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일기
2024년 08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3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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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4647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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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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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랑하고, 다투고, 멀어졌던 날마다 시인은 일기를 썼다. 이 책에는 시인이 쓰는 일에 골몰한 순간이 두드러졌던 2017년부터 2023년까지의 일기를 아카이브했다. “오래된 스웨터처럼 함께하며 내 몸을 데우기도 했다가, 때로는 무덥고 성가시기도 해서 훌러덩 벗어던지고” 싶었던, 뜨겁기도 또 무겁기도 했던 쓰기의 날들에는 이윽고 시로 돌아온 시인의 한 시절이 담겨 있다.
“‘쓰기 일기’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적힌 글들은 모두 그런 마음으로 적었다. 누군가가 읽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독백의 반칙처럼. 어떤 글은 블로그에 발행하기도 했고, 어떤 글은 라디오에서 읽어주었으며, 어떤 글은 끝끝내 혼자 읽으려고 잠가두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순서에서는 나의 은밀한 것을 들키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쓰기에 몰두했던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누군가의 쓰고 읽는 일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쓰는 시간에 오롯이 혼자가 되는 일은 자신을 다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밀을 들켜서라도 닿는 순간이 되고 싶었다.”
쓰기 일기 | 2017~2023
2023년 1월 1일 가장 성실한 얼굴로
2020년 1월 8일 거의 모든 방지
2021년 1월 10일 매복과 김밥
2019년 1월 11일 결
2022년 1월 12일 미도착
2023년 1월 18일 독수리 다방에서
2023년 1월 25일 슈톨렌의 여름방학
2022년 2월 13일 느슨한 공동체
2021년 2월 21일 쇄신
2023년 3월 6일 안녕 뒤에 느낌표를 적을까 물음표를 띄울까
2019년 3월 10일 운행일지
2022년 3월 17일 집에 무사히 도착하자
2023년 3월 25일 인간의 몫으로, 인간의 노동으로
2023년 3월 31일 기다림의 안간힘
2018년 4월 4일 프리즘
2021년 4월 15일 나의 전차가 지나가고 남은 검은 연기 속에서
2020년 4월 20일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2023년 4월 26일 걸려 넘어진 것들과
2022년 4월 28일 돌려주지 않아도 될 이야기
2023년 4월 30일 편지의 세계
2017년 5월 17일 녹색 계단
2017년 5월 18일 검열
2023년 5월 19일 해찰하기
2023년 5월 21일 부메랑을 쥐고
2023년 5월 24일 초대
2020년 5월 28일 웅덩이 그려 넣기
2017년 5월 29일 나의 뼈를 붙잡는다고
2018년 5월 30일 꿈 마치
2023년 6월 3일 피자를 먹는 뒤풀이
2018년 6월 7일 서른 살
2019년 6월 11일 싸우는 소리로
2017년 6월 13일 고요 선생
2018년 6월 15일 오카리나 불기
2018년 6월 16일 책상 일기Ⅱ
2017년 6월 25일 시 제목 짓기
2023년 6월 30일 킨츠기와 문학
2017년 7월 5일 혼자 돌아오기
2019년 7월 11일 슈가 스틱
2023년 7월 14일 약소하지만
2017년 7월 20일 여름밤 광화문
2023년 7월 21일 끝을 위하여
2023년 8월 6일 김완선을 생각함
2022년 8월 8일 시에게 바란다
2022년 8월 15일 이상한 식물원
2017년 8월 23일 악화
2023년 9월 1일 몸균형상실주의
2022년 9월 3일 시가 쓰고 싶게
2022년 9월 14일 꿈의 출석부 부르기
2019년 9월 27일 장대높이뛰기 선수와 친구 하고 싶다
2018년 10월 3일 건강함이 추억이 되지 않으려면
2017년 10월 15일 지금 내 곁에 누가 왔다 갔나
2017년 11월 6일 겨울의 손잡이를 잡고서
2018년 11월 11일 용서 일기
2019년 11월 30일 행운은 불행의 모조품
2021년 12월 3일 시 하는 삶
2019년 12월 4일 늦은 땔감 배달
2017년 12월 5일 창고에서 꼬마전구를 꺼내오는 일
부록 | 문학 소고
당신과 당신의 가장 문학적인 것(2022)
공동 자화상(2023)
사랑의 무뢰배(2022)
완성할 수 없는 한 문장(2021)
이 중얼거림 사이에는 내 삶의 풍경과 쓰기에 혼신을 다한 뒤의 심심한 독백이 담겨 있다. 어디에도 맺히지 못하고 떠도는 물방울 같기도 하고, 만져지지 않는 입김으로 내 뜨거움을 꺼내는 일이기도 하다. 쓰는 내가 어떤 순간에 완성되지 못했는지, 어떤 시간에 영원히 열리게 되었으며, 또 어떤 장면에서 혼자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 그 과정의 증명이 필요했다. 불꽃들이 지펴진 자리 뒤로 남아 있는 잔불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_8쪽, 들어가며
아주 잠깐 나는 무엇이 되었나, 이런 생각을 했다. 사고 싶은 게 뭔지, 갖고 싶은 게 뭔지, 들끓고 싶은지, 차게 식어가고 싶은지, 기록되고 싶은지, 지우고 싶은지, 버스 정거장 네 개쯤을 빠른 걸음으로 산책했다. 정말 애매하구나, 정말이지 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형태로 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어디쯤에서 나는 삶의 완벽함을 말하고 싶어 하는구나.
_20쪽, 2020년 1월 8일: 거의 모든 방지
새해에 계속 붙잡고 있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양장 노트를 샀고, 매일 조금이라도 그날의 기록을 적는다. 나에게 온 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으면 좋은 점도 많다. 반성은 일기 안에서만 한다.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 드러나는 말들을 모두 퍼붓고, 그것을 꼭꼭 숨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나의 약점을 다루는 방식 중 하나다. 일기를 쓰는 재미일 것이고. 오늘은 특별하게 김밥에 치즈를 넣었다. 이유는 없었다.
_22쪽, 2021년 1월 10일: 매복과 김밥
안녕으로 시작했다가 안녕으로 끝낼 수 있는 편지의 양식 속에서, 안녕이라는 말은 꽤 많은 장면을 내포한다. 그리고 그 안녕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 같은 여운이 뒤따른다는 것도. 오늘은 몇 번이나 안녕의 인사를 전했을까. 그 안녕들이 새처럼 그 사람에게 날아가 어떤 나무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지 생각하면, 편지 위에 안녕을 꾹꾹 눌러 적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편지가 안녕의 날갯짓이라 생각한다면.
_46쪽, 2023년 3월 6일: 안녕 뒤에 느낌표를 적을까 물음표를 띄울까
어떤 글을 쓸 때면 나는 항상 원점으로 돌아간다. 원점은 내가 되기 전이나 내가 기억하고 싶은 선별된 순간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균열의 자리이다. 어떤 균열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고, 어떤 균열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며, 어떤 균열은 아름답게 미장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상처를 투시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꽤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건너는 동안 나의 어떤 흠은 채워졌고, 낡고 견고한 것들 사이에서 더 아름답게 빛났다. 상처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생겨나지 않았고, 제각기 다른 형태로 아물어갔다.
_122쪽, 2023년 6월 30일: 킨츠기와 문학
정확하게 관통하거나, 아예 빗나가는 것이 아니라 빗발치는 와중에 묘하게 들어맞는 것, 서로의 전혀 다른 경사가 하나의 평평한 지면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나는 시와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고 싶은 것, 타인이 내게 읽고 싶은 것이 그렇게 만났다가 또 헤어지면 좋겠다. 어떻게든 서로에게 다시 나타나리라, 자신의 생을 헹구고, 더럽히고, 말리고, 젖은 것을 열심히 훔치면서.
_156~157쪽, 2022년 9월 14일: 꿈의 출석부 부르기
사랑의 무뢰배 틈에도 끼지 못하고 버려졌던 고양이가 작년에 내 품으로 왔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털로 뒤덮인 채 여름과 함께 온 것은 나의 고양이였다. 태어난 날짜도 이름도 없었던 그에게 나는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으로 하나씩 어울리는 것들을 만들어주었다. 사랑의 이름을 나눠 쓰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함께 물들어갔다. 얼굴을 내 발목에 문대거나, 잘 때 꼭 몸 한구석 어딘가를 맞대고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알로 러빙, 알로 러빙’하고 되뇐다. 고양이가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가끔 헷갈린다. 제멋대로며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거침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답지 않아서 좋고, 그 사랑을 온기로 느낄 수 있어 좋다. 인간보다 2도 정도 높은 체온을 내게 맞대며 알려준다. 나는 고양이에게 언제나 차갑다는 것을, 아니 항상 덜 따뜻하다는 것을.
_209쪽, 사랑의 무뢰배
상흔을 끌어안고 헤아리는 시인이
어둠 속 가장 밝은 어둠을 비춘 시에게 보내는 인사
서윤후 시인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본 아름다운 접시에서 킨츠기 공예를 맞닥뜨린다. 킨츠기는 접시에 생긴 세월의 작은 흠집들 사이로, 접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색깔들을 채워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하는 일이다. 시인은 이내 킨츠기를 균열의 자리에서 시작해, 그 상흔을 메꾸는 문학의 일과 나란히 보게 된다.(「킨츠기와 문학」)
시라는 세계에 열렬히 빠졌던 학창 시절부터, 시인으로 쓰며, 문학 편집자로 일하며, 시 수업을 하며 시인은 일상에서 시를 오랜 시간 두루 감각해 왔다. 그러다 시에 들끓던 영원의 순간들에 걸려 넘어진 어느 날에는“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어디쯤에서 삶의 완벽함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겸연쩍은 얼굴을 한 자신을 보기도 했다.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더라도, 타오르던 과정을 증명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일기를 다시 펼쳤다. “불꽃들이 지펴진 자리 뒤로 남아 있는 잔불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시인이 서정적인 언어로 전하는 고요하고 풍성한 시에 대한 사유에는 지금껏 시인 자신을 이끌어온 시의 자국들과 문학이 한 인간을 끌어안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문학 속 한 문장과 하나의 시로, 그러니까 어둠을 물리치는 환한 빛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어둠으로 자신의 상흔을 메꾸었던 독자라면, 시가 산란하듯 비추는 “어둠 속 가장 밝은 어둠” 속을 시인과 함께 거닐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작동 방식을 생각하면 한 인간이 가진 상흔이 어떤 형태로 삶을 끌어안고 지탱하며 살아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처 없이 말끔한 영혼도 문학을 펼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나온 그동안의 문학 속 이야기는 상처가 상처를 지나는 이야기였다. 상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 질문이 다른 상처에게로 닿아서 대답을 흉터로 짊어질 때 문학은 아름답고 성실해 보이기도 했다.”
무더기 같은 날들이라도 이름을 붙인다면
그렇게 특별한 날이 되기에
느리게 기록하는 일로써 일기를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쓰는 일은 잃어버릴 각오로 다시 나에게 다가서는 일이다. 시인의 말처럼, “무더기 같은 나날들 속에서, 일기를 쓰고 제목을 달아둠으로 하여금 특별한 날들로 변모”한다. 시에 흠씬 두들겨 맞고도 계속해서 시에게 포옹을 여는 시인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기로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쓰고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일상을 그렇게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시인의 가장 안쪽을 내보인 이 일기가 누군가에게 여러 번 맺힐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고.
“괜찮은 시간 속에서 괜찮지 않은 곳에 손이 가는 이유는 이유가 맺히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멀어져야 할 것들과, 내가 가깝게 다가서 있어야 하는 것들을 분별하는 시간이다. 은연중에 생각나는 것들에 먹이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옆에서, 내 안에서 계속 재잘거리는 것들의 노래에 맞춰 풍경을 간직하는 것. 그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발이 빠지기 좋은 작은 웅덩이 하나를 꼭 그려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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