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랑이 되려고
2024년 07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17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6.57MB)
- ISBN 9791193240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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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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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퀴어·여성·노동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더 많이 필요해서. 《오늘의 세리머니》,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이어달리기》 등 선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펼쳐온 조우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에서 그러했듯 작가는 사랑하고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나 더 채워 넣는다. 또한 이번에도 기교 없이 정직한 목소리로 현실의 풍경을 그리며 섬세히 마음의 결을 되짚는다.
여기에 그려진 여름 한때의 작은 도약 속에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균열들, 불투명하게 드리운 내일을 마주하고 추동하는 마음들, 서로가 함께하는 시절에 몰두하는 무구한 얼굴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이름들, 그리고 제때에 도착한 위로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작가의 말 · 215
마스코트는 어디서든 눈에 띄고 가능한 한 오래 기억되고 다시 마주치면 반가워야 해. 마스코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름을 알리는 거야. 이름을 모르는 마스코트는 의미 없는 조형물에 불과해. 그냥 있고, 있는 게 다인 거야. 저기 뭐가 있구나, 여기 이런 게 다 있네, 하면서 어쩌면 찰나의 관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거라면 왜 굳이 마스코트가 필요하겠어?
-7쪽
마스코트의 얼굴은 웃는 얼굴.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 동공 안에 자리 잡은 흰 별은 망사 재질이었다. 그곳으로마스코트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바깥을 볼 것이다. 세영은 찍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찍힌다 해도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의 눈을 향해 줌을 당겼다.
-10쪽
“안녕하세요, 오애란 씨. 저는 박세영입니다” 하고 인사하면 기쁜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오애란, 그 이름은 할머니가 스스로에게 선물한 이름이었으니까.
-20쪽
영원히 그런 매일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좋아서라기보다 다른 걸 좋아하지 않아서, 좋은 걸 달리 찾을 수가 없어서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69쪽
“동천을 새롭게 바꾸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취임식에서 강판수가 호기롭게 외친 말에 은수는 발뒤꿈치부터 정수리까지 온몸을 관통하며 올라오는 소름을 느꼈다. 저거, 진심이구나.
-93쪽
영혼이라니. 언니는 그런 말을 잘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낭만적이고, 뜬구름 같은 말을.
-107쪽
세영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영상 속 지수의 눈빛은 다정했다. 그건 분명 세영을 향한 위로의 눈빛이었다. 그때, 지수는 알았을까. 자신의 위로가, 꼭 필요한 순간에 세영에게 도착하리라는 걸.
-190쪽
“마스코트의 이름에는 마스코트의 사명이 담기는 법입니다. 복숭아의 복, 동천시의 동. 바로 제 이름처럼요.”
-210쪽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
동천은 영화라거나 평론이라거나 그런 것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꿈이라고 부를 만한 미래를 그리는 애들은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동천을 떠났다. 은수와는 다른 애들, 자신이 나중에 무엇이 되어 있을지 또렷하게 상상하는 애들. 장래희망란에 ‘직장인’ 혹은 ‘사무직’ 같은 단어는 적지 않는 애들. 그 애들은 동천을 떠나면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90쪽
《당신의 자랑이 되려고》는 호수가 아름다운 물안개의 도시, 충북 동천에서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이 모두 갈아엎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에 맞서 각자가 가진 평범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이 인형 탈을 쓰고 나서는 이야기다. 인구가 점점 감소하여 호황기를 떠나보낸 이곳에 각자의 이유로 머물거나, 돌아오거나, 떠나온 여성들. 장을 거듭할수록 하나씩 소개되는 그들의 사연에는 ‘인구 감소’라는 통계에 생략되어 있던 한 개인의 서사와 궤적이 새겨져 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가상의 소도시 동천시를 말하려면 서울에 빗대어야 한다. 서울에는 있고 동천에는 없는 것. 직통으로 가는 열차, 날씨와 교통 정보를 알려줄 방송국, ‘그릭요거트’ 같은 이름의 식자재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극장. 사소한 디테일들이 더해져 “서울엔 다 있고 서울에만 다 있는” 현실, 지역 간 풍요의 불균형을 재현한다. 이런 이유로 선거철만 되면 동천시의 정치인들은 발전 또 발전만을 맹목적으로 부르짖는다. 그런데 발전이란 무엇인가. “발전이 도대체 뭔가. 돈을 많이 벌면 발전인가. 건물을 많이 지으면 발전인가. 얼마나? 언제까지? 서울만큼이면 되나? 그럴 수가 있나? 그럼 서울에는 서울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나?” 소설 속에서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보수적인 집단의 견고한 위계, 주먹구구식 운영과 우스운 탁상공론이 이어진다. 그 과정을 거쳐 서울에는 없고 동천시에만 있던 것들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동천호수영화제와 동천시 마스코트 동천선녀, 그리고 동천시 특산품 복숭아 같은 것.
더 재밌고 더 좋은 것이 시시각각 쏟아지는 오늘날, 사라져도 눈에 띄지 않을 것들을 지키고 기억하기 위해 소설 속 이름들은 여름날 두꺼운 인형 탈을 쓰고 ‘전국마스코트자랑대회’에 출전한다. 발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자랑이 되려고. 우리가 거리에서 축제에서 마주치는 귀엽고 믿음직한 마스코트들, 그 인형 탈 안에서 애틋한 꿈을 품고, 기꺼이 땀 흘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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