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멜모스·아듀
2024년 11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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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442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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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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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로, ‘현실 재현’의 문제를 밀도 높게 다룬 작품들이다. 발자크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리는 것이 단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님을, 그러한 욕망 자체가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실주의자’ ‘관찰자’를 넘어서
‘환상가’ ‘통찰자’ ‘환시자’로 불리게 될 시발점의 작품 『회개한 멜모스』와 실물의 직접적 재현을 통해 리얼리즘의 정수
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아듀』, 2편의 중편이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현실과 환상
의 조화, 악마, 돈, 사랑, 스펙터클한 세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발자크가 천착한 주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
히 유효하다.
아듀
옮긴이의 말_발자크, 환상과 현실 그리고 리얼리즘
1815년 이후 돈의 원칙이 명예의 원칙을 대체한 우리 문명의 진정한 상처를 미리 내다볼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멜모스, 14쪽)
행정부서의 사무 공간은 현재의 사회계약이 근거하고 있는 돈의 봉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에 꼭 필요한 범용한 존재들만을 양산하는 곳이다.(멜모스, 16쪽)
악마가 그에게 넘긴 열쇠로 보물단지를 열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쾌락을 두 손 가득 퍼내던 그는 이내 빈 단지 밑바닥을 긁는 신세가 되었다. 순식간에 얻은 그 어마어마한 힘은 순식간에 집행되고 효력을 발휘하고 소진되었다. 전부였던 것이 전무로 변했다.(멜모스, 63쪽)
“왕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시세도 정하고 백성들의 무게도 저울로 재며 제도들의 가치도 결정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거기서는 (…) 사상과 믿음도 수치로 계산된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할인되어 거래된다. 교황도 거기에 자신의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거기서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의 피조물들의 영혼에서 나온 수입을 담보 삼아 빌리고 빌려준다. 거래할 영혼을 하나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거기가 아닐까?” 카스타니에는 마치 국공채를 거래하듯이 영혼도 거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증권거래소로 향했다.(멜모스, 76쪽)
뗏목이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필리프를 남겨두고 반대편 강가로 미끄러져 갔는데, 워낙 육중한 데다 속도까지 붙어 있었던지라 땅에 부딪히면서 크게 요동을 쳤다. 그 바람에 뗏목 가장자리에 있던 백작이 강물로 굴러떨어졌다. 백작이 강물에 떨어진 순간, 유빙 하나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렇게 몸뚱어리에서 잘린 머리통이 포환처럼 멀리 떠내려갔다.(아듀, 139쪽)
“당신에게는 오페라에나 나오는 그런 터무니없는 사랑이 필요했던 거군요. (…) 당신이 말하는 헌신적인 사랑이란 그러니까 선입견을 따르는 겁니까?”(아듀, 154쪽)
12월 초순 무렵, 많은 눈이 내려 대지가 하얗게 뒤덮이자 대령의 눈앞에 베레지나가 펼쳐졌다. 이 가짜 러시아는 놀라울 정도로 실상과 가까웠는지라 대령의 군대 동료들 여럿은 예전에 겪었던 비참한 광경이 그대로 자신들 앞에 펼쳐진 느낌을 받았다.(아듀, 156쪽)
세상에는 정체 모를 괴물과 매일 싸움을 벌이고,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는 불행한 능력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강한 존재들이 있다. 쉬시 백작이 그런 강한 존재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한 사법관과 한 늙은 의사뿐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주 잠깐 당신의 전능한 손을 그 강한 존재들에게서 거두어들인다고 해보자, 그 순간 그들은 맥없이 푹 쓰러진다.(아듀, 161쪽)
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되던 19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비견될 만한 ‘돈’의 시대였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바로 이와 같은 ‘돈’의 시대를 증언하는 리얼리즘의 선구자였다. 1789년 대혁명으로 왕과 귀족과 교회의 특권을 철폐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을 만든 프랑스이지만, 19세기는 혁명의 시대와 동시에 인간보다 ‘돈’을 더 중요한 가치로 삼는 부르주아지의 시대이기도 하다. 19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사회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인간극』 시리즈의 일부를 이루는 중편소설 『회계한 멜모스』와 『아듀』는 돈의 시대에 대한 신랄한 발자크의 통찰을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 속에서 음미할 기회를 제공한다. 『회계한 멜모스』에서는 『파우스트』에서처럼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사들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신화는 발자크에게는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다. 악마에게 돈을 받고 기꺼이 영혼을 팔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19세기 파리, 그것도 특별히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자본주의 속에 사는 인간 영혼을 파헤치고 있다. 『아듀』는 재현이라는 미학의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 필리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의 패퇴시 ‘베레지나’ 도하작전에서 헤어진 옛 여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도하작전을 재현하는 장면을 물적으로 연출한다. 19세기 대형 스펙터클쇼 파노라마를 연상시키는 이 같은 설정은 현대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를 연상시킨다. 리얼리즘의 아버지 발자크의 중편을 통해 독자는 돈이 지배하는, 스펙터클의 세계가 단지 19세기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1799년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났다. 발자크는 특히 2,5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9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이 담긴 ⏉인간극⏊이라는 총서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사실주의의 대표 작가로 거론되지만, 그 방대한 저작 전체를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대의 현실을 규명하기 위한 치밀한 묘사와 분석에서부터 초현실의 환상과 신비의 세계까지 그의 작품에는 그가 살았던 세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소설을 발표하던 발자크는 어느 순간 자신의 작업이 인간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이 되어야 함을 자각한다. 그렇게 탄생한 ⏉인간극⏊은 인간사의 ‘결과’를 탐구하고(⏉풍속 연구⏊), ‘원인’을 규명하며(⏉철학 연구⏊), ‘원칙’을 수립하겠다는(⏉분석 연구⏊) 프로그램에 따라 작품들이 독립적인 형태로 모인 가상의 공간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이른바 ‘인물의 재등장 수법’으로 서로 이어지는데, 여기 실린 두 편의 소설에서 그 면모를 일부 접할 수 있다. 발자크는 19세기 전반 프랑스 사회라는 혼돈의 세계를 ⏉인간극⏊을 통해 이해 가능한 질서의 세계로 바꾼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아마도 문학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목표치일지 모른다. 발자크는 미완일 수밖에 없는 그 ‘세상의 거울speculum mundi’을 우리에게 남기고 1850년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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