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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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5445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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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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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그림체로 삶의 순간을 소중한 한 조각으로 만드는 시선을 공유하는 김그래, 무명의 천을 사이에 두고 짧지만 깊은 단상을 담담한 문체로 전하는 쑥, 『탈코 일기』를 비롯해 여성의 현실적인 삶을 통쾌한 목소리를 그려내는 작가1, 일상에서 나누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따뜻한 의미를 발견해 그것을 연필 선으로 담아내는 펀자이씨(엄유진)까지. 네 명의 작가가 그림 밖으로 나와 풀어준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에는 그간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까지의 노력이 담겨 있다.
네 작가의 일상을 온(ON)과 오프(OFF)로 나누어 짧은 만화와 함께 수록했다. 일과 삶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아가는 네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 삶에서 ‘일’이 어떠한 존재인지 돌아보도록 한다. 네 사람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글과 그림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쑥: 무명의 천을 사이에 두고
ON
제법 미지근한 시작
이토록 충만한 만남
글과 그림을 찾아 뚜벅뚜벅
OFF
이름만 건강한 쑥의 야매 관리법
A∪B∪C∪D
걷고 달리고 읽고 눕는 인생
김그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ON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이라는 난제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OFF
무용한 취미를 가지는 일
요리왕으로 거듭나다
사랑의 이름은 복슬복슬한 털뭉치
펀자이씨: 연필 선을 따라 걷다
ON
빈 종이 앞에서
독자와 함께 춤을
고마움이 다니는 길
OFF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태양왕
빵은 빵이고 꿈은 꿈이지
지워질 잠깐의 흔적
작가1: 내가 인스타툰 작가라니
ON
빛나는 도화지를 찾아서
여기 다 그렇게 살아요
일상툰 속 엄마가 불러온 나비효과
OFF
나를 돌보기 위한 운동 연대기
나와 기린 사이에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나가며
그려낸 세계가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현실로 돌아올 때 구체적인 기쁨을 느낀다. 글과 그림은 대체로 모호하고 슬픈 마음일 때 지어지고 그려지지만, 이를 세상에 내비친 후 결이 비슷한 이들과 온기를 나누는 일은 온전히 기쁘다. 그들은 내가 이런 기억들로 오래오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글썽이는 눈빛, 다정한 응원, 뚝딱거려도 사랑스럽던 행동들. 그들에게 받아온, 꺼지지 않는 빛은 언제나 내 마음을 비추고 있다. 아마 평생을 비추겠지.
_39쪽
세상에는 많은 저주가 있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진다거나 왕자가 야수로 변한다는 등의 저 주. 내가 걸린 저주는 ‘취미를 업으로 만드는 저주’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디자이 너가 되어 창작과 닮은 듯하지만 사실 거리가 먼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취미를 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어야 할 때의 부담감은 엄청났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금손이 많다고? 아, 큰일 났다. 그러면 또 다시 자기 불신과 자기혐오의 굴레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이런 마음을 마주하면 처음 글과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던 이유를 잊지 않으며 쓰고 그릴 뿐이다.
_69~70쪽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돈 버는 자아와 작업자로서의 자아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일인 것 같다. 외주 작업 폴더에 비해 듬성듬성한 개인 작업 폴더를 볼 때면 돈 버는 일만큼이나 내 개인 작업을 하는 시간도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일을 오래 하려면 양질의 내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앞으로 나이가 드는 동안 변화한 것, 깨달은 것, 새로 느낀 감정이나 우연히 발견한 다정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화의 형태로 잘 기록하며 살고 싶다. 불안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기록하기를, 잊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해낼 수 있기를.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내게 기대어 만화를 열심히 그려보기로 하고 다시 펜을 쥔다.
_107~108쪽
실패한 인간관계 때문에 낙심했을 때도, 해야 할 마감이 산처럼 쌓여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도,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워지던 날에도 그 둘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개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개의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단일한지, 내가 구리고 지질하고 심지어 치사할 때도 개가 주는 사랑이 얼마나 변함없는지 말이다.
_146쪽
심란한 일은 각색과 연출의 힘을 빌려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수 있었고, 사소한 일을 서로 다른 몇 가지 사건과 연결하는 것으로 특별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공감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고, 나 자신이 실제의 나보다 재미있고 씩씩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 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해도 이야기는 내가 끌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 삶의 장르가 시트콤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거나 힘든 일도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재료로 여겨졌다. 현실에서는 마무리되지 않은 일도 이야기로 만들면 결말을 지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틈틈이 이야기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은 소소하지만 매일 찾아오는 확실한 즐거움이었다.
159~160쪽
결혼 후 십이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파콘은 한국 중소기업 ‘파 과장’을 거쳐 버젓한 엔 지니어가 되었다. 잠시 꿈을 접고 파콘의 매니저 역할과 육아에 집중하던 나는, 꿈을 접었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짬짬이 이어가던 그림 놀이를 통해 꿈을 이루었다. 우리 사이에 태어난 걸 스스로 뿌듯해하는 귀여운 딸아이도 자라고 있다.
어떻게든 굴러가면 이야기는 계속된다. 십이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젊은 파콘과 유진에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좀 더 즐겨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이야말로 우리의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_200~201쪽
엄마가 자신이 등장하는 인스타툰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생각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독자들의 댓글을 모두 훑어본 엄마가 정말 그 툰에 나오는 호랭이 엄마처럼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엄마는 전보다 말을 신중히 골라서 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편견 어린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중년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배움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주변 지인들을 배움의 세계로 이끌었다. 엄마의 주변은 어느새 배우는 중년들로 북적거렸고,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엄마는 더 높고 멋진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_259~260쪽
예술인은 가난하다. 이 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말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상업 미술을 하니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선입견 밖으로 훌쩍 뛰어나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팔이피플이라 말하겠지만, 인스타툰 작가가 돈을 벌려면 광고밖에는 답이 없으므로, 나는 뛰어나가길 선택했다.
_288쪽
글과 그림으로 삶과 세상을 잇는 인스타툰의 세계
그림 밖으로 나온 네 작가의 만남
여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네 사람이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이제는 엄연히 그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세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유쾌하게 혹은 담담하게 담아내는 인스타툰 작가 김그래, 쑥, 작가1, 펀자이씨가 만났다.
인스타툰은 ‘인스타그램(Instagram)’과 ‘웹툰(Webtoon)’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열 장 내외의 만화를 일컫는다. 인스타툰은 쉬운 접근 방식, 짧은 분량, 친근하고 일상적인 주제로 웹툰이나 만화책만큼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은 정사각형 크기의 그림을 옆으로 넘기며 어느 날은 깔깔 웃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작가와 자신의 내면을 들여보다가 깊은 위로를 얻기도 한다.
네모난 프레임에서 캐릭터의 입을 빌려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 공감과 토닥임을 선물하는 세계. 그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일상이 장르』는 인스타툰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이 만나 자신이 인스타툰이라는 무대를 어떻게 채워나가는지, 그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각기 다른 그림 스타일과 문체를 가진 네 명의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담은 수많은 이야기는 그들이 그간 보여준 인스타툰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 특별하다.
도망치듯 떠난 일본에서 올리기 시작한 짧은 만화 일기를 시작으로 그림 그리는 일이 업이 되었다는 김그래, 퇴사 후 멍하니 누워 있다가 그림 에세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어서 인스타툰 작가가 되었다는 쑥,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부당한 일을 당한 후 홧김에 올렸던 만화가 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여성을 위한 그림을 그려왔다는 작가1,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인스타그램에 연필로 그린 그림을 올리기 시작하며 제2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펀자이씨까지. 네 사람은 스스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경로를 밟아 인스타툰의 세계에 정착했다. 그리고 각자의 캐릭터, ‘그래’ ‘무명’ ‘기린’ ‘펀자이씨’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1,634. 318. 522. 934. 이 숫자들은 네 사람이 각각 세상에 내보인 그들의 글과 그림 개수이다(출간일 기준). 팔로워 0, 게시물 0으로 시작해 홀로 자신의 창작물을 보았던 그들은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차곡차곡 삶 속 장면들을 펼쳐내고 있다.
“그림 뒤에 사람 있어요!”
작업자와 생활자 사이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살고 싶은 마음 사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서
네 작가는 『일상의 장르』에서 그림 뒤에 숨겨져 있던, 자신이 거쳐온 다양한 삶의 층위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만든 캐릭터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풀어놓고, 독자들과의 소통과 만남으로 힘을 얻어 인스타툰 연재로 긍정적으로 변한 삶을 회고하기도 한다. 한편, 인스타툰의 수익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수용하는 일과 낯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헤맸던 시행착오도 솔직하게 담았다. 주로 일상을 다루는 작가로서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현실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에 영감을 받을까. 선명한 행복의 순간이나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록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일상 속에 어느 정도의 난관이 있었을 때 오히려 열심히 쓰고 그렸던 것 같다.”(펀자이씨)라거나, 만화를 그리는 일이 “어려운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이자 불안을 해소하는 수단이 되었다.”(김그래)라고 고백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쓰고 그리는 일이 그들에게 그저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글과 그림이 곧 삶인 이들에게는 인생의 순간들을 잘 보내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몸과 마음은 챙기지 않으면 금세 부서진다”(쑥)는 말처럼, 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일하고 또 삶을 영위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굽어가는 허리를 펴고 잃어가는 사회성을 되찾기 위해 피티(퍼스널 트레이닝)를 등록하고, 나만을 위해 요리하며 정성껏 한 끼를 챙긴다. 신나는 2010년대 노래를 들으며 간헐적으로 달리고,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내밀하게 기록하며 웃는 것으로 시름을 잊는다.
일상툰, 넓게는 인스타툰 작가들에게 일과 일상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일과 일상이 섞여버린 지 오래된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일과 삶 사이 균형 잡는 법의 실마리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로맨틱 코미디, 내일은 청춘 성장물
지금 당신의 장르는 무엇인가요?
“내 삶의 장르가 시트콤이라 생각하면 두렵거나 힘든 일도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재료로 여겨졌다. 현실에서는 마무리되지 않은 일도 이야기로 만들면 결말을 지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펀자이씨)
만학도 엄마가 대학교에 간 이야기, 자신만 믿고 한국에 온 태국인 배우자와의 우당탕 국제결혼기, 강아지 두 마리와 서서히 가까워지는 관계의 서사, 영감을 찾아 계속 걷고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는 여정 등. 네 사람이 삶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위해 직접 그린 미공개 만화와 함께 담았다.
네 작가는 일상 속 순간을 포착하고, 그림을 그리며, 독자에게 사랑받고,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 속 기쁨을 만끽하고 슬픔도 극복했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지극히 일상 속 한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일상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순간, 그 조각들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이야기의 장르는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다. 네 작가가 보여준 삶 속 장면들을 통해 자연스레 내 삶에서 기록하고픈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를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이야기를 발견하는 데 이 책은 기꺼이 느슨하고 다정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쑥
허름한 마음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를 가진 창작자가 되고 싶다. 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술과 함께 있는다.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등을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ssuk_essay_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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