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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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모래 사나이
이그나츠 데너
G시의 예수회 교회
상투스
제2권
적막한 집
장자 상속
서원
돌 심장
주
해설: 인간의 오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광기의 세계
판본 소개
E. T. A. 호프만 연보
모래 사나이는 사악한 남자란다. 아이들이 잠자러 가기 싫어하면 다가와 모래를 한 줌 눈에 뿌리는 거야, 그러면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머리에서 튀어나온단다. 그러면 그것을 자루에 주워 담아, 자기 새끼들에게 먹이려고 반달 나라로 가져가지. 둥지에 앉아 있던 새끼들은 올빼미처럼 구부러진 부리로 버릇없는 어린애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
- 본문 12~13쪽
자연은 평소에는 그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었으나, 이제는 자연 전체가 그에게 위협적인 괴물이 되었다. 자연의 목소리는 평소에는 저녁 바람의 속삭임, 찰랑거리는 시냇물 소리, 덤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달콤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이제는 그에게 몰락과 파멸을 알렸다.
- 본문 184쪽
우리는 곧 끝날 거야. 대담하게 환영을 보는 자가 어두운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는 법. 자네에게 반복해 말하지만, 비밀 가득한 힘이 나에게 베일 뒤를 보게 했어. 임박한, 어쩌면 끔찍한 죽음이 내게 예고된 거야.
- 본문 480~481쪽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차이콥스키를 비롯한
근현대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호프만의 걸작
E. T. A. 호프만은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같은 문인들뿐만 아니라 로베르트 슈만을 비롯한 음악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작가로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그는 괴테나 실러 같은 고전주의자들과 달리 이성의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상상력, 꿈과 환상의 세계를 탁월한 문체로 표현했다. 당시 유럽의 낭만주의 작가들은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호프만은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이 활동하던 독일을 넘어 전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에서는 호프만을 환상과 그로테스크의 대가로 여겼으며, 러시아에서는 그의 심리 묘사 기법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작품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인형」을 바탕으로 차이콥스키가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한 것은 당시 호프만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밤 풍경』은 호프만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원래는 같은 제목으로 2권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1816년에 출간된 첫 책에는 호프만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인 「모래 사나이」를 비롯해 「이그나츠 데너」, 「G시의 예수회 교회」, 「상투스」까지 총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듬해인 1817년 봄에 출간된 두 번째 책에서는 다층적인 세계관을 보여 주는 걸작 「적막한 집」 외에 「장자 상속」, 「서원」, 「돌 심장」까지 역시 첫 책과 같은 네 편이 실려 있다. 그간 국내에는 호프만의 대표작인 「모래 사나이」를 포함해 여러 중단편이 역자의 임의대로 묶여 선집 형태로만 출간되었다. 생전에 작가가 정리한 원서 그대로 『밤 풍경』 전편을 번역해서 수록한 것은 본서가 유일하다.
이 책의 제목인 ‘밤 풍경’은 호프만의 문학 세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핵심 키워드다. 그의 작품에서 밤 풍경의 의미는 배경, 소재, 서술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현된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으로서의 ‘어둠’에 주목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밤의 영역’에 속하는 소재들이 있다. 강도 패거리, 살인과 다른 범죄들, 우연하고 무서운 사고들, 운명적 사건, 복수 행위 등 공포 소설의 요소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이런 끔찍한 사건들의 배후로서 인간을 위협하며 정신적·심리적으로 파멸시키는 ‘어두운 힘’, 즉 이성의 힘으로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통찰되지 않는 영역도 묘사된다. 소설 속에서 인물은 그러한 힘들과의 대결에서 위협당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명명한 ‘섬뜩한 것’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밤 풍경』의 이야기들에서는 기이한 현상들이 자연 과학, 심리학, 의학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작가나 서술자는 어떤 분명한 해명의 단서도 제시하지 않아 불안감이 증폭된다.
이러한 그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환상적인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본성과 오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꿈틀대던 19세기의 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과 환상소설의 대가 호프만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신비한 중ㆍ단편
『밤 풍경』에서 첫 번째로 실린 작품인 「모래 사나이」는 해당 작품집을 통해 작가가 보이고자 했던 문학 세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소설로 평가받는다. 「모래 사나이」는 편지로 시작되는 다소 특이한 구성을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여러 시점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다시점(多視點)’이 이뤄진다. 이것은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눈’과도 연계되는 설정인데, 작품 속에서 유모 할멈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래 사나이는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모래를 뿌려 피투성이가 된 눈을 앗아 가는 인물이다.
모래 사나이에 관한 동화, 아버지와 의문투성이 남자인 코펠리우스의 비밀스러운 실험, 소설에 등장하는 안경과 망원경 같은 소도구도 모두 ‘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래 사나이」에서 주인공인 나타나엘은 끊임없이 모래 사나이에게 눈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안구 상실의 공포를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서 ‘거세 콤플렉스’로 설명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모래 사나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로서 호프만의 다층적인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밤 풍경』의 두 번째 책 가운데 첫 작품에 해당하는 「적막한 집」은 여러모로 「모래 사나이」와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상상력의 재능을 타고난 인간(시인)에게 하나의 고정 관념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전개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탈리아 상인에게 구매한 시각 기구(망원경, 거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그것을 통해 여자의 형체를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게 된다. 「모래 사나이」의 나타나엘뿐만 아니라 「적막한 집」의 주인공인 테오도어도 여자의 생기 있는 두 눈에 매혹당해 이성을 잃고 빠져든다. 시각적인 도구가 결국 환상을 일으키는 장치가 되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매력에 빠져들어 이성을 잃고 광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반면 두 작품의 결말은 사뭇 다른 것도 흥미롭다. 「모래 사나이」의 나타나엘은 광기에 내몰려 파멸하는 데 비해, 「적막한 집」의 테오도어는 치유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인물이 지닌 성격과 능력에서 기인한다. 테오도어는 나타나엘과 달리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부합하지 않은 제삼자의 해석을 수용함으로써 구원받게 된다.
이 외에도 『밤 풍경』에는 후기 낭만주의의 한 갈래로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공포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여러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세기 예술계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인 거장 호프만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중단편집은 독자들에게 유럽 낭만주의의 환상적이고 신비한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작가정보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옙스키, 보들레르, 발자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호프만은 1776년 1월 24일 발트해 동남부 연안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두 살 되던 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는 큰아들을 데리고 인스터부르크로 떠났고, 어머니는 막내 호프만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 살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알 기회가 없었을뿐더러, 큰형과도 거의 교류를 갖지 못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문학 작품 곳곳에 반영되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가문의 전통에 따라 쾨니히스베르크 법과 대학에 들어갔으나 법학보다는 예술에 관심이 많아 음악, 문학, 미술에 몰두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795년 사법 시험을 통과한 후 쾨니히스베르크, 글로가우, 베를린을 거쳐 폴란드 지방에서 법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1806년 나폴레옹의 프로이센 침공 후 법관직을 잃고 밤베르크와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의 교회와 극장을 옮겨 다니며 음악단장, 연출가, 극작가, 무대 화가로 일했으며 생계를 위해 개인 지도까지 했다. 1814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오페라 「운디네」가 대성공을 거두고, 첫 작품집 『칼로풍의 환상집』으로 ‘천재 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다. 낮에는 법원의 판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창작에 몰두했는데, 이 시기에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푸케, 브렌타노 등 당대 낭만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세라피온의 밤’이라는 문학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822년 심각한 병을 얻어 전신 마비 상태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을 구술하며 집필 작업을 이어 가던 중 목까지 마비 증세가 왔고, 결국 6월 25일 타계했다. 주요 작품으로 『밤 풍경』, 『악마의 묘약』,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브람빌라 공주』, 『벼룩 대왕』, 『칼로풍의 환상집』, 『세라피온의 형제들』 등이 있고,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기악곡, 성악곡, 오페라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하고, 쾰른대학교에서 프란츠 카프카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다섯 번째 여자』, 『모래 사나이』, 『카프카 단편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소송』, 『성』,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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