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기전
2024년 09월 0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1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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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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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김 여사 해탈기
실사구시 김 여사
선빵의 맛
나의 최숙자 선생님
잠자는 미녀의 반란
밀양 박씨와 김해 김씨
엄마의 일본 이름 고봉광자
고봉광자 씨의 수사 본능
하느님의 황금 배낭
김 여사 해탈기
슬기로운 언어생활
내 뒤엔 지구대가 있었다
B군의 고군분투 성장기
어머니, 저승에선 뻥 치지 마세요
엄마의 노란 빨랫줄
용접공 시어머니
2장 세상의 밥 한 공기
미오기의 화려한 변신
핸드백 속 소주잔
타인의 흔적 1 - 귀신 붙은 책
음악은 어디로 가는가
오래된 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타인의 흔적 2 - 오! 나의 귀신님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더냐
내 기억 속의 조폭 남친
‘3인칭’의 첫사랑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번 또라이는 늙어도 또라이
타인의 흔적 3 - 검은 집
서부역을 함께 걷던 그녀
세상의 밥 한 공기
내가 두고 온 판타지
인생극장 5부작 - 위대한 면서기
나의 친할머니 조쪼깐 씨
여자가 아닌 며느리
나의 외할머니 강또귀딸 씨
쪼깐 씨와 또귀딸 씨의 ‘탐색전’
면서기의 주술
3장 마이너들의 합창
돗자리를 든 김 여사
즐거운 악착보살
현란한 기도 생활
공주미용실의 치정 난투극
마이너들의 합창
타짜 김 마담의 탄생
그분이 오셨다
한겨울의 명화 모작실
명랑한 저녁
조작된 태몽
김치찜과 말러 교향곡
눈물의 웨딩드레스
고독한 영혼의 시끄러운 기일
봉황 튀김
동네 호구의 기억력
4장 소멸의 아름다움
독학형 인간의 스승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
공존의 그늘 아래
현충원에서 읊는 「제망매가」
그대와 함께 ‘고야 풍으로’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법
윌로우 패턴 접시에 담긴 전설
기묘한 낙관주의자의 죽음
춘천은 기가 세다
프리다 칼로의 침대
왼손이 알게 하라
소멸의 아름다움
분개한 엄마는 딸자식을 잉여 자식으로 분류했고 그 불똥이 내게 떨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과서 대금을 주지 않더니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돈을 벌어오라는 거였다. 엄마는 내 손을 끌고 제과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서 양녀로 입양하겠다고, 저 아이를 내가 키우겠다고 엄마와 드잡이를 했다. 공사판에서 자갈을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던 억센 엄마와 50년을 노처녀로 살아온 고집 센 선생님의 한판 대결에 동네가 시끄러웠다.
- 23쪽
그러니까 어릴 적 나의 독서는 하느님의 ‘황금 배낭’ 같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돌이 든 배낭을 공평하게 나눠주는데 끝까지 들고 간 사람은 배낭 속의 돌이 황금이 되어 있더라, 뭐 그런 식.
성장하면서 나름 체계적인 독서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한 작가에게 흥미가 생기면 그가 쓴 책을 다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상당히 유효해서, 지문만 보아도 누구의 문체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왜 이 무렵 이런 작품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43쪽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을 본 후로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시장통에서 술 취한 아버지를 찾아 비틀거리며 집에 오는데 친구들과 있는 오빠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날로 나도 오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동네에서 나는 ‘주정뱅이 김 씨의 딸’로 불렸다.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병명도 쓰러지고 나서야 알았다. 술은 아버지에게 진통제였다.
-84쪽
내가 당당하게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비겁한 나는 부자 친구가 사주는 밥은 주눅 든 얼굴로 얻어먹었다. 왜 가난한 자가 주는 밥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얻어먹었을까? 몇 배로 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나는 돌려주지 못했다. 앞만 보는 직진형인 내게는 돌아볼 얼굴이 없었다. 이제 고개 돌려도 그녀는 없다. 동네 친구였던 그녀는 동네처럼 사라졌다.
- 122~123쪽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사흘을 앓았다. 사흘째 되던 날 문이 열리더니 밥상이 들어왔다. 매일 그 나쁜 남자에게 얻어맞고 돈 뜯기던 옆방 여자였다. 김치찌개 냄비에 밥 한 공기였지만 내 평생 그토록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밥을 해 먹은 기미는 없고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멍하니 밥상 앞에 앉아 있으니 문을 반쯤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혼자 먹으라며 나갔다. 배려였다.
-127쪽
강또귀딸 할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냉정했는데 그런데도 나는 할머니 뒤를 따라다녔다. 성가셔하는데도 꽁무니에 붙은 나를 하루는 물끄러미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꾸준한 데가 있구나. 갑자기 다가와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을 믿지 말거라. 그런 사람이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이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란다.”
조쪼깐 할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던 밤 옆에 누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애비를 닮아 의리가 있고 외할미를 닮아 영악하구나. 똑똑하면 사는 게 고달프다.”
- 154~155쪽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온 딸을 불행의 상징으로 여겼다. 나는 인간이 불행할 때 반드시 희망이 나타나는데 그게 나였을 거라고 했다. 잘난 척하는 딸에게 평소 같으면 소리를 질렀을 엄마가 웬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딸을 하나 더 낳을꺼로….”
엄마로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 199~200쪽
화단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귀뚜라미는 전부터 울었을 터이지만 내게는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계단에 앉아 귀뚜라미 소리를 듣자니 사이다 먹은 듯 코끝이 시큰해졌다. 계절이 오가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몰라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모르고, 모르고, 모르겠고… 게다가 집 열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손수건을 꺼내 훌쩍훌쩍 코까지 핑핑 풀어가며 청승을 떠는데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친 작은아이가 계단을 올라왔다.
“엄마, 음주운전 했지?”
-216 쪽
나는 내 계좌로 입금된 돈을 소외된 약자와 비정규직과 외국인 이주민들, 그리고 한국의 작가들을 지원하는 재단에 기부했다. 기부는 내가 아니라 대표의 오른손이 한 일이다. 왼손도 알아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내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산다. 그분들의 선행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게 나의 할 일이다.
-276 쪽
세상을 사는 것은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씩 줄어드는 몸피를 보면서 나를 스쳐간 시간을 절감했다. 이제 볼펜 몸통에 의지하던 몽당연필처럼 내 삶도 소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연필로 편지를 쓰고 싶다. 연필 세 자루를 정성 들여 깎아서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나의 연필로 쓰인 문자가 구부리고 펼치고 넘어지며 마침내 날아올라 결승結繩이 되어 그대를 묶게 되기를. 다음 생을 넘어 다다음 생까지 나의 문자가 당신을 기억하기를.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햇빛 유리가 어떻게 내 눈을 찔렀는지 당신이 나의 하루를 알아주기를.
-278쪽
‘선빵’ 정신으로 세상과 맞짱 뜨며 여기까지 온 사람
김미옥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다섯 자식과 병든 남편을 책임진 엄마에게 막내딸은 잉여 자식인 셈이라 박대와 차별로 고통받을 운명이었다. 그런데 김미옥이 누군가? 거친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선빵’의 정신으로 살아남는 법을 익힌 여걸 아닌가? 어릴 적엔 자신의 태몽을 흙탕물이 나오는 흉몽으로 규정한 모친에게 바락바락 맞서기도 했다. 4대 문명은 하천이 범람한 흙탕물에서 일어났으니 자기 태몽이야말로 길몽이라고! 결혼 후 시댁에서 신참 며느리 길들이기로 제수 음식을 맡기자, 상다리가 부러지게 배달 음식을 차려놓곤 “그동안 개다리소반에 얼마나 시장하셨겠냐!”며 조상님께 선빵을 날린다. 망한 집안의 막내딸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그는 타고난 ‘또라이’ 기질과 돌파력으로 세파를 헤쳐왔다. 그의 인생사를 듣다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러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당찬 기개에 감탄하게 된다.
가난과 고단함 속에도 구원은 있었으니
김미옥의 삶에서 가난이 고난이었다면 책은 구원이었다. 12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일당을 벌어야 했던 와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입주 과외를 전전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책을 탐닉했으니 그가 독서를 통해 삶의 구원을 얻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할 때도 책은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있어 삶이 누추하지 않았고 신산한 마음은 비루하지 않았다. 책이 주는 충일감을 잘 알기에 그는 은퇴 후에도 미루어두었던 독서에 몰두했다. 읽은 책은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SNS에 열성적으로 소개했다. 반짝이는데도 발견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책이 있으면 더 열렬히 알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는 활자 중독자에서 북 인플루언서로 세상에 회자 되고 있었다. 그는 책을 놓지 않았고, 책은 그를 구원한 생명줄인 셈이다.
밥 한 공기의 힘을 세상에 돌려주다
김미옥은 강하지만 따뜻한 사람이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불러낸다.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보내진 그를 양녀로 입양하려 했던 최숙자 담임 선생님, 갈 곳이 없던 그를 자취방에서 재워준 경리 친구, 사흘을 혼자 앓을 때 밥상을 차려준 옆방 애숙 씨. 이들은 김미옥을 알아보고 말없이 지지해준 사람들이다. 힘든 시절에 마음 한 조각, 밥 한 공기를 나눠주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그의 삶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세상에 돌려주려 한다. 착해서가 아니라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주변의 아프고 힘든 이들을 살피고 베푼다. 추천사든 칼럼이든 글쓰기로 인해 돈이 생기면 기부하고 애가 울면 애 엄마가 올 때까지 봐준다는 생각으로 이들을 챙긴다.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그가 공개된 지면에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픈 기억에 악수를 건네다
너무나 비참해서 되돌아보고 싶지 않던 과거도 글로 쓰고 나면 내 것이 아닌 듯이 저쪽에서 반짝인다. 그래서 김미옥 작가는 글을 쓰고 이를 SNS에 공유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아픈 과거를 곱씹으며 원망이라는 창고에 차곡차곡 쟁여 놓는 대신, 빨래하듯 박박 치대서 볕 좋은 곳에 바짝 말려내는 일이다. 서글픈 기억이 다시는 자신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며 쓰는 글. 이것이 김미옥의 글쓰기다. 그가 과거와 화해하고 삶을 살아내는 힘을 얻는 것도 바로 이 같은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산다는 건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는 일이라며 자신의 과거에 다정하게 악수를 청한다. 몽당연필을 보며 소멸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삶은 매정해도 나는 다정하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김미옥 작가가 치열하게 살아낸 자신의 삶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자 고백록이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 프롤로그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친구로 만들었다.
내 과거를 푹 고아 우려낸 글, ‘곰국’은 이렇게 나왔다.
그동안 SNS에서 많은 분이 화답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곰국은 활자 중독자의 책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새삼 감사드린다.
책 제목은 『미오기傳』이지만 시간순으로 쓴 글은 아니다.
말하자면 통증 지수가 높은 기억의 통각점들을 골라 쓴 점묘화다.
서글픈 기억이 다시는 내 인생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졌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운은 어쩔 수 없어도 성격은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생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2024년 4월
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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