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된, 몸
2024년 10월 22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2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20.79MB)
- ISBN 979119153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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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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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크리스티나 크로스비의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통념과 예상을 벗어나 버린다. 이 책이 여느 장애/서사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보다 우선 그간 우리가 접해온 서사들이 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와 방식으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험해 보지 못한 몸-마음의 생생한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데서 온다. 모든 불운한 개인들처럼,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왕성한 활동가였던 저자 크로스비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얼굴이 부서지고 부러진 경추에 척수가 손상되어 거의 전신이 마비되고 몸의 순환계도 망가져 버렸다. “강인하고 유능하며 매력적인 여성”은 과거에만 존재하고, 죽음보다 삶이 두려운 자리에서 그는 고통스런 현실에 순응하거나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언어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와해된 몸’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고집스럽게 실현하려 한다. 척수 손상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신경학적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하는 이 무모한 여행은 이를테면 “잃고 나서야 상실한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이성적 조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동이 이끄는 대로 고통의 지형도를 그려나간다. “얼어붙은 사람이, 눈雪을 생각해 내듯” 몸속의 고통과 두려움을 낱낱이 헤집고 셈하는 그녀의 글은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처럼 “번뜩이는 정밀함으로 타오르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 어느 것 하나 비루한 것으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이어진 그녀의 글쓰기는 “우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회고록을 남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그녀의 삶도, 그녀의 글쓰기도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지탱 없이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손쉬운 자기 연민과 고난 극복의 서사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재정의하려는 안간힘인 동시에 파괴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너절하고, 취약하며, 퀴어할 수 있는지”를 우리가 알아주기를 요청하는 책이다. 그럼으로써 우연과 운명의 간섭에 취약한 우리의 몸과 상호의존성과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능력에 대해 숙고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취약한 몸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존재들이지만,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드는 용기도 이 존재들의 얽힘에서 나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자기 보존의 기술과 상품이 더욱 넘쳐나는 오늘도 여전히. 언제까지나.
1. 너의 하찮은, 취약한 자아
2. 내가 들은 그날의 사건
3. 어리둥절함
4. 지옥에 떨어지다
5. 금전 관계로 맺어진 돌봄
6. 공간 속에서 길을 잃다
7. 남성, 여성, 아니면 7월 4일
8. 시간은 나를 푸르른 채 죽어가도록 두었다
9. 제퍼슨 클라크 크로스비
10. 폭력과 성스러움
11. 장이 이끈다
12. 나는 당신의 육체적 연인이야
13. 수요와 공급
14. 우리의 개들
15. 재세례파 종교개혁
16. 프리티, 위티, 게이. 예쁘고, 재치 있고, 흥겨운
17. 무서워! 무서워!
18. 살아가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크나큰 고통을 겪은 후에, 인생의 맥박은 느려지고 생명 유지를 위한 박동의 간격도 끝없이 늘어진다. 삶은 유예된다. 그 사이에서 한때 당신이었던 사람과 현재 당신이 되어버린 사람 간의 차이를 대면하고, 고통을 인정하고 비애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위험한 과정이 된다 해도. [21쪽]
난파된 나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 당신을 난처하게 하거나 스스로 굴욕감을 느끼겠다는 의도는 없지만, 나는 죽기 직전의 삶을 산다는 게 가끔은 불명료한 것들, 이를테면 우리의 아름다운 몸이 지닌 연약함과 모든 인간의 의존성 같은 것을 명료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26쪽]
자넷은 친구들에게 내가 중상을 입었지만 “인격personhood”을 잃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 사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가끔은 완전히 소외당한 것처럼 느낀다. 척수 손상은 나를 초현실적인 신경학적 황무지로 내던져 버렸고, 나는 그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한다. 이 글은 그 황무지의 지형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이다. [35-36쪽]
나는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충격의 정도가 무한히 배가된 전기가 피부 밑으로 두껍게, 지속적으로 흘렀다. 다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뒤엉킨 신경이 흘려보내는 이 흉포한 윙윙거림은 내 몸속에서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얼마나 무서운가, 마침내, 내장 깊숙이, 내가 얼마나 극심하게 다쳤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은! 이제 나는 진짜 지옥에 다녀왔다는 것을 안다. [46-47쪽]
고통에 울고, 비명을 지르고, 격노하는 것은 언어가 와해되었다는 징후이다. 고통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특유의 수사적 표현인 이유는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유의 전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다른 무언가를 경유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속성이 있기에 비유된 고통은 언제나 오용되거나 남용된 것처럼 어색하게 들린다. [52쪽]
고통은 사회적 장으로 퍼져나간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변할 뿐 아니라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한탄이 종국에는 내가 타자들과 맺는 유대를 좀먹을 것이기에. 내가 용감하게 침묵 속의 고통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에 그렇다. [56쪽]
발가벗겨져 샤워용 들것에 실려 샤워실로 들어갈 때면, 내 몸을 볼 수 있도록 머리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거울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물리치료실에 거울이 있으면 부지런히 시선을 피했다. 말 그대로 내 몸을 보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내 몸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자넷은 내게 일어났던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반복적으로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은 내게 생경해서 우주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69-70쪽]
재활 전문 주치의는 엄지발가락을 잡고 자기가 발가락을 위로 굽히는지 아래로 굽히는지 보지 않고 말해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몸의 일부분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했다. 내 엄지발가락이 어떻게 나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내 몸의 “감각 느낌”을 믿을 수 없다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신체적 자아”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신체적 자아는 내부적으로는 몸의 다양한 부분과 부위를 구분하는 과정을 통해, 외부적으로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몸의 이미지이다. 나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79-80쪽]
이제 나는 젠더가 없다. 대신 내게는 휠체어가 있다. 나는 휠체어의 게슈탈트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나는 남자로 오인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척수 손상 환자의 82퍼센트가 젊은 남성이며 부치스러운 중년 여성은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될 만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온통 검은색인 옷만 입는다. 휠체어도 검은색이고 조끼도 검은색인데다가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 몸을 사라지게 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나는 영구적으로 애도 중인지도 모르겠다. [91, 93쪽]
0-슬픔 없음-부터 10-상상 가능한 최악의 비통함-까지 이르는 고통의 척도로 슬픔을 측정할 수 있을까? 아니. 고통도 슬픔도 정량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겪어낼 수 없는,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그저 남는 것이다. [108쪽]
제프는 나의 유일한 형제였다. 제프와 내가 함께 담긴 사진 중 좋아하던 게 있다.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수십 년간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우리가 기막히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에는 캠프에서 여름을 보내고 강건한 몸을 한 젊은 우리가 있다. 이 풋풋한 생일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가 목이 부러져 나이 오십에 사지마비가 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의 활기차고 잘생긴 오빠가 신경계 질환에 시달리다 사십 대에 사지마비가 될 거라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제프를 만나러 갔던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소파에 늘어져 가죽에 뺨을 대며 열을 식히다가 맞은편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제프를 쳐다봤다. 어떻게 신체적으로 그렇게 단조롭고 둔감해진 촉각으로 사는 것을 참는 걸까? 몇 년 후, 병원 침대에 누워 이제 내가 저 질문들에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쉰 살의 일격 한 번에, 제프의 쌍둥이가 되는 나의 상상은 마침내, 사악하게 실현되었다. 마비가 젠더를 이겼다. [132-134쪽]
제프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간호진은 주치의를 호출했고, 주치의는 제프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병원에 가길 원합니까?” 제프는 아주 명확히 대답했다. “아니오.”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때, 제프는 자신이 목숨을 연명해 줄 비상 처치를 원하지 않으며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프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여전히 힘들다. 아티반과 중간에 이식한 모르핀 펌프가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의 죽음은 마치 천천히 물에 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160-163쪽]
능력을 상실한 몸마음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야기가 공유하는 기승전결에도 불구하고, 오든의 심상은 장애가 심오한 통찰력이나 고차원적 이해로 이끈다는 행복한 생각을 비웃고야 만다. 장애를 이야기하는 서사 구조는 어려움을 겪는 주체가 고통스러운 시련을 거쳐 살 만한 순응으로 접어들며 교훈을 얻는, 승리의 어조를 띄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지 마라. 내 삶의 많은 부분은, 특히 내 배변 활동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니까. [163-164쪽]
자넷과 나는 험난한 물살을 헤치며 다시 한 번 단단한 삶을 일구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애는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남아 있고 나는 매일 그 깊은 비애를 느낀다. 나에게 섹스는 과거와 너무나 다른 것으로 변해 버려서,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상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두 번 다시는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다고 명하는, 죽은 감각을 가지고 사는 삶에 내가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영혼을 파괴하는 이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나조차 내 몸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두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욕망할 수 있을까? [170쪽]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많은 이야기는 출생할 때 발견되는 “결함”으로 추정되는 것, 유전적 이상, 진단 시험 혹은 치명적 부상의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사는 시간순으로 전개되며, 사건들은 결과순에 따라 표현된다. 당신은 책을 읽으며 상상 속에서 그 공간을 떠올리고, 이야기 속에 몰두한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물의 궤적이 구조화된 공통의 지평선을 발견한다. 당신은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려 애쓰는 이야기 속 인물을 따라 그 상황으로 들어가고 공감한다. 장애를 다루는 서사들은 거의 언제나 세상에서 새롭게 존재하는 방식으로서 장애를 수용하고 심지어 축하한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서사에 리얼리즘의 안정화 관습을 작동시킨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해 영역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262-265쪽]
척수 손상이 데려간 어딘가 다른 곳이 나를 반복적으로, 매일같이, 가차 없이, 지긋지긋하게 공포스럽게 한다. 사고는 나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공포가 가리키는 대상은 내가 나아갈수록 더 위협적으로 변하는 악의에 찬 수수께끼 속에 가려져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깨달아 가면서 나의 공포는 더욱 커졌고, 이미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다. [268-26쪽]
나는 무엇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의 공포는 나의 삶을 망가뜨린 사고로 끝없이 돌아가는,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것에 대한 것이다. 끔찍한 무언가가. 미래가 기다린다. 삶은 계속될 것이다. 매일같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는 나이듦이 두렵고 이토록 깊이 손상된 몸으로 나이 드는 시련을 견디는 것이 두렵다. 나는 끝없이 계속되는 신경성 통증과 정서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끝없이 계속되는 비애가 두렵다. 비애는 세상을 물들이고 가끔은 그저 견디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사는 것이 두렵다 [269-270쪽]
휠체어를 밀던 자넷은 내게 화를 냈다. 나는 아래쪽 앞니 바로 뒤의 잇몸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치아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혀로 느끼며 걱정하던 참이었고 “뼛조각일 거야”라는 자넷의 말을 들은 나는 의사들이 고정시켜 놓은 망가진 얼굴을 생각하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하며 울부짖었다. “난 진짜 완전 좆됐어.” “그럼 나는 뭐가 돼” 자넷의 높아진 어조를 보니 화가 난게 분명했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를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지우는 거야. 나는 당신이 당신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좆됐다고 말하는 건 당신에 대한 내 욕망과 나의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이후로는 이 삶을 저주하며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기로 다짐했다. [275쪽]
나는 내가 슬퍼하기를 멈출까 봐 두려운 동시에 슬퍼하기를 멈출 수 없을까 봐 두렵다. 만일 슬퍼하기를 멈춘다면, 나는 완전히 변화된 몸과 변화된 삶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과 화해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잃을지 무섭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체화된 열정이 온몸을 통해 느껴지던 감각을 잃는 것이 두렵고, 즐거움의 감각을 망각하게 될 것이 두렵다. 만일 내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끈끈한 호박색의 진액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는 함께 살기에 불가능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렵고 살고 싶지 않게 될까 봐 두렵다. [276쪽]
나는 여기 있다. 처음부터 내가 이야기해 온 감각, 즉 따끔거리고, 떨리고, 타는 듯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안고 책상에 앉아 있다. 이 통증은 나의 몸을 가득 채우고 세상과의 경계를 그린다.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나의 몸마음은 당면한 일에 몰두하고 통증의 감각은 배경이 되지만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즉 내가 쉬려고 할 때 통증은 다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토록 복잡하게 체현된 푸가를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277쪽]
사고 직후 나는 언어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몸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는 촘촘하면서도 고집스러운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 폭풍 속에서 살아간다. 전기가 흐르는 것과 같은 이 신경학적 폭풍은 지금까지도 때때로 압도적일 정도로 격렬하며, 섬뜩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내 삶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며, 그 장르가 미래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개념화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든 상관없이 내 삶이 공포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278쪽]
나는 삶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에 대해 안다. 내 몸속으로 밀려드는 옥시콘틴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몸마음이 기묘하게 돌진하는 비존재의 고요를 알아가면서 나는 내 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까무라지듯, 나는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고통의 척도에서 0점 이하의 더없이 행복한 고통 없는 상태로 흘러들어 갔다. 사랑스럽고 안락하고 지속 불가능한, 살 수 없는 삶. [279-280쪽]
내가 사는 것이 자넷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고 자넷이 내게 이야기한다. 이렇듯 간단하고 심오하다. 나의 부상을 “치명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며, 사고 이전에 너무나도 활력이 넘치고 생생했던 사랑이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서로를 향한 우리의 감정이 온전하고 견고한지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사실이, 설명할 수 없이 힘겨운 나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우리가 둘 다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의 상호성을 누린다는 것을 안다. [280쪽]
지나가 버린 것들을 회상하느냐, 아니면 괴롭고 두렵지만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보며 살아가느냐 사이의 불가능한 선택에 매일같이 직면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과거를 잊을 수도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과거가 필요하고, 한때 나였던 그 몸을 기억하길 원한다. 망각은 불가능하다. 물론 망각은 피할 수 없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살아가기 위해서 한때 나였던 사람을 잊어야 하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사람들이 잊는 것보다 더 유념해 망각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계속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과거의 우리와는 다르지만, 항상 되어가는, 되기의 과정 속에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열정적으로 살기로 선택했고, 곧 예측 가능한 미래에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선택을 할 때마다 나는 과거로부터 한 발자국 멀어지며, 이전의 나와 점점 더 분리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281-282쪽]
작업치료사 패티가 지시했을 때 나는 크리넥스를 집어서 탁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놓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매일같이 훈련을 따르며 아주 천천히 악력이 강해졌다. 휴지 집기를 시도한 후 패티는 연필과 책을 가져왔다. 패티는 책을 펼쳐 놓은 후 연필을 거꾸로 쥐고 지우개 부분으로 책의 가장자리를 누르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고는 내게 연필을 건넸다. 나는 혼신을 다해 연필을 쥐고 자넷과 간호사 위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책장을 넘겼다. “나 내 삶을 되찾았어.” 눈물을 흘리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내 삶을 되찾았어”라고. 우리 넷은 함께 울었다. [282-283쪽]
자전거를 타는 몸과 휠체어에 실린 몸
자전거 앞바퀴 살에 걸린 나뭇가지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몸은 이렇듯 우연과 운명의 간섭에 취약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을 통해 그 시대와 여성 문제를 연구하던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왕성한 활동가이기도 했던 크리스티나 크리스비는 쉰 살 생일을 갓 넘긴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자전거 사고로 운명이 갈라진다. 지나가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달려와 간신히 죽음을 면하지만, 그때까지 눈부시게 충만하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거리를 질주하는 것을 즐기던 “강인하고 유능하며 매력적인 여성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의 뼈가 부서지고 목이 부러지면서 척수가 손상되어 전신이 마비되고 몸의 순환계도 망가져 버렸다. 이 갑작스런 변화가 준 충격의 강도는 그녀에게 사고의 순간에 대한 기억도 지웠고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신진대사의 처리도 불가능한 몸이 되었다. ‘납덩이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그 후 응급실에서 재활병원으로, 그리고 집으로 옮겨진 그녀는 2년 뒤 재직했던 웨슬리안 대학교에 반일제 연구교수로 복귀하여 학생들에게 강의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의 몸은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손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불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척수가 손상된 그녀의 몸은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흐르는 신경학적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무지일 뿐이었다. 파괴된 몸속에서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에게 만족스러운 결말 같은 것은 없었다(꿈꾸지도 않았지만). 18년을 지탱하던 그녀의 몸은 끝내 작동을 멈췄다.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2016년 세상에 나온 그녀의 회고록이다. 그녀가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쓸 수 있었는지), 혹은 쓰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음과 같은 잠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아니면 티슈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손에 절망하고, 수도 없는 시도 끝에 연필을 거꾸로 잡고 지우개로 책장을 넘기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말처럼 “고통에 울고, 비명을 지르고, 격노하는 것은 언어가 와해되었다는 징후”이다. 용량을 초과하는 끝없는 고통에 괴로워 했겠지만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던 것은 이 징후일지 모르겠다. 그녀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언어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끔찍한 몸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촘촘하고도 고집스러운 욕구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이 욕구를 끈질기게 실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글이 세상에 책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처음 당황했고, 놀라워했고, 마침내 사로잡혔다. 그것은 무엇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지독한 일기이자 생존에 대한 복잡한 긍정이기도 한 이 책이 지금까지의 장애/고통 서사와 다름에서 오는 것이다. 그간 접해온 고통을 이야기하는 방식과는 다른 그녀의 글쓰기는 우리를 새로운 미지의 감각과 경험으로 이끌어 간다. 그것은 생을 긍정하기 위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건너뛴 어두운 자리들을 드러낸다. 무엇이며, 어떤 것들일까?
크나큰 고통 이후-척수 손상의 황무지를 걷는 여행
사고든 질병이든 그로 인한 장애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적지 않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태어날 때 발견되는 ‘결함’으로 추정되는 것, 유전적 이상, 치명적인 사고의 순간부터 시작되며, 대부분의 서사는 대개 선형적인 시간순으로 전개되고 사건들 또한 결과 순을 따른다.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은 그러한 서사들이 저마다의 절실한 사연을 지녔음에도 거의 어김없이 고통을 겪는 이가 시련을 거쳐 절망을 극복하고 교훈을 얻는 긍정적인 결말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물론 세상에 새롭게 존재하는 방식으로서 장애를 수용하고 심지어 축하하는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결코 나쁘지도 해롭지도 않다). 독자들은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려 애쓰는 인물들을 따라 그 상황으로 들어가고 공감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야기 속에 몰두한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적 삶의 궤적이 구조화된 공통의 지평선이 발견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고 기대하는 인간적 삶의 공통된 서사 구조(빅토리아 시대의 문학 연구자인 크로스비가 “리얼리즘‘ 서사라 부르는)와 진행 방식을 아주 닮아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극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그러한 장애/고통 서사들을 찾아 읽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크로스비는 몸이 타들어 가고, 충격의 정도가 배가된 전기가 피부 밑으로 두껍게 지속적으로 흐르는, 다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뒤엉킨 신경이 흉포하게 윙윙거리며 몸속을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진짜 지옥’에 살게 되었음을 알고 절망하지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출구 같은 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것도 극복하려 하지 않으며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채로, 부서진 그 자리에서 난파된 자신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처럼 “얼어붙은 사람이, 눈을 생각해 내듯” 일상을 잔인하게 쪼개는 몸속의 고통과 두려움을 낱낱이 헤집고 셈하는 그녀의 글쓰기는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처럼 “번뜩이는 정밀함으로 타오르는” 고통의 해부도를 그려간다. 그녀는 이를테면 “잃고 나서야 상실한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이성적 조언 따위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동이 이끄는 지점까지 나아가려 한다. 그것은 시간순도 따르지 않고, 인과도 드러나지 않는 삶의 여러 장면들을 오간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한때는 자신의 삶이었던 것에 다가가는 데 골몰하고, 이제는 온전히 체감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 어느 것 하나도 비루한 것으로 내던지거나 포기하지 않는, 삶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을 밀어내며, 무엇보다 손쉬운 자기 연민과 고난 극복의 서사에 저항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재정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글쓰기는 “우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책”으로 남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취약한 몸, 타자들, 존재(관계)의 해부학
그렇다고 하여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를 고통의 해부학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이 책의 절반만 이해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다. 이 책은 ‘존재(관계)의 해부학’이기도 하다. 책의 첫 시작에서부터 크로스비는 응급실 침대에 누인 자신의 와해되어 버린 몸이 이제는 누군가의 크고 작은 도움 없이는 동물적 생존도 불가능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연인 자넷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인격personhood“을 잃지는 않았다고 위로했지만 이미 내장 깊숙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완전히 소외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인간적 삶에 필수적인 일관된 ’신체적 자아‘조차 손상되어 혼란스러운 그녀를 끌어당겨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남게 한 것은 그녀에게 다가오고 그녀를 둘러싼 타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녀의 깊고 무지막지하고 압도적인 고통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파괴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너절하고, 취약하며, 퀴어할 수 있는지를 전하는 그녀의 글은 우연과 운명의 간섭에 취약한 우리의 몸과 상호의존성과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능력에 대해 숙고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김원영,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문학동네, 2004, 9쪽. 옮긴이 후기에서 재인용) 우리는 언제까지나 취약한 몸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존재들이지만,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드는 용기도 이 존재들의 얽힘에서 나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자기 보존의 기술과 상품이 더욱 넘쳐나는 오늘도 여전히. 언제까지나.
작가정보
저자(글) 크리스티나 크로스비
Christina Crosby
195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헌팅던에서 태어났다. 스와스모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학내 신문사에 페미니즘 칼럼을 기고했다. 스와스모어 여성 해방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게이 해방 단체 설립에 기여했다. 1982년 브라운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웨슬리안 대학교의 여성학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이를 페미니스트, 젠더, 섹슈얼리티 연구 프로그램으로 재설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역사의 끝: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과 “여성 문제”』를 비롯해 빅토리아 시대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에세이를 썼으며, 장애학과 퀴어, 여성학 연구자로 활동했다. 202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6년 출간한 『와해된 몸』은 쉰 살 생일을 갓 넘긴 어느 날 자전거 사고로 목이 부러져 사지마비가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회고록이다. 손상된 몸으로 인한 비애와 상실을 겪는 중에도 관계를 성찰하고 삶을 숙고하는 과정이 담긴 서사라는 점에서 여러 매체와 독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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