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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이탈

서경희 지음
문학정원

2024년 11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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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7.88MB)
ISBN 97911981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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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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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맛 좋아』, 『복도식 아파트』, 『옐로우시티』, 『하리』, 『밤의 독백』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김 대리가 죽었대』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서경희 작가의 청소년소설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고등학생 ‘정국’은 유명 배우의 아들이지만, 아빠를 혐오한다. 아빠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위선과 자신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이 꼴사나워, 항상 반항을 일삼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쑤다. 그런 정국을 옆에서 지켜주는 건 친구인 ‘가을’이다. 하지만 가을은 학교에서 게이라는 소문이 퍼져 따돌림당한다. 국어선생님인 ‘국어’는 그런 두 소년과 소설에 대한 관심사를 나누며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어른이 되어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을이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하다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자 자기 얼굴을 난도질해 자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정국은 이 사건에 관련된 누명을 쓰고 학폭위에 불려 나가게 된다. 그런데 국어는 이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경로이탈
작가의 말

서클렌즈를 빼고 화장 솜에 클렌징 오일을 묻혀 아이라인을 닦았다. 피시방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아빠한테 잡혀서 영문도 모른 채 미용실로 끌려왔다. 아빠는 벨벳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새로 출연하는 일일극 대본을 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았다. 석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오렌지색 염색모는 곧 검은 염색약을 뒤집어쓰고 말겠지.
---p.07

가을은 어느 날부터 다혜를 쫓아다녔다. 다혜는 공부도 잘하면서 얼굴은 에스파의 카리나를 닮아 예쁘고, 성격도 좋고 피구도 잘해서 모두의 호감을 샀다. 그런 퀸카가 반에서 빵셔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가을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학교에는 가을이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의 요구는 점점 협박이 되었고, 결국 다혜 앞에서 자기 얼굴을 난도질하기에 이르렀다. 다혜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내가 자해 소식을 듣고 방송실에 달려갔을 때 가을은 하늘색 모포를 덮은 채로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얼굴 쪽에 핏물이 배어나서 가을이 죽은 줄 알았다.
---p.12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 게 맞지 않을까.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추한 얼굴을 하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전염병에 걸려서(예를 들면 에이즈 같은) 팔도를 유랑하다가 동사했으면 좋겠다고 답할 것이다. 장 주네의 『도둑 일기』를 읽은 후부터 해왔던 생각이다. 쓰레기 같은 삶도 꿈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장래 희망은 ‘인간 쓰레기’였다.
---p.25

차 안에서 아빠한테 물었다.
“아빤 안 궁금해요. 내가 진짜 게이인지 아닌지.”
생각지도 못한 선제공격을 당한 아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는 언제나 준비된 말만 하는 사람 같았다.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지도 않았고, 화를 내는 일도 드물었다. 정국이가 내 아들 같지 않을 때가 많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아빠가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아빠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 얼굴에 똥칠하는 내가 그냥 미울 뿐이지. 낳지 말걸,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만 낳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인간 쓰레기가 꿈인 나 같은 족속은 태어나지 않았을 테고 세상은 좀 더 좋아졌을 것이다.
---p.30

“삶이 끊임없이 연기를 거듭해야 하는 무대라면
우리는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

마침내 위선이 사라진 세상의 끝을 향해
두 소년이 질주한다

『경로이탈』의 주인공 정국은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이다. 정국을 반항하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위선이다. 유명 배우인 정국의 아빠는 정국을 어릴 때부터 아역 배우로 데뷔시키고, 빡빡한 틀 안에서 키우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 정국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며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하지만 정국에게는 이 모든 모습이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타인을 시선 안에 가두려는 위선으로 보인다. 부모를, 부모처럼 번지르르하게 행동하는 다른 어른들을, 사춘기를 지나며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친구들을 혐오한다.

그런 정국이 혐오를 해결하는 방식은 ‘폭력’이다. “문신 사건”은 그 과격함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정국은 반에서 문신하고 싶다며 끊임없이 허풍을 떠는 한 친구를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젓가락 사이에 바늘을 끼고 실로 칭칭 감은 다음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잉크를 사다가 밑그림도 없이 ‘짜져새꺄’라고 새겨버린다. 이 같은 위악과 과격성으로 몇 번이나 전학을 다녀야 했다. 물론 매번 퇴학을 면할 수 있는 건 유명 연예인인 아빠의 재력 덕분이다.

그런데 가을은 정국이 혐오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아직 아이와 같은 편견 없는 미소를 얼굴에 띠고 가식 없이 정국을 대한다. 또 정국과도 다르다. 무엇이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정국과 달리 가을은 학교에서 게이라는 의심을 사고 폭력적으로 따돌림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맞서며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국은 소설을 읽고 습작하기도 하는 가을과 어울리며 필사를 하며 비행을 잠시 멈추는 듯 보인다.

소년들에게는 그저
자기 얼굴을 제대로 바라봐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어느 날 가을이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했다가, 그 애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자 자기 얼굴을 난도질해 자해하면서 어그러지게 된다. ‘얼굴’은 『경로이탈』에서 중요하다. 가을은 폭력과 더불어 염색, 피어싱, 화장 등 얼굴을 꾸미는 행위를 통해 통념에 저항하기도, 자신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유일한 친구인 가을의 얼굴을 덮은 하늘색 모포에 피가 배어 있는 모습을 보고 정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굴에 대한 가을의 태도 또한 정국과 조금 다르다. 가을은 기본적으로 향수나 비누를 쓰지 않아도 살에서 세탁한 와이셔츠에서 나는 산뜻한 향을 풍긴다. 얼굴을 치장하고, 패션이라는 가면을 씌워 자기를 호소하지 않아도, 가을은 가을만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을의 자해 사건 이후 정국과 가을을 떼어 놓으려는 학폭위, 아빠와 어른들의 방해를 뚫고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화려하게 염색되어 있던 정국의 머리가 여러 사건들로 인해 민 머리가 되어 있었지만, 가을은 완전 멋지다고 얘기해 준다. 가을은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정국에게 보여주며 “내 얼굴이 나을 때까지만 날 지켜줘.”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국의 민 머리, 즉 정국의 진짜 얼굴을 옆에서 바라봐주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야 말로 가을인 것이다.

비로소 시작으로 끝맺게 되는
서경희식 청소년소설

서경희는 청소년소설이라고 해서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날것의 부조리들과 타협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장 고개 돌리고 싶은 상황과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 앞에 서서 그 음의 에너지들을 기록한다. 『경로이탈』의 두 아이들이 마지막에 차를 타고 땅끝마을을 향해 질주하는 여정이 마냥 유쾌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 결말이 만약 로드무비의 시작이라면, 정국과 가을은 땅끝마을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도착할 때즈음엔 분명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다. 차의 백미러 끝에서 햇빛이 반짝한다. 그렇게 서경희 소설에서 지금껏 보기 드물었던 희망의 단초가 꿈틀댄다.

작가정보

저자(글) 서경희

2015년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수박 맛 좋아』, 『복도식 아파트』, 『꽃들의 대화』, 『옐로우시티』, 『하리』, 『김 대리가 죽었대』, 『밤의 독백』이 있다.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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