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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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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3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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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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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인터뷰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의 인터뷰이로, 《한편 11호: 플랫폼》의 필자로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한영 번역가 호영의 첫 산문이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세상이 정해둔 이분법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규범과 규준에 보란 듯 취소선을 그어버리는 호영의 글 서른네 편이 해독제가 되어줄 것이다.
호박잎 같은 사랑 ㆍ 16
생일, 기일 ㆍ 23
정확한 사랑 ㆍ 29
환장 ㆍ 33
더는 미룰 수 없을 때 ㆍ 38
손상 ㆍ 53
30대의 트랜지션 ㆍ 61
b에게 ㆍ 66
일기: 목소리, 식욕, 체온 ㆍ 73
STRAWBERRY SWISHER / NO ONE ON THE CORNER ㆍ 78
초대 ㆍ 109
시선, 칼날: 일기 2022년 2~9월 ㆍ 112
나는 이제야 알았다 ㆍ 119
밤이 온다 ㆍ 122
용서하지 말 것 ㆍ 129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일기 230409 ㆍ 132
우리끼리니까 해보는 말 ㆍ 135
생산적인 일을 하나도 못 한 내가 미워지면 웹툰을 번역한다 ㆍ 140
열 개의 진실 ㆍ 145
아무것도 아닌 일 ㆍ 151
자전거 타는 법 ㆍ 158
동네에서 ㆍ 163
라이너 노트: 번역이랑 ㆍ 172
동성애는 ‘용인’되고 트랜스젠더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이유 ㆍ 197
트랜스섹슈얼 계보 ㆍ 207
클럽에서 ㆍ 210
내가 젠더 좀 바꿨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됐을 것 같아? ㆍ 215
love language ㆍ 218
파도 ㆍ 225
탕국 ㆍ 236
몸을 씻다 욕하는 사람 ㆍ 241
냄새 없는 영화, 믿을 수 없는 사람 ㆍ 248
트랜스 트랜스 ㆍ 258
엄마, 저거 뭐야?”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질문을 받은 어른은 얼른 손사래 치며 “언니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무척 기뻤다. 나의 모호함을 뾰족하게 감지하는 아이들. 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아이들.
-31쪽
트랜지션은 오랫동안 나에게 선택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고, 한동안은 트랜지션 이후의 삶이 고통과 수치심으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트랜지션이 나를 위한 선택이라 생각해서 할 수 없었다. 부모, 형제, 부모의 친구, 나의 친구, 회사 동료, 현 고용주, 미래의 고용주, 지나가는 행인⋯. 이 모든 사람의 편안함과 삶에 대한 만족감을 나 자신의 것보다 우선시했다. 여태껏 잘 참고 살았잖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어. 그렇게 주워들은 말을 반복하다가, 나를 이보다 작게 만들 수는 없어서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47~48쪽
타투가 생기기 전에는 이렇게 말했었다. 오른쪽 갈비뼈 끄트머리에 큰 점이 있다고 해. 새끼손가락이 엄지를 향해 꺾인다고 해. 가슴 한가운데가 아이스크림 한 스쿱 떠낸 것처럼 움푹 파였다고 해. 갈비뼈 언저리에 있는 점은 원래 하나였는데, 2년 전쯤 옆에 새 점이 생겼다.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지는 모양은 할머니 손과 닮았다. 오목가슴은 너의 뺨을 수납하기에 적당한 깊이다.
-110~111쪽
이 몸은
달아나고 싶을 때 말로 눈을 축이는데요
새 말을 찾아서 매만질 때 머릴 비비는데요
솟구치는 선율, 두근대는 연골
연착
착란
이 몸의 지리적 특성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뭍도 볕도 견뎌야 하는데요
(복싱장에서 드디어 풀어헤쳐지는 남자들 / 서로를 때린다는 약속 아래 마음 놓고 서로를 만지고 다독이고)
-118쪽
내가 나를 트랜스젠더로 부르는 것은 자신의 삶과 신체를 창조의 대상으로 삼은 조물주들, 규범이라는 투명한 레이저 센서가 가득한 사무실을 떠들썩한 놀이터로 만드는 익살꾼들, 자신의 몸-마음을 불변의 자연이나 주어진 한계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이 될 수 있을지에 놀라워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위대한 실천가들의 계보에 나를 기입하겠다는 뜻이다.
-207쪽
내가 당신에게서 배운 것, 그건 당신이 말로 알려줄 필요가 없던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연다. 밤사이 차가워진 몸을 움직여 따뜻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난 것은 그때그때 메모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기꺼이 혼자가 된다.
-247쪽
번역에 대해, 트랜스젠더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을 인용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나는 영원히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에 자꾸만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나는 텍스트로 만난 존재들에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는 걸까? 왜 매번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 땅에 발붙이지도, 세상살이를 초월하지도 못한 존재들에게 매혹되는 걸까? 우리는 서로를 깊이 알지 못하는데도 사로에게 파고들고, 목소리를 이식하고, 기어코 서로를 변형한다. 트랜스 트랜스, 이건 결국 내가 당신과 뒤엉키고 우리를 오염시키겠다는 약속이다.
-181쪽
트랜스, 트랜스
한국어와 영어, 몸과 마음,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저자는 이 모두를 체화한 사람으로서, 혹은 이 모두를 무화시키려는 입장에서 글을 쓴다. 책은 “30대에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한 그의 담담하고 내밀한 고백(“그냥 여자로 살기 힘든 거 플러스, 365일 나를 최소한으로 작게 접어서 손톱만큼도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조차도 나를 알지 못하게 감춘 채로 사는 게 힘들었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트랜지션 의료적 과정을 추적하거나 정체성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매끄럽게 봉합한 서사가 아니다. 자신의 선택을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의 아릿한 뒷모습, 동료들에게 ‘진정한 나’를 보여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자기 분열의 면면, 그럼에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길바닥에서, 클럽에서, 방구석에서 흘려보낸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다. 저자는 이 시간들이야말로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말하며, ‘나’라는 단일한 정체성 안에는 복수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겹눈의 시선으로 관찰한 일상 박물지
낯선 영화, 익숙하지 않은 대중매체, 처음 들어보는 외국의 지명⋯⋯ 호영의 글은 겹눈을 가진 사람만이 바라볼 수 있는 아득한 지평을 선사한다.
그러나 지금은 나풀거리고 발을 구르고 때려 부수게 두세요
주체라는, 주체할 수 있다는 환상
내 몸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고 그건 남들도 마찬가지고
이건 좋든 나쁘든 그러하다는 점
목적에 눈을 감는 시간
그녀는 그물에 걸린 이슬을 핥아낸 후 여러 포즈를 취해 달아났다
그러나 여기서 ‘겹눈’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그가 오랜 외국 생활을 경험했기에 다소간 낯선 감각의 글을 쓴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오히려 ‘겹눈’은 “왜 동성애는 ‘용인’되지만, 트랜스젠더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까?”하는 질문에 대답할 때, “왜 여성과 연대해야 하는지” 되물을 때, 우리가 지을 다소 아연한 표정과 그에 따라오는 깨달음의 순간까지를 포함하는 단어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장 먼저 트랜지션해 왔다.”
“출발어의 문장을 도착어의 세계에서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목덜미가 붙잡히”는 저자는 허연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정지돈의 소설 《…스크롤!》 등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한국문학 번역가이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나도 못 한 자신이 미워지면” BL 웹툰 번역을 하고, “오랫동안 흠모해 온 가수 이랑의 가사”들을 번역하는 등 대중예술의 전방위를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책의 마지막 꼭지에서 그는 왜 자신이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trans’한 수행을 하게 되었는지, ‘transgender’와 ‘translator’가 교차되는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탐구한다. 미국 내 아시아인으로 살았던 경험과 번역하고 싶은 책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경유해 저자는 독자에게 되묻는다. “왜 매번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 땅에 발붙이지도 세상살이를 초월하지도 못한 존재들에게 매혹되는 걸까?” 자, 이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호영의 글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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