국
10장 광주가 온다
11장 태극기를 드는 마음은 달라도
12장 공이 아닌 골키퍼를 보는 일
13장 뒤집힌 세계지도의 꿈
14장 배울 것은 배우고,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15장 반칙도 특권도 없는 세상
16장 언어와 역사를 지우는 전체주의에 맞설 힘
17장 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18장 이제 ‘함께’ 잘사는 나라
19장 우리의 정치에 ‘어제’와 ‘내일’을
20장 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기다리며

참고문헌

독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책을 통해 인간은 실수, 실패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갖게 되었습니다. 무작위적인 불행.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에게만 닥친 것 같은 비극에 허덕였지만 독서가 상황을 바꿨습니다. 비극들을 연결시키고,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인간사에 당신이 보편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극이 당신을 성숙시키면서 당신은 드디어 자기 존재의 외투를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_12쪽

대통령이 되려면 이제 5,000만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각자가 다 다르거든요. 불가능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과 평화》만 읽어도 599명, 자기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효율적이지 않다고요? 대표적인 이야기만 들으면 된다고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다수의 이야기를 들을 뜻이 없는데 어떻게 국민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개인의 뜻 전부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겠느냐고요? 당연히 안 됩니다. 어떻게 모두의 요구를 다 수용하고 집행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건, 권위주의 시대의 발상입니다. 대통령의 역할은 이제 명령하고 따라오라고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생각을 조정하고, 서로의 대화를 이끌고, 차이가 있으면 중재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리더십입니다. 그러려고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면 목표를 수정하고 골목대장에 만족해야 합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거나, 옳다거나, 그런 것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각각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가끔은 ‘콜라주’를 이룰 수 있는지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_12~13쪽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내가 이 일을 하려고 그토록 책을 떠나보낼 수 없었나 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려다 보니 수시로 청와대 여민1관 지하의 도서관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서너 권의 책을 탐독한 끝에 연설문 한 줄을 쓴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국민 전체가 아닌 개인, 포괄적 현장이 아닌 바로 그 자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오늘의 역사에 맞춤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이며 단지 대통령만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 개인들의 분투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독서는 비단 대통령 한 사람의 독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독서입니다. 또한 당신의 독서가 대통령의 독서입니다. 타인과 공존하는 사회를 그리는 마음으로 정의와 민주주의, 경제와 과학, 외교와 통상, 역사와 인물에 대한 책을 읽어 본다면, 당신은 그저 직함만 다를 뿐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 보는 가장 알찬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역시 그런 당신을 함부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구체적인 목표 안에는 분명 당신들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담겨 있을 것입니다. _14~15쪽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앞둔 두어 달 전, 문재인 대통령이 내게 생각을 물었다. 두어 달 전은 이례적으로 이른 시간이었다. 6.25를 국민 의식이 싹트고 국민 전체의 정체성이 형성된 과정으로 설명하면 국민통합에 기여할 것이라 말씀드렸다.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새해 들어 고민의 상당 부분을 6·25전쟁 70주년에 할애하고 있었다. 수복지구에서 자란 소년에게 6·25전쟁은 아버지 삼 형제의 인생 전부이기도 했고, 6·25전쟁의 제대로 된 기억과 평가 없이 한반도 평화 또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라 일찍부터 생각해 온 터였다. 그날의 연설문을 많은 시간 공들여 손보고, 대통령과 여러 번 성의껏 검토했다. 평범한 국민의 시각에서 역사를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로 전진하려는 대통령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와 촛불이 한마음으로 물결치면 좋겠다는 소망도 커졌다. _107쪽

애국은 언제나 거창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한다. 가족과 이웃, 된장독과 텃밭, 일터와 반복되는 일상, 사투리와 모국어, 평범한 삶이 나누는 소박한 애정이 비상 시기에 애국으로 드러난다. 하찮아 보이는 몽당연필에 한 사람의 삶이 녹아 있고 낡은 구두와 녹슨 연장에도 삶이 이뤄 놓은 존엄함이 담겨 있다. 누구도 뺏을 수 없고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것이다. 애국은 영토와 재산, 생명을 지키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한 개인의 존엄한 삶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위정자들이 팔아먹은 나라를 국민이 되찾은 것은 늘 자기 삶의 존엄을 지켜 왔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강압으로 합병조약이 체결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일반 백성의 뜻을 말하자면, 표면으로는 본래부터 침착하여 아무 일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저 꼬불꼬불한 좁은 거리의 노래에도 어두운 방 안의 울음에도 어느 하나 조국의 사상 아닌 것이 없다.” 매국노들의 설레발과 자화자찬, 일황이 내린 은사금을 나눌 때 선생은 비분강개를 감췄다. 저 도도한 백성들의 삶을 믿었다. _169쪽

통합은 언제나 막연하고 조금은 거창하게 들린다.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나 ‘국민통합’을 외치지만 진정으로 사회를 개선하려는 것인지, 진전을 위한 열망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통합 뒤에서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경제적 격차를 더욱 심화한다면 그것은 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서 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용서를 실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으로 격차를 줄이려 했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기득권과 싸운 노무현 정신을 배우겠다” 했고,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대통령들이 저토록 통합을 외치는데, 왜 양극화는 깊어지고 갈등은 점점 커질까. 왜 자꾸 뒤돌아 갈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고민과 후회가 깊어진다.
통합은 새 떼의 비상 같다. 흩어졌다 모이고 한곳으로 향하다가 다시 흩어진다. 삶이 그렇듯 한결같을 수 없다. 제각기 원하는 대로 흘러가다가 때때로 경이롭게 뭉친다. 그렇다. 통합은 정치적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치에서 통합은 흔히 전제주의로 빠지기 쉽다. 통합은 개인의 ‘도덕적 투쟁’(빅토르 위고, 〈세 아이〉, 《93년》)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 보수든 진보든, 20대든 70대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모두 나름의 생각과 삶이 있다. 보수에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있고, 전통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다. 진보에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있고, 역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있다. 통합은 저마다의 정직한 삶을 기반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일에 달렸다. _205~206쪽

광흥창역에서 내려 매일 아침 서강대교를 걷고 달려 여의도로 갔다. 가장 먼저 도착해 커피를 타고 자료를 읽는 경험은 아주 색다른 자신감을 주었는데, 그때 어렴풋이 발견한 건 달리기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글쓰기 능력이 도약할 수는 없는 법, 단지 그동안 읽은 것, 그동안 생각한 것을 자신 있게 담아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물어 볼 수 있는 힘, 다른 의견을 담아낼 수 있는 여유, 고치고 또 고칠 수 있는 집중력이 자라났다. 자신이 쓴 것에 대한 책임감은 덤이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일찍부터 달리기에 빠져들었다면, 부끄러운 결과물이 조금이나마 줄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끔 몸을 부르르 떨었다. _220~221쪽

연설이나 강연은 구체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한다. 가령 사관학교 졸업식 같은 경우 신임 장교로 그 대상이 명확하다. 그렇지만 그 연설을 듣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다. 넓게는 국민 모두를 향한 안보와 국방 연설이기도 하다. 외교 무대에서는 조금 복잡해져서 그 나라의 국민과 우리 국민을 동시에 청자로서 염두에 두지만, 좀 더 세분하면 그 나라의 정부와 국민을 구분하기도 한다. (…) 사람은 누구나 지금 자신이 도달한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여전히 주종 관계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는 연설 곳곳에서 문 대통령이 중국에 예를 다하는 소국의 대통령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중국과 가까워질수록 혈맹과의 관계가 걱정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숙이 바탕이 된 자존감, 주도해 보겠다는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라면 문장마다 존중과 겸손을 읽고, 이를 통해 중국 인민을 한편으로 만들어 실익을 얻으려는 실용적인 태도를 봤을 것임이 분명하다._253~254쪽

어느 날 연설문 수정본에서 ‘반칙과 특권’이라는 두 단어를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필로 꼭꼭 눌러쓴 것이다. 왜 전직 대통령의 특허 상품을 가져다 쓰실까, 생각하다가 2018년 삼일절 연설문을 작성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통령은 나를 불러 독도 이야기를 넣자 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받아 적었다. 사무실로 내려와 살펴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널리 알려진 독도 연설과 매우 유사했다. 연설비서관이 전임 대통령 연설을 베꼈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옹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길 버스 안에서 무릎을 쳤다. 일부러 외우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 없다, 직접 관여했거나 함께 작성한 것이 아니라면 저리 똑같이 불러 줄 수 없다, 적어도 두 사람의 공통된 철학이었음이 분명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도 그렇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수시로 공유한 언어였으리라. 물론 두 사람과 함께했던 김 전 지사에게도 굳은살처럼 심장에 박였을 언어였다._274~275쪽

여름 휴가철에 대통령들이 읽은 책들에 주목해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혜를 키운다. 과거의 스승과 만나고(《맹자》 《배는 그만 두고 뗏목을 타지》), 미래를 구상한다(《지식자본주의 혁명》 《미래와의 대화》). 노무현 대통령은 공격적이다. 과학으로 갔다가(《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위기 돌파의 지도력으로 옮겨 갔다가(《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현실 정치로 돌아온다(《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 자체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요구였다. 호남의 지지로 영남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무명의 시민들이 선두에 섰다. 정치권, 권력 기구들이 크게 요동쳤다. 노 대통령 역시 가 보지 못한 길이었다. 선명한 개혁의 추진으로 지역감정을 해소해 보려 했을 것이다. 센 역풍을 맞았지만 국토 균형 발전으로 돌파했다. 적어도 새로운 세계의 청사진은 남겨 놓았다.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한 고민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책 속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_275~276쪽

짧은 여의도 생활에서 느낀 게 있다. 우리 정치에는 ‘오늘’만 있다. ‘어제’가 없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무감각하다. 어제를 떠올리자고 하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한가한 사람이 된다.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밀려난다. 역사의 교훈은 말해서 무엇하랴, 정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일’도 없다. 일단 오늘 권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내일은 그 뒤의 일이다. ‘오늘’, 오늘만 반복된다. 필요한 이야기, 적절한 인물을 오늘 모두 써 버린다. 마치 내일 자신들만 남을 것처럼 오늘 죽자 살자 거친 언행을 불사한다. 이슈가 이슈를 밀어내고, 뉴스가 뉴스를 덮는다. 백년대계는 말해서 무엇하랴, 정치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정치인 한 사람을 보면, 한 집안이나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동량지재(棟梁之材)다. 처음부터 오늘에 안달복달했을 리 없다. 나라의 어제에서 뜻을 찾아 국민의 내일을 걱정했을 사람들이다. 다만 기회를 보다가 뜻을 묵혀 버리거나 권력이 주는 이익에 취해 어느새 뜻이 있었는지조차 잊은 듯하다. ‘그놈이 그놈’으로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좋은 인재들을 친(親)·비(非)로 나눠 사익을 앞세우는 사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설계하고 있는지, 정치가 안갯속에 숨고 말았다. _326~327쪽

책이 모든 걸 알려 줄 수는 없다. 책이 아니고도 지혜를 얻을 방법은 많고, 글을 못 배웠을지라도 떨어지는 나뭇잎만으로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독서가 한 사람의 삶에서 꼭 필수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확신은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오만함이 시원해 보이기도 한다. 책은 읽는 사람을 끊임없이 겸손하게 하고, 자기 생각을 의심하게 하고, 심지어 다른 책으로 옮겨 가도록 유혹하기 십상이어서 책을 많이 읽을수록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논쟁에서 우위를 갖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렇다고 책이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이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 즉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라 말한다. 에코와 대담을 나눈 장클로드 카리에르도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조차 책에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다고 한다(움베르트 에코·장클로드 카리에르, 〈책은 죽지 않는다〉, 《책의 우주》).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쓰기와 읽기에 대한 필요성은 더 절실해졌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일도 더 빈번해졌다.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한 책은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가 변할지언정 지금의 그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_341~342쪽

독서는 행위 자체로 소통이고 즐거움이기에 책 읽는 대통령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바람처럼 왕관이나 월계관 같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수습보다는 예방을 우선하고, 권위보다 자발성을 중요시하기에 그 성과조차 모르고 지나가거나 한참 지나서야 드러난다. 독서는 윤리의식을 키웠다. 자기를 점검하고 부정한 곳에 발도 들이지 않게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시야도 밝아지게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인기 없는 정책을 시도하고 미래에 성과와 공을 배려했지만, 그들을 기억하면 지금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대한민국이 좋아진다.
저 위에서 한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듯 서로에 대한 판단이 거침없는 시대다. 기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만나서 대화하고, 거기서 자신 스스로도 열어 봐야 한다. 과거의 사람이라면 결국 책으로 만나 대화해야 할 것이다. 책이 모든 걸 알려 줄 수는 없더라도 역지사지의 태도에 익숙하게 하고 우리를 합의점으로 데려다주기는 할 것이다. _347쪽

“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기다리며”
국가 위기 상황,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도종환 시인, 음악가 하림 강력 추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는 책과 연결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남아수독오거서”(사내라면 모름지기 평생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고, 서양에는 “All leaders are readers”(모든 지도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남긴 이 문장은 몇 해 전 “Readers are leaders”(책 읽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표현으로 변주되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독서를 멀리하는 대통령을 꼬집는 미국 시민사회의 캠페인이었다.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는지 늘 궁금해하고, 편향되고 비합리적인 지도자의 언어로부터 독서의 부재를 읽어내며, 대선 후보의 추천 도서를 유심히 살피는 검증 관행을 치르는 우리 사회 역시 지도자와 책을 긴밀하게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독서율과 독서량이 감소하는 지금과 같은 때에도 여전히 지도자에게 독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이 무엇일까? 책은 ‘나의 판단을 검증하고 의심하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성찰할 기회를 마련하기 어려운 권력의 중심에서 책은 타인의 삶, 타인의 생각과 심도 있게 연결되는 통로다. 또한, 국민 전체를 대리하면서도 개별의 삶과 만나기 어려운 대표자의 딜레마를 극복할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인간은 실수, 실패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기회를 무수히 갖게 됩니다. 대통령의 독서는 과거의 교훈을 새기고 국가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그려보는 창입니다. 5000만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_〈책을 펴내며〉 중에서


“대통령의 독서는 비단 한 사람의 독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독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이 들려주는
시대를 비추는 지도자의 책, 말, 글

민주주의 정신을 크게 고양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몇 세대를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된다. 장 자크 루소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로 요약되어 프랑스혁명을 불러왔고,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사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전후 세계 질서를 새롭게 일으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간디와 넬슨 만델라, 마틴 루서 킹을 감화시켜 흑인ㆍ노예 해방, 권리 신장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듯 말과 글이 세계를 바꾸어 왔기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 국민을 대표하기로 한 대통령의 한마디에 우리는 많은 권한을 위임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고도의 정치 행위”(8쪽)이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가치관, 역사관, 인생관, 세계관이 담긴 한마디는 대중에게 널리 전달되고, 국정 운영의 철학이 되고, 정책으로 실현되며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무엇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말과 글에 담겨 전달될 수밖에 없기에, “대통령의 독서는 이 나라의 독서”(14쪽)가 된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사회 전반에 탈권위주의와 수평적 리더십에 관한 관심이 증가했다. 같은 시기, 독점ㆍ특권 문화를 비판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을 제시하는 《소유의 종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이 ‘대통령의 책’으로 회자되고 널리 읽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감 생활 중에 읽은 《제3의 물결》은 수십 년 뒤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정보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는 취임사가 되었고, “지금, 그 꿈은 대부분 실현되었다”.(23쪽)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은 쌍둥이”(《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기록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선포문〉에 닿았다. 《소년이 온다》를 추천하며 광주 정신을 ‘시민 한 명 한 명의 의지’(192)로 호명한 〈제37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사〉와 “평범한 시민의 힘”을 강조하며 광주 정신과 촛불혁명 정신을 연결한 글 〈평범함의 위대함〉(《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고문)을 발표한 대통령이 시민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어젠다를 제기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제도를 신설한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신의 독서가 곧 대통령의 독서”
꿈꾸는 사회를 현실화하는, 책이라는 도구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문, 담화문, 기고문 속에 인용ㆍ참고된 독서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 책은 어떤 책들이 그의 생각의 지도가 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한 시대를 비춘 말과 글로 재탄생했는지, 그 말과 글이 당대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그 경로를 자세히 안내한다. 지나간 언어를 곱씹고 내일을 위한 언어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널리 공감 받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말과 글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다. “서너 권의 책을 읽고 연설문 딱 한 줄을 쓰는 날이 비일비재”했다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수많은 현장 경험, 꼼꼼하고 성실한 자료 조사, 연설문 전문과 발췌문을 번갈아 살피며 대통령의 생각의 지도를 촘촘히 따라가는 구성으로 신뢰받는 언어의 비결을 밝힌다.
나아가 ‘대통령의 독서’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타인과 공존하는 사회를 그리는 마음으로 정의와 민주주의, 경제와 과학, 외교와 통상, 역사와 인물에 대한 책을 읽어 본다면” “그것이 곧 대통령의 독서”라고 역설한다. “대통령 역시 그런 당신을 함부로 생각할 수”(14쪽) 없다고 격려한다.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언어가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12월 3일 이후, 헌법과 민주주의에 관한 서적의 판매가 급증했다. 어떤 사회를 꿈꾸어야 할지, 꿈꾸는 사회를 현실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책을 통해 길을 찾는 일은 꼭 대통령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절감한 이들에게 힘과 용기, 영감을 전할 책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신동호

시인,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시인이 되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시를 썼는데,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이 친하게 지내는 일이 삶과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이라 여기고 오랫동안 대동강과 두만강, 송악산과 금강산 부근을 오갔다. 그 경험으로 민주주의 정부에 기여해 보리라 결심했지만, 뜻과 다르게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되었다. 매일 새벽 10킬로미터를 달리며 권력의 유혹을 털어내고 겸손을 주워 담으려고 애썼다. 대통령의 정직하고 선한 마음을 믿고 꼬박 5년을 글쓰기로 보좌했다. 달리기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놀라고, 대통령과 독서 경험이 맞아떨어질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시집으로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냈고, 산문집으로 《유쾌한 교양읽기》 《꽃분이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다》 《분단아, 고맙다》 《세월의 쓸모》 《자승스님의 묵묵부답》(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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