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오디오북 상품 정보
- 듣기 가능 오디오
- 제공 언어 한국어
- 파일 정보 mp3 (377.00MB)
- ISBN 9791172131760
15분 18.00MB
35분 16.00MB
39분 17.00MB
28분 32.0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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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분 15.00MB
22분 26.0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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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분 32.00MB
16분 19.00MB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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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돌봄을 말한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돌봄 필요 증가, 코로나 팬데믹이 드러낸 돌봄 공백은 돌봄을 한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만들었다. 이런 논의들은 대개 간병비 지원, 돌봄노동자의 처우 보장 등의 제도 개선과 서비스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정말 위기의 돌봄을 구할 수 있을까?
스무 살 때 쓰러진 아버지를 10여 년간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쓴 ‘영 케어러’ 조기현,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집 의원’ 원장이자 《처방전 없음》의 저자인 홍종원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돌봄은 제도화된 서비스를 넘어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모두가 취약한 존재이며 항상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는 ‘상호의존’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돌봄의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돌봄 현장을 경험하고 목격하며 돌봄의 가능성을 사유해 온 두 사람이 나눈 다섯 번의 대화를 엮은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각자도생’의 논리에 저항하며 일상에서부터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맺자고, 그렇게 ‘돌봄 위기 사회’를 함께 ‘돌봄사회’로 만들어가자고 독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프롤로그-돌봄은 순환한다
1장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_왜(Why)
‘돌보는 남성’을 떠올릴 수 있으려면
돌봄은 우리를 숨 쉬게 만드는 공기
돌봄의 위기는 가장 약한 곳부터 온다
청년을 위한 ‘돌봄의 역량’
느슨한 환대의 공동체
커뮤니티 케어는 가치관의 변화여야 한다
거래를 넘어선 새로운 삶의 양식
대안은 내면의 떨림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대면은 한 사람의 삶을 마주하는 일
치료와 돌봄은 원래 하나였다
돌봄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위계
2장 돌봄이 필요한 시간_언제(When)
돌봄이 재난이 되지 않으려면
생애주기의 전제, 정상가족
생애주기가 지워버린 영 케어러
가족돌봄이라는 어떤 표준
돌봄이 서비스에 그칠 때 생기는 일
일상의 관계가 변해야 제도도 변한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되려면
데이터에 묻힌 삶을 복원하기 위하여
‘돌봄의 시간’으로 ‘돌봄의 가치’를 돌아보다
3장 돌봄의 동료들과 관계 맺기_누구(Who)와
‘돌봄의 윤리’를 고민하는 공적 테이블
상호작용으로서의 돌봄을 위하여
치료자가 아닌 돌봄의 동료 되기
‘가족이니까’와 ‘가족 아니니까’ 사이의 장벽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일상의 관계
돌봄 제공과 돌봄 수혜의 이분법을 넘어
‘돌보는 나’를 돌보지 않을 때
우리는 항상 돌봄 속에서 살아왔다
감정을 넘어 정동으로
관계의 바다에서 헤엄쳐라
4장 시설과 집의 이분법을 넘어서_어디서(Where)
아픈 이의 위치에 선다는 것
‘좋은 죽음’이 가능한 공간을 상상하다
사건이 되고, 실패가 된 죽음
‘생명이 소중하다’와 ‘나는 안락사할 거야’ 사이
‘생명이 소중하다’는 구호가 은폐한 죽음들
돌봄 시설에 돌봄이 없다
현장의 목소리에 더 많은 마이크를
탈시설이라는 난제
시설사회에서 탈시설을 상상하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현재를 재구성하기
함께 ‘책임’지는 동료 시민의 자리
5장 돌봄이 길이 되려면_어떻게(How)
나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기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가족돌봄이라는 지옥도
돌봄과 노동, 두 취약성이 만날 때
간병을 복의 영역으로 두지 않으려면
돌봄이 인종화될 때 생기는 일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 자본주의 외부의 시간
제도화라는 딜레마
돌봄의 ‘고쳐 쓰기’를 위하여
에필로그-취약함이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며
편집자 후기-‘극진한 비효율성’을 위하여
돌봄용어 함께 읽기
누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가? 미디어는 응급실의 분주한 모습을 분초를 다투는 생존의 현장으로 재현한다. 그 서사의 주인공은 대개 의사다. 하지만 실제로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처럼 돌보는 이들이다. 환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 곁에서 보내면서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한다. 갓난아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어르신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돌보는 손길을 떠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보이지 않아서, 티 나지 않아서 그 돌봄이 값싼 노력으로 폄하되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서 또 누군가를 돌보며 생명의 의미를 찾는다.
저는 돌봄 위기라는 말을 단순히 돌봄 공백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돌봄이 무작정 견뎌내야 하는 어떤 것이 되는 상황, 돌봄을 아무런 대책 없이 떠맡게 되는 상황을 떠올리면서 썼어요. 그런 돌봄은 누가 할까요? 대부분 가장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이 하죠. 부모 돌봄만 하더라도 가정 내에서 여성, 혹은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자녀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 그렇게 가정 내에서 돌봄을 저평가하는 일이 가정 밖으로도 확장돼요. 돌봄이 집을 나와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이 되면 돌봄노동자를 무시하는 일로 이어지고, 또 이주노동자들에게 돌봄이 떠넘겨져요. 돌봄의 가치가 점점 더 낮아지는 거죠. 이런 상황을 위험의 외주화처럼 돌봄의 외주화라고 부를 수 있어요.
저는 대면이 사람의 삶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문진료를 하는 의사로 삶을 마주한다는 것은 환자가 얼마만큼 걸었을 때 숨이 찬지, 집안환경은 어떤지, 냉장고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에요. 환자를 환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을 마주하는 일이고, 삶의 환경까지 같이 보는 일이 대면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진료죠. 그게 방문진료하는 의사로서의 제 마음가짐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병원에 환자로 와서 환자복을 입은 순간부터 그 사람을 환자로만 보고, 그 이전의 삶이 표백된 존재로 여기게 돼요.
가족을 넘어서서 사회가 돌봄을 책임진다는 개념이 보편화될 필요가 있어요. 다만 북유럽처럼 돌봄의 사회화가 진전된다고 해도 돌보는 마음이 흐릿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스웨덴은 우리와는 반대 사례 같은데, 방문요양 담당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웨덴 그래픽 노블 《우리 부모님》을 보면 다들 부모 돌봄을 책임지지 않고 돌봄노동자를 감시하는 모습만 나와요. 노인돌봄이 잘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돌보지 않는 거예요.
국가에 무언가 요구하고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감시하기만 해요. 국가책임이 강화됐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노인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떻게 하면 국가도, 가족도 아닌 사회 전체가 책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예요. 그런 점에서 돌봄의 사회화라는 방향으로 가도 막상 현실에서는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죠.
저는 항상 제도와 제도 아닌 것이 구분되는 게 조금 의문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미시와 거시로 돌봄을 구분할 수 있을까 싶어요.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미시와 거시이지만 우리 일상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내가 취약할 때 내 집에 내 이웃이 찾아오든, 돌봄노동자가 찾아오든 그 사람에게는 다르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일상에 있는 여러 가지 제도들도 여러 관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 옆집 사람과 맺는 관계, 오랜 친구와 맺는 관계, 가족과 맺는 관계 등처럼 돌봄서비스를 지원받으면서 맺는 관계가 제도인 거죠.
저에게 아버지 돌봄은 아버지라는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어요. 돌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계기였고 사건이었죠. 제가 만약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면 ‘엄청 무능했던 사람’ ‘맨날 술만 그렇게 먹었었지’ ‘엄마한테 못 했었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돌봄을 하면서 아버지의 행동을 더 곱씹고, 더 이해하게 되고, 지난날에 겪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면서 다시 해석하게 됐어요. 가족이지만 진짜 다시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고, 돌봄을 그런 만남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계기로 인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저 ‘가족이니까’만 강화된다면 돌봄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런 성찰이 박탈되는 거 같아요. 너무 당연한 것이 되니까.
사실은 말기 질환 같은 상황에서 병원이 의외로 무능력할 때도 있거든요. 어떤 아픔을 대하고 치료할 때 병원이 가진 시스템과 기술들이 무용한 경우도 분명히 있어요. … 예를 들어 때로는 가족과 돌봄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병원에서 검사하고 치료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일 수도 있을 텐데, 치료에 대한 너무 강한 신뢰를 가지면 사실상 효과도 없으면서 환자에게도 그런 중요한 시간을 뺏을 수도 있어요.
… 요양시설 같은 데서는 환자의 존엄보다는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굳이 먹지 않아도 될 많은 약들을 의학의 권위를 빌려서 복용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돌봄의 현장에서 의료와 약물이 남용되는 것을 굉장히 많이 보죠. 그래서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돌봄환경을 전체적으로 개선하는 데 중요하고, 그것이 의료인한테도 또 환자한테도 가족에게도 좋을 수 있다고 봐요.
죽지 못하게 하는 곳도 병원이지만 죽음을 결정하고 죽음을 가능케 하는 공간도 병원이에요. 역설이죠. 사망을 선언하는 사람은 의사고 의사는 병원에서 일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죠. 사실은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을 판단하는 사람도 의사예요.
저는 의사의 판단을 통해서 죽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죽음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우리 모두가 죽음 자체를 의사가 판단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 삶의 문제에서도 의사의 역할이 비대해졌죠. 병원의 권위가 애초에 죽음을 판단하는, 동시에 생명을 판단하는 역할에서 오죠. 같이 맞물려 가는 거죠.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당장의 현실에서 준비가 안 됐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보다, 그런 미래에서 살고 있는 시점을 상상해보는 거예요. 무엇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나 실질적 해법을 최대한으로 확장해서 그 미래에서부터 지금을 보고, 지금 여기서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거.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시간에서 지금 나를 봐야 돼요. 그래야 현실에 파묻혀지지 않고,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죠. 어떤 ‘표준적인’ 인간을 상정한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가능한 세계 말이죠. 시설화됐기에 공백이었던 곳을 치열한 논의로 다시 채워 넣고, 도시의 기반 시설도 그렇게 돌봄 친화적이고 장애 친화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죠.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누구나가 발달장애인일 수 있다는 가정이, 장애가 있고 취약할 수 있다는 전제가 우리가 관계 맺는 데 당연한 일이 되는 거. 그런 게 탈시설운동이 지향하는, 그리고 탈시설운동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의 모습일 거예요.
어떤 영 케어러가 있어요. 어린 시절 타인을 돌보면서 상호작용을 했는데, 그게 그 사람에게 인생의 길이 될까요? 길이 안 되죠. 지배적인 사회 시스템은 협력, 돌봄, 배려를 인정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경쟁을 해야 되고, 이윤을 내야 되고, 생산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는 영 케어러들이 이 생존 시스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10대 영 케어러들을 만나면서 ‘돌봄이 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돼야 되는가’란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돌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좋은 말들을 해줄 수 있지만, 그게 결국 이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내가 … 중한 질환으로 직접적인 돌봄을 받으면 어떨까’를 생각해봤는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나는 삶을 포기할 것 같아’예요. 제가 스스로 모든 걸 헤쳐나가야 되고, 바로 서야 하고, 자립해야 된다는 강박이 강하다 보니, 돌봄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 같아요.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사고든 노화든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와요. ‘내가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잘 인정해야 되겠구나’ 하고 다짐하죠.
예를 들면 며칠 전에도 어떤 할아버지 환자분을 만났는데 스스로 바지를 못 올린다고 하셨어요. 저에게도 그런 순간, 혼자서는 수저를 들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죠. 스스로가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돌봄을 받는 일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자립하는 일이 성공이라는 가치관을 바꿔야 해요.
우리는 노년을 긍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령인구가 많아지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기에 신체와 인지가 취약해져도 괜찮은 사회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부담이 되지 말아야 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취약함이 무능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전제할 때 우리는 초고령사회 속 웃음소리와 행복감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초고령사회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돌봄은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 우리가 일상적으로 맺는 관계가 위계에 의한 폭력이나 짓밟고 나아가야 하는 경쟁이 아닌, 서로 돌보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늙고 아프고 병드는 생의 과정에서 긍정적인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담집에서 관계라는 키워드부터 출발해 돌봄을 이야기하고, 돌봄을 관계적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 모를 것들을 찬찬히 손에 쥐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왜 돌봄은 늘 약자의 몫인가
1장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_왜(Why)〉는 ‘돌봄 위기 사회’가 된 한국의 돌봄 실태를 짚고, 왜 누군가를 돌보는 일 자체가 위기가 됐는지를 탐색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돌봄 시설들이 폐쇄되자 다시 돌봄을 떠맡은 가족들이 큰 부담을 지게 됐고, ‘돌봄 공백’ ‘돌봄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전부터 돌봄은 항상 위기였다고 말한다. 돌봄은 대개 가정 내의 여성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자녀,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하는 ‘가치 없는’ 일로 여겨졌고, 돌봄 공백 또한 소수에게 과도하게 부과된 돌봄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발생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계기였을 뿐이다. 따라서 돌봄 공백을 말할 때는 지금의 공백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왜 공백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해야 돌봄이 온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이 폄하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가장인 남성의 노동은 돈을 벌고 생계를 부양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듯 돌봄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현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성의 논리와 맞닿아 있기에, 돌봄을 새롭게 사유하고 내용을 다시 채워나가는 일은 곧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보고 변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2장 〈돌봄이 필요한 시간_언제(When)〉는 왜 이렇게 우리에게는 ‘돌봄의 시간’이 부족한지,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우리에게는 생애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매일의 일상이라는 단기적인 관점에서도 돌봄이 늘 필요하지만, 돌봄은 필요에 비해 항상 부족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정상가족’을 전제로 한 생애주기가 돌봄을 가로막는다. 단적인 예가 영 케어러다. 일반적인 생애주기에서 청소년은 돌봄을 받고 학업을 하는 존재로 정의되는데, 이런 인식은 어린 나이에 부모, 조부모를 돌보는 영 케어러를 ‘효자’ ‘효녀’로만 보게 만든다. 이 상황을 문제화하고,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정상가족’은 매일의 일상에서도 충분한 돌봄을 불가능하게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이렇듯 돌보는 가족이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가장 높은 등급의 노인에게도 하루 3시간의 요양보호 시간만 제공한다. 하지만 돌봄의 필요는 국가가 보장한 3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나머지 21시간은 공백으로 방치되어 있다.
이 책은 또한 ‘돌봄의 시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그 시간에 어떻게 개입하고, 그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돌보지 않는 시간에도 방문진료 의사, 지역 주민들이 오가며 취약한 타인을 돌보는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장 〈돌봄의 동료들과 관계 맺기_누구(Who)와〉는 돌봄노동자, 의사, 공무원 등 누군가를 돌보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좋은 돌봄’을 해낼 수 있을지를 말한다.
돌봄노동자를 대할 때 필요한 태도가 존중이다. 돌봄노동자는 허드렛일하고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여성이 많아 쉽게 성추행, 욕설,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족 보호자들이 ‘돌봄노동자가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폭행한 것 같다’고 불만을 늘어놓으며 감시하려 들 때도 있다.
의사는 치료자가 아닌 ‘돌봄의 동료’가 되어야 한다. 병과 고통을 없애는 치료의 역할에만 몰두하면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질환의 순간, 의사는 무력해지기 쉽다. 때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정리해야 하는 귀한 시간을 검사와 치료에 빼앗길 수 있다. 말기 질환이 아닐 때도 ‘질병을 박멸할 수 있다’는 치료의 권위가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불필요한 약물을 남용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실제로 돌봄하는 사람의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신체 상태만을 기준으로 ‘근로능력 있음’이라고 판정하거나,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서비스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도 ‘대상자 아님’이라고 판단할 때가 많다.
이 모든 관계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는 잘 돌보기 위해서 협력하는 관계라는 인식, 함께 해내고 있다는 관계 맺음이다. 그렇게 모두가 돌봄의 동료로서 당사자에게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그것을 위해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해 보자고 이 책은 제안한다.
새벽 6시의 전화벨에 무작정 달려갈 수 있다면
4장 〈시설과 집의 이분법을 넘어서_어디서(Where)〉는 ‘집이냐 시설이냐’라는 오래된 질문의 틀을 바꿔, 당사자가 안도감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 방법을 다룬다.
장소안도감이라고 불리는 개념을 통해 단순히 그곳이 물리적으로 넓고 쾌적한 공간인지 묻는 것을 넘어 “장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갖고 존중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를 통해 사회와 연결되는 힘을 얻게 하는 것”을 지향하자는 취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집과 시설 중 어느 쪽이 좋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의사나 간호사가 없어서 바로 치료받을 수 없는데도 집에 온 뒤에 좋아지는 환자, 병원에 가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환자도 있지만, 주거지가 열악해 스스로 요양원에 입소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시설에서 폭력과 감금, 강제 노동 등의 인권침해가 발생하지만,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이 제한적이라 집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여성은 집에 있으면 집안일을 해야 하므로 시설에 머물려 하는데 남성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례처럼 저마다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장소에 대한 선호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두 저자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대신, 개개인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와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 보자고 권한다.
5장 〈돌봄이 길이 되려면_어떻게(How)〉는 돌봄을 중심에 둔 사회, 돌봄으로 재구성된 사회로 이행할 방안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캐슬린 린치 더블린대학교 평등학 교수의 사랑노동, 돌봄노동, 연대노동이라는 개념을 빌려 여러 돌봄관계에 내재한 문제를 돌아본다. ‘근거리의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돌봄’을 뜻하는 사랑노동은 주로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데, 돌봄은 가족 가운데 가장 약자가 떠맡지만 정작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결정은 ‘돈을 내는’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곤 한다. 그 과정에서 주 돌봄자는 스스로 결정권이 없다는 걸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또 인정하다가 무너진다.
돌봄노동에 대해서는 돌봄노동자와 돌봄받는 대상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최소화할 방법을 제시한다. 흔히 ‘간병인을 잘 만나는 건 복의 영역’이라고 하는데, 이는 둘의 성격이나 특성을 파악해서 매칭하는 대신 ‘그냥 파견해서 돌보면 된다’는 식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캐릭터를 잘 존중해서 관계를 맺으면 복의 영역이 아닐 수 있는데, 복을 잘 매칭하고 분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복이나 운의 영역, 우연의 영역으로 둔 거”라는 의미다.
‘원거리 관계에서 벌어지는 돌봄’을 뜻하는 연대노동에 대해서는 ‘새벽 6시에 갑자기 응급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무작정 갈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나와 어떤 관계이든 내가 필요한 낯선 타인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돌봄사회가 저 먼 곳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이상향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될 때
이 책은 돌봄을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공기’에 비유한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우리는 돌봄 속에서 살아왔고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듯 우리를 존재하게 한 돌봄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돌봄을 중심으로 새롭게 이 세계를 구성해 보자고, 두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그 일은 곧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돌봄의 가치를 무시하고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맺지 않는데 사회복지 제도가 확충되고 돌봄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될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정비된 제도도 메울 수 없는, 사람만이 채워야 할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돌봄을 제도화된 서비스나 시장의 상품으로 한정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돌봄의 인프라’가 되어 취약한 이들, 나아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관계를 함께 맺어가자고 권한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만 언젠가 늙고 병들고 약해질 미래의 우리를 부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환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정보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대표.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젊은 보호자가 됐다. 가난과 돌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막막함이 찾아들 때마다 회피하듯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어느새 뭔가를 읽거나 보고 누군가를 돌보는 시간이 삶의 동력이 됐다. 다른 누군가의 삶에도 동력이 되고 싶어서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몫》을 썼고, 영화 〈1포 10kg 100개의 생애〉와 SF렉처 퍼포먼스 〈무출산무령화사회〉를 만들었다. 돌봄으로 연결된 동료들과 ‘돌봄의 새 파란’을 일으킬 궁리로 여러 실천을 이어간다. 돌봄이 관계가 되고 관계가 돌봄이 되는, 그런 일상을 꿈꾼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나씩 찾아가는 중이다.
남의 집 드나드는 의사.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무작정 지역사회에 뛰어들었다.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축제를 기획하고, 마을사랑방 ‘건강의집’을 열어 청년들과 함께 살면서 관계의 확장을 경험했다. 그 경험 끝에 ‘호의’와 ‘연대’가 건강한 삶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이런 활동을 토대로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 집 의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의사가 되었다. 처방전 너머 돌보는 관계의 중요성을 매일 깨달으며 돌봄을 돌보는 의사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치기 어린 인생 실험을 정리해 《처방전 없음》을 펴냈다. 함께 쓴 책으로 《내일은 내 일이 가까워질 거야》 《혼자서는 무섭지만》이 있다.
낭독 이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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