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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김아인 지음
허블

2024년 09월 1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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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4.56MB)
ISBN 979119307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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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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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뿌려진 슬픔들을 원사 삼아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정교하게 직조해 낸 동아시아 SF.”

「스파이라」가 올해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으로 허블에서 출간되었다. 천선란, 청예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며 또렷한 성취를 일구고 있는 작가를 탄생시킨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이 올해 일곱 번째를 맞아 김아인이라는 걸출한 신인 소설가를 냈다. “‘장편감’에 걸맞은 중량감”(김성중 소설가) “추리 구도를 만들고 낭만적인 서사를 엮어”낸 “완성도 높은 장편소설”(인아영 문학평론가)이라는 찬사를 받은 「스파이라」의 배경은 에피네프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휩쓴 근미래다. 인간이 죽은 후에도 정신은 전산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소설은 이러한 의문과 설정에서 시작해 팬데믹 상황의 디스토피아이면서도, 기술이 발달하여 제2의 가상 인생 서비스가 제공되는 세계상을 그린다.
소설은 그 정신 전산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AE라는 거대 기업을 둘러싼 인물들의 첨예한 입장 차와 대립을 다룬다. ‘디스토피아 상황에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과연 유토피아일까?’라는 질문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그러면서도 추리 스릴러와 로맨스 서정을 정교하게 가미한 게 이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AE의 배후를 파헤쳐나가면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파이라’의 실체에 다가가기까지, 작품은 놀랍도록 세밀한 짜임새와 숨 막히는 몰입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아울러, 작가는 펜데믹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로맨스, 오묘한 불안감, 과거 일상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섬세하고 먹먹한 필치로 그려내며, 아름답고도 유려한 웰메이드 SF 세계를 창조해냈다.
스파이라 007
작가노트 208
심사평 211

알고 있던 것과 알지 못하는 것, 대비해 오던 것과 조금도 대비하지 못한 것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뒤섞이는 그 혼란 속에서 우린 이후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거기에 적응해 내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될지 조금도 몰랐다.
_9쪽

“생각해 봐. 통 속에 뇌만 덩그러니 담긴 채로 한 기업이 독점하는 가짜 천국 같은 곳에 목숨을 의탁하는 거잖아. 조금 추하지 않아? 그런 내세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삶을 반쯤 내던지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가끔 AE가 세상을 더 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_17쪽

무언가를 검증하고 증명하기엔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꾸준히 갱신되는 통계와 지표조차 그 변화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엽적이고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인구의 격감. 수차의 인플레이션. 표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우연적 요소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_35쪽

나 혼자만 느끼는 듯한 그 계절감도, 조부모의 고국이라 해도 홍콩이란 곳은 내겐 그저 생소한 땅일 뿐이란 걸 실감하는 순간들도 낯설었다. 그 기억들은 좋다고 하기에는 차고 건조했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형형하고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생활과 삶의 한 층계들. 에피네프와 AE가 없었던 세상이 대개 그리 기억되는 것처럼.
_72쪽

아주 먼 우주에서 부유하며 지구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본 지구는 작고 따스하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행성처럼 느껴져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_73쪽

우리는 머리 위에 펼쳐진 나선의 공간을 바라봤다. 그건 마치 기계화된 콜로세움 같기도, 푸른 타일로 쌓아 올린 개미귀신 구덩이 같기도 했다. 잠시 후 나는 그게 거대한 나선계단 형태의 컨베이어 벨트와 그 위에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수천 대의 냉각 캡슐이라는 걸 깨달았다.
_80~81쪽

“신이에요.”
“신….”
하라바야시 가스미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언어를 발음하듯 웅얼거렸다.
_99쪽

“약속한 거다? 세상이 끝장나도 가는 거야.”
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하려다가 불현듯 마음이 먹먹 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결국 그 보육원에 가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은 1월. 우리는 뉴스에서 처음으로 에피네프라는 이름을 들었다. 세상이 끝장나진 않았지만, 페이와 내가 두 번 다시 싱가포르에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_127쪽

“스파이라.”
“spiralis, speira, spirale, espiral 같은 식으로 고대 유럽 언어들에서 파생된 어휘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형태소죠. ‘나선’이라는 뜻이에요. 뾰족한 줄기 혹은 첨탑이라는 의미도 갖고요.”
_178쪽

첨탑. 그 순간 내 머리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는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바벨탑이었다. 언어중추를 거치지 않은 대화. 분화된 언어들과 인간들 사이의 재결합. 서로 다른 언어를 갖게 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구약이 묘사하는 세계의 시작이었다면, 반대로 되돌아 모이는 건 세계의 끝을 의미할까.
_178쪽

“웨이쉬안. AE가 주는 희망은 잘못된 거야. 로밍셀이 있다고 해도 AE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_204쪽

“나는 왜 그렇게 늘 불안했을까? 계속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오빠가 나가고 혼자가 돼서? 세상이랑 사람이 무서워서? 에피네프에 죽을까 봐? 아니면 그냥 어리고 젊을 땐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내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하자, 페이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한 번 죽어보니까, 인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상태로 찬찬히 돌아보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 나는 앞날만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했던 거야. 앞으로 올 날들이 지금보다 나을 거라 생각해서.”
_205쪽

전염병이 창궐한 디스토피아,
기술 발달로 이후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불안 속에서 대치하고 마주하고 흔들리는 사람들

디스토피아 속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유토피아일까?

“4억 9572만 5423명의 고객님들이 제2의 삶을….” _24쪽

전염병이 창궐한 세계, 인류의 절반이 죽고 남은 후 5억 명가량의 사람들은 AE라는 기업이자 공간 혹은 서버에 입주해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정신 전산화 기술이 개발되어 인간의 기억과 인격이 데이터화될 수 있었던 것. ‘나’인 웨이쉬안은 AE에서 고객의 뇌와 척수를 들어내고 남은 신체인 ‘반송체’를 폐기하는 업무를 한다. 정신이 서버에 연결되려면 수많은 유선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므로 뇌와 척수를 적출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다양한 인종이 언어권별로 무리 이뤄 다니는”(25쪽)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인 AE. 이를 둘러싼 흥미로운 인물들은 서사의 중축이다. 각기 저마다 매력적이고 개성 강한 인물들은 죽음 이후의 새 삶에 대한 저마다의 입장 차를 여실히 드러내며, 실행하고 협력하고 대치하면서 갈등은 확산되기 때문이다.
하라바야시 가스미는 뇌과학 연구원으로 AE의 실질적인 브레인이다. 정신 전산화 기술은 근시안적인 “도피의 길”(68쪽)이라고 비판하면서도, AE가 독점한 기술을 활용해 펜데믹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해서는 다소 온건하고 유보적인 입장이다. 반면, 페이는 그 대척점에 있다.

“하지만 수명이 다할 때쯤에는 AE가 주는 가짜 영생을 다시 바라게 될 거야. 현재 삶을 덜 진지하게 바라볼 테고. 그런 게 희망이라면 없는 게 나아.” _206쪽

페이에게 AE의 서비스는 가짜 천국 같은 곳에 목숨을 의탁하는 일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현실의 삶을 덜 충실하게 살아간다고, AE가 세상을 더 망치고 있다고 페이는 생각하며 비밀스러운 일을 실행에 옮긴다. 한편, 황 신부 세력은 AE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과격한 집단을 대변하며 물리적 폭력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한 기업이 만든 인공적인 천국과 영생은 종교와 배치될 수밖에 없”(89쪽)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AE의 초기 개발자 중 한 명의 인격 데이터인 ‘신’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디스토피아 상황에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과연 유토피아일까? 이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과 대립은 어떻게 어디까지 이어질까? 「스파이라」가 구축해 놓은 짜임새 있는 전개와 기막히고 신선한 결말에 독자는 소설 읽기의 생생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추리 스릴러와 로맨스 서정이 만난 정교한 SF

“그 기억들은 좋다고 하기에는 차고 건조했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형형하고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이 SF소설의 독특한 요소는 추리 스릴러와 로맨스 서정을 조화롭고도 정교하게 가미했다는 점일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이 긴장감 있게 전개”(김희선 소설가)된다는 평과 “흩뿌려진 슬픔들을 원사 삼”(강지희 문학평론가)는 “낭만적인 서사”(인아영 문학평론가)라는 수식이 동시에 붙을 수 있는 이유이다.

“아니, 원해서 온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러 왔다고 해야겠네요.”
“원해서 온 게 아니라면… 끌려온 건가요? 가족분들에게?”
“아뇨. AE에게요.”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_56쪽

「스파이라」는 AE에 입주하는 일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제적인 경우가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서사를 꾸려나간다. 업무하는 도중 웨이쉬안은 그의 연인이었던 페이의 반송체를 발견한다. 너무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건 페이가 정신 전산화 기술을 한사코 거부해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괴이한 영상이 하나 도착한다. “새빨간 입자. 꿈틀거리는 땅. 마지막의 비명 소리.”(61쪽) 소설은 세계를 잠식하다시피 한 AE라는 거대 기업의 배후를 파헤쳐나가는 구조를 띠며 종국에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파이라’의 실체를 향해 다가가는데, 치밀한 구성과 뛰어난 완성도 덕에 훌륭한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읽는 기쁨 역시 선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릴러적 요소도 두드러진다. AE에 강제 입주되었다고 의심되는 또 다른 인물인 유즈키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보관소’와 황 신부 세력의 근거지인 ‘기도원’, 황 신부 세력과 극렬히 대치하는 공간인 ‘호텔 로비’ 등 로케이션을 옮겨 가며, 추적하고 찾아내고 도착하여 대치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돌아오는, 다시 붙잡히고 도망치는 일련의 흥미로운 서스펜스적 상황과 일촉즉발의 숨 막히는 전개는 소설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 기억들은 좋다고 하기에는 차고 건조했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형형하고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_72쪽

그럼에도 「스파이라」는 시종일관 노스탤지어가 풍기는 어떤 낭만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웨이쉬안과 페이, 그리고 하라바야시 가스미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잃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강지희 문학평론가)를 읽어내며 어렴풋한 감정의 뒤척임을 감각할 수도,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적실하게 잘 형상화된 불안을 체감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것은 전염병에 휩싸이기 전 일상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그러니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생활과 삶의 한 층계들”(72쪽). 소설은 “아주 먼 우주에서 부유하며 지구를 내려다보는 기분”(73쪽)으로 현재보다 온전했던 세계의 과거를 서술한다. 여기에는 어떤 먹먹한 서정이 자리하는데, 웨이쉬안과 페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홍콩에서의 장면들을 묘사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그러하다. 세계가 파탄 나기 전, 그때는 모르고 누렸던 평온한 세계를 충분히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그 세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넌지시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스파이라」는 지금의 우리에게 주요한 메시지를 환기한다. 짜임새와 흡입력뿐 아니라 서정적이고 아련한 누아르와 로맨스의 감각…. 「스파이라」 우리가 읽고 느낄 만한 거리로 가득하다. 아름답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이 동아시아 SF를, 김아인의 첫 소설 세계를 독자에게 건넨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아인

1997년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열한 지역을 떠돌며 열두 군데의 학교에 다녔고, 열여섯 곳의 집에서 살았다. 그러고도 늘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 낯선 사람들을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

작가의 말

『스파이라Spira』는 그런 오묘한 불안을 담아내고 싶어 쓴 소설입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에피네프지만, 실상 그들의 삶과 가치관의 근원을 뒤흔드는 건 AE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입니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인류가 진보해 가는 방향이 옳은지 알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초조함. 거기에 이전까지는 생활의 편의를 위해 존재했던 기술이 이제는 개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시기에 이르렀기에, 그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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