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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른 냄새

이혜인 지음
청과수풀

2024년 12월 2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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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7.36MB)
ISBN 979119895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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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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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감각보다 쉽게 흩어지고 또 스며들어 금방 잊히고 마는 냄새는 돌이켜보면 늘 기억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코끝을 스친 어느 향에 불현듯 지나간 추억을 상기하게 만드는 이 후각의 언어는 잊힌 듯 잊히지 않음으로써 경계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감각이다. 오랜 시간 냄새라는 감각에 관심을 두고 《나를 기른 냄새》를 집필한 저자는 이러한 냄새의 속성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파악하곤, 자신을 몰래 길러온 것이 다름 아닌 냄새임을 깨닫는다. 저자가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감지됐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가족들의 아침 식사 냄새, 엄마의 손가락 사이에서 나던 야쿠르트 냄새와 동네 호프집의 나무바닥 냄새.... 이러한 냄새들을 맡으며 저자는 한뼘 자라났다.

냄새로 인해 새삼 소환된 개인사는 저자를 거기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사회문화에 담긴 후각의 언어마저 탐험하게 한다. 그가운데서 발견한 세상의 여러 모순과 폐허는 마냥 아름답지도 순하지도 않기에 저자 스스로의 모순된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모순 앞에 자신을 숨기기엔 너무 많은 냄새를 감지한 저자는 차라리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 나는 어느 존재의 냄새를 맡고자 한다. 아빠의 페인트 냄새에서, 동네 학의천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그리스의 이드라섬과 이탈리아의 오렌지꽃나무에서, 그리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쇠구두 주걱을 팔던 양복 입은 할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하며. 아는 만큼 부디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저자는 그렇게 후각이라는 터널로 더욱 선명해진 풍경을 만난다. 《나를 기른 냄새》 속 후각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두 번째 작가의 말

1장 스트레인저
- 좋아해서 투명해진
- 여행지에서 나를 두고 오는 법
- 공동묘지의 쓰레기통은 아름답다
- 이드라에서

2장 홈타운
- 경기도 라면 가족
- 당신의 반찬통 냄새
- 내 안의 에바
- 학의천에서 학 난다
- 섬유유연제와 흰 운동화

3장 대면
- 아이 워스 필링 언더 더 웨더
- 숨을 쉴 것
- 콧속 요가
- 허수경 시인에 대한 착각

코로 작품 읽기

4장 코끝의 자각
- 죽음의 실루엣
- 창틈 사이로
- 사람 냄새

5장 망각과 혐오
- 인간의 닳은 지문
- 피톤치드적 사유
- 스무스한 혐오

6장 상흔과 희망
- 냄새의 실종
- 기억의 수식
- 환상의 섬, 제주

나의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언제나 냄새가 있었다. 아니 냄새가 감지됐다. 그래서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꼭 어떤 냄새가 배어 있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간 농장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맡았던 허브 냄새, 해 질 무렵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코끝으로 집합하던 밥상 냄새, 베란다의 푸른 타일을 청소하고 나면 바깥바람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던 물비린내 냄새, 겨울이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펴지던 석유난로의 냄새…. 7쪽

나는 그를 홀로 좋아해서 냄새를 맡는 자가 아닌 맡아지는 자가 되었다. 상상 속 수많은 코가 시도때도 없이 내 피부 앞에서 씰룩댔다. 나는 내 몸에 코를 묻은 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게서 냄새가 나나? 나를 탈취하고 또 탈취했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면 투명해지는 건가 싶었다. 그가 던지는 모든 말은 내 안에 투영되었다.
"너는 착하고 조용해." 나르키소스의 무관심에 형체를 잃고 목소리만 남게 된 에코처럼 나라는 존재도 이내 흐릿해지더니 스스로에게도 스스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게는 그가 볼 나, 그가 맡을나, 그가 평가할 나밖에 없었다. 불현 듯 겁이 난 나머지 또 계약 기간보다 일찍 집을 떠났다. 21-22쪽

일상으로 복귀한 뒤 맡게 되는 여행지의 향은 멀리 있다. 거리와 시차의 간격만큼이나 멀리 있다. 멀리 있는 채로 가까이에 있다. 후각의 특출한 기억 능력은 나와 여행지와의 정서적 간격을 좁히지만, 동시에 나와 여행지 간의 물리적 거리를 재확인시킴으로써 유대와 같은 세기의 그리움을 생성한다. 지금의 나는 여기에 있지만, 향이 소환한 나는 아직 저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애달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향을 기억하는 일은 그곳에 나를 단단히 심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나 그곳의 나를 되찾고 싶은 게 아닐까. 29쪽

뒤쫓아오던 남자가 내 숙소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싶다고 했다. 고개를 돌려 남자의 눈과 마주했다. 코앞에서 남자의 땀 냄새가 잠시 고였다가 흩어졌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좋은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점점 잘못되고 있음을,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짐짓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름다운 길목에서 끝내 걸음을 보태어 매립지를 마주한 것처럼 나는 어느 사람의 마지막에, 가볍고 깊숙한 진실에 다다르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코는 막지 않고 등을 돌렸다. 믿음은 내게 있었으므로. 43쪽

그리곤 깨달았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가족들의 라면 냄새는 간간이 나를 삶으로 끌어들이는 회유의 역할을 했음을. 노크도 없이 내 삶에 벌컥 밀고 들어와선 그들 자신의 생활을 불쑥 끼워 넣는 행위로부터 나 안전하지 않았나. 해 질 무렵 아파트 단지에서 퍼지던 밥 짓는 냄새, 기나긴 복도를 가득 채우던 생선 굽는냄새, 시골 가는 길 드문드문 차 안으로 들어오던 주유소 냄새와 소똥 냄새,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며 맡던 이름 모를 꽃 냄새…. 이런 예상치 못한 냄새의 파편들이 나를 몰래몰래 길러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50-51쪽

엄마는 그걸 아는 걸까? 엄마의 냄새는 엄마와 함께 늙어가지 않는다. 엄마 냄새엔 방부제가 있다. 자신이 가진 냄새가 유일한 보루인 양 엄마는 내가 가족과 멀어지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 구겨진 계약서를 들이민다. 냄새에 대한 응답을 포기한 자를 향한 처절한 협박. 너는 영원한 내 아기이자, 내 것. 잊지 말길. 나는 엄마의 냄새에 반응하기 위해 태어났다. 나의 조카처럼. 63쪽

춤토어는 스위스에서 건축을 하고 나는 경기도에서 글을 쓴다. 우리는 각자의 대지에서 흡수한 것들을 토대로 무언가를 만든다. 물론 그 결과는 무척 다르다. 그는 프리츠커상과 영국 왕립건축가협회에서 로열 골드 메달을 수상했고 나는 글쎄.... 세탁소의 따뜻하고 깨끗한 냄새, 지나칠 때마다 긴장하게 하는 건강원의 미스테리한 냄새, 소박한 절에서 나는 향나무 냄새, 오래된 호프집의 나무 바닥 냄새 등을 꼼꼼히 맡으며 살아간다. 동네의 이런 냄새들을 간직해서 무엇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조용히 이 글을 내밀 뿐이다. 이제 와 고백할 것도 없지만, 이 글은 경기도 안양만큼의 글이다. 내가 가진 것에서 더멀리 나아가지도, 좁아지지도 않는 그런 글. 71-72쪽

아빠는 언젠가 엄마와 화장품을 사러온 백화점에서 몰래 향수를 시향해보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다 늙어 뭐하는 짓이냐는 매운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얘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웃고선 아빠에게 무슨 향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아빠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들은 것처럼 당황해하다가 끝내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아빠를 데리고 엄마에게 혼이 났다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마침 아빠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 선물로 향수를 사주고 싶었다. 우리는 1층의 화장품 가게들을 이리저리 오가며 염치도 없이 같은 향도 여러 번 맡았다. 시향지에 코를 대고 집중하는 아빠를 훔쳐보았다. 가느다란 종이를 들은 아빠의 새끼손톱엔 흰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중요한 날에만 신는 프레드페리 흰 운동화도 보였다. 아빠가 점 찍어둔 시향지들을 주머니에 그러넣으며 생각했다. 그때 그 방치된 식물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지 나로선 알 순 없지만, 아마 그 식물 역시 그러한 과정이야 영영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77쪽
그리움에 늘 담보 잡혀 있는 냄새는 죽음의 실루엣과 닮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를 순식간에 감정에 휩쓸리게 만드는 재난의 물질이다. 그리고 에니스에게 그랬듯, 어느 날 구원의 형태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여전히 후각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문자로 이루어진 시가 모두에게 해석되는 것이 아니듯 후각 또한 그 냄새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언어여서가 아닐까. 어쩌면 옛사람들은 후각을 멸시한 것이 아니라 후각으로부터 포기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130쪽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어느 날부터 그들이 보이지 않아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양복을 입고 손톱깎이와 쇠구두 주걱을 파는 키 큰 할아버지와 삼각지역에서 종이부채를 들고선 3천 원어치 엿을 팔던 할아버지와 사당역 환승 구간에서 손수건을 몇십 장 모아놓고 팔던 할머니와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에서 흩어진 74퍼센트 여성의 행방이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리고 묻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우려해야 했던 전염은 혐오라는 질병 아니었을까? 168-169쪽

찰리 잉그만(Charlie Engman)의 AI 시리즈는 팬데믹 시대의 후각에 대해 더욱 시사한다. 〈Chair〉(2023) 시리즈는 신체의 일부가 조금씩 더 있거나 덜 있는 상태로 기이한 방향으로 틀어져 혼자이면서도 꼭 누군가와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인물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팔꿈치 안쪽 깊은 곳에 고개를 묻고 있거나 상대방의 얼굴과 지나치게 맞닿아 있다. 그리운 냄새를 찾아 파고들고 파고들다 결국 하나의 몸으로 굳어진 것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장면이지만 작품 곳곳에 불쑥 등장하는 수상한 오류가 이것이 AI 작품임을 밝힌다. 그러나 잉그만은 그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을 애써 다림질하지 않는다.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가느라 뭉개지고 비틀어진 흔적을 남긴다. 나는 작가가 사용했을 명령어들을 상상해본다. 사랑을 제외한 쓸쓸한 단어들로 사랑을 완성했으리라. 그리고 그 단어들의 투명한 통로를 오갈 수 있는 건 체취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재난과 질병의 시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186-187쪽

특정 냄새엔 인간을 멈칫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과거의 메시지를 현재에 발신하는 능력이, 그리하여 현재에 응답을 요구하는 재촉과 당위성이 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느 자리에서 말했던 것 같다. 지나간 재난도 구제할 수 있는가? 미래의 재난을 방지할 수 있는가? 나는 이미 톨라스가 답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가 양신하의 말에 전원을 켜준 것처럼 현재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앎의 노력, 기억뿐이라고. 194-195쪽

《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 교수 추천, 《6》 《아네모네》 성동혁 시인 추천

냄새라는 잊힌 감각으로
보다 선명하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오랜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저자에게 냄새는 치유의 형태로 먼저 찾아왔다. 친구가 관자놀이에 찍어발라준 패출리 오일의 냄새를 맡으며 저자는 처음으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콧속에 스미는 서늘한 흙내음에 몸을 맡긴 채 한바탕 위안을 얻은 저자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우던 생선 굽는 냄새, 서울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생활하지만 결국 홈타운은 안양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동네 어귀의 따스한 냄새 등 자신의 기억 속 냄새를 이 책에 하나둘 풀어냈다. 개인적인 냄새임에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 냄새이기에 모두에게 그리운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나를 기른 냄새》는 저자의 개인사만을 담진 않는다. 냄새라는 사라져가는 감각을 기민하게 관찰해온 저자인 만큼 후각에 담긴 사회문화적 언어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 여러 모순과 두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과 살 냄새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지난 날의 나를 떠올리고, 엄마와의 복잡한 관계성과 애증을 넘나드는 가족과의 관계에 배인 냄새에선 사회에 부여된 가정과 가장, 여성과 엄마가 가진 대표성은 무엇인지, 그 역할을 다시 묻는 계기를 마련한다. 허수경 시인의 시들을 추억하던 중 ‘자신과 허수경 시인이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착각한다며 귀엽게 시인하는 저자는, 결국 과거로 향하는 사람들은 냄새에 발 묶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을 향한 그리움과 애도를 담아 이야기한다.

책은 가장 동물적인 본능이기도 한 ‘맡는 행위’를 통해 이 땅에 깊게 자리한 혐오와 차별을 돌아보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코를 막는 행위 혹은 그러한 행위를 스스로 경계해본 자라면, 자신의 품을 파고들어 코를 박아본 자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의 나는 마늘의 알싸한 향 같은 것이 내 피부 어딘가에 깊숙이 배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주변 아시아인들이 겪은 후각적 혐오 경험들이 나를 움츠리게 했다. (…) 나는 내 몸에 코를 묻은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게서 냄새가 나나? 나를 탈취하고 또 탈취했다.” 저자의 경험은 냄새(후각)가 혐오와 차별의 속성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이러한 사례는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유대인의 악취를 핑계로 한 나치의 유대인 소각, 흔히 쓰이는 ‘사람 냄새’에 담긴 역차별적 행위 등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저자가 예리하게 포착해낸 순간들에 흠칫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 속에 일찍감치 자신을 포함시키곤 무지 속에서 행하는 차별 앞에 아닌 척하지 않는다. 그 부끄러운 마음을 꺼내놓는다. “애초에 선한 마음이 타고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바닥의 얼룩을 청소하듯 차별과 편견의 선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왜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에 무슨 힘이 있다고

상처를 입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의 냄새 역시 사라지고 없다. 긴 내전 끝에 실종된 콜럼비아 시민들의 신발(도리스 살세도의 〈Atrabiliarios〉), 양신하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기록된 제주 4.3사건 속 이름 모를 고인의 뼈(노르웨이 출신 후각 연구자 시셀 톨라스는 이 일기장을 냄새로 변환했다). 저자는 끝내 냄새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이들을 애도한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문장 하나를 기억한다. ‘언어에 감정을 담으면 고통이 없어진다.’ 개인이 후각의 언어를 취득하는 방법은 냄새를 기억하는 일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의 주인이 현존하지 않아서, 기억할 냄새가 없어서, 결국엔 감정을 담을 언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특정 냄새엔 인간을 멈칫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결국 냄새를 기억하는 건 지나간 재난을 기억하기 위해서, 미래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앎의 노력, 기억뿐이라고.” 냄새를 잃은 이 작품들이 알려준 것들이다.

그리고 팬데믹 시대. 코로나19의 가장 큰 증상인 후각의 잃음은 밥 냄새, 자연 냄새, 누군가의 체취 등 좋아하는 냄새를 언제든 맡을 수 없다는 공포와 함께 그들을 향한 그리움을 더욱 쌓아올렸다. 저자는 미국의 사진 작가 찰리 잉그만의 AI 시리즈에서 팬데믹 시대의 후각이 시사하는 바를 발견한다. 껴안다 못해 서로 붙어버린 듯한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그리운 냄새를 찾아 파고들고 파고들다 하나가 된 모습과도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우리는 “상실 끝에 희망을 발견한다.”

고개를 들어 어느 존재의 냄새를 맡다보면,
잠수 끝에 눈부신 세상을 발견할지도

불면증을 앓던 저자의 냄새 탐구는 자신을 기른 것들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사회 구성원이자 인간,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감각과 책임을, 마지막으로 불완전하게 살던 저자의 몸과 마음을 비로소 돌보게 만들었다. 계절마다 숙제처럼 자신을 산책시키고, 고개를 뻗어 때죽나무, 아까시나무, 서양수수꽃다리에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냄새로 익혔다. 여름의 물비린내, 가을의 건조한 낙엽 냄새, 겨울 스웨터의 창백한 먼지 냄새를 맡으며 원인 불명의 목이 시린 증상도 어느덧 사라졌다. 저자는 이제는 어떤 날씨여도, 어떤 상황이라도 괜찮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울어진 갑판에서 나와 알린다. “잠수 끝에 발견한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냄새가 일러준 것들이다.


성동혁 시인(《6》 《아네모네》 저자)
후각은 호흡과 같다. 들숨과 함께 몸 깊은 곳까지 다다른다. 그의 글이 그렇다. 코로 맡지만 폐까지 다다르는 문장들이다. 들숨과 함께 베를린의 공동묘지까지, 그리스의 작은 섬 이드라까지, 학의천의 아카시아 나무와 가족들의 아침 식사 냄새가 들어오는 문틈까지 다다르게 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엔 그것과 조응하는 냄새”가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지척에 있는 것들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놓치고 있는 풍경이 많단 걸 깨닫고 이내 애달파졌다.
‘죽음의 거주지에서 생명’의 냄새를 맡는 그의 성정을, 감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문장이 인쇄된 책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식물 같은 그처럼, 숲을 지키던 나무의 굳건한 냄새가 있을 것을 믿는다. 그것이 우리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을 믿는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별것 아닌 선의》 저자)
저자는 일상에 스며들었다 휘발되는 냄새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로부터 후각의 개인사만이 아닌 사회정치적 함의를 끌어낸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저자를 길러낸 냄새들에 관한 스물세 편의 에피소드를 읽어가는 도중 부지불식간에 그간 잊고 지낸 무수한 냄새들을 복기했다. 정답고 향그러운, 때론 매캐하고 아린, 지겹고 또 그리운, ‘내가 나일 수 있게 한’ 그것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코끝에 닿는 경험을 했다. 그것만으로 이 책은 잊기 어려운 독서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셈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혜인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랐다.
10년간 라이프스타일지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독일에 잠시 머물 때, 오랜 시간 마음속 기저에 놓여 있던 후각에 대한 관심을 재발견한 후 한국에 돌아와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냄새를 비롯해 기억이나 신의 존재처럼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에 흡착되어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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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나를 기른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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