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플라이트
2024년 08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2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9.56MB)
- ISBN 978898437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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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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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흔적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려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사라지기 직전 전화 한 통, 가벼운 접촉 사고, 취소된 항공편, 마지막 순간의 행선지 변경 등등. 아주 작은 실마리, 이를테면 송곳이 겨우 들어갈 만한 틈새 하나면 모든 비밀을 풀기에 충분하다.
수증기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너머로 검은색 타운카가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 있던 누군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리더니 종종걸음을 치며 공항으로 들어선다. 바로 그 순간 나와 몸이 밀착되며 여자가 입은 분홍색 캐시미어 스웨터가 내 팔에 스친다. 여자는 마치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올 거라 예견한 사람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 나는 여자가 멀찌감치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고,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쉰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가방 어깨끈을 당겨 메고 여자가 줄을 서려고 걸어가는 보안 검색대를 향해 간다. 도망자들은 늘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신경 쓰기 마련이다. 여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곧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한 줄기 연기처럼 차츰 옅어지다가 끝내 사라질 것이다.
_본문 8~9쪽
“미리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지금은 미투 시대야. 미국 사람들 대다수가 네 말을 믿어주고 적극 지지해줄 거야. 《폭스》나 《CNN》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거야. 그 기회를 이용해 수시로 구타를 당하면서 살아온 결혼 생활을 청산하려 한다고 털어놓는 거야. 여론이 들끓으면 아무리 막강한 로리라도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어.”
나는 김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나도 한때 공개 석상에서 로리의 폭력 행위를 알려 비등해진 여론을 등에 업고 이혼을 밀어 붙여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 하지만 과연 내가 쿡 가문 사람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 소송만으로도 최소한 몇 년은 걸릴 테고, 온갖 구설수가 난무하겠지. 아마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미쳐버릴지도 몰라. 설령 승소한다고 해도 내 인생은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되겠지. 나는 그저 자유를 원할 뿐이야. 남편으로부터의 자유.”
로리와 친해질 수 있다면 내가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볼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쿡 가문에 들어와 사는 동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이 여전히 진리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_본문 18~19쪽
마조리 쿡은 협상력이 탁월한 인물로 유명했다. 그녀가 협상에 나서면 완고하고 보수적인 상원의원들도 마음을 바꾸고 협조하기 일쑤였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제럴딘 페라로보다 훨씬 앞서 대통령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마조리 쿡은 로리가 대학 1학년 생일 때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은 로리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 구멍은 불안한 심리와 딱히 대상이 불분명한 원망으로 채워졌다.
“기자회견과 관련된 내용을 나에게 전혀 안 알려줬잖아.” 나는 퇴근을 앞두고 책상 정리에 열중하는 브루스에게 말한다. 브루스는 펜은 서랍에, 노트북은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며 일언반구 대꾸가 없다.
브루스가 퇴근하자 로리는 의자에 기대앉으며 다리를 꼰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좋았어.” 나는 왼발을 까딱거린다. 내 불안한 심리가 은연중 드러나는 행동이다. 그 모습을 본 로리의 눈썹이 슬며시 치켜 올라간다. 나는 왼발 뒤꿈치에 힘을 주어 가까스로 다리가 까딱거리지 않도록 한다.
“센터 스트리트 리터러시에 갔었어?” 로리가 묻는다. 타이가 그의 목에 느슨하게 걸쳐져 있다. 나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본다. 로리의 눈가 주름은 우리가 한때 행복한 웃음을 나눈 흔적이다. 하지만 로리의 눈은 자주 분노를 담은 눈이 되고 있다. 로리의 음험하고 폭력적인 모습은 내가 한때 그에게서 느꼈
던 호감을 지워버렸다.
“8개월 후에 기금 마련 파티를 열기로 했어. 다니엘이 녹취록을 작성해 내일 당신에게 보여줄 거야. 난 올해 열리는 입찰식 경매의 진행을 맡기로 했어.”
_본문 36~37쪽
“갑자기 출장 계획이 변경됐습니다.” 브루스가 말한다. “디트로이트 행사는 사장님이 직접 가신답니다. 그 대신 사모님은 푸에르토리코에 가서 허리케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인도주의 단체 대표를 접견해야 합니다.”
방금 세상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기우뚱해진 느낌이 든다.
“갑자기 출장을 떠날 장소가 바뀐 이유가 뭐죠?”
“저는 사장님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장님은 다니엘과 함께 이미 디트로이트로 떠나셨습니다.”
콘스탄스가 가방 지퍼를 다시 채우고 나서 브루스를 지나쳐 복도로 사라진다.
“사모님은 오전 11시에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해 푸에르토리코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도무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어 낮게 속삭인다.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가라고요?”
“비스타 항공사를 통해 이미 항공권을 예약해두었습니다. 카리브해에 악천후가 예상되어 곧 항공기 운항이 끊길 수도 있습니다. 현재 예약 가능한 마지막 항공편입니다.” 브루스가 시계를 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저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서둘러 복장을 갖추고 나오십시오. 오전 9시까지 존 F. 케네디 공항에 가야 합니다.”
브루스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위태로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다.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내가 어렵사리 준비한 4만 달러, 니코가 만들어준 가짜 신분증, 페트라의 지원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디트로이트에서 로리가 소포를 열어 모든 걸 알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_본문 52~53쪽
두 사람은 가방에 든 내용물까지 모두 바꿔치기했다. 클레어는 가방에서 찾아낸 NYU 모자를 써서 머리카락을 숨겼다. 그런 다음 스웨터를 벗어 이바에게 건넸다. “남편은 아주 작은 흔적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추적할 거예요. 오늘 있었던 일들은 일초 단위로 끊어 검증할 테고요. 아마 나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공항의 모든 감시 카메라를 보려고 할 거예요. 우린 단순히 항공권만 교환해서는 쉽게 발각될 수 있어요.”
이바는 외투를 벗어 클레어에게 건네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후드 달린 카키색 외투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었다. 지퍼와 안주머니가 잔뜩 달려있어 지난 몇 년 동안 즐겨 입었다.
클레어는 외투를 받아 걸치며 말을 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 공항에 착륙하는 즉시 내 신용카드로 현금을 뽑아 다른 곳으로 떠나는 항공권을 구입해요. 뭐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내 남편이 추적하거나 말거나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클레어는 발치에 놓인 이바의 더플백에 노트북을 집어넣었다. 그다음 욕실용품이 든 가방에서 여행 칫솔을 꺼내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바는 이렇게 시급한 때에 클레어가 칫솔부터 챙기는 게 의아했다. 클레어는 지갑에 든 현금 뭉치를 꺼낸 다음 지갑을 다시 핸드백에 넣고 나서 이바에게 말했다. “남편이 신용카드를 정지시킬 수도 있으니까 서둘러 돈을 인출해야 할 거예요. 카드 비밀번호는 3710이에요.”
비록 돈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바는 클레어가 내미는 지폐를 순순히 받았다. 그런 다음 클레어에게 자신의 핸드백을 건넸다. 이바는 굳이 자신의 핸드백 안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현금은 파우치에 넣어두었고, 나머지 자금은 먼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바는 연분홍 스웨터에 양팔을 집어넣었다.
90분 후면 우린 각자 다른 항공기에 올라 하늘을 날고 있겠지?
이바는 일단 푸에르토리코에 내리기만 하면 감쪽같이 사라질 방법을 일백 가지 이상 알고 있었다. 우선 변장을 한 다음 가능한 한 먼 곳으로 떠난다. 그런 다음 항공기와 요트를 빌린다. 돈이 넉넉하게 준비되어있는 만큼 필요한 건 뭐든지 구할 수 있다.
_본문 71~73쪽
케이트 레인이 말한다. “존 F. 케네디 공항 대변인은 저명한 상원의원인 마조리 쿡의 아들이자 〈쿡재단〉 전무이사인 로리 쿡의 아내 클레어 쿡이 자선행사에 참가하려고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으로 향하는 477편 항공기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은 이제 공항 외부의 현장을 비춘다. 카메라가 커다란 판유리 창 뒤로 보이는 제한구역을 줌인한다.
“비스타 항공사 대표들이 탑승객 가족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한편 플로리다 해안에서는 수색팀과 피해복구팀이 밤늦게까지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NTSB는 4개월 전에도 477편 항공기가 이륙에 실패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테러 가능성을 배제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이 껴안고 울며 서로 위로해주는 사람들을 비춘다. 나는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가 어딘가에 혹시 로리가 있는지 보려고 눈에 불을 켠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마치 내가 보내는 신호를 받은 듯 로리가 겹겹이 쌓인 마이크들 앞에 선다.
“로리 쿡 씨가 유족 대표로 짧은 성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로리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본다. 고가의 청바지에 카메라발을 잘 받는 파란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다. 내가 익히 아는 옷들이다. 로리의 얼굴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고, 눈은 붉게 충혈돼 있고, 퀭한 눈빛은 고통과 절망을 가득 담고 있다. 로리가 정말 참기 힘든 슬픔에 젖어 있는지 아니면 연기인지 가늠해본다. 로리가 표면적으로 내비치는 슬픔의 이면에는 분노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냈을 테니까.
_본문 101~103쪽
이바의 어깨 너머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킨 덱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너의 처지가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잘 알아. 울화통이 치밀어 미칠 지경이겠지. 지난 일을 돌이켜봐야 마음만 아플 테니까 가급적 빨리 잊는 게 좋아. 이제부터 너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니까 내가 빨리 새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제법 쌀쌀한 가을밤이었고, 이바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되물었다. “네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거야?”
“넌 기술을 발휘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마도 우린 멋진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야.”
이바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내가 알아듣도록 설명해봐.”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너에게 약을 제조할 장비를 마련해주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원료를 공급해줄 거야. 그 사람과 함께 일하던 기술자가 조만간 그만두기로 했나봐. 당장 새로운 기술자가 필요한 실정인데 너 정도면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약을 만들면 절반은 그 사람에게 제공하고, 절반은 네가 직접 파는 거야. 적어도 일주일에 5천 달러 이상 벌 수 있어.” 덱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버클리 학생들은 각성제를 필요로 하지. 약을 먹고 공부하면 절대로 낙제를 받지 않거든.”
아직 이른 밤인데 벌써부터 술에 취한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바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덱스가 학생들을 몸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들은 너랑 달라. 학비와 용돈을 제공해주는 부모나 후원자가 있으니까.”
덱스는 갈 곳 없는 이바에게 구명 밧줄을 던져주었고,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이바가 물었다.
_본문 119~120쪽
1. 당신의 절망을 말해주면 내 절망도 말해줄게요.
-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베스트셀러!
-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최고의 스릴러!
- 두렵다고 숨지 말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줘!
줄리 클라크는 2018년 《The Ones We Choose》로 데뷔했다. 2020년 출간한 《라스트 플라이트》가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베스트셀러에 등재되면서 널리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2022년 작 《The Lies I Tell》 역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연속해서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2023년에는 단편 모음집 《The Heart of a Mother》을 출간했다. 《라스트 플라이트》는 아마존 에디터가 최고의 스릴러로 선택했을 만큼 빠른 속도감, 여자 주인공들의 가슴 시린 삶 이야기,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의 문제를 다룬 스릴러다.
《라스트 플라이트》는 화자가 클레어와 이바 둘이다. 두 여성은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나 각자 지니고 있던 항공권을 바꿔치기하기 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소설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던 클레어와 이바가 어떻게 항공권을 바꿔치기하게 되었는지 그 지난한 과정을 매우 흥미로운 삶 이야기와 함께 풀어놓는다.
클레어는 푸에르토리코로 출장을 떠나게 되어 있었고, 이바는 집이 있는 버클리로 돌아가려고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여자에게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위태로운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길 갈망한다는 것이다. 클레어는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 이바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한다.
클레어와 이바는 왜 현재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을까?
클레어는 주로 항공권을 바꾼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바는 이전의 삶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우리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해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극복해내면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거라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설득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라면 어느 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펼칠 것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 클레어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엄마와 동생 바이올렛과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는 몹시 궁핍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내일을 향한 꿈을 키웠다. 동생 바이올렛과 함께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좁은 욕실, 지나치게 낡아 삐걱거리던 식탁, 언제나 바빠 두 딸을 보살필 여건이 되지 못했던 엄마. 이 모든 순간을 지켜봐 너무 일찍 철이 든 클레어는 가족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다. 하지만 클레어가 미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도 전에 엄마와 동생 바이올렛이 교통사고로 숨진다. 바사르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클레어는 학교 졸업 후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일할 당시 로리를 만나 결혼한다. 클레어 입장에서 보자면 신분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결혼이었고, 만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지만 실상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 로리는 연애 시절과 달리 허구한 날 가스라이팅과 구타를 일삼고, 비서들을 시켜 마치 스토커처럼 사사건건 클레어를 감시하고 뒷조사한다. 클레어는 언제 어디에 있든 로리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친구도, 지인도 만나지 못하게 해 결혼 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 가운데 결혼 10년 차인 지금까지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클레어가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가 바로 고교 시절 동창 페트라다. 그들이 만나는 장소는 체육관에 딸린 사우나다. 로리의 눈길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페트라는 클레어의 몸에 난 멍 자국을 발견한 순간 클레어가 남편에게 맞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클레어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남편 이야기를 털어놓는 한편 몰래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페트라가 마피아인 동생 니코에게 부탁해 클레어에게 가짜 여권과 신분증을 만들어준다.
클레어는 과연 남편 로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2. 서로 절망을 공유한 그들의 선택, 새로운 삶을 찾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또 다른 화자인 이바 제임스는 클레어보다도 더욱 힘든 성장기를 보낸다. 조부모는 이바의 엄마가 마약중독자라 이바를 세인트 조지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긴다. 위탁 가정과 세인트 조지프 수녀원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낸 이바는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버클리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다. 화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아 훗날 연구자나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바는 버클리 대학 풋볼팀의 쿼터백 웨이드를 만나 사귀면서 여학생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불행의 시작이다. 웨이드는 화학 실험실에서 조교로 일하는 이바에게 마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끈질기게 졸라대는 웨이드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고 딱 한 번만을 전제로 마약을 만들어준다. 웨이드의 부탁은 이후로도 계속되고, 이바는 매력적인 연인을 붙잡아두고 싶어 마약을 만들어주다가 적발돼 퇴교 조치당한다. 웨이드가 약속대로 이바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었다면 퇴교 조치를 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외면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이바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덱스다. 덱스는 이바가 마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기숙사에서 나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이바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고, 이바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조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바는 덱스와 오랫동안 마약 거래를 해오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라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다. 다만 조직을 배신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는 마약 조직의 보복이 두려울 따름이다.
클레어와 이바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레어는 툭하면 주먹으로 때리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바는 오랜 시간 마약을 거래해왔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클레어와 이바는 각자 처한 현실에서 다치지 않고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만 주어진 환경은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재력을 바탕으로 곳곳에 감시원을 둔 로리의 정보력은 물 샐 틈이 없다. 이바는 마약 조직에서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익히 보아왔기에 몰래 도망치는 건 몹시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클레어와 이바가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도주 방법은 여건이 좋지 않아 무산된다. 결국 두 사람은 신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하는 한편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도전을 준비한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 클레어와 이바가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나 항공권을 바꿔치기하는 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연대라고 볼 수 있다. 두 여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설의 작가 줄리 클라크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정치가나 재력가 혹은 마피아나 마약 조직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성의 삶 자체를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무리 지혜롭고 명석한 여성이라도 혼자 힘으로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남성을 상대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없는 만큼 서로 연대해 힘을 합쳐 싸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피력한다. 힘이 없는 사람이 강한 사람과 싸울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은 언론과 여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힘이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합치려면 현재 겪고 있는 좌절과 고통을 혼자 꼭꼭 숨기지 말고 털어놓아야 한다. 서로 아픔과 절망을 공유하고, 극복해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내려고 애쓸 때만이 권력을 쥔 사람들의 완강한 벽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클레어가 위기일발의 순간에 찾아낸 방법은 무작정 도망치기보다는 언론을 이용해 유리한 여론 지형을 만들어내고 서로 힘을 모아 싸워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스릴러이지만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각종 폐해와 가정 폭력 같은 범죄의 사각지대에서 매일이다시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아직도 여전히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이 소설에서 클레어의 남편 로리는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등에 업고 아내를 아무런 불만도 제기하지 못하는 장난감처럼 만들려고 획책한다.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현실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미비하다. 이 소설의 작가 줄리 클라크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런 여성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당신의 절망과 내 절망을 털어놓고 함께 공유하자고 한다. 그나마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널리 알려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에.
이 소설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USA투데이》 베스트셀러에 등재되고, 아마존 에디터가 최고의 스릴러로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클레어와 이바가 펼쳐놓는 삶 이야기는 친근하고 밀접하게 다가와 우리의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동시에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사회성 짙은 소설인 동시에 매우 뛰어난 여성 서사로도 읽힌다.
3. 언제나 당하기만 하며 살았던 그녀들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라스트 플라이트》 줄거리 요약
클레어는 케네디 가문 만큼이나 명성이 자자한 쿡 가문의 상속자인 로리를 만나 결혼한다. 결혼한 이후 로리의 모습은 결혼 전과 천양지차로 다르다. 연애 시절의 자상하고, 친절하고, 배려심 많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스라이팅과 명령하길 즐기는 독재자, 비서들을 시켜 클레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토커의 모습을 드러낸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중요하고 타인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영락없는 소시오패스다.
집 안에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클레어를 짓누르면서도 세상에서는 여전히 잘생기고, 합리적이고, 젠틀한 남자로 통한다. 내막을 제대로 모르는 여자들은 〈쿡재단〉이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가해 핵심적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클레어를 볼 때마다 몹시 부러워한다. 정작 당사자인 클레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 로리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도주를 준비해왔다.
클레어와 결혼하기 전 로리는 이미 결혼한 전력이 있다. 로리의 첫 부인 매기는 공식적으로는 화재 사고로 숨진 것으로 되어 있지만 로리가 고의적으로 집에 불을 질러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나긴 했지만 여전히 로리를 의심하는 눈길은 존재한다.
클레어는 체육관 사우나에서 페트라를 만나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자유롭다. 어딜 가든 로리의 감시원들이 눈을 번뜩여 클레어를 감시하지만 사우나는 그나마 예외다. 실내에 희뿌연 수증기가 가득 차 있어 클레어가 누굴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동안 로리는 결혼 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절대로 만나지 말라고 강요해왔다. 그런 까닭에 결혼 전 알고 지내던 친구들 중에 지금껏 만나는 사람은 페트라가 유일하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고교 시절 친구 페트라는 클레어가 애써 숨겨온 멍 자국을 즉시 알아보며 그녀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챈다. 클레어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결혼 이야기를 페트라에게 모두 털어놓는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공모자가 된다. 로리에게서 도망치는 게 클레어의 목표였고, 페트라는 기꺼이 조력자가 되어주기로 약속한다. 마피아 가문 출신인 페트라는 동생 니코를 시켜 클레어의 가짜 여권과 신분증을 만들어주고, 로리 몰래 국외로 도주할 수 있는 계획을 단계별로 짜준다. 이제 도주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쿡재단〉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데 클레어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를 도주의 출발지로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클레어의 도주 작전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한다. 로리가 갑자기 출장지를 디트로이트에서 푸에르토리코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로 가야 단계별 작전을 펼칠 수 있는데 푸에르토리코로 가면 모든 계획이 무산된다. 이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절망의 순간에 기적적으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난 초면의 이바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 도망자 처지이기에 밀접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기발한 대처 방법이 떠오른다. 클레어와 이바는 항공권을 바꾸기로 한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4. 《라스트 플라이트》에 대한 언론의 말! 말! 말!
빠른 속도감, 의표를 찌르는 반전, 매력만점 인물들이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_뉴욕타임스
예측불허의 전개, 다 읽기 전에는 결코 내려놓을 수 없다. _피플
의심의 여지없이 강력하고 옥탄가 높고 긴장감 최고다. _뉴욕 저널 오브 북스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들이 생존을 추구하면서 직면하는 도덕적 딜레마는 이 가슴 뛰는 서스펜스 이야기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줄리 클라크는 분명 주목해야 할 작가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긴장감 넘치고 매력적인 여성 중심 스릴러! _커커스
스릴러, 미스터리, 범죄 소설 팬에게 강추! _라이브러리 저널
불확실성과 위험을 극복하겠다는 결심으로 서로 연대하는 현명하고 강한 여성들 이야기. _북페이지
작가정보
(Julie Clark)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나고 자랐고, 다른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는 동안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성장기를 보냈다. 퍼시픽대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대학교 체육학과에서 근무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두 아들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2018년 《The Ones We Choose》로 데뷔했고, 2020년 출간한 《라스트 플라이트》가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었고, 2022년 작 《The Lies I Tell》 역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2023년 단편 모음집 《The Heart of a Mother》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아마존 편집자가 최고의 미스터리로 선택했을 만큼 빠른 속도감과 의표를 찌르는 반전, 여자 주인공들의 가슴 시린 삶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소설로는 테일러 애덤스의 《출구는 없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와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 《나를 쳐다보지 마》, 《널 지켜보고 있어》, 《내 것이었던 소녀》, 마이크 오머의 《살인자의 사랑법》 등, 과학 및 인문서로는 《희망의 자연》, 《반대자의 초상》, 《코스믹 커넥션》, 《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북유럽 세계사》 등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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