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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바비즌

폴리나 브렌 지음 | 홍한별 옮김
니케북스

2024년 12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9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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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2.61MB)
ISBN 9791198887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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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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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4 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 선정작입니다

20세기 초반, 1차대전과 여성참정권 획득은 여자는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를 무너뜨렸다. 1920년대 미국 각지의 젊고 야망 있는 여성들은 꿈을 좇아 전후 건설 붐으로 초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있던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들이 원했던 곳은 불편한 하숙집이 아닌 남성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 즉 날마다 집안일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운동 시설과 개인 식사 공간까지 갖춘 그들만의 거주용 호텔이었습니다. 투숙객의 신원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요구하며 남성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 여성 전용 호텔 바비즌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과 보수적인 부모의 우려를 절충하는 해답이었다. 게다가 이 호텔에는 배우, 모델, 가수, 예술가, 작가 지망생이 가득했고 일부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에서부터 타이태닉호 생존자이자 여성참정권론자 몰리 브라운, 디자이너 벳시 존슨, 작가 존 디디언과 실비아 플라스까지 이곳을 거쳐 간 유명인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호텔 바비즌-여성의 독립과 야망, 연대와 해방의 불꽃이 되다》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전용 호텔이 1927년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2007년 수백만 달러 가치의 콘도미니엄으로 재개장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는다. 뉴욕 배서 칼리지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치는 저자 폴리나 브렌은 다양한 관계자와 직접 인터뷰하고 사적인 편지를 검토하고 당대에 작성된 문헌과 기사를 동원해 시대상을 고증함으로써 입체적인 드라마를 그려낸다. 눈앞에서 보듯 정밀하게 묘사된 금주법 시대의 주류 밀매점, 주가가 폭락하고 자살이 이어지던 검은 목요일, 직장 동료들끼리 고발을 서슴지 않던 매카시즘의 시기,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자유와 뒤이은 반작용 등이 이어지는 정치ㆍ사회적 맥락에 출판과 패션, 영화와 광고업계의 뒷이야기가 얽힌다. 근시용 안경을 썼던 그레이스 켈리와 울다가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실비아 플라스, 백만장자와 미녀들이 가득한 파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가 하면, 인물마다 서로 다른 기억과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드러나고 시간이 흐른 후의 비극이 충격을 주기도 한다. 사회학 연구와 역사적 기록, 다중 시점의 단편소설, 가십 칼럼이 뒤섞인 이 책은 이 호텔을 거쳐 간 여성들의 역사이자 20세기 맨해튼의 역사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여성의 야망 이야기다.
추천의 글
들어가며

1장 바비즌의 탄생: 가라앉지 않는 몰리 브라운 대 플래퍼
2장 대공황에서 살아남다: 깁스 걸과 파워스 모델
3장 매카시즘과 희생자가 된 여성: 벳시 탤벗 블랙웰과 커리어우먼들
4장 인형의 집이 되다: 그레이스 켈리와 미인대회 수상자들
5장 실비아 플라스: 1953년 여름
6장 존 디디언: 1955년 여름
7장 보이지 않는 사람: 게일 그린과 “외로운 여자들”
8장 “이름이 없는 문제”: 실비아 플라스와 1950년대를 추도하며
9장 한 시대의 끝: 여성 전용 호텔에서 백만장자의 아파트로

감사의 글

사진 출처

1920년대에 다른 여성 호텔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나 미국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은 바비즌이었다. 다른 호텔이 하나둘 문 닫은 뒤에도 바비즌만은 건재했는데, 그 까닭은 바비즌이 젊은 여성을, 1950년대에는 특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연상시키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비즌은 엄격하게 여성 전용이었고 남자들은 로비까지밖에 들어올 수 없었다. 주말 저녁에는 로비가 ‘연인들의 오솔길’이라 불렸는데 전략적으로 배치된 화분 뒤 나뭇잎 그늘에서 커플들이 서성이며 부둥키곤 했기 때문이다. 은둔 작가 J. D. 샐린저는 ‘늑대’는 아니었지만 캐나다 하키 선수인 척하며 바비즌 커피숍에서 얼쩡거리곤 했다. 다른 남자들도 63번가를 걷다 렉싱턴 애버뉴가 나오면 느닷없이 피곤해져 당장 쉬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는데 마침 가까이에 있는 바비즌 호텔 로비가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느껴졌다. 《앤절라의 재》를 쓴 프랭크 매코트의 동생 말라키 매코트를 포함한 몇 명은 철저히 감시되는 객실층까지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어떤 사람들은 배관수리공이나 왕진 온 산부인과 의사로 가장하고 침투를 시도했다가 실패해 미시즈 시블리의 비웃음을 (그리고 분노를) 유발했다. -〈들어가며〉

1차대전을 거치며 여자들이 자유를 얻었고,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되며 참정권을 얻었을 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이 눈에 보이게 되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의 수가 급증했고, 여전히 결혼이 최종 목표이긴 했으나 플래퍼의 화려한 삶-도시의 흥청망청 소비주의(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쇼핑! 델모니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과 결합된 사무직도 결혼 전 준비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전에는 단순사무직이 처음 일을 시작한 젊은 남성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 거치는 디딤돌이었다면, 이제 수천 명의 여성이 맨해튼 전역에 우후죽순 솟아오르는 번쩍이는 초고층건물 사무실로 몰려들면서 비서직은 승진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이 되었다. 대신 이 일자리는 젊은 여성들이 ‘오피스 와이프’의 기술을 발휘하면서 월급을 받고 결혼 전 잠깐 독립적인 삶을 누릴 기회로 여겨졌다. 새로운 세상의 비서들은 사장들에게 “가능하면 사장 아버지 세대의 사라진 아내 비슷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포춘》 잡지는 말했다. 사장의 편지를 타이핑하고, 장부에 수입 지출을 기록하고, 사장 딸을 치과에 데려가고, 필요할 때면 사장의 자존감을 북돋는 입에 발린 말도 했다.
그 대가로 신여성도 무언가 얻은 게 있었다. 독립적으로 살고,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어느 수준까지만), 소비에 탐닉하고, 도시 생활의 짜릿함을 맛보고, 마음대로 공공장소에 들어갈 권리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살 공간이 필요했다. -〈1장 바비즌의 탄생〉

1927년,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 기준에 따라 신여성을 비난하던 사회에서는 바비즌의 연주황색 벽돌벽이 이 안에 있는 여성들은 행동거지가 정숙하다고 보장했다. 이제 바비즌 호텔은 다른 종류의 비난으로부터 여자들을 안락하게 지켜주겠다고 했다. 여자는 일을 하면 안 되고, 일자리는 가장인 남자들의 몫이며, 일하는 여성은 비애국적이라고 간주하는 터라, 뉴욕에서 봉급을 받고 일하는 여자나 일자리를 찾는 여자는 모두 배척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출근 복장으로 거리를 걷거나 사무실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남성성이 받는 위협’을 상기시켰다. 1932년이 되자 26개 주에서 결혼한 여성이 취직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도록 강제하지 않는 주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 반드시 밝히도록 의무화했다. 여자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진짜’ 가장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비즌은 이런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바비즌은 단순한 레지던스 호텔이 아니라 안전한 피난처였다. -〈2장 대공황에서 살아남다〉

그러나 바비즌 체류 동안, 아직 젊고 예쁘고 매력적이고 열의가 넘치는 동안에만 한정된 기회의 창이 열린다는 것을 뼛속 깊이 이해한 것은 상류층 출신들이 아니라 캐럴린 같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미모와 젊음 등의 자산을 밑천으로 비서, 모델, 배우 등의 일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류층 출신부터 캐럴린 같은 이들까지 바비즌에 있는 모든 젊은 여성에게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바로 결혼이었다. 아무리 대담하고 아무리 포부가 드높은 사람이라도 무지개 끝에 있는 금단지는 결혼이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결혼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배우, 작가, 모델, 화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다 하더라도. 상류층 출신들은 적절한 배우자를 구하러 멀리 갈 필요가 없었으므로(아빠의 컨트리클럽이라든가 정기 댄스파티 등에 후보자들이 넉넉히 있었다), 이들에게는 바비즌이 결혼 전에 잠시 즐기기 위한 곳, 약간의 악명이나 성공을 누려볼 만한 시기를 뜻했다. 그러나 캐럴린 같은 이들은 뉴욕에서 그걸 이루기 위해, 다시 말해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어 남자를 만나기 위해 바비즌에 온 것이었다. 고향에는 캐럴린의 엄마 같은 이들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캐럴린들은 그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4장 인형의 집 시기〉

1950년대는 장밋빛으로 기억되곤 하는 시기이다. 누군가는 미국이 이전이나 이후 어느 때보다 번영했던 때라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는 모순, 입에 올리지 않는 것, 가식으로 가득한 시기였고 곧 그중 일부가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 1950년대 여자들은 결혼이 성공 혹은 최소한 안전을 의미한다고 믿었으나, 그게 사실이 아닐 때가 많았다. 1950년대 바비즌에 살았던 여자들에게는, 좁은 방, 딱딱한 침대, 데이트 전 정신없이 옷을 차려입던 것,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나누던 대화, 심지어 미시즈 시블리의 잔소리마저도 나중에는 그리움의 대상이 될 터였다. 그들은 바비즌에서 보낸 시간이 결국 그들을 결혼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몰아갈 짧은 기회의 창이라고 이해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창이-그리고 그 시기를 정의하는 여자들의 동지애와 독립이-실은 그들 삶의 정점이었던 것이다. -〈4장 인형의 집 시기〉

그럼에도 《마드무아젤》이 젊은 여성들에게 제공한 기회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마드무아젤》은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시각적·지적 자극을 가감 없이 제공했고, 객원 편집자 프로그램으로 각 세대의 가장 야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권위 있는 출발점이자 도약의 발판을 제공했다. 남성이-백인 남성이-아무 도전도 경쟁도 없이 권력을 행사했던 1950년대에는 특히 더욱 소중한 기회였다. 이때는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복종이 완전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스크린에서는 1940년대의 존 크로퍼드와 캐서린 헵번 같은 걸출한 여성이 1950년대의 도리스 데이나 데비 레이놀즈 같은 명랑한 여성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크리스 래드가 지적했듯 “고등 교육은 남성의 전유물로 가꾸어져 소수 인종은 물론 여성과의 경쟁도 차단되었던 때다. 관리자, 교수, 입학 사정관이 거의 다 백인 남성이었다”.
이런 특권은 직업 세계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은행가, 변호사, 회계사, 공인중개사, 의사, 공무원…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BTB와 대부분 여성인 직원들 그리고 젊은 객원 편집자들이 《마드무아젤》 사무실에서, 그리고 바비즌의 복도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두 곳은 여성이 (물론 백인 중산층 여성에 국한되기는 했으나)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고, BTB처럼 지배할 수 있는 곳,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미모와 두뇌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재닛 버로웨이가 회상하듯 이때는 아무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던 때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의 엄격한 제약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장 존 디디언〉

각 세대마다 그 세대를 대표하는 커플이 있다고 재닛 버로웨이는 생각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있었고, 플래퍼 시대에는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1950년대 세대에게는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가 있었다. 실비아는 “여성운동이 시작되던 시기, 갇혀 있던 아내”였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멜로드라마틱하고 히스테리컬하다고 치부되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객원 편집자들은 다들 “뛰어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었고, 실비아처럼 대단해지기를 꿈꿨고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결혼, 남편, 아이를 위해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토록 신성시되던 삶의 궤적의 끝에 가서는 이혼, 우울증, 그리고 역시 실비아처럼 자살성 사고를 마주하게 되었다. 실비아의 그림자가 정말 길게 드리운 셈이었다. -〈8장 “이름이 없는 문제”〉

금주법과 대공황의 시기 :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일자리와 바비즌이라는 안전한 공간

19세기 말 자기 삶을 스스로 주도하는 ‘신여성’이라는 여성상이 등장한 이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장으로 떠난 남자들의 일터를 여성이 채우게 되었고,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의 수가 급증해 사무직 근무도 결혼 전 준비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른바 ‘플래퍼’라 불린 과격한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들과 시시덕거렸다. 일하는 여성은 독립적으로 살며 도시 생활과 소비,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 무렵 설계된 바비즌 호텔은 마케팅 관점에서 여성성에 독립이라는 개념을 결합했다. 바비즌은 구상 단계부터 예술적 성향이 있고 현대적인 여성이 선호할 만한 공간으로 의도되었고, 이름도 19세기 프랑스 예술운동인 바르비종파에서 딴 것이었다. 바비즌은 예술가, 배우, 음악가, 패션모델을 꿈꾸는 젊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체육관과 스쿼시 코트와 수영장, 시간 단위로 대여 가능한 음악 및 미술 스튜디오, 매달 최신 베스트셀러가 추가되는 도서실, 매달 열리는 연극, 콘서트, 강연과 명문 여대 클럽에 대해 홍보했다.
그러나 대공황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바비즌의 전략도 달라져 소박한 객실의 경제적 이점과 멋진 환경에서 사회적 네트워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제 일하는 여성은 ‘가장’인 남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져 비난받게 되었으므로,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당시 여자만의 일로 여겨지던 비서직과 예쁘게 보이는 것, 즉 모델 일이었다. 두 가지 모두 바비즌에 중요했다. 캐서린 깁스 비서학교는 애초에는 ‘고학력’ 젊은 여성을 위한 예비신부 학교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공황 시기 실제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아지면서 바비즌의 두 층을 통째로 기숙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방을 차지한 것이 파워스 에이전시 소속 모델들로, 파워스는 임대료가 조금 더 들더라도 미혼 모델들이 “품격과 보호를 제공하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바비즌은 흰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쓴 완벽한 복장의 깁스 걸들과 화려한 외모의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외부에 평판을 다지게 되었지만, 이들은 어려운 시기에 ‘여성의 일’로 할당된 직업 분야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투했다.

《마드무아젤》 객원 편집자 프로그램과 뉴욕이라는 마법 :
실비아 플라스와 존 디디언

바비즌 호텔에 최고로 유명세를 가져다준 인물은 단연 실비아 플라스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몇 주 전 가명으로 발표한 자전적 소설 《벨 자The Bell Jar》에서 ‘아마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여성 전용 호텔은 어느 모로 보나 바비즌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유명 잡지사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여름 한 달 동안 아마존에 머물며 뉴욕에서 인턴으로 일하는데, 실제로 실비아 플라스도 여성잡지 《마드무아젤》 객원 편집자로 선발되어 1953년 열아홉 살의 여름을 바비즌에서 보냈다. 당시 이미 다수의 수상 경력으로 문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의) 자살 시도를 함으로써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이 책은 먼저 《마드무아젤》 잡지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국의 뛰어난 여대생들을 열광하게 한 객원 편집자 프로그램의 의미를 짚어낸다. 그리고 개성 강한 편집장 벳시 탤벗 블랙웰을 비롯한 잡지사 내 주요 인물들 간의 갈등을 그려내는 한편,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해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양한 인물을 인터뷰하고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벨 자》의 텍스트와 대조하면서 그가 겪은 사건들과 체감했을 모순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당대 여성들이 겪은 욕망과 금지라는 이중 잣대가 드러난다. 반면 2년 후인 1955년 객원 편집자로 뉴욕을 찾은 존 디디언은 이곳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해당연도에는 재닛 버로웨이와 게일 그린 등 미래의 작가들이 여럿 참가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뉴욕에서의 시간에 큰 영향을 받았다.
객원 편집자들이 뉴욕에서 보낸 한 달은 최신 유행을 만들어내는 장소를 견학하고 파티를 즐기며 유명인사를 만나거나 로맨스를 이룰 기회이자, 최고의 인재들이 스스로를 평가하도록 뒤흔드는 시험대였다. 그 마법 같은 시기가 끝났을 때 그들은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무엇이 그렇게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다양한 인물 간의 우정과 갈등, 동경과 경쟁심이 얽힌 내밀한 심리 묘사는 그들이 스스럼없이 호텔 방문을 열어두고 지내던 푹푹 찌는 여름날로 독자들을 데려다놓는다.

외로운 여자들과 “이름이 없는 문제”에 시달리는 여자들,
그리고 여성운동의 아이러니

바비즌을 거쳐 간 수많은 유명인사의 명단 뒤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바비즌에서 배우, 무용수, 패션모델, 나이트클럽 가수, 재봉사, 견습 비서, 간호사, 사업가를 꿈꾼 사람들 모두 20세기가 미국 여성에게 부여한 가능성과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일부는 꿈을 이루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몇몇은 바비즌 호텔 자기 방에서 나이를 먹어갔다. 이 책은 바비즌에 머문 외로운 젊은 여자들과 잊힌 채 노인이 된 여자들에도 조명을 비추고, 잠재하던 편견과 성적 폭력,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무마된 숱한 자살도 다룬다. 물론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여성들에게도 삶은 순탄치 않았다.
플래퍼와 커리어우먼이 등장하고 20~30년이 지난 50년대에도 여성의 욕망은 여전히 금기시되었다. 피임약과 합법적 임신중절 방법이 없던 시대에 혼전 성관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여성의 야심 역시 결혼 전까지만 유효해서, 여성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일자리를 구해도 당연히 곧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하고 임신할 거라고 여겨졌다. 여성에게는 결혼이 최종 목표라는 낭만적 생각에 섹슈얼리티와 야망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더해지면서 퇴행이 일어나 1950년대 후반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20세로 떨어졌다. 성공한 모델이나 배우도, 고학력의 《마드무아젤》 객원 편집자들도 적당한 나이에 결혼했다. 야망을 접고 획일화된 교외에서의 삶에 들어선 이들의 회고는 베티 프리던이 1962년작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에서 주장한 “이름이 없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남편과 아이가 자신의 궁극적 이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우울과 신경증, 이혼과 자살성 사고를 마주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피임약이 발명되어 성혁명과 여성운동의 전기가 마련되며 실제로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바비즌은 여전히 뉴욕에 입성한 여성들이 새로운 삶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연착륙을 돕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바비즌이 1928년 처음 문을 연 이래 1960년대 중반의 전성기까지 이 호텔을 거쳐 간 여성은 35만 명이 넘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바비즌의 쇠퇴를 가져온 것이 바로 여성운동이었다. 여성운동이 여성을 격리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남자가 없는 환경에서 여성의 성장과 독립을 지원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과, 여성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성적으로 불평등한 현실로부터 차단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1972년 직장 내 평등이라는 압박 속에서 《마드무아젤》 객원 편집자 프로그램은 남성에게도 개방되었고, 바비즌 호텔 역시 수차례 매각과 리모델링을 통해 수익 논리를 따라 움직이다가 1981년 마침내 여성 전용을 포기했으며 2005년 이후에는 부호들이 사는 고풍스러운 콘도미니엄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바비즌이 통과해온 일련의 흐름은 여성이 야망을 드러내고 통제당하고 다시 추구해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여자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기만의 방에서 독립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야망을 추구하게 한 자유의 상징으로서 바비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남았다.

작가정보

Paulina Bren
뉴욕 배서 칼리지 교수로 그곳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친다. 첫 저서 《청과 상인과 그의 TV: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공산주의 문화The Greengrocer and His TV: The Culture of Communism after the 1968 Prague Spring》는 후기 공산주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2012년 유럽연구협의회 도서상과 오스트리아 연구협회 도서상을 수상하고 2011년 웨인 S. 부시니치 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그 외 논집 《벌거벗은 공산주의: 냉전 시기 동유럽의 소비Communism Unwrapped: Consumption in Cold War Eastern Europe》(공저)를 썼다. 구 체코슬로바키아태생으로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냈고 이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국제학을 공부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인문재단, 동유럽 유라시아 연구협의회, 미국 학술단체협의회, 풀브라이트-헤이즈 등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연구기금과 지원금을 받았으며 베를린, 부다페스트, 빈, 애틀랜타 등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현재 브롱크스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산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지은 책으로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가 있고, 앤솔러지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돌봄과 작업》이 있다. 옮긴 책으로 《클라라와 태양》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우먼월드》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해방자 신데렐라》 《날빛 마신 소녀》《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이 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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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바비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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