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창
2024년 09월 27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5.55MB)
- ISBN 979116747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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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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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휴학하고, 중학교 수학도 못 가르치는 머저리다…
티브이에서 부조리를 보면 망상으로 응징하고…
염병. 난 김창이다.’
- p251
倡(광대 창)
김창은 대학생이고, 아무개 남자이다.
심신에 장애는 없다. 가족 또한 온전하다. 악몽이라고 할 기억도 없다.
살아오며 세상을 원망할 정도의 불행은 없었다.
그런데도 김창은 자신을 미워한다. 감정 기복에 따라오는 이상한 증상 때문이다.
명치의 신호가 시작되면 김창은 원망할 것을 찾는다.
이런 ‘기분’으로 태어난 자신을 상대할수록 지친다.
동갑의 이성 친구 유연이 해결책이 된다.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본능은 적신호를 울리지만,
김창은 ‘기분’을 처리하기 위해 외면한다.
광대가 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도 유연의 당근과 채찍에 따라 재주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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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김창이다.
세상 모든 걸 가진 것처럼 기쁘다고 한다. 나는 항상 그 이후에 살았다. 시계추는 기쁨을 스친 후 때론 괴로움으로, 때론 무감각으로 향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보아, 다른 경로는 없는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나 여기 살까?”
그러던가, 라고 대답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어제였다면 내가 거절했을 테고, 내일이라면 아마 유연이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어려운 질문부터 해결하기 위해 나는 입학 당시를 떠올려야 했다. 꽤 중요한 기억이고, 나름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필름에 많은 기억이 고여 있었다.
돌이켜보던 중,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동아리 선배가 떠올랐다. 중요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저 발단 축에는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선배다.
유연이가 내 옷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회상이 멈췄다.
“무슨 생각해?”
이러지 않았으면 했다. 곧 시계추가 움직일 것 같았다.
- ‘#1’ 중에서
난 첫 문항을 듣자마자 즉답했다. 그리고 이건 구글에 ‘우울증 증상’을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허술한 검사라는 걸 알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문항까지 생각났다. 내가 반대로 질문을 말하고 자문자답하자 영무는 핸드폰 화면을 가렸다.
“안 보여. 이미 해 봐서 아는 거야.”
저 검사 말고 다른 걸 찾아도 마찬가지일 테다. 이미 여러 번 해 본 것이었다. 무료 진단을 빙자한 방문자 수 늘리기나 광고라는 걸 알지만, 어느 날 그냥 해봤다. 결과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검사’와 ‘진단’, 이 두 단어 자체에 어떤 효과가 있어 보였다. 이유를 짚고 개선해줄 것 같았다. 빈 수레도 요란하게 흔들어 볼 수 있고, 당첨 확률을 알면서도 로또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무의미한 걸 알지만, 의지할 대상의 유무는 확연히 달랐다.
- ‘#2’ 중에서
집으로 가 짐을 챙겼다. 명치가 다시 아팠지만 이번에는 아프다가 말았다. 호흡도 가빠지려다가 멀쩡해졌다. 더 짜증 났다. 차라리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끔 아팠으면 했다. 그러고 나면 회복되었다는 안도감으로 잠시나마 진정할 수 있었다.
- ‘#4’ 중에서
난 원래 이렇다. 나도 지금 당장 영무의 집으로 가 드러눕고 싶었다. 민정이가 슬슬 술판에 시동 거는 걸 구경하고, 곧 올 영무에게 문자로 장난치고 싶었다. 신발장에 식용유를 칠해 둘까, 현관문에 걸쇠를 걸어두고 문틈으로 영무에게 통행료를 요구할까. 의미 없이 시작해 실속 없이 마무리될 놀이를 하며 생각을 놓고 싶었다. 더구나 오늘은 영무가 중간에 자리를 비켜준다고 하니, 고삐 풀 때까지 놀아버린 후 민정이와 단둘이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문제는 내일이었다. 또는 잠이 들기 직전일 것이다.
영화는 끝날 것이다. 웃음이 잦아들고 불이 꺼진다. 말소리에 묻혔던 잡음이 들린다. 머릿속이 파랗게 타오를 것이다.
‘#6’ 중에서
할머니 집에서 며칠 묵으며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정리했다. 자살 위험자로 분류되어 매일 저녁 할머니와 면담했다. 아마 세뇌당했다고 봐야 할 테다.
“걔네가 팔 한쪽이 잘린 거라면, 넌 달린 건 멀쩡해도 양팔에 힘줄이 없이 태어난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유연이나 해용이, 네가 본 백희라는 그 꼬마는 원망할 대상이 명확하잖아. 멀쩡히 살아가던 자신을 망가뜨린 대상이 있고, 이것을 부수려 하거나, 때론 용서할 마음도 잠깐 들 수 있어.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 근데 너는 그 대상이 세상 아니냐? 그게 잘 되긴 해?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은데.”
명치 통증과 과호흡을 말하는 건가.
‘#8’ 중에서
“아니. 할머니는 아직 섬에 계셔. 거기서 안 나와.”
“거기서 자살하셨어?”
저 단어. 나는 저 단어가 두려웠다. 왜 자꾸 입에 올리는지. 사람을 셋이나 죽여버린 나에게도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말인데, 유연이는 어떻게 저렇게 덤덤하게 입에 올리는지.
“아니야. 절대 안 그러셔.”
“영무는 자살했고?”
“안 했다니까!”
나름대로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시끌벅적한 술집이다 보니 옆자리 손님이 흘겨봤을 뿐이다. 만취한 내가 술주정을 부린다고 생각할 테다.
“그렇구나. 알겠어. 자꾸 물어봐서 미안. 이제 안 물어볼게.”
‘#15’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원희경
대학 시절 소설에 관심을 가지며 학교 도서관에 있는 다양한 소설책을 읽었다. 언제나 직접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간간이 쓴 탓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없었다.
현재, 이야기를 완성하겠다는 고집으로 글쓰기 노동을 자처한다.
<광대 창>은 독백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자세히 드러낸다. 우울증을 의심받으면서도 태연히 멀쩡한 척하지만, 곯은 마음은 혼잣말에 여실히 담긴다. 주변인에게 줄곧 쌀쌀맞은 태도로 대하면서도 온정을 기대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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