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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동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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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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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1.82MB)
ISBN 979117213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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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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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소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에서 학술지를 발간하고, 다양한 대중 교양서를 출간하는 등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의 전현직 연구원들이 모여 동남아 연작 두 번째 책 《인물로 읽는 동남아》를 펴냈다. 전작 《키워드 동남아》에서 전염병, 쌀, 전통 의상, 종교, 커피, 밀레니얼 연대 등 30개의 키워드로 동남아시아의 정치·문화·역사를 소개했다면, 신작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정치인 수카르노, 싱가포르의 상인 리콩치앤, 베트남의 승려 틱낫한,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 구스마오, 필리핀의 작가 호세 리잘 등 필진이 엄선한 16인의 삶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치열했던 근현대사를 그렸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자 주요 교역 대상 및 투자 파트너다. 또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였으며 우리가 평소에 즐기는 쌀국수ㆍ팟타이ㆍ월남쌈의 본고장이다. 이처럼 한국과 동남아는 다방면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 교류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일터, 쉼터, 거리 등 우리의 일상에서 이들과 마주치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동남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동남아의 위대한 유산을 완성한 16인의 인생사를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덕분에 성인과 청소년 독자 모두 마치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즐기듯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동남아가 한층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머리말: 익숙한 동양의 낯선 인물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

1장 동남아시아 역사를 이끈 사람들

1.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근대화 역정: 우롄테
전도유망한 식민지 장학생, 첫 번째 귀향|근대화 개혁에 나선 페낭의 젊은 의사|제국 통치기, 폐페스트-아편에 맞서 싸우다: 강희정

2. 근대를 추구한 치앙마이의 마지막 공주: 다라랏사미
치앙마이 공주에서 “라오 여자”로|인질이자 외교관이었던 다라랏사미의 삶|전통을 사랑했던 개혁 지도자: 현시내

3. 급진적 이상주의자, 참극의 주인공이 되다: 폴 포트
'붉은 캄보디아'의 극단적 평등주의|크메르루주의 잔혹 행위와 대학살|예의 바르고 잘 웃던 상류층 소년|우익 친미 정권의 등장과 프놈펜 함락|소수 엘리트의 그릇된 신념이 낳은 비극: 하정민

4. 하노이의 옛 거리와 민중을 사랑한 화가: 부이쑤언파이
인도차이나 미술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주류 화단을 거부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다|고난을 이겨낸 베트남의 얼굴: 이한우

5.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반전 평화의 가르침: 틱낫한
틱낫한의 새로운 실험|참여 불교, 전쟁과 가난의 고통 속으로|망명지에서 펼친 반전 평화 운동|지금 여기에서 평화를: 하정민

6. 초대 헌법을 기초한 태국 민주주의의 상징: 쁘리디 파놈용
입헌 민주주의를 꿈꾸던 청년|혁명의 열기를 개혁의 동력으로|짜끄리 왕조의 섭정에서 망명자 신분으로|민주주의자로서의 삶, 되찾은 영광: 현시내

2장. 근대와 민주주의라는 갈림길

7. 인도네시아를 이끈 통합의 민족주의자: 수카르노
민족주의에 눈뜬 자바 청년|대중을 움직인 수카르노의 연설 정치|군부-공산당과 손잡고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치다|군부 독재 종식과 메가와티 시대의 개막: 강희정

8. 식민 시대 마지막 화교 상인, 현대를 열다: 리콩치앤
동남아 화인 비즈니스 그룹의 후계자|거대 금융 기업 설립으로 정점에 서다|국민 국가 형성기, 등불이 된 리콩치앤의 삶: 김종호

9. 강소 도시 국가 싱가포르의 설계자: 고켕스위
신생 독립국이 된 이민자의 나라 싱가포르|제조 강국 싱가포르의 초석을 놓다|자주국방과 신교육 수립이라는 새로운 임무|강소국 싱가포르를 일군 고켕스위의 철학: 김종호

10. 실용 외교로 인도네시아 독립을 일구다: 모하마드 하따
제3세계 외교 전략의 창시자|미낭까바우족의 엘리트 청년|네덜란드 본토에서 펼친 반제국주의 운동|개혁과 통합에 나선 신생 독립국의 이인자|양두 정치의 주인공, 권력을 버리고 존경을 얻다: 정정훈

11. 민주주의를 열망한 저널리스트 작가: 목타르 루비스
인도네시아인의 눈에 비친 한국 전쟁|외곽 도서 출신의 청년, 민족주의와 만나다|독립 이후의 언론 활동: 수카르노 비판과 탄압|가택 연금 시기, 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정정훈

3장. 독립의 꿈, 민족의 청사진을 그리다

12. 근대 버마의 청사진을 그린 독립 영웅: 아웅산
청년기 학생 운동과 무장 투쟁|영국 식민지 정책에 맞선 버마인들|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얻은 국제적 명성|태평양 전쟁기 연합과 통합 전략|통일과 공존의 꿈은 유효한가: 김종호

13. 독립과 민주주의를 이끈 라오스의 붉은 왕자: 수파누웡
루앙프라방 왕자, 레닌주의와 만나다|왕자들의 권력 투쟁과 공산화|평화 없는 독립, 독립 없는 평화: 현시내

14. 제국을 물리친 베트남의 영원한 장군: 보응우옌잡
프랑스 식민 정부에 도전한 혁명적 민족주의자|항일 게릴라전과 인도차이나 전쟁|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함께하다: 이한우

15. 21세기 첫 독립 국가의 초대 대통령: 샤나나 구스마오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과 동티모르의 독립|인도네시아의 개입에 맞서 저항군을 조직하다|광주인권상 초대 수상자의 독립 투쟁기|대한민국과 동티모르의 특별한 만남|위대한 독립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정정훈

16. 아시아 최초의 민족주의자, 첫 번째 필리피노: 호세 리잘
작가의 눈에 비친 식민지 필리핀 현실|조국의 아름다운 희망, 필리피노|제국을 움직인 호세 리잘의 문학적 성취: 김종호

세 번에 걸친 우롄테의 이향과 귀향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겪은 고난과 갈등의 역사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발음으로 불렸던 그의 이름만큼이나 정체성도 복잡했다. 중국 이주민의 자손이자, 영국 식민지 페낭에서 태어나 말레이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그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우롄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생의 기로마다 갈등하게 했다. _16쪽

치앙마이는 지정학적으로 서쪽으로 버마, 북쪽으로 샨(Shan)족, 중국, 라오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베트남에 둘러싸여 있다. 여기에 주변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진출하면서 치앙마이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의 영향을 고루 흡수한, 말 그대로 국제도시가 되었다.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다라랏사미는 다문화 사회를 경험한 만큼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_34쪽

소수 지식인의 그릇된, 광기 어린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얼마나 큰 불행에 빠뜨리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 지도부는 10명 남짓이다. 이들은 거의 모두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하거나 대학을 다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런 이들이 극단주의적인 공산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로서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잘못된 신념을 국민에게 강요했다. _56쪽

화단에는 항전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국가의 부름에 따르지 않는 화가들은 극소수였다.대부분 화가는 '혁명 화가'였다. 그러나 파이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가 그린 여성 민병은 몇 점 되지 않으며 영웅적 전사로 표상되지도 않았다. 그저 보통 사람의 표정을 지닌 병사일 뿐이었다. 파이는 사회주의 예술 방침을 따르지 않고도 베트남 민중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_63쪽

틱낫한과 주요 지식인들은 서구의 저명한 인도주의적 인사들에게 베트남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신으로 알렸다. 한편 틱낫한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폭력 중단을 촉구할 목적으로 1966년 5월 11일 베트남을 떠난다. 짧은 여행을 계획했으나, 그가 다시 베트남 땅을 밟기까지 무려 39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_75쪽

탐마삿 대학 후문입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탐마삿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탐마삿은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탐마삿 대학을 통해 쁘리디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바로 민주주의, 특히 서민을 위한 민주주의의 전파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탐마삿 대학의 기본 정신으로 남았고, 학생들은 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 _93쪽

하따의 외교 철학은 1948년 '두 바위의 대결'이라는 연설과 1953년 외교 전문지인 〈Foreign Affairs〉의 기고문에 뚜렷이 드러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에서 어느 한쪽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립적 외교를 주창했다. 또한 평화를 지키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 외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_156쪽

1915년 버마 중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아웅산은 어린 시절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에 신음하는 버마의 독립을 꿈꾸었다. 대학생으로서, 졸업 후에는 저항 세력의 리더로서, 저항군 세력의 장군으로서 끊임없이 버마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독립에 도움만 된다면, 사회주의 세력, 소수 종족, 일본, 영국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일본의 도움으로 영국을 물리친 그는 일본이 배신하자 곧바로 영국에 손을 내미는 실용적 사고의 인물이었다. _186쪽

보응우옌잡은 호찌민보다 우리에게 덜 알려졌으나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세계적 명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젊을 때부터 병법에 관심이 많아 《손자병법》 《나폴레옹》을 읽었고, 백과전서에서 각종 병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인민의 전쟁, 인민의 군대' 개념을 제시하며 베트남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으며, 사망 후에는 베트남 국민의 기억 속에 영원한 장군으로 남았다. _206쪽

한국과 동티모르의 만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혁명전선 팔린틸 사령관 구스마오다. 그는 '광주인권상'의 초대 수상자였다. 2000년 광주 5·18 기념재단이 만든 이 상은 해마다 인권과 통일,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한 인사 또는 단체에 수여된다. 이듬해인 2001년 5월 25일 구스마오는 직접 상록수부대를 방문하여 한국의 파병 그리고 치안 유지와 전후 복구 활동에 대해 깊은 감사를 전달했다. _224쪽

아시아 최초의 민족주의자, 첫 필리피노라 불리는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35년의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 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19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의 죽음은 수카르노, 호찌민, 아웅산 등 20세기 동남아시아 민족주의를 주도한 인물들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_246쪽

오늘날 동남아의 위대한 유산은 누가 만들었을까?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국과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남아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 통치와 독립, 근대화와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격동의 20세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1장 ‘동남아시아 역사를 이끈 사람들’에서는 오늘날 동남아의 문화와 정신, 가치관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들을 만나 본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1932년 ‘인민당’ 혁명은 짜끄리 왕조의 절대 왕정을 종식하고 입헌 군주제와 내각제를 도입했는데, 이 혁명의 주역이 바로 ‘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쁘리디 파놈용이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비난과 왕의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1933년, 내무부 장관이던 쁘리디는 특별위원회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하에서 구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맞서고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부르주아지와 영원히 싸울 것인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뿐 아니라 어떤 계급의 독재도 싫다.” 위원회는 쁘리디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인정했다.(80쪽)
한평생 군부 독재에 반대했던 쁘리디와 달리,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히틀러와 스탈린에 버금가는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권인 ‘크메르루주’를 이끌었는데 ‘자급자족적인 농업 중심 유토피아’를 추구하며 극단적인 평등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한 3년 9개월 동안(1975년 4월~1979년 1월) 극악무도한 인권 침해와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고 당시 캄보디아 총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이 참사를 ‘킬링 필드’라 부르며 폴 포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감옥에 가지 않았고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다가 73세에 세상을 떠났다.(44쪽)
베트남의 승려 틱낫한은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며 평화, 화합, 비폭력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면서 베트남 전역과 전 세계를 무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했는데, 미국의 흑인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그를 ‘평화와 비폭력의 사도’라 칭했고, 티베트의 영적 스승 달라이 라마는 ‘친구이자 영적 형제’라고 불렀다. 1966년, 틱낫한은 ‘인터빙(Interbeing)’이라는 말을 창안했는데 세상 만물이 서로 의지하며 공존한다는 의미로, 전쟁을 거듭하는 자들을 향한 단호한 꾸짖음이 담겼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조국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아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세계인의 화합과 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 그의 메시지는 세대와 지역을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68쪽)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한 치열하고 치밀한 도전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동남아의 독립 국가들은 곧 근대화와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적 대립과 갈등, 쿠데타와 독재 같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2장 ‘근대와 민주주의라는 갈림길’에서는 저마다의 철학과 방법으로 동남아시아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해 활약한 인물들을 다룬다.
1만 8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에는 2억 7500만 명이 3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1300여 종족으로 나뉘어 산다. 그만큼 다양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 만들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일컬어지는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통일된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민족주의, 종교, 공산주의를 통합한 교도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쳤다. “수카르노의 매력과 권모술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함은 경탄과 분노를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는 쪽과 적대시하는 쪽으로 갈렸다”는 말처럼 그의 행적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수카르노의 사상은 정치적 흐름이었고, 그의 리더십 자체가 하나의 역사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97쪽)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작가 목타르 루비스는 이런 수카르노에게 분노하고 적대시하는 쪽이었다. 목타르는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서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었고 전쟁의 참상은 물론 한국인의 아픔과 슬픔을 기록해 세계에 알렸다. 1949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자 그는 특정 정치 집단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 언론을 지향하며 신문 《인도네시아 라야》를 창간했고 수카르노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며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아 신문은 폐간되고 목타르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런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선택한 것은 바로 소설이었다. 《자카르타의 황혼》 《호랑이! 호랑이!》 《분노 속의 인간》 등 작품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현실을 때로 풍자적으로, 때로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158쪽)
인도네시아만큼 복잡한 민족·문화 구성을 가진 싱가포르에서 수카르노와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와 사회 체제의 기본을 수립한 행정가 고켕스위다. 1965년 8월에 독립한 싱가포르에서는 어떻게 국가 영역을 설정하고 지킬 것인지, 산업별 비중을 어떻게 할지, 공동체 구성원들을 어떻게 ‘국민’으로 탈바꿈시키고 교육하고 일하게 할지, 세금은 어떻게 거두고 어디에 쓸지 등을 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때 고켕스위는 재정부·국방부·교육부 장관과 부총리, 중앙은행 책임자를 차례로 역임하며 경제·교육·군사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 수립의 토대를 만들었다. 경제적 생존, 자주국방, 실용적 교육을 추구한 그의 철학은 싱가포르가 근대화한 것을 넘어 21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관광 대국, 금융의 허브, 미중 관계의 조정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129쪽)

독립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

동남아시아는 대항해 시대 이후 풍부한 천연자원과 이권을 노린 서양 열강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침략도 받았다. 3장 ‘독립의 꿈, 민족의 청사진을 그리다’에서는 이 시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 대립, 혁명과 쿠데타, 냉전과 저항의 역사에 삶을 던진 이들을 소개한다.
1886년, 영국은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지역을 영국령 인도의 한 주로 편입했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은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고 무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된다면 사회주의 세력, 소수 종족, 일본, 영국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예를 들어 태평양 전쟁 시기에 영국에 대항하고자 일본과 손을 잡기도 했고, 이후 일본이 배신하자 다시 영국에 손을 내미는 등 실용적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면서 아웅산은 일본을 끌어들인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했는데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딸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끼(아웅산 수치)는 현재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173쪽)
21세기의 첫 독립 국가인 동티모르의 샤나나 구스마오는 아웅산과 조금 다른 경로로 독립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갔다. 동티모르는 4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후 25년간 인도네시아의 무력 통치를 받았다. 1980년 해방군의 사령관이 된 구스마오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무력 통치와 학살을 전 세계에 고발했다. 수많은 나라가 이에 응답했고, 1997년에는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던 넬슨 만델라가 직접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감금되어 있던 구스마오와의 면담과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동티모르는 1999년에 독립해 민주 국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구스마오는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2000년에 광주 5·18기념재단이 만든 광주인권상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으로 5년, 이후 총리로 8년을 보낸 그가 2023년에 77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총리직에 올랐는데, 이런 행보를 두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217쪽)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아웅산이 무력, 구스마오가 언론과 정치를 이용했다면 필리핀의 세계적인 작가 호세 리잘은 자신의 소설을 무기로 삼았다. 그는 수백 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축적되어 온 착취와 차별의 구조를 고발함으로써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1887년에 《나를 만지지 마라》를 출간했다. 이 작품의 위험성을 직감한 스페인 식민 당국은 금서로 지정하고 호세 리잘을 탄압했지만, 그는 고통받는 필리핀 농노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 갔다. 그는 온건하고 평화적인 방식을 선호했지만 급진적 혁명과 무장 봉기의 배후로 여겨져 결국 체포되었고 1896년에 사형을 당했다.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국민 영웅,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 아시아 최초의 민족주의자, 첫 번째 필리피노라고 평가받는다. 리잘은 타고르와 같은 해, 쑨원보다 5년, 간디보다 8년 앞서 태어났고, 가장 먼저 민족주의 운동 혐의로 제국에 의해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그의 짧지만 불꽃같은 삶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이후 아시아 곳곳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234쪽)

동남아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고민하다

사업가, 화가, 소설가, 기자, 승려, 혁명가, 군인, 의사, 왕족 등 지난 세기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한 권의 책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주는 울림과 메시지 때문이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가였으며 민중을 사랑한 예술가이자 공동체를 이끈 휴머니스트였다. 한편에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학살자가 있고 권력을 유지하려던 독재자가 있었으며 사후에 평가가 엇갈리는 모순적인 인물도 있다. 이 책이 훌륭한 인품을 지닌 위인들만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 혹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간의 모범으로서 이들을 주목하자는 거창한 뜻은 없다. (…) 누구에게는 소소한 교훈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삶이 곧 내 삶이 되지는 않겠지만 위안은 될 수 있다.” -머리말 중에서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차별과 갈등, 민주주의 탄압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와도 연결된다. 식민지, 독립운동과 혁명, 전쟁과 이념 갈등, 군사 쿠데타와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웃 나라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그들의 현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작가정보

저자(글) 강희정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미술사 전공. 주요 저서로 《난처한 동양 미술 이야기 1~3》 《아편과 깡통의 궁전》, 공저로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 2》가 있다.

저자(글) 김종호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화인사 전공. 주요 저서로 《화교 이야기》, 공저로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 2》가 있다.

저자(글) 이한우

전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베트남 정치경제 전공. 주요 저서로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공저로 《베트남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이 있다.

저자(글) 정정훈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문화인류학 전공. 주요 저서로 《노란 코코넛 마을》, 공저로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 2》가 있다.

저자(글) 하정민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연구원 교수. 미술사 전공. 주요 논저로 〈베트남 북부 사원의 불교 목판 연구 시론〉, 공저로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2》가 있다.

저자(글) 현시내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태국 정치사 전공. 주요 저서로 《Indigenizing the Cold War: The Border Patrol Police and Nation-Building in Thailand》, 공저로 《키워드 동남아》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 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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