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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이춘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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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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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5.11MB)
ISBN 979117213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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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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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대선에서 유권자 다수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 후보를 선택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조국 자녀 입시 비리 수사 등을 이끌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사’, ‘살아 있는 권력 수사’(‘살권수’)로 이름을 알린 검사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검찰 엘리트’ 세력이 ‘내로남불’에 찌든 민주화운동 세력보다 유능하고 공정하며 상식적일 것이라는 기대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선 ‘검찰정권’은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 인물들로 행정부를 장악하고,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자신과 측근을 겨냥한 수사에는 인사 교체를 단행하는 등 ‘살권수’를 외치던 이가 ‘살아 있는 권력’이 되자 무소불위의 기세로 스스로를 성역화하는 모습을 모두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배신의 한 축에 ‘검찰’이 있다. 권력과 한 몸이 된 검찰은 수사와 기소의 칼날을 어느 때보다 편파적으로 휘두르며 법과 정의를 오도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탄생한 정권에서 어떻게 이런 파행이 버젓이 반복되는 걸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의 충돌이 본격화된 사건이자 검찰정권의 신호탄이 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모든 타임라인을 촘촘히 따라가며 이 사건이 미리 암시하고 있던 파국의 조짐들과 이를 가능하게 한 ‘검찰정치’의 문법과 작동 원리를 낱낱이 파헤친다. 30년간 법조 분야에 몸담아 온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으로 쓰인 이 책은 수사 과정과 공판 기록, 인터뷰와 언론 보도를 망라하는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분석, 관련자 증언의 날카로운 교차검증이 돋보이는 기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파적 논리를 배제하고 사실관계의 객관적 분석에 집중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사건의 전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프롤로그 | 검찰개혁은 어떻게 보복당했나

1. 과거를 묻다
출국을 막아라
제 식구 감싸기
면죄부로 끝난 재수사

2. 검찰의 반격
수상한 공익 신고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3. 미완의 무죄
강적을 만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진실과 거짓
무죄 판결

에필로그 | 검찰정권의 배신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경찰 수사 지휘)와 2차 수사(직접 수사)는 애초 사건의 구도에 대한 접근부터 잘못됐다. 이 사건은 크게 두 종류의 범죄로 구성된다. 하나는 검찰 고위 간부가 오랜 기간 스폰서 관계를 맺고 있는 건설업자에게서 성 접대를 받은 전형적인 ‘뇌물수수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 여성들을 별장으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성폭력 사건’이다. 그런데 검찰은 여기서 뇌물수수 혐의만 쏙 뺐다. 왜 그랬을까. 건설업자 윤중천이 접대한 검찰 고위 간부는 김학의 말고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뇌물수수 사건으로 접근하게 되면 다른 검찰 간부들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검찰에 쏟아질 비난도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이 사건이 뇌물수수 사건으로 비화하는 게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이다. _48쪽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작업의 유일한 성과로 기대를 모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는 오히려 김학의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 파장은 컸다. 권력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검찰에 더는 진상조사를 요구할 수 없게 됐다.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검찰이 개혁을 당할 만큼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좌파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간다는 주장이 검찰 안에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검찰개혁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된다. _54쪽

박준영은 김학의 사건 재조사가 검찰 과거사 정리의 차원을 넘어 어떤 정치적 목적, 즉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의 반발을 누르고 청와대가 원하는 일정과 방향에 따라 검찰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근거로 2019년 3월 18일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조사단의 활동 기한 연장을 결정한 것과,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학의 사건을 장자연 사건, 버닝썬 사건과 묶어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을 꼽았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인해 당시 재수사할 만한 부정과 혐의가 드러난 게 없는 김학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진상조사단이 무리수를 두게 됐다는 게 박준영의 생각이었다. 김학의 사건이 검찰의 아킬레스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것이다. _66쪽

문재인 정권이 후반기로 접어든 2020년 12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추(미애)-윤(석열) 갈등’이다. 조국의 뒤를 이어 법무부 장관이 된 추미애는 여권 내 강경파의 지원을 받아 윤석열을 상대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징계를 청구한다. 이에 맞서 윤석열 사단은 법정 소송(징계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및 징계무효소송)과 함께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탈원전 수사’로 맞선다. 이 싸움에서 윤석열이 법원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것을 계기로 여론 지형이 확 바뀐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훌쩍 앞질렀고, ‘정권 교체’ 여론도 ‘정권 유지’를 앞서기 시작한다. 부동산 폭등과 정권 핵심인사들의 내로남불 행태에 실망한 여론이 윤석열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추-윤 갈등’에서 윤석열의 승리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실패와 ‘검찰정권’의 등장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_81~82쪽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으로 기사회생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김학의 긴급출금 사건을 반격의 기회로 삼는다. 그는 《조선일보》가 장준희의 공익 제보 내용을 단독 기사로 보도한 지 이틀 만인 2021년 1월 13일, 국민의힘이 고발한 사건을 안양지청에서 회수해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에 재배당한다. 안양지청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이유였지만, 속내는 이정섭에게 수사를 맡기려는 의도였다. 검찰에서 사건을 어느 부서에 배당할 것인지는 일선 지검장의 권한이지만, 검찰총장 윤석열은 이정섭을 콕 집어 재배당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정섭은 2020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장일 때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수사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한 바 있었다. _91~92쪽

‘김학의 사건’과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는 서로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갖는다. 김학의가 성 접대 등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수사에 착수했다면, 김학의의 해외 출국을 막기 위해 긴급출금한 것을 수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검찰은 두 사건이 법리적으로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궤변에 가깝다. 더군다나 두 사건을 한 검사가 맡아 하는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이다.
이정섭은 상반되는 두 사건의 수사에 순차적으로 참여해, 앞의 사건에선 김학의를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했고, 뒤에 맡은 사건에선 ‘긴급출금 시점에는 김학의에게 범죄 혐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긴급출금한 이들을 기소한다. 만약 김학의에게 범죄 혐의가 없었다면 검찰은 김학의를 겨냥한 특별수사단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특별수사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출범 전에는 없었던 김학의의 범죄 혐의가 특별수사단을 만든 이후 새로 생겼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김학의가 당시 해외로 출국해 버렸다면 특별수사단을 만들었더라도 그를 뇌물 혐의로 기소할 수 없었을 것이다. _93쪽

게다가 이정섭 수사팀의 견해는 당시 김학의 긴급출금 직후 대검이 검토했던 유권해석과도 충돌했다. 대검 반부패·강력부는 김학의를 긴급출금 한 이튿날인 2019년 3월 24일 대검 마약·조직범죄과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피내사자에 대한 긴급출국금지가 가능한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는데,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범죄 인지의 개념을 판례의 태도와 같이 실질적 개념으로 봐서 출입국관리법이 규정하고 있는 범죄 피의자 개념을 피내사자 등에게도 확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 긴급출국금지는 일응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음”이라고 결론 냈다. 반드시 형사입건된 경우에만 피의자로 볼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사가 시작됐으면 그에 따른 수사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대법 판례에 따라 긴급출금은 피내사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김학의는 당시 정식으로 형사입건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검찰의 재수사가 사실상 예정된 상황에서 해외로 출국하려는 그를 출금한 것을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_111~112쪽

또 ‘대검 수뇌부가 김학의 성 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라는 봉욱의 진술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였다. 봉욱은 ‘문무일 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은 검찰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김학의 사건을 다시 수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어느 검찰청에서 할지 결정만 남겨 둔 상태였다’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는 김학의가 사실상 ‘피의자’ 상태였지, 수사팀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고한 일반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봉욱의 이런 진술들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_164쪽

이정섭의 논고는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들에게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은, 검찰의 과거를 트집 잡아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음모이자, 운동권 출신 정치집단의 국기문란 범죄일 뿐이었다. 따라서 검찰의 자존심을 걸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검찰의 이러한 희망은 1심 판결 선고기일에 보기 좋게 깨지고 만다. _191쪽

지난 2022년 20대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의 다수는 검찰개혁에 저항한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 후보를 선택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촛불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토론과 타협을 배제한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일삼는 ‘검찰국가’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무릅쓴 것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검찰 엘리트’ 세력이 ‘내로남불’에 찌든 민주화운동 세력보다 유능하고 공정하며 상식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검찰정권’은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나라 안팎의 재난과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능력은 오히려 뒷걸음질한 것 같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다.
그 ‘배신’의 한 축에 검찰이 있다. 윤석열 정권은 검찰을 국정 운영의 핵심 동력으로 사용한다. 행정부처의 하나인 검찰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맞게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원칙인 삼권분립의 정신과 언론의 자유를 존중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와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이 해야 할 정권 견제 및 비판 기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 국회 다수당이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운영의 경쟁자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적대 세력에 불과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 뉴스의 생산자로 보일 뿐이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통치 철학을 물리력으로 떠받치는 조직이 바로 검찰이다. _207~208쪽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은 2019년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어느 정부가 그나마 보장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명박 정부 시절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나 형(이상득)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답변했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관여하지 않아서 대통령 측근 등에 대한 수사를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스스로 ‘쿨한’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김건희의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윤 대통령의 비호 아래 검찰 수사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
검찰정권의 이런 모습은 문재인 정권에서 외쳤던 ‘살권수’가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의심을 일으킨다. ‘윤석열 검찰’의 살권수가 권력의 부패를 막기 위한 목적보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실제로 이런 의심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이다.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에 ‘윤석열 총장’과 ‘부인 김건희’,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여권 인사와 기자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한 사건이다. _224쪽

검찰이 가진 권한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공정’하고 ‘상식’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이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의 핵심 가치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민심은 그런 윤석열 정권에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과 ‘고발 사주’ 사건 등에서 보듯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는 소수의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장악한 정권은 지금 국민의 기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배반하고 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짓을 버젓이 저지른다. _227쪽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탄생한 정권은
어떻게 국민의 기대를 배반했는가

‘살권수’에서 ‘검찰국가’가 되기까지검찰정권의 신호탄 ‘김학의 사건’으로 보는
그들만의 자가당착식 공정에 관하여

지난 20대 대선에서 유권자 다수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 후보를 선택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조국 자녀 입시 비리 수사 등을 이끌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사’, ‘살아 있는 권력 수사’(‘살권수’)로 이름을 알린 검사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검찰 엘리트’ 세력이 ‘내로남불’에 찌든 민주화운동 세력보다 유능하고 공정하며 상식적일 것이라는 기대에 힘입은 것이었다.(207쪽)
하지만 그렇게 들어선 ‘검찰정권’은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207쪽)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 인물들로 행정부를 장악하고,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자신과 측근을 겨냥한 수사에는 인사 교체를 단행하는 등 ‘살권수’를 외치던 이가 ‘살아 있는 권력’이 되자 무소불위의 기세로 스스로를 성역화하는 모습을 모두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배신의 한 축에 ‘검찰’이 있다.(207쪽) 권력과 한 몸이 된 검찰은 수사와 기소의 칼날을 어느 때보다 편파적으로 휘두르며 법과 정의를 오도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탄생한 정권에서 어떻게 이런 파행이 버젓이 반복되는 걸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의 충돌이 본격화된 사건이자 검찰정권의 신호탄이 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모든 타임라인을 촘촘히 따라가며 이 사건이 미리 암시하고 있던 파국의 조짐들과 이를 가능하게 한 ‘검찰정치’의 문법과 작동 원리를 낱낱이 파헤친다. “냉정한 이성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홍성수) 꼭 살펴봐야 할 책이다.


‘오래된 미래’ 김학의 사건 타임라인으로 보는
검찰정권의 작동 원리

성폭행, 금품수수, 접대 관행, 봐주기 수사, 보복 수사, 사법의 정치화 등 ‘김학의 사건’은 면면에 “법과 정의의 부재”(한상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는 무죄 판결을 받아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해방(19쪽)되었고, 용의자를 수사하던 사람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며 승기에 오른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러는 동안 피해자들은 어떤 보호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말 그대로 가해자와 피해자, 심판자의 처지가 모두 뒤바뀌었다.(19쪽) 사건의 본질에서 한참 멀어진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공정’을 외치며 탄생한 검찰정권이 국민의 기대를 어떻게 배반하고 있는지, 이 책은 그 출발선이자 집약본인 ‘김학의 사건’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김학의 사건의 첫 수사는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박근혜 정부) 다음 날 ‘김학의 동영상’이 보도되면서 시작된다. 오랜 기간 검찰 고위 간부 대상 성 접대에 동원되어 온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처벌을 요구하면서 파장을 일으켰으나, 성폭력과 뇌물수수 정황이 확인됨은 물론 이에 대한 동영상 증거까지 제시된 상황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로 김학의는 두 번이나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여성 인권을 짓밟은 범죄인 데다 검찰의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 정황까지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이후 검찰개혁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권은 김학의 사건을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대상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수사를 추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절차적 흠결이 발생해 적법성 시비가 인다. 당시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가 아니었던 김학의가 갑작스레 출국을 저지당한 상황을 ‘민간인 불법사찰’로 규정한 윤석열 사단 검찰이 관련자들을 수사한 뒤 재판에 넘긴 것이다.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한 것이었더라도 적법 절차를 지켰어야 했다는 논리였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친문 인사만을 선택적으로 겨냥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는 명백한 보복 수사였다. 결국 이 과정에서 김학의는 또 한 번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었고, 김학의의 해외 도피를 막은 이들은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의 대상이 되어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아무리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출국금지 조치는 적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절차적 원칙은 이론적으로 명백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절차적 정의가 실체적 정의와 충돌할 때는 무엇이 더 긴급하고 중요한 가치인지 날카롭게 가려 판단해야 한다. 주객 전도식 법리 적용으로 온갖 비리와 부정의가 합리화된 이 사건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며 이 책은 검찰권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할 때 ‘사법 정의’가 어떻게 현실과 괴리하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김학의 사건’을 통과하며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보복과 배신의 파워게임이 지금의 정치 국면을 만들었는지를 낱낱이 밝힌다. 나아가 “오래된 미래”이자 현재진행형 사안인 김학의 사건이 ‘살아 있는 권력’ 성역화, 보복 수사, 헌법 파괴, 검찰권 남용, 거부권 남발, 언론 탄압 등 작금의 문제들을 어떻게 현시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한다. 반복되는 실패를 벗어나기 위해 그 실패의 자리를 꼼꼼히 응시하기를 제안하는 이 책은 총선 이후 검찰개혁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른 지금, 앞으로의 과제에 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검찰개혁, 정파 이슈 아닌 공동체의 과제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읽어야 할 책

30년간 법조 분야에 몸담아 온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으로 쓰인 이 책은 수사 과정과 공판 기록, 인터뷰와 언론 보도를 망라하는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분석, 관련자 증언의 날카로운 교차검증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 특유의 필력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홍성수) 또한 특징이다. 무엇보다 정파적 논리를 배제하고 사실관계의 객관적 분석에 집중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사건의 전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객관적 시선으로 사건의 타임라인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정파적 해석이 비대해지는 순간 모든 사건은 본질과 멀어지게 된다는 자명하고 타당한 사실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검찰개혁이 ‘조국 수호’나 ‘윤석열 제거’와 등치될 때 공동체는 ‘법과 정의’에 관해 숙고해 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김학의 재수사가 ‘검찰개혁 음모론’으로 이해될 때 ‘가해자 처벌, 피해자 회복’이라는 사법 정의와는 금세 멀어진다. 이 사건 역시 사건의 실체보다 상징과 함의로, 권력 간의 파워게임으로 해석되어 정쟁에 사용되었고, 수단이 되고야 만 사건 앞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것은 피해자들이었다.
실체를 추구하기보다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시각은 검찰정권이 들어서고 더욱 만연해졌다. 나라 안팎으로 재난과 위기가 반복되는 와중에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부된다. 제1야당은 국정 운영의 경쟁자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적대 세력으로 여겨지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 뉴스의 생산자(208쪽)가 되었다. 대통령의 이러한 통치 철학을 검찰이 물리력으로 떠받치며 행정은 국민을 소외하고 있다.
민심을 배반하는 검찰정권은 2024년 4·10 총선에서 혹독한 중간평가를 받았다. 민주화 이후 집권 여당이 개헌저지선(101석)을 조금 넘는 의석으로 참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227쪽) 특히 검찰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조국혁신당의 약진을 보며 4·10 총선은 민심이 대통령과 여당뿐 아니라 검찰까지 심판한 선거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비록 검찰개혁을 위해 쌓아 온 그간의 행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퇴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이 꼬였는지 꼼꼼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정파적 편견에 숨겨져 있던 사실들”을 낱낱이 드러내며 진실에 다가가는 이 책은 기회의 순간에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개혁을 정파 이슈가 아닌 공동체의 과제로 인식해야 함을 선명하게 설득하는 책이기도 하다.

검찰이 가진 권한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공정’하고 ‘상식’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이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의 핵심 가치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과 ‘고발 사주’ 사건 등에서 보듯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는 소수의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장악한 정권은 지금 국민의 기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배반하고 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짓을 버젓이 저지른다.
민심을 배반하는 검찰정권은 2024년 4·10 총선에서 혹독한 중간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통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 검찰정권에서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정권도 시민의 거듭된 저항 끝에 결국 무너졌다.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 검찰정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에필로그〉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이춘재

저널리스트.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재판 취재를 시작으로 기자 이력의 대부분을 법조 분야에서 쌓았다. 《한겨레》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을 지냈고, 지금은 논설위원으로 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건희 비자금 사건’과, 2016년 박근혜 정권 말기에 벌어진 일련의 검찰 비위 사건(진경준·홍만표·우병우 사건), 2019~2020년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충돌’ 등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진보 성향 대법관 5명의 활약상을 그린 《기울어진 저울》(2013)과,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실패 원인과 윤석열 정권의 탄생 배경을 추적한 《검찰국가의 탄생》(2023)을 썼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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